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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의 잔을 들고 / 시 116:1 -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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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시116 : 1 - 19절
제 목 : 구원의 잔을 들고

모 회사 지점장으로 파견 근무 중인 남편을 따라
미국에 머물고 있던 한 자매의 이야기입니다.
이 자매가 아직 예수를 모르던 고등학교 시절에 점을 친일이 있었는데, 그 점쟁이 말이 이 자매가 40대가 되면 대통령 부인이 될 신수라고 했답니다.
이 말을 그대로 믿은 순진한 자매는 학창 시절을 거쳐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잠재의식 속에 대통령 부인이 된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자연스레 세상의 모든 남자들을 은근히 무시하기도 했으며, 몸가짐도 나중에 영부인이 되는데 누가 될까봐 신중히 처신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는데,
그는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백 만 분의 일도 안 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자매는 예수를 믿고 변화된 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과 긍지가 최고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매는 이렇게 간증합니다.
[ 저는 세상에서 대통령 부인되는 것보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더 기쁘고 흥분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더없이 자랑스럽습니다 ]

우리는 쏟아 부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사랑에 감격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의 굳어지기 쉬운 마음을 끊임없이 부드럽게 해주셔야 가능합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눈을 뜨게 해 주어야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면서도
하나님의 자녀된 기쁨과 감격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 속에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시116편은 심각한 위기 상황 속에서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송의 시입니다. 오늘 우리도 시편 기자와 같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어떻게 신앙생활 해야 할지 그 답을 얻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시103:2-5절
[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말찌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신신당부의 말씀은 <2>
기억하라, 잊지말찌어다, 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늘 우리에게 영원한 젊은이로 살아갈 수 있는 새 힘을 주실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그 위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는 호기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을 당한다할지라도
한 가지 결단만 세워진다면 그 위기는 도리어 호기가 됩니다.
그 결단이 무엇입니까? 바로 기도인 것입니다.
1-2절
[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 ]
[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은 반드시 뻗쳐집니다.
설령 3절 말씀같이
나의 생애에 음부의 고통 같은 환난과 슬픔을 당한다 할찌라도
기도하면 구원의 손길이 임할 줄 믿습니다.
문제는 기도의 결단입니다.
[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
기도하는 생애 하나님께서 평탄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복음송 <오늘 집을 나서기 전> 4절 가사
[ 나의 일생 다가도록 기도하리라
주께 맡긴 나의 생애 영원하리라 ] 할렐루야
기도하는 나의 생애 주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시140:6절에
[ 내가 여호와께 말하기를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여호와여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하였나이다 ]
우리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는다면
반드시 나의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기도에 눈을 뜬 성도의 간증입니다.
두 돌이 채 안 된 아들이 포크레인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차를 타고 길을 가다가도 포크레인이 보이면 늘 서서 지켜보아야 했고, 어느 날은 포크레인이 들어 있는 그림책과 가위를 들고 와서는
오려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엄마가 달래며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림일 뿐이고, 오리더라도 진짜 포크레인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그리고 2주 후면 돌아오는 생일에 <3>
아빠에게 포크레인을 사달라고 하자고 달랬습니다.
아빠는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 이렇게 간절한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내가 이 아이 아비라고 할 수 있겠는가? ] 라고 생각하는데
[ 옳아, 이게 바로 기도의 원리로구나! ]
그러고는 다음날 당장 나가서 아이에게 커다란 장난감 포크레인을 사주었습니다.
그리고 깨닫게 된 것이
[ 우리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고 분명히 믿는다면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지 못할 이유가 없구나 ] 싶어
그 후로는 아들이 자기에게 떼를 쓰듯이
자기도 하나님께 떼쓰는 기도를 하였더니 하나님이 들어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주시는 하나님은
우리와 같은 유한하고 무능한 나같은 인간이 아닙니다.
5절에 보니
[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자비하시도다 ]
출34:에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 아래서 금송아지 우상 사건으로
하나님이 진노하사 십계명 돌판을 깨뜨리시고
금송아지를 불살라 가루로 만들어 마시게 하고
금송아지 사건의 동참자 3000명을 쳐서 죽게 했지만
모세와 백성들이 회개할 때 출34:6절에
[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
하시며
[ 인자를 천 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죄는 삼 사대까지 보응하리라 ] 고 합니다.
즉 우리가 곤경에 처할 때
진정으로 회개하면 반드시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줄 믿습니다.

특히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은혜로우심과 자비하심에 호소를 해야합니다.
어떤 교인은 기도를 하되 하나님을 자기의 시녀로 생각하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갖다 달라고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6절에
[ 어리석은 자를 보존하시나니 내가 낮게 될 때에 나를 구원하신다 ] 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은 <4>
자신이 무능한 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연약한 자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미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고 내가 종이 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이 나에게 미칩니다.

