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이기심을 버립시다/고전 10:24

  • 잡초 잡초
  • 584
  • 0

첨부 1



이기심을 버립시다
고전 10: 24, 빌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10:2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이 충만케 하라"(빌2:4)

아주 오래 전 이집트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 엄청난 기근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노인은 많은 곡식을 창고에 저장해 두었던 터라 아무런 걱정이 없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먹을 것이 궁해지자 그 노인에게 찾아와서 식량을 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노인은 마을의 모든 식량이 다 바닥나기 전에는 결코 팔 수 없다며 한마디로 거절했습니다. 나중에 더 많은 돈을 받고 팔 속셈이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많은 사람이 기아로 죽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노인은 그때까지도 곡식을 팔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요구하는 금액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침내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은 그 노인이 요구하는 대로 비싼 값을 지불하기로 하고 식량을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이 때 잔인하고 이기적인 그 노인은 비로소 입가에 웃음을 지으면서 창고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노인의 이기적인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벌레들이 창고 안에 가득 쌓여 있던 모든 곡식을 다 망쳐놓았던 것입니다. 노인은 너무나 충격을 받은 나머지 그만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이기적인 존재가 되고 말면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기심은 죄악의 뿌리입니다. 이기심을 갖고 사는 자는 화약을 몸에 지닌 채 불 근처를 다니는 사람과 같습니다. 자기만족과 자기기쁨만을 추구하는 자는 자신도 파멸시키고, 다른 사람에게도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우리가 범죄할 때는 하나님의 계명 중 한 가지 계명만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죄를 범하게 되면 한꺼번에 여섯 가지 계명을 어기는 셈이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십계명에 대한 교훈의 말씀을 하실 때, 제5계명부터 제10계명까지 여섯 가지 계명, 즉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요약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기주의를 극복해 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참된 사랑의 행위입니다. 참사랑을 행하는 자는 자기만족과 이기심을 버리고 이웃의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양초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양초는 사랑의 상징입니다. 양초는 자기 자신을 불태우면서 주위를 밝혀줍니다. 빛을 발하고 온기를 주면서 자신을 소모시켜 갑니다. 사랑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내어주지 않고서는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양초와 같이 자신을 불태우면 불태울수록 그 사랑의 빛은 더욱더 환하게 빛날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 찾아드는 깊은 어둠을 몰아내고 마음에 희망과 행복을 안겨다 주는 것은 서로의 마음을 붙들어 매주는 사랑밖에 없습니다.
이기주의자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자기의 유익만을 구합니다.(고전13:5)
해외 토픽에 실렸던 이야기입니다. 시카고에 사는 두 형제가 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듣고 가출을 했습니다. 그들은 쪽지를 한 장 써놓고 집에 있던 통조림을 한 가방 싸들고 나갔습니다. 이 사실을 안 부모님이 놀라서 경찰에 신고를 하려 했습니다. 그때 아이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화가 난 아버지가 어떻게 된 거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깡통 따개를 깜빡 잊고 안 가져갔어요."
우리도 깡통 따개를 찾으러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처럼 자기 본위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참 진리인 말씀으로 성화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로 거룩해진 것이 아니라 나의 필요에 따라 거룩해진 척 할 때가 많습니다. 아이의 진학을 위해, 사업의 성공을 위해, 혹시 안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서 예배나 기도회에 참석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시련이 오면 간절해지고 채워 주시면 나태해지는 우리의 이기적인 신앙 생활을 점검해야 합니다.
둘째, 자기 일만을 돌아봅니다.(빌2:21)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광주리에는 과일과 채소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때 한 여인이 발을 헛디뎌 강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여인은 배의 모퉁이를 붙잡고 간신히 버텼습니다. 그녀는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나 승객들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몸을 움직여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결국 여인은 한참을 버티다가 힘이 빠져 물 속에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그때 선장이 달려왔습니다. 선장은 자초지종을 듣고 난 후 분노에 몸을 떨었습니다. "손을 내밀어 여인을 도와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단 말이지요" 그러자 승객들이 이구동성으로 투덜거렸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면 우리의 과일과 채소는 어떻게 하구요" 선장은 타인의 '생명'을 자신의 '야채'보다 가볍게 여기는 무서운 이기심에 전율했습니다. 희생이 없는 사랑은 울리는 꽹과리일 뿐입니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입니다.
