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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드리는 삶 (롬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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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드리는 삶 (롬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어떤 교회에 있었던 일입니다. 갑자기 그 교회 목사님께서 병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인들은 목사님의 건강회복을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목사님께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는 어떤 신학교 교수님께서 임시로 강단을 맡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설교가 다 끝난 뒤에 그는 심각한 모습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본교회 목사님께서는 빠른 시일 내에 신장 이식수술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롭다고 합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여러분의 목사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두가 목사님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신장 하나 정도는 기증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한가지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여기에 제가 가벼운 오리털 하나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제 제가 강단에서 여러분들을 향해서 이 오리털을 힘껏 불겠습니다. 그러면 이 오리털이 날아가다가 내려 앉은 사람이 자기의 신장 한쪽을 목사님께 기증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하나님의 뜻 인줄 알고 여러분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이 일에 순종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드디어 그 목사님은 오리털을 손에 들고서 입으로 세차게 불었습니다. 오리털은 공중으로 높이 올라갔습니다. 모든 교인들은 고개를 들고서 과연 그 오리털이 누구에게 떨어질까를 주의 깊게 바라보았습니다.
오리털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더니 어떤 장로님의 얼굴에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일순간 그 장로님은 바짝 긴장을 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 오리털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할렐루야!" 장로님의 입김에 그 오리털은 다시금 다른 곳으로 날아갔습니다. 공중에 빙글빙글 맴돌던 그 오리털은 이번에도 어떤 권사님의 얼굴에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 권사님도 깜짝 놀란 모습으로 크게 외쳤습니다. "아멘!" 그러자 그 오리털은 또 다시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 날 그 교회는 모처럼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할렐루야! 아멘!"의 소리가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이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한번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를 듬뿍 받고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은 과연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어떠한 삶을,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시116:12의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이런 심정으로 우리가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족한 줄 알고 보답하는 심정으로 우리의 것들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삶은 살지 않고 아직도 계속해서 무엇인가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지는 않습니까? 이제는 바뀌어져야 합니다. 받고자 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면서 사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쁘게 해 주시기를 바라기에 앞서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 드릴까에 관심을 두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주시기를 바라기에 앞서서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일깨워주시는 교훈입니다.
롬12:1의 전반부를 제가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 바울은 본시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하나님의 교회를 몹시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원수 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바뀌어졌습니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또한 로마의 성도들도 본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러던 그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본시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우리에게 이제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졌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의 결과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의 전반부인 1∼11장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의 결과로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다는 사실을 자세하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래서 흔히들 로마서 전반부를 교리편이라고 부릅니다. 그런 뒤 바울은 로마서 후반부인 12∼16장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마땅한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후반부를 흔히들 실천편 또는 윤리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도의 삶은 어떠해야 합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면서 살아야 합니까?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세 가지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었습니다.

첫째로,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1절 하반부입니다.
둘째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2절 상반부입니다.
셋째로, 우리의 뜻을 하나님께 드려야합니다. 2절 하반부입니다.

