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분수에 맞게 살자/엡 4:7,13

  • 잡초 잡초
  • 802
  • 0

첨부 1



분수에 맞게 살자
본문: 엡4:7, 13

어느 곳에 뱀 한 마리가 있었는데 하루는 머리와 꼬리가 서로 앞에 서겠다고 다투었습니다. 꼬리가 말하기를 "머리야, 너는 언제나 앞장서서 가고, 나는 노예처럼 끌려만 다니는데 그건 불공평하다. 나도 뱀의 일부인데, 어떤 때는 나도 앞장세워 주면 좋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머리가 듣고 말하기를 "멍청한 소리 말아라 너는 눈도 없고, 귀도 없지 않으냐?"라고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꼬리의 강력한 주장에 그만 머리가 "정 그렇다면 네가 내 역할을 해 보렴" 하고 양보했습니다. 꼬리가 기뻐하며 앞장서서 움직이다가 얼마 못 가 수채에 떨어졌습니다. 머리가 온갖 수고를 다해 간신히 수채에서 나왔는데 여전히 꼬리가 앞장서서 다시 가다가 이번에는 불 속으로 들어가 타죽고 말았습니다. 자기 분수나 신분을 모르고 행동하는 자는 망하기 쉽고 불행해집니다.(고전12:12-31)
구약 성경에 보면 고라와 그 무리들과 다단이 자기 분수를 모르고 모세와 아론을 거스리고 스스로 높아지려고 반역하였다가 망했습니다.(민16:3,7)
이솝우화를 보면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사자하나가 어느 동네길을 걸어가다가 참으로 아름다운 처녀를 보게되었습니다. 한 눈에 반해버린 이 사자는 그 처녀의 뒤를 따라갔죠, 그 처녀는 그 동네 농부의 딸로 아름답기로 소문이 날 정도였습니다. 사자는 한눈에 사랑에 빠져 농부를 찾아가서 "나는 당신 딸을 사랑하니 결혼을 하겠소, 만약 싫다면 당신 딸을 잡아먹고 말겠소. "
갑자기 사자의 청혼을 받은 농부는 앞이 캄캄했으나 사자가 무서워 거절하지 못하고 하루의 말미를 달라고 사정을 해서 사자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걱정 때문에 그 날 한숨도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걱정하고 있는 아버지를 보고서 딸은 그 자초지종을 묻고는 괜찮으니까 내일 사자가 오거든 이렇게 저렇게 시키는 대로 하시라고 일러두었습니다. 사자가 아침 일찍 찾아왔습니다. "생각해 봤소?"
사자가 큰 소리로 묻자 농부는 반색을 하며 사자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는 웃는 낯으로 " 내 딸도 당신처럼 성실하고 용감한 사자라면 결혼하고 싶다고 그럽니다. 다만 한가지 걱정을 하더군요. 기분이 좋아진 사자는 침을 삼키며 물었습니다. "한가지 걱정이라니" 농부는 머뭇거리다가 "저..말입니다. 내 딸도 당신을 좋아하는데 사자님의 그 날카로운 발톱이 무서워 가까이 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발톱을 뽑아주면 시집을 가겠답니다." "뭐, 그거야 어렵지 않지."
농부의 딸에게 마음을 온통 빼앗긴 사자는 자기의 발톱을 모조리 뽑고는 다음날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사자를 추켜세우며 말했습니다.
"내 딸은 사자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눈물까지 흘리고 있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이 있답니다. 그것만 들어주시면 기꺼히 시집을 가겠답니다."
"오 그래? 그 부탁이 뭐요?"
"실은 내 딸이 사자님의 그 날카로운 이빨이 무서워 가까이 갈 수가 없답니다."
"알았소. 그럼 내일 다시 오겠소" 이미 발톱을 뽑아버린 사자는 뒤뚱거리며 물러갔습니다. 사자는 그대로 돌아갔다가 다음날 다시 왔습니다. (이빨 빠진 소리)
"내 당신 말대로 이빨도 뽑았소, 자 이제 당신 딸을 나에게 주시오"
그러자 농부는 갑자기 몽둥이를 들더니  "네 이놈, 지금까지는 네 발톱과 이빨이 무서워 꼼짝못했지만 이제는 무서울 게 없다." 하며 사자를 마구 두둘겨 팼습니다. 사자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쳤지만 이미 발톱도, 이빨도 다 뽑아버린 뒤였습니다. 눈앞에 것에만 집착하여 자신의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이 어리석은 사자와 같은 것이죠.
또 이솝우화에 보면 어느 가을날 노새는 귀뚜라미의 노래를 듣자 매우 부러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귀뚜라미에게 무엇을 먹기에 그런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느냐고 물었습니다. 풀잎 위의 이슬을 먹어서 그렇다는 말을 들은 노새는 자기도 이슬만 먹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결국 이슬이 내리기를 기다리며 아무것도 먹지 않다가 노새는 굶어 죽었습니다. 이 이야기 끝부분에서 이솝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도 자기 적성과 반대되는 욕망을 품으면 성취하지 못할뿐더러 더 큰 불행에 직면하는 경우가 있다."
성경에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롬12:6-11) 하였습니다.
미국의 어느 부흥사가 하나님과 다음과 같은 대화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제게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주셔서 미국의 아브라함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네가 아브라함처럼 되고 싶으냐? 그럼 너는 아들을 내게 바칠 수 있니”“나는 아들을 번제로 바칠 수 없습니다”“그러면 너는 아브라함처럼 될 수 없단다”“하나님, 그러면 모세와 같은 지도력을 주셔서 미국의 모세로 만들어 주옵소서”“모세처럼 되고 싶으냐? 그러면 모세처럼 사람을 죽여 모래에 파묻을 수 있느냐?” “나는 살인을 할 수 없습니다”“그러면 너는 모세처럼 될 수 없단다”“하나님, 그러면 엘리야와 같은 능력을 주셔서 미국의 엘리야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엘리야처럼 되고 싶어하는구나. 그러면 너는 많은 이방인을 죽일 용기가 있느냐?”“나는 그런 끔찍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그러면 너는 엘리야처럼 될 수 없단다”
성경의 위대한 믿음의 사람을 하나하나 들어 하나님께 기도하였지만 하나님의 대답은 모두 부정이었습니다. 부흥사는 화가 나서 하나님께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나님, 그러면 나는 누구처럼 되라고 하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너처럼 되거라”
나 이전에 나는 없었습니다. 나 이후에도 나는 없을 것입니다. 나는 나입니다. 누구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나는 나로서 살아야 합니다.