셋째, 자기만을 사랑합니다.(딤후3:2)
사막을 오가며 장사하는 아라비아 상인이 사막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가 오아시스를 발견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길은 사막을 가로지르는 지름길이었습니다. 너무나 기뻤지만 오아시스가 있는 지름길을 알아냈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언젠가는 그 물이 다 바닥날지도 모른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후로 이 상인은 혼자서만 그 길로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아시스 옆에는 키 큰 야자수 한 그루가 서 있어서, 상인은 사막을 횡단하다가 지칠 때면 거기서 쉬어 가곤 했습니다. 하루는 문득 누군가가 멀리서 야자수를 보고 이 쪽으로 오다가 오아시스를 발견하며 어떡하나 불안한 생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습니다.
'이 나무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오아시스를 찾아낼지 몰라. 더구나 이 커다란 야자수 뿌리가 어느 날엔가는 귀한 샘물을 다 빨아 들여 버린다면?'
상인은 자신만의 오아시스를 들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야자수를 없애 버리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결국 그는 야자수를 잘라 버리고 나서야 마음놓고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며칠 뒤 장사를 끝내고 돌아오다가 오아시스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곳에는 나무 그늘을 잃어 바싹 말라버린 물의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넷째, 자기만을 위해 삶을 삽니다.(눅12:19-21)
미국에서는 C.B.라디오라는 것이 있어서 일반승용차에도 무전기를 부착하면 서로 다른 차량과 자유롭게 교신하며 연락을 취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 장치는 누군가가 회로를 사용하고 있으면 다른 차량은 그 회로를 통해 교신을 못하게 되어 있었다. 몇 년전 콜로라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트럭운전사가 C.B.라디오의 회로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계속해서 다른 차량으로부터 그 회로를 양보해 달라는 신호를 받고도 양보를 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차량에서는 지금 급한 상황이라는 제보를 보내왔으나 이를 보고도 트럭운전사는 심술을 부렸습니다. 그 다른 차량의 운전사는 교통사고를 목격하고 구조요청이 절실해서 그 회로를 사용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어느 큰 쇠 파이프를 운반해 가던 트럭 뒤를 어떤 여자 운전자가 따라가고 있었는데 그만 차끼리 충돌하는 바람에 그 쇠파이프가 그녀의 자동차 유리를 뚫고 그녀의 몸을 찔러 구조가 절박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트럭운전사는 끝까지 회로를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한참 지난 뒤 그 트럭운전사가 마침 사고현장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그 사고를 당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 부인이었습니다. 잠시 후에 소식을 듣고 뒤 늦게야 현장에 도착한 의사는 만일 자신에게 좀더 일찍 연락을 취하여 자기가 5분전에만 당도하였더라면 그 부인은 생명을 잃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기주의가 자기 가정을 불행하게 만든 것입니다.
다섯째, 육체의 욕심을 이룹니다.(갈5:16)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큰 손해를 본 이야기입니다. 할 일을 모두 끝낸 농부가 흔들 의자에 느긋하게 앉은 채 저녁에 배달된 신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신문을 읽던 농부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췄습니다. 그곳에는 새로운 옥수수 종자가 개발되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습니다. 농부는 다음날 날이 밝기가 무섭게 종묘 가게로 달려가서 그 씨앗을 구입했습니다. 씨앗을 밭에 뿌리고는 한 해 동안 정성을 다해서 재배했고, 결과는 대풍작이었습니다. 그것을 본 이웃의 농부가 찾아와서 새로운 옥수수 종자를 조금만 팔라고 사정했습니다. 그러나 농부는 경쟁력을 잃을까봐 한마디로 거절했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웃집 농부가 찾아와서 부탁을 했지만 대답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음해가 되어 수확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수확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도 수확은 더욱 더 줄어들었습니다. 농부는 옥수수의 수확이 줄어드는 원인을 밝혀 내려고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습니다. 비싼 값을 치르고 구입한 종자가 한 해밖에 효과를 내지 못한 게 너무 억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소문을 하던 농부는 결국 그 원인을 찾아냈습니다. 새로운 옥수수 종자는 이웃에 있는 옥수수 밭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온 나쁜 옥수수 종자의 꽃가루 때문에 본래의 열등한 종자로 바뀌어 버렸던 것이었습니다.
여섯째, 가난한 자를 동정치 않습니다.(약2:15,16, 요일3:17)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부자는 가난한 자를 생각지 않고 오직 자기를 위하여 많은 물건을 창고에 쌓을 생각만을 했습니다. 또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는 고운 옷을 입고 날마다 잔치하며 거지 나사로를 외면하다가 결국 지옥에 갔습니다.
