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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나바와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라 / 행 11: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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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바와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라
사도행전 11:22-26

기독교 이 천년 역사는 복음의 역사임과 동시에 복음을 위해 일한 많은 인물들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을 복음 안에서 부르셔서 그리스도인으로 삼아 그리스도의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의 역할과 헌신은 복음에 의한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물론이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역사를 이루어 놓았습니다.

성서본문은 안디옥 교회의 설립과정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스데반의 순교를 기점으로 기독교에 대한 혹독한 박해가 찾아왔습니다. 박해로 인하여 각 곳에 흩어진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안디옥으로 가서 머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곳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함으로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19-20) 이 교회는 이방의 세계가운데 세워진 처음의 교회가 되었고, 이 교회는 복음의 세계확장의 선교적 전초지의 역할을 크게 감당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와 쌍벽을 이룰 만한 훌륭한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이 안디옥 교회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안디옥에 복음이 전파된 것과 그곳의 그리스도인들의 소식을 듣고 '바나바'를 보내어 그들의 신앙을 확인하고 그 교회를 치리하게 했습니다. 바나바는 회심한 바울을 데리고 가서 함께 사역함으로 안디옥 교회는 은혜롭고 훌륭한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훌륭한 그리스도의 사람인 바나바로 인하여 안디옥 교회는 크게 성장했고 세계복음화의 큰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역할을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리스도인으로 일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바나바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신앙의 모습을 전해줍니다. 우리는 이 훌륭한 바나바와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우리가 본받아야 할 바나바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훌륭한 신앙의 사람

사도행전의 기록자는 이 바나바의 신앙을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고 했습니다. 훌륭한 신앙인은 충만한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고 성령의 충만함을 이루고 사는 사람입니다. 신앙인의 핵심은 충만한 믿음이고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믿음에는 수평적 믿음과 수직적 믿음이 있습니다.
수평적 믿음은 환경에 의해서 만들어진 믿음입니다. 신앙의 가정에서 성장했거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믿음입니다. 기독교적인 문화환경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신앙생활가운데서 만들어진 믿음이기도 합니다. 교육에 의해 형성된 믿음이거나 신앙생활의 방법을 답습하는 데서 만들어진 믿음입니다.

수직적인 믿음은 하나님 앞에 서있는 인간으로서 하나님과 만나는 하나님 체험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데서 만들어지는 믿음입니다.
바울의 회심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빛 가운데서 만남으로 그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회심했습니다. 이 뒤부터 바울은 수평적 믿음이 아니라 이방의 사도로 택하심을 받았다는 수직적 믿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수직적 믿음은 여리고 성에서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의 모습 가운데 드러납니다. 삭개오는 신앙의 많은 번민 가운데 살았던 사람입니다. 어두운 인생 속에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여리고 성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자했습니다. 많은 군중 사이에서 걸어 가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어서 삭개오는 뽕나?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삭개오를 뽕나무 위에서 내려오게 하시고 그의 집에 함께 유하게 되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뽕나무를 올라간 삭개오의 신앙은 수직적 믿음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이 수직적 믿음은 예수님을 삭개오의 집에 초청하고 정성껏 예수님을 공개하고 예수님 앞에 회개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이 세리로서 남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값겠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삭개오에게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 선포하시고 이후로는 삭개오로 하여금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부리울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수직적 신앙은 회개, 감동과 기쁨, 영광 변화의 삶을 만들어내는 신앙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바나바의 믿음은 수직적 믿음이었습니다. 수직적 믿음은 하나님 앞에 서있는 인간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찾아야할 모습을 이야기 하는 신앙을 말합니다. 매일매일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서있느냐는 것, 그리스도 안에 사는 감격, 기쁨, 영광이 무엇이냐는 것, 어떤 변화를 만들어 가느냐는 이 수직적 신앙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과거가 아닌 지금의 믿음이 충만한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충만했다는 것은 수직적 믿음을 말합니다.

성령의 충만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신이신 성령의 전적인 지배와 그 성령 안에서 사는 충만한 삶을 말한다. 믿음은 성령과 함께 하는데서 수직적이고 충만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성령과 함께 하는데서 수직적 믿음으로 충만한 믿음이 됩니다. 성서는 충만한 믿음과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산 사람들의 인생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충만한 믿음과 성령으로 충만한 훌륭한 신앙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에서 훌륭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룹니다.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좋은 사람

성경은 바나바를 '착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영어성경에는 'good man'이라고 했습니다. 좋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성경가운데 나오는 인물들 가운데 착한 사람이라고 기록한 사람은 바나바 뿐입니다. 바나바는 아주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고, 더욱, 더욱, 좋은 사람이 되어 가는 사람입니다. 지금 어떤 사람이냐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지금 좋은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좋은 목사입니까? 좋은 장로님입니까? 좋은 권사님, 집사님입니까? 정말 좋은 교인들입니까? 이 교회는 좋은 교인들이 되어야 좋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바나바를 향하여 좋은 사람이라는 한 것은 '깨끗하고 경건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겸손하고 친절한 사람'이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행 4: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 앞에 두니......"

