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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미스바와 센 사이에 / 삼상 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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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미스바와 센 사이에
본문:삼상 07:12-17

사람들에게는 기념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은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가장 흔한 것이 기념일입니다. 생일도 기념일이고 한 나라의 국경일들이 대부분 기념일들입니다. 기념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념행사도 많고 기념재단도 있고 기념사업도 있고 기념공연도 있고 기념식수도 있고 기념논물도 있고 기념작품도 있고 기념우표나 화폐도 있고 심지어 기념교회나 기념건물도 있습니다. 공항이름-사람이름,

사람에게 삶의 가치를 알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 하나가 무엇을 기념하는가 하는 것을 통해서 그 사람의 가치를 비교적 잘 알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기념일을 좋아합니다. 만난지 100일을 기념하기도 하고 결혼기념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대하기도 합니다. 어떤 곳은 유명 사람이 다녀갔다는 것을 기념하고 어떤 경우는 창립한 시작을 기념일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오직 하나님을 기념하는 기념일이 있어야 하고 기념비가 필요하고 하나님을 기념하는 행사와 전통이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기념일은 다 하나님을 기념하는 날들입니다. 유월절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념하는 날이고 오순절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첫 열매를 주신 것을 기념하여 지키는 날이며 장막절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추수하게 하심을 기념하여 지키는 날입니다.

성도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날들이 많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심과 쉬심을 기념하는 날이요 주일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을 기억하며 그 소망을 우리 안에서 새롭게 해석하는 날입니다. 성찬식은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살과 피를 주신 것을 기념하는 예식이요 성탄절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기념을 바로 하면 그 기념이 우리에게 은혜의 통로가 됩니다. 반대로 기념을 잘못하면 그 기념이 우상이 되고 그 기념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썩어질 것으로 바꾸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기념에 대한 바른 의식이 필요합니다. 오직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만을 기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 은혜를 기념하기 위해서 기억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성도에게 모든 예배는 다 기념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를 기념하고 우리를 자녀 삼으신 은혜를 기념하고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심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사무엘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스바와 센 사이에 에벤에셀이라는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바로 20년 전 이스라엘은 불레셋과 전쟁을 치루었습니다. 그 전쟁에서 참으로 큰 패배를 당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 4,000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언약궤가 불레셋에 빼앗겼습니다. 그 다음 엘리와 그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이가봇의 수치와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스바에 모였습니다. 불레셋이 쳐 들어왔지만 이번에는 불레셋을 이기고 불레셋에 빼앗겼던 땅을 도로 찾았고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서 미스바와 센 사이에 기념비를 세운 것입니다. 상황 설정은 20년 전과 동일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불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있었던 일이었고 전쟁이라는 동일합니다. 이스라엘은 20년 전과 전혀 다른 경험을 한 것입니다.

20년 전과 비교해보면 모든 면에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20년 전에는 이스라엘이 패배를 당했지만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완전하게 이겼습니다. 그 때는 전쟁에서 법궤를 빼앗겼지만 이번에는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리므로 하나님이 우레를 발하여 불레셋을 치게 하셨습니다. 그 때는 엘리라는 지도자로 인해서 이스라엘에 불행이 왔지만 이제는 사무엘이라는 지도자로 인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이 나타난 것입니다.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불레셋을 하나님이 막으셨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20년의 시간을 두고 최악의 상황과 최선의 상황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20년 전과 20년 후는 최악의 상황과 최선의 상황을 설명하는 요소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과 최선의 상황을 비교해보면 겉으로는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습니다. 불레셋은 여전히 이스라엘에 대하여 적개심을 품고 있고 이스라엘은 연약한 그대로였습니다. 20년 전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불레셋의 공격으로 그들은 다 잃었습니다. 법궤도 빼앗겼고 지도자도 잃었습니다. 20년 후 그들은 똑같이 불레셋의 공격을 받았지만 하나님이 그들에게 놀라운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최선의 모습을 우리는 찾아야 합니다.