오늘 말씀을 이렇게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크신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영적인 침체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족한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계속해서 무엇인가 받기만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불만족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의 몸도, 우리의 마음도, 우리의 뜻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절로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신앙이 성장할 수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1절 하반부입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구약의 성도들은 짐승을 잡아서 죽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몸을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면서 살아갑니다. 산 제사란 우리의 삶을 통해서, 생활을 통해서 드리는 제사를 가리킵니다.
어떤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먼저 아들 내외가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러자 하루는 부모님이 아들 내외를 불러서 언짢은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고 하더라. 그러니 너희들이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곧 우리가 죽더라도 제사 밥을 올리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냐? 우리는 죽어서 굶기 싫다. 그러니 우리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너희들이 교회에 다닐 생각을 하지 말아라."
아들 내외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아들은 아버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아버님이 말씀하시는 제사는 죽은 제사입니다. 저희들이 그것보다도 훨씬 더 좋은 산 제사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후로부터 아들 내외는 더욱 정성을 다해서 부모님을 잘 모셨습니다. 끼니때마다 늘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차려 드렸습니다. 철마다 보약도 지어서 드렸습니다. 용돈도 넉넉하게 드렸습니다. 얼마가지 않아서 부모님은 아들 내외를 다시 불러놓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너의 말이 맞다. 산 제사가 죽은 제사보다 훨씬 더 낫구나. 걱정하지 말고 이제는 마음껏 교회에 다녀라. 이제 우리도 너희들을 따라서 교회 다녀야겠다."
그렇습니다. 산 제사는 우리의 생활로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은 흠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골 교회에 어떤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이 할머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기도에 빠지는 법이 없었습니다. 대단한 열심이었습니다. 그 날도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새벽공기가 신선했습니다. 절로 찬송이 울려 나왔습니다. 할머니는 찬송을 부르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집 담장 곁을 지나갈 때였습니다. 호박넝쿨이 담 위를 가득 메꾸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할머니의 눈에 번쩍 들어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탐스러운 호박 하나가 담장 밖으로 열려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가던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찬송 부르던 것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숨을 죽이고서 두리번 두리번 주변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누가 볼쌔라 냉큼 그 호박을 따서 얼른 자기의 치마 속에 감추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다시금 찬송을 부르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날 그 할머니는 자기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지 못했습니다. 자기의 몸을 불의의 병기로 쓰임 받게 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몸, 우리의 모든 지체가 언제나 의의 병기로 쓰임 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거룩한 산 제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구약의 성도들은 레위기에 기록된 절차와 의식에 따라서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 자신들이 제사 드리는 제사장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기계적이고 의식적인 제사를 드리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영적인 예배를 드립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삶 자체가 예배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있도록 신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 우리가 말, 우리의 행동, 우리의 몸가짐, 심지어는 우리의 얼굴 표정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연속입니다. 예컨대 우리가 찡그리고, 우리가 화를 낸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천사의 얼굴처럼 은혜로운 모습을 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예배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2절 상반부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서 먼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몸은 언제나 마음이 지시하는대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주일학교 유치원에 다니는 꼬마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 날 그는 교회에 갔다 오더니 얼른 저울 위에 올라섰습니다. 몸무게를 달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면서 물어 봅니다.
"얘야! 교회 가기 전에 몸무게 달았잖니, 왜 또 달아보니?"
그러자 꼬마 아이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주일학교 선생님이 내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된대요. 그래서 기도하면서 내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말씀을 드렸거든요. 그래서 내 몸무게가 얼마나 줄었는지 알아보고 싶어서 저울에 올라갔어요. 그런데 엄마! 이상해요. 하나도 안 줄었네요."
얼마나 귀여운 말입니까? 잠23:26의 말씀입니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까?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땅엣 것만 생각합니다. 그들은 썩어질 것, 덧없는 것, 일시적인 것만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새로운 마음, 변화를 받은 마음은 다릅니다. 우리는 위엣 것을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영원한 것을 바라보면서 살아갑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에 소망을 두면서 살아갑니다.

미국에 어떤 갑부가 살았습니다. 이 분은 자기 삶의 목적을 오로지 돈버는 일에만 두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돈을 벌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소원대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어느덧 인생의 종착역이 다가오고 말았습니다.
그 많은 돈을 다 두고서 가려니까 아쉬운 생각이 그에게 들었습니다. 이 많은 돈 가운데 일부를 가지고 갈 수는 없을까? 그는 곰곰이 생각을 했습니다. 그에게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자기의 주치의를 불렀습니다. 유언을 집행할 변호사도 불렀습니다. 동네 교회 목사님도 모시고 왔습니다. 그는 세 사람 각자에게 현찰로 100만 달러씩 맡겼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내가 죽거들랑 내 관속에 이 돈을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한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보다도 세 사람에게 부탁을 하면 좀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세 사람 모두 그렇게 하겠다고 단단히 약속을 했습니다. 그의 장례식 날, 세 사람은 약속대로 그의 관속에 돈 보따리를 집어넣었습니다.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먼저 목사님이 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듯 이렇게 운을 뗐습니다.
"사실은 제가 십일조를 떼고 집어넣었거든요."
그러자 주치의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병원을 새로 짓고 있는 중이랍니다. 이왕이면 고인에게 좋은 일 하시라고 절반을 뚝 떼어서 병원 짓는 일에 기증토록 했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절반만 집어넣었습니다."
그러자 변호사가 큰 소리를 쳤습니다.
"아니, 그 돈이 어떤 돈인데 함부로 그 돈을 떼었답니까? 나는 그 돈을 다 집어넣었습니다. 단지 번거로울까봐 현찰은 내가 가지고, 내 이름으로 된 개인수표를 집어넣었지요."
그러면서 그는 껄껄 웃었습니다. 물론 우스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땅엣 것은  다 썩고 맙니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습니다. 우리는 빈손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시적인 것, 덧없는 것에 집착하지 마십시다.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의 영원한 것을 사모하면서 살아갑시다. 이것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우리의 뜻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2절 하반부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께 우리의 몸을 드리고 우리의 마음을 드리면 절로 깨닫게 되는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언제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라는 사실입니다.