일곱째, 자기 기만적입니다.(갈6:3)
가인은 시기심으로 자기 동생 아벨을 죽이고도 여호와 앞에서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4:9) 합니다. 여리고에서 강도 만나 죽게 된 사람을 보고도 당시에 가장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는 제사장과 레위인은 보고 피하여 지나갑니다.(눅10:31,32)
또 이기주의에 빠지면 다섯 가지 병적인 결과로 나타납니다.
(1) 어떤 사람은 유별나게 주관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러다가 누가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반대를 하면 도무지 참지를 못합니다. 자기가 내세운 주장은 반드시 통과되어야 하고 실행되어야 직성이 풀리지, 그렇지 않으면 대단히 화를 내게 됩니다.
(2)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우월주의에 빠집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우러러보고 존경하고 칭찬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다가 누가 자기를 알아주지 않거나 칭찬해 주지 않으면 대단히 화를 내고 혹은 좌절에 빠집니다.
(3) 어떤 사람은 자기 도취에 빠집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높아지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자기만 더 높이 올라가기를 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누가 실패하면 즐거워하고 누가 성공하면 못 마땅해서 우울해 하고 화가 나서 견디지를 못합니다.
(4) 어떤 사람은 자기애(self-love)에 빠집니다. 자기나 자기 일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거기에만 빠질 뿐, 다른 사람들의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도우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누가 자기의 고통을 하소연하면 별로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자기의 이야기만 합니다.
(5) 어떤 사람들은 자기 사랑에 빠질 뿐 아니라, 세상의 물질을 지나치게 사랑합니다. 무슨 영적으로나 윤리적인 문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이야기에는 거의 졸다시피 합니다. 그러나 물질 이야기만 나오면 열을 올립니다. 다른 것에는 크게 화를 내지 않아도 물질의 손해만 입으면 얼마나 흥분하고 화를 내는지 아주 병적입니다.
한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도착했습니다. 그 사람은 베드로에게 지옥의 모습을 한번 보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를 데리고 지옥으로 갔습니다. 마침 그때가 점심시간이었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식탁에 진수성찬이 가득 차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뼈만 앙상한 모습이었습니다. 지옥사람들의 손에는 모두 1미터가 넘는 긴 젓가락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으로 음식을 집어 자신의 입에 넣으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긴 젓가락에 매달린 음식은 자신들의 입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지옥은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로 아비규환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천국에 와보니 그곳에서도 똑같은 식탁에 1미터가 넘는 긴 젓가락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국사람들은 질서정연하게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천국사람들은 긴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상대방에게 먼저 먹여주고 있었습니다. 지옥은 '남' 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는 곳입니다. 천국은 '나' 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곳입니다. 당신의 식습관은 어떻습니까? 당신이 하루에 남기는 음식물의 양은 어느 정도나 되는지요? 우리는 양심에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고 엄청난 양의 음식물을 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2초에 한 명씩 죽어가고 있습니다. 대중매체를 통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프리카 사람들을 보면서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혹, "하나님,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떻게 저들을 저토록 비참하게 내버려두실 수 있습니까?"하고 원망 섞인 말을 내뱉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계 모든 사람들이 충분히 먹고도 남을 만한 식량을 주셨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 사람이 하루에 필요한 칼로리는 평균 2,500-2,600칼로리 정도입니다. 그러나 현재 세계에서는 한 사람 당 약 3,000칼로리 정도 섭취할 수 있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우리의 이기심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젠가 우리의 이기심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으실 것입니다.
따라서 이기주의자들의 결과는 (1) 멸망을 당합니다(시52:5-7) (2)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겔34:18-20) (3) 저주를 받습니다(잠11:26, 잠28:27) (4) 만족이 없습니다.(전5:10) (5) 화가 미칩니다.(사5:8) (6) 자연의 재앙(학1:9,10)과 근심이 임합니다(딤전6:10)
그러므로 우리는 이기주의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선대하며 남의 유익을 구하고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며 심지어 자기를 희생하고 양보하는 마음과 정신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 기도: 사랑의 주님, 우리 속에 있는 이기심을 없이 하여 주사 굶어 죽어 가는 사람들을 가엾게 여기고, 그들을 한 형제처럼 생각하는 사랑이 저희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22:39)
/한태완 목사(하나 교회)
http://allcome.ce.ro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