1. 바른 예배입니다.
20년 전에는 예배가 무너졌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더럽혔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불레셋에게 빼앗겼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가로챘고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을 겁탈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이들의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리라 고 했습니다.(3:14) 이 때 불레셋이 쳐들어 왔고 이들은 불레셋에게 죽임을 당하였고 이스라엘은 불레셋에게 처참한 패배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20년 후 예배의 회복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 우상을 버리고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하나님만 섬기도록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스바에 함께 모여 물을 길러 여호와 앞에 붓고 금식하며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고 회개했습니다. 이 때 불레셋이 쳐들어왔으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도우시고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에게 예배는 성공과 실패의 경계선이 됩니다. 예배의 실패자가 된 사람이 성공할 수 없고 예배의 성공자가 실패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성경의 많은 실패의 사건 앞에는 예배의 실패가 있고 축복의 사건 앞에는 예배의 회복과 성공이 있습니다. 성도는 어떤 일에 성공과 실패를 달아볼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 일로 인해서 예배생활에 성공하면 그 일은 자신에게 반드시 축복이 됩니다. 그러나 그 일이 예배에 방해가 되면 그 일은 자신의 삶을 황폐화시키게 됩니다.

사울 임금은 전쟁에는 승리했지만 그 일로 인하여 예배의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사울은 불레셋과 전쟁을 하기 전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오지 않자 자신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망령되이 행하였다고 하면서 당신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쟁에는 사울이 승리했지만 실제로 예배의 실패로 인하여 그 인생의 실패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다윗은 하나님께 범죄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회개하면서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하나님께 바른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용서하시고 다윗에게 은총을 주신 것입니다. 성도가 자기 삶에서 승부를 걸어야 할 삶의 내용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의 성공자가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예배의 회복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 인생의 실패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예배는 인생의 실패를 치유합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단을 쌓을 때에 복을 주셨지만 창세기 15장에 보면 제사에서 실패할 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자손들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400년을 종살이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에서 최악의 결과는 예배의 실패에서 그 씨앗이 뿌려졌고 아브라함이 자신의 삶에서 최선의 하나님 앞에 바른 예배를 드림에 있었습니다.

2. 바른 지도자입니다.
20년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엘리의 집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이가봇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고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그래서 에벤에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말입니다. 어떤 일의 결과에는 이가봇이 있고 에벤에셀이 있습니다. 그 사람으로 인하여 혹은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일이 있고 반대로 그 일로 인하여 혹은 그 사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이 나타나는 일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보면 이가봇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저 사람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서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지도자가 있습니다. 반대로 에벤에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저 사람 때문에 우리들이 복을 받게 된다는 확신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내가 있는 곳에 에벤에셀의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미국 펜실베니아 주 벨리포지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워싱턴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바로 이곳을 공원으로 지정하여 그 역사적인 현장을 지금도 고이 보전하고 있습니다. 이 공원 안에 워싱턴 기념교회가 있는데, 거기에 조지 워싱턴의 기도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미국을 보호할 수 있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라고 믿습니다. 이 나라의 지도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시고 국민들을 사랑하는 진정한 형제애를 갖게 하시옵소서. 지도자들이 솔선하여 정의로운 생활을 하게 하시고 자비를 사랑하고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겸손히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게 하소서" 라는 기도입니다.

한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보려면 지도자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 영광을 잃어버리게 한 지도자였습니다. 엘리 가문은 하나님의 법궤를 이방에 빼앗긴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한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지도자를 통해서 역사하지 않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임재를 백성에게 보여준 사람입니다.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지도자는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는 지도자입니다.

3. 바른 감사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고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그들은 에벤에셀의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감사의 기념비가 이스라엘을 지키는 방벽이 되었습니다. 13절 말씀을 보면 이에 불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14절에는 또 이스라엘과 아무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바른 감사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복을 지키는 가장 귀한 울타리가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면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복을 헤치지 못하는 울타리가 될 것입니다. 그 은혜를 빼앗기지 아니할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 은혜와 복의 울타리가 되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반대로 원망과 불평을 하게되면 울타리가 무너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복을 다 잃어버리게 되고 맙니다. 사탄은 오늘도 우리에게 와서 우리가 받은 은혜를 빼앗기 위해서 불평하도록 유혹하고 원망하도록 충동질을 합니다.

감사는 영적으로 볼 때 가장 견고한 울타리입니다. 감사가 충만한 삶은 결국 승리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기념비를 높이 세워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복을 지키는 힘이 됩니다.

고후 4:15 모든 것을 너희를 위하여 하는 것은 은혜가 많은 사람의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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