반면에 우리의 인간적인 뜻은 어떻습니다. 악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실 수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불완전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뜻만이 언제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뜻을 하나님께 드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야외로 소풍을 갔습니다. 아버지는 고기를 굽기 위해서 불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어린 딸 아이가 여기저기 뛰어다니더니 무엇을 하나 주웠습니다. 나무로 만든 예쁜 구슬 상자였습니다. 그는 그것을 자기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듯이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뜻밖에도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쁘구나. 그렇지만 그것을 이 불 속에 집어 던져 버려라."
뜻밖의 말에 딸 아이는 당황을 했습니다.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딸 아이에게 아버지는 다시금 재촉을 합니다.
"얘야, 내가 너에게 강요하지는 않겠다. 너의 뜻에 맡기겠다. 그러나 네가 이 아빠를 믿는다면 그것을 이 불 속에 던져 버려라. 이유는 말하지 않겠다."
아이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그러더니 결국은 그것을 불 속에 집어 던졌습니다. 아버지 뜻에 순종한 것입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아버지는 딸아이에게 선물을 했습니다. 딸아이는 호기심에 가득한 눈빛으로 포장을 풀어보았습니다. 그 속에는 나무로 만든 예쁜 구슬 상자가 들어 있었습니다. 자기가 불 속에 던진 것보다도 훨씬 더 값지고 아름다운 예쁜 나무 상자였습니다. 아버지는 그것을 딸아이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에게 이렇게 한 것은 네가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도록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네가 살아가다 보면 때때로 하나님은 이유를 말씀하시지 않고 무엇인가 너에게 포기하도록 요구하실 때가 있으실 것이다. 그럴 때마다 너는 지금 이 아빠를 믿고 아빠의 뜻을 따랐던 것처럼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도록 하여라. 그것이 너에게 언제나 최선의 길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삶 속에 이루기 위해서 우리의 뜻을 꺽어 버리고 우리의 뜻을 포기하는 것을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의 여러 소원들 가운데서 단 한가지를 이루어 주시겠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하나님께 무엇을 요구하시겠습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것을 하나님의 뜻에 맡겨버리겠습니다. 왜냐하면 내게 있어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제일 좋은지 가장 잘 아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각이 부족합니다. 우리는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할 정도로 연약합니다. 때로는 돌이 떡인 줄 알고 돌을 구할 때도 있습니다. 뱀이 생선인줄 알고 뱀을 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십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분이십니다.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하고, 무엇이 가장 좋은지 환하게 아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뜻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 속에 이루어지기를 바라야 합니다. 그것이 언제나 최선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비추어서 우리의 삶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어떠한 삶의 자세로 살아왔습니까?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못하고 우리 중심으로 살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보다는 하나님이 우리를 기쁘게 해 주시기를 바라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나를 잘 되게 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높여 주시는 것에만 관심을 두지는 않았습니까?

이제는 바뀌어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족한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몸, 우리의 마음, 우리의 뜻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때 우리는 절로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그만큼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예배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늘 명심합시다. 우리의 마음가짐, 얼굴 표정 하나 하나등 사소한 일까지라도 소홀히하지 않고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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