삼상21:에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서 생명을 부지하기 위하여
불레셋 땅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피난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기스의 신하들이
[ 다윗이라면 지금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 라고 노래하는 인물 아닙니까? 일찍 화근을 끊어야 합니다 ] 라고 하니
다윗이 이 말을 듣고는 [ 어이쿠, 여기서 죽는구나 ] 하는데
다윗이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체 하니깐
아기스 왕이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 미친자를 데리고 왔느냐? 하며 다윗을 쫓아냅니다.
그 때 다윗이 구사일생으로 살아 나와 불렀던 찬송이 시34:입니다.
시34:8절 [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
10절 [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성도 여러분
내가 어떠할 수 없을 때 하나님 의지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에게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이 채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의 가는 길에
환난의 바람이 불거나 고난의 웅덩이를 두십니까?
성도롤 하여금 왜 고난을 당하게 하느냐?는 말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깨닫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말로 해서 못 깨달으니, 그리고 한 평생 기억나게 하려고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를 교훈하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1) 진정한 구원자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합니다.
8절 [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
2) 9절 내가 생존세계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 말은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보니 <5>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말입니다.
3) 10-11절은
내가 큰 곤란을 당하고 보니
사람은 하나도 도움이 못되고 실망시키더라는 말입니다.
다시 정리해서 요약해 본다면
고난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은
진정한 구원자는 하나님 한 분 뿐이요 사람은 믿을데가 못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나는 하나님 앞에서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살다보면 형통할 때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다가
어려움 당해 보면 세상과 사람에 실망하게 되고
구원자는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리고 신앙의 사람으로 철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로렐라이>로 잘 알려진
유태인 출신의 뛰어난 독일 작가 <하인리히 하이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조상의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멋대로 살았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는 남다른 명성을 얻었지마는
말년에는 정치적 실망과 척수마비로 고통 당하였으며,
한쪽 눈은 시력을 잃은 데다가 다른 한쪽 눈은 눈꺼풀이 마비되어
무엇인가 보려고 할 때마다 그것을 잡고 있어야 했다.
하이네는 침대에 누워 거의 8년이나 고통을 겪는 중에
마지막으로 루부르 박물관에 있는 밀러의 <비너스>작품을 보러 갔습니다.
그리고 하이네는 이렇게 말합니다.
[ 나는 발을 질질 끌며 루브르 박물관까지 갔다.
거기 영원히 은총 받은 미의 여신이 주춧돌 위에 서 있는
넓은 홀에 들어섰을 때 나는 거의 쓰러질 뻔했다.
나는 그녀의 발 아래에 오랫동안 누워있었다.
그러고 심지어 돌들까지도 나를 동정할 정도로 비통하게 울었다.
여신이 나를 자비롭게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별로 평안을 못 느꼈다, 그 여신은 마치 [ 나는 팔이 없어서 당신을 도울 수 없다는 걸 모르세요? ] 라고 말하는 듯했다.
하이네는 팔 없는 비너스 상 앞에서
참 구원자는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이네는 비로소 그가 유대인이지만 개신교인으로 거듭나고
그의 이름도 Christian Johann Heinrich Heine.로 개명했습니다.
우리는 전례없는 욕망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6>
사람들은 남다른 달란트를 갖고 인기 정상을 달려가는 뜨는 스타들을 볼 때 그기에 매료되어 열광을 합니다만
그러나 분명히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인생에서 매혹시키고 도움을 주는 과학, 문학, 음악, 스포츠 같은 것들은 우리를 도와주거나 지지해 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리가 곤경에 빠질 때 내 밀수 있는 팔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강한 팔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구원자란 말입니다.

1-11절까지 시인은 고난 가운데 우리를 구원해 주실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음을 고백하며 찬송했습니다.
12-18절은 구원의 은혜를 입은 성도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말해 줍니다.

12절 [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

이렇게 의문형으로 표현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갚는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성도란 말 <헤시드>는
[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 ] 란 말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입은 은혜 사실 값으로 다 따질 수 없는 은혜지만
오늘 시인은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1) 13절에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고 합니다.
여기에 구원의 잔을 높이 든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을 의미합니다만
또한 구원의 감격을 은유적으로 나타낸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 은혜는 구약 선지자 하바국이 깨달은 은혜입니다.
하바국 선지자가 세상 돌아가는 것 볼 때 참 실망스럽지마는
하나님의 섭리에 눈이 뜨여지고 보니
합3:17-18절
[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
[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
왜?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할 수 있는 것은 <7>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교회 안에서만 구원의 잔을 들고 찬송하기만을 원치 않고
저 네 거리, 시장 한가운데, 그리고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구원의 잔을 높이 드는 것을 원합니다.

누가 구원의 잔을 높이 들 수 있습니까?
맛본 사람이 맛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 그 구원의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전도의 ABC 이면서 또한 모든 것입니다.

