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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국의 문화 / 계 21:23 -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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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 계21:23-22:5
  제목 : 천국은 어떤 곳인가?(문화)-(4)

  요한이 밧모섬에서 귀양살이할 때, 바라본 천국의 모습은 우리가 환난
중에 신앙 생활 하면서 인내할 용기를 주는 그림입니다. 어떤 사람은 천
국을 맘의 천국으로 성경이  소개한 천국에 대해 설명을 다한 것으로 말
하려 하지만 결코 그것으로 만족할 천국은 아닙니다.  왜냐면 이 천국의
환상을 본 사도 요한은 누구보다도 맘의 천국을 가졌던 사람이지만 환난
과 핍박 중에 하나님이 약소하신 천국을 보고 소망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1. 밝고 빛난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는 곳

21:23-24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요한은 빛과 어두움의 대조적인 단어로 하나님의 영광과 혹는 악인의 심
판과 마귀의 사상을 어두움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요1:4-5 '그 안에 생
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
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일2: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성도를 엡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
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하셨는데,  얼굴이 반짝반짝 빛난다는 것이 아
니라 내적으로 영혼이 빛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히6:4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2. 열려 있는 천국 문

25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아무라도 창살에 갇혀 살고자 하지 않습니다. 강
도가 붙들려도 감옥에 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마치 창살
없는 감옥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을 부인 할 수 없습니다.  온갖 근심과
고통이 끊이지 않는 지구촌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구촌에서 예수
님을 믿음으로 닫혀 있던 영적 가슴이 활짝 열여진 성도는 요한이 본 천
국 문처럼 활짝 열려서 진정으로 불안의 성질을 벗게 됩니다.

이것을 우리는 예수님이 일러주신  <자유>라는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수
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된 자이며 진리를 알고  진리로 통하여 자
유를 얻게 된 자들입니다. 열려있는 천국 문, 열려있는 성도의 마음입니
다.


3. 참된 자들이 사는 곳

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
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
오늘날 신자들이 교리적으로 잘못 배워서 거짓되어도 하나님의 백성이라
는 근거를 교회 나오는 것이나 십일조 하는 것,찬송 부르고 교회에서 직
분을 맡은 것들로 대변하며 죄를  예사롭게 생각하고 엉뚱하게 아무렇지
도 않은 것처럼 말하려 합니다.그러나 반드시 죄에 대한 보응을 받을 것
입니다(히12:8).  속되고 가증스럽고 거짓된 자가 어째 천국을 갈 수 있
다는 이론이 성립됩니까?  예수 믿기 때문에 죄를 지어도 무방하다는 논
리가 성경에는 없습니다.

유대인과 율법사들이 그렇게 외식하고  조상이나 운운하고 자기 전통과
사회적 신분으로 대변하면서 하나님을 거짓되이 섬기다 멸망을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기독 신자들이면서, 같은 형식을 취한다는 것은 개혁되어져
야 할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비록 윤리와 도덕으로 구원을 말하는 어리석은 점은 있으나
기독 신자들이 망령되게 행하면서  무조건 천당 가는 특권을 누릴 수 있
다는 말도 안 되는 교리가 잘못 오용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가 옳아야 구원 얻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행위가 열심을 내
어 살면서 실수하고 부족한 것과 다르게 예사롭게 속되고 가증스럽고 공
갈치는 것들이 과연 구원을  얻은 자의 소행인가를 냉정하게 판단한다면
우리는 야고보가 행위가 엉터리로 전혀  없는 자는  죽은 자처럼 신앙이
아니라고 단언한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영원히 저주가 없는 곳입니다

22: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
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
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성도의 입으로는 축복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그런데 본문을 자
세히 순서를 차근히 생각하면서 읽으면 우리는 앞에 이른 말씀대로 하나
님의 빛 앞에서 순전할 때, 영원한 행복의 문화를 얻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복을 먼저 주시면 잘 믿겠다는 식입니다. 아주 하나님을 이용
하려합니다.  본의 아니게 그럴지 몰라도 사람은 받고 나면 생각 바뀝니
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그런 맘이나 말을 하는 것이 옳지 못합니다.

영원한 평안의 그 곳! 다시 밤이 없다는 것은 앞서 다시 저주가 없는 곳
이란 말입니다. 성도는 영원한 영생을 소유한 자로 영원히 자유 할 수밖
에 없는 기업을 받은 자들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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