사사기 9장에 보면 나무 중에 왕을 뽑는데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는 왕 자리를 사양하는데 가시나무가 분수를 모르고 왕이 되겠다는 비유가 나옵니다.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각 나라의 속담을 보면 "동물 중에서도 인간은 가장 과도함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프랑스)", "도가 지나치면 모든 것이 잘못 된다.(서양)", "개구리는 금 의자에 올려 줘도 다시 뛰어내려 연못 속으로 돌아간다.(독일)"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면 다리가 찢어진다(한국)"는 속담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귀엽게 생긴 애완용 개와 나귀가 있었습니다. 그는 당연히 개와 늘 같이 놀았고, 맛있는 것도 종종 개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주인은 재롱 부리는 개를 한껏 귀여워하여 항상 옆에 두고 지냈습니다. 나귀가 시샘을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나귀는 자기도 주인의 귀여움을 받아 보려고 주인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는 재주껏 재롱을 부려본다. 그 바람에 주인은 나귀의 뒷발에 채이고,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이 나귀가 미쳤나! 당장 끌어다 묶고 때려 주어라!" 하인들이 나귀를 몰고 가서 실컷 때려주고 다시는 날 뛰지 못하게 구유 기둥에 매어 놓았습니다.
"나도 잘 보이려 했는데...."  나귀는 후회 막급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분수가 있습니다. 분수가 무엇입니까? 자기의 신분과 정도에 맞게 살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분수의 분은 몫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몫이 있고 자기의 형편과 처지가 있습니다. 자기의 실력과 정도가 있습니다. 거기에 맞게 사는 것은 자기의 분수를 아는 것입니다.(잠12:9)
음악적인 재능이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어느 소년이 모짜르트를 찾아가 "어떻게 하면 교향곡을 작곡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모짜르트는 이 소년을 보고 "아직 이른 것 같으니 교향곡보다는 민요부터 작곡해 보게"라고 말했습니다. "선생님도 10대에 교향곡을 작곡하지 않았습니까?" 소년이 항의조로 묻자 모짜르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교향곡 작곡법을 묻지 않았다네"
예수님의 비유중에 달란트 비유가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먼 길을 떠나면서 세 사람의 종에게 각각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에게 이 원리가 적용됩니다. 각 사람에게는 자기가 맡은 달란트, 자기의 분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자기 분수에 맞게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자기의 분수를 지키고 스스로 만족하게 사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삶의 원리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 왜 불행이 생깁니까? 왜 파멸의 비극 속에 빠지는 일이 생깁니까? 자기의 분수를 잊어버리고 분수에 지나치게 살기 때문입니다. 웃시야왕은 제사장이 하는 일을 자신이 하려다가 문둥병이 걸렸고(대하26:16-26), 사울왕은 사무엘 선지자를 기다리지 않고 자기가 번제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노여움을 샀습니다.(삼상13:8-14).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비극을 보면서 내 것이 아닌 것을 탐내거나,  분수를 모르고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의 분수를 무시하고 분수에 겨운 일을 하면 반드시 불행을 초래하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한 것입니다. 사람은 다 저답게 살아야 합니다. 소비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입에 맞게 지출하며 살아야 합니다. 뱁새가 황새 걸음하면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국민들이 수입에 맞게 살고 저축하기를 강조했습니다. 저축하지 않고 있는 대로 다 써버리는 사람에게는 장래가 없습니다. 자신의 수입에 비해 지출이 많으면 빚을 지게 됩니다. 일시적인 현상으로, 만부득이 빚을 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갚지 못하고 계속 그 빚이 누적되면 파산의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도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림살이를 높였다가 낮추기는 어렵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큰 문제는 과소비입니다. 과소비로 인한 부작용이 지금 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좀 잘 살게 되었다고 낭비와 사치를 일삼는 사람이 많습니다. 요리하는 사람이 소금이 많다고 만드는 음식에 평소보다 열 배가 넘는 소금을 넣으면 먹을 수 있습니까? 더구나 지금 우리는 엄청난 외채를 지고 있습니다. 세계화라는 말이 오늘의 추세이지만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분수에 맞지 않게 살게 되고 패가망신하는 개인, 기업이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국민소득 1만 불 시대가 되었다고 3만 불 이상 소득을 가진 나라 국민보다 더 헤프게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방이 좁거든 좁은 방에 맞는 세간을 들여놓아야 합니다.  카드 빚으로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들 대부분이 자기 분수를 모르는 경제활동을 한 사람들입니다. 제 분수에 넘는 것을 바라는 것이 탐욕입니다. 우리 국민 전체가 무절제한 낭비와 사치풍조에서 벗어나 근검절약하며,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지나치지 않고 알맞게 행동했기 때문에 후회하는 일은 없습니다.
"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12:3)
/한태완 목사 (하나 교회)http://allcome.ce.ro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