10월 전도의 달을 맞이하여
저도 압니다. 교우들이 제일 부담을 느끼는 것이 전도입니다.
왜 부담을 느끼는가? 맛을 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먼저 구원의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난번 로이모스 사람에 대해 훈련받으면서
전도의 동기 - 기억하시는 분이 많을거예요.
1) 구원의 감격에 대한 보답
2) 예수님의 계명과 명령
3) 성경이 제시한 삶의 목표
4) 사람을 구원하는 유일한 방법
5) 신앙생활의 열매
이렇게 줄 줄 외운다고 전도하는 것 아니더라고요.
결국은 한가지만 하면 됩니다. 구원의 감격에 대한 보답입니다.
구원의 감격만 맛보면 전도는 하지 말라고 해도 하는 거예요.
왜? 구원의 감격이 내 속에 있으면
입만 벙긋하면 예수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고
고난 가운데 구원의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여
내가 맛본 은혜의 하나님을 전할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은혜를 받고 보면 은혜 받은 성도의 특징들이 나타나는데
1)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이 달라지고
2) 교회 중심적인 신앙생활이 되고
3) 하나님 앞에 서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도 14절에 [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로다 ] 라고 합니다.
구원의 은혜를 입은 내가 갚아야 할 서원이 무엇이겠습니까? <8>

15-18절까지는 의역하자면
내가 고난을 당하여 그냥 죽는다 해도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께서 귀히 보시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결박을 풀어 주셨는데, 내가 어찌 감사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서원을 갚지 아니하겠느냐? 는 말씀입니다.

서론에서 말씀드렸지마는
우리가 눈이 뜨여지고 보면 대통령 영부인 되는 것보다
더 귀한 은혜가 예수 믿고 하나님 자녀 된 것입니다.
이 은혜를 바로 깨달은 성도에게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서원 하게 되고 그 서원을 갚게되는데
그 서원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전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1:14절에
나는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고 합니다.
왜 하나님 나같은 죄인 불러서 구원해 주었습니까?
왜 나같은 죄인 은혜를 베푸셔서 오늘에 이르게 했습니까?
나 같은 사람에게 내가 맛본 구원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의 감격에 빠진다는 것 정말 귀한 은혜요 복입니다.
저는 근간에 감격이라는 말이 참 재미있는 말이구나 깨달았습니다.
감격 - 감정이 격해지는 것이 감격입니다(국회 난장판)
사람의 마음은 감격하면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면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격하게 하면
문제는 간단한 것입니다.

한 때 텔레비전에 나오는 박카스 광고가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이른 새벽 어떤 환경 미화원이 쓰레기를 가득 담은 리어카를 끌고 가는데 그 뒤에서 대학 다니는 아들이 그 수레를 밀어줍니다.
아버지가 뒤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 얘야, 힘들지 않니? ] 그러니까 그 아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 뭘요, 아버지는 매일 하시는 일인걸요 ]
너무나 애정이 넘치는 얼굴로 다정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그 장면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두 사람이 연기를 실감나게 잘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두 사람이 진짜 부자 사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문에서도 이들에 대해 특집기사를 쓰기까지 했습니다
아버지 박선치 씨는 강동구청 소속 환경 미화원입니다. <9>
그는 원래 시장에서 옷가게를 했는데 가게가 잘못되는 바람에
10년 전부터 환경 미화원의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녀들에게는 구청에 근무하는 공무원이라고만 알렸습니다.
그런데 큰아들인 상호 군이 고2가 되더니 점점 빗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권면을 해도 말을 안 듣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용단을 내렸습니다.
삼 남매를 불러놓고 자신이 환경 미화원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았습니다.
[ 나는 사실 공무원이 아니란다. 아침마다 도로를 청소하는 청소원이야. 내가 지난 10년 동안 남들이 마다하는 그 일을 하며 너희들을 키웠는데 이러면 되겠니? ]
그날 밤 온 식구가 끌어안고 밤새도록 울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빗나가던 상호 군은 마음을 잡게 되었고,
아버지를 도우며 열심히 공부한 결과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마음에 감격이 없으면
전도한다는 것이 얼마나 초라하고 부끄러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에 감동받고 감정이 격해지면
너무나 당당하게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주의 이름을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특히 오늘 시인은 구원의 은혜를 받고 그 보담으로 서원을 갚되

19절 [ 예루살렘아, 네 가운데서,
여호와의 전정에서 내가 갚으리로다 할렐루야 ] 합니다.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정이 어디입니까?
신약적으로 말하자면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주의 몸 된 교회를 통해
은혜 받은 성도들의 전도를 통하여 구원을 베푸십니다.
가끔 전도한다는 사람들이 조금 유명세를 타면 교회를 등한히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기뻐하지 않습니다.
고구마 전도왕 - 본 교회 담임목사님 - 고개 흔드는 것 있지요
은혜 받았으면 교회에서 봉사하고 교회에서 전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립니다. <10>

10월 전도의 달을 맞이하여 전도에 각성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구원의 감격이 회복되면 전도는 절로 하게 됩니다.
그러니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합시다.
구원의 감격을 회복합시다.
기도하면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나면
구원의 잔이 교회 안에서 뿐만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절로 들리워질 줄 믿습니다.
구원의 은혜의 감격을 회복하여
전도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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