바나바는 초대교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그가 가지고 있는 밭을 팔아 아낌 없이 사도들앞에 내놓은 희생과 헌신의 사람입니다. 행함의 본으로 착한 사람이라고 인정받았습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존경받고 인정받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신뢰하고 중대한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좋은 사람입니다.

행 11:22, "예루살렘 교회가 그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 까지 보내니...."
바나바는 사도들이 신뢰할 수 있고, 중대한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드러낸다.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상대적 표현입니다. 스스로 혼자서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고 상대적 평가에 의해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은 사람이라고 할 때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모습이 있다는 것이고,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라고 할 때는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함께 존경받고 인정받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성도들로부터 존경받는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좋은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좋은 교인이요 좋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칭찬과 인정과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좋은 사람이 가득한 교회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는 안디옥 교회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교회, 좋은 교인, 좋은 사람들이 되십시오.

인물을 만드는 사람

사도행전 기자는 바나바의 대단히 중요한 모습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나바가 인물을 만드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사울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데 선봉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려고 다메섹을 향하던 중 빛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분위기로 볼 때에 사울은 교회에 부담스러운 대상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바울에게 다가가기를 즐겨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 하여 그의 제자됨을 믿지 아니하니"(행9:26)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것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행9:27)

그런데 이런 사울에게 바나바는 다가갔고 그리고 그들을 사도들에게 인도하여 복음을 증거 하는 자로 만들었습니다.
안디옥에 복음을 전한 사람들은 사울의 핍박을 피해 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사울을 안디옥으로 데리고 와서 함께 사역했습니다. 본문에 보면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가서 만나내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행11:25-26)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나바'의 본래의 이름은 요셉입니다. 사도들은 사람을 잘 키우고 만드는바나바의 성품을 보고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바'는 '아들'이라는 뜻이고, '나바'는 '위로'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바나바는 위로, 곧 권면하는 자로 사람을 키우고 만들어 세우는 큰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가 세운 사울은 바울이 되어 이방의 사도로 세계복음화의 최고의 인물이 되게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바울의 영광은 바나바의 영광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인물을 키우고 만들어 세우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과 함께 안디옥에서 또 다른 인물들을 많이 키웠습니다. 사도행전 저자는 이것을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고 기록했고,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행13:1)라고 기록했습니다.
위대한 사람은 인물을 키우고 만드는 사람입니다. 내가 충성하는 것 아주 귀한 신앙입니다. 그러나 충성하는 또 하나의 다른 사람을 만드는 것이 더욱 귀한 신앙입니다. 꼭, 내가 해야 한다는 것도 귀한 것이지만, 내가 해야 할 그 일을 할 수 있는 또 다른 사람을 키우고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나보다 더 훌륭한 인물을 만드는 것이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부보는 자식이 자기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런 부모의 마음과 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 아름다운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마지막 당부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태28:19-20)
내가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것이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세례 받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받고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이 가르침 받고 말씀대로 살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이스라엘민족의 제도자로 세웠습니다. 엘리야는 엘리샤를 그의 후계자로 세웠다. 모세와 엘리야의 위대함도 귀한 것이지만 그들이 사람을 키워 지도자로 세운 역사는 더욱 값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12몀의 제자를 세워 그리스도의 일을 계속하게 하셨다. 이것이 또 다른 주님의 귀한 모습입니다.
업적보다 그 일을 계속할 사람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고 값진 것이다. 나로 인하여 누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신앙을 전해 받느냐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나로 인하여 위대한 그리스도인의 인물이 키워지고 세워지는 것은 가장귀한 축복이다.
때로는 '나만'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역행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심술이고, 고집이 될 위험성이 있는 것입니다.

단기 선교팀을 먼저 귀국시키고 저는 심양에 선교지를 둘러보았습니다. 그 심양에 동관교회라고 우리나라 성서를 처음 번역한 번역 사역을 시작한 영국의 죤 로스 목사님이 세운 교회입니다. 그 교회가 지금은 주일에 만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존 로스 목사님이 그곳에서 목회하면서 한국 사람들을 만나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어 성서 번역 사업을 했습니다.
그 교회가 사회주의 사회 속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드릴 수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교회에는 아직도 많은 훌륭한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존 로스 목사님은 많은 그리스도의 인물들을 양육했습니다. 한국 초기의 기독교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들을 양성했습니다. 훌륭한 신앙은 훌륭한 신앙인을 만들 줄 알아야합니다.

여러분! 훌륭한 신앙인들을 만들어 가는 교인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이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면서 훌륭한 신앙인을 만들어가는 믿음의 삶을 사셔야 합니다. 오늘 이것이 우리들이 걸어가야 할 신앙의 삶입니다.
우리는 바나바와 같은 훌륭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루어 가는 값지고 소중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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