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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라 / 민 14:1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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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라 
민수기 14 : 1 - 10 


어려움에 직면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으려고 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찾으려고 하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따라서 힘든 자신의 환경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부정적 반응을 보이기가 쉽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차가운 현실 앞에 대범하거나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정글의 법칙을 아무런 여과 없이 수용하게 되나 봅니다. 현대인들은 현실에 안주하면서 자신의 정체성마저 군중들의 환호 앞에 무슨 요술에 걸린 사람처럼 고스란이 내어주고 맙니다.
여기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앞세워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자기 백성들을 인도해 내실 때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내리는 만나를 먹었고 반석에서 터져 나오는 생수를 마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한 선민의 기업지를 향하여가는 그들의 행진은 실로 이 땅의 역사를 새로 기록하는 장엄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행군이 바란광야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시켜 그들의 도착지가 될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일로 말미암아 한 비극적인 일에 직면하게 됩니다.
각 지파에서 뽑힌 12명의 정탐꾼들이 미리 가서 살펴야 될 임무는 아주 구체적이었습니다.

첫째는 그 땅의 강약이었고 둘째는 그 땅 인구 밀도를 살피는 일이었고 셋째는 땅의 호불호 즉, 땅의 지형과 기후조건이 살기에 적합한지를 살피는 것이었고 넷째는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 즉, 진영은 군사적 방어물이 없는 마을이고 산성은 군사적 방어물이 있는 것인데 과연 원주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다섯째는 토지의 후박이었고 여섯째는 수목의 유무였고 마지막 일곱째는 그 땅의 실과를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의 정탐꾼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의견이 같았습니다. 이들은 증거품으로 실과를 보이면서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 올라가서 취하자고 했습니다. 다른 정탐꾼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백성들은 방성대곡했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까지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한 지도자를 세워 다시 애굽으로 돌아 가자고 했습니다. 열 정탐꾼의 부정적인 보고는 가나안 행군에 찬물을 끼얹는 치명적인 사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자신들의 옷을 찢음으로 신앙의 결의와 분노를 나타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전염병을 내려서 불평하는 백성들을 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진노하시는 하나님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모세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셨으나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하나님을 원망하고 거역한 백성은 모두 가나안 땅에 입국하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를 거역하는 것은 여호와의 약속을 믿지 않는 것이며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죄악입니다.
마침내 그 땅을 정탐하러 갔다온 사람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하나님의 재앙으로 죽었습니다.
저는 본문에 의지하여 '오직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라'는 제목으로 설교하고자 합니다.

Ⅰ.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기 때 문입니다.

본문 14장 8-9절에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30년이 마치는 날에 여호와께서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로 세우시고 출애굽을 감행케 했습니다. 그리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신명기 1장 31절에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행군의 주관자가 되셨습니다.

신명기 9장 3절에 또 말씀하시기를 『오늘날 너는 알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맹렬한 불과 같이 네 앞에 나아가신즉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하사 네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니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것같이 너는 그들을 쫓아내며 속히 그들을 멸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크게 믿는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을 향한 행진의 명령자가 천지의 주재이신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백성들 앞에 천명하고 나섰습니다. 이들은 가나안 입성의 불가론을 말한 10명의 정탐꾼과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입성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려진 축복의 대명이라고 생각하는 신앙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입성이 하나님 자신에 의한 행진이라는 역사적 통찰력이 있었습니다.
현대인들의 신앙의 힘이 다시 창출될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교회 운동의 힘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의 시작과 진행과 마침이 하나님 자신에 의한 것이라는 고백이 우리 각자의 신앙 생활에 더 없는 추진력이 되어야 합니다.

Ⅱ.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4장 9절에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바로 임마누엘의 신앙입니다. 『그들의 보호자』라는 말은 그들의 그림자로 직역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의 그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의 진정한 의미는 가나안 인들에게 내려준 일반 은총 차원의 배려를 의미합니다. 이제 가나안 인들에게는 이러한 것마저도 기대할 수 없는 상태에 직면했다는 말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정직한 신앙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신앙의 눈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굳게 믿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족속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공포의 대상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공포를 능히 잠재워 주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이러한 공포 분위기를 넉넉히 극복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위기 상황에서 공포를 느끼는 것은 신앙세계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신앙세계는 이것을 극복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가나안 행진은 신앙 행진입니다. 신앙이 없으면 이 행진은 스스로 자멸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없는 백성들은 마침내 다 죽었습니다(민 14:36-37).

Ⅲ.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승 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3장 30절에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했습니다.
갈렙의 이 말은 결코 만용이나 자만에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안돈시켰다』는 말은 백성들을 잠잠하도록 설득시켰다는 말입니다. 갈렙이 취한 행위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 그의 믿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 그의 신앙이 주위의 불리한 모든 환경을 일시에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쟁취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피를 흘려 싸워야 합니다. 죄와 싸워야 하고 불신앙과 싸워야 하고 악한 영들과피흘리는 싸움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것이라고 해서 그냥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정과 육체와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불신앙의 유형 무형의 정체들과 싸워야만 합니다(갈 5:24).
사람들은 축복의 문턱에서 혹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문턱에서 좌절할 때가 있습니다. 대세의존 사상이나 기회주의 사상이나 잘못된 호신주의 사상은 경계해야 합니다. 오늘날 자기 자신의 평가에 정직하지 못한 나머지 자포자기하거나 비겁한 도망으로 축복의 행군대열에서 낙오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서 우리들에게 넉넉한 충고와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확실히 저와 여러분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는 축복의 행진대열에서 너무도 당당한 행보를 거침없이 하고 있는 자들입니다.
가나안 행진은 축복의 땅으로 가는 행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을 향한 행진은 하나님의 계획하신 거사입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현장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행진에도 유형무형의 시련과 실망과 아픔과 실패와 비극이 없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가나안 행진에는 뼈에 사무치는 좌절과 모험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행보에는 차라리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받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계속해서 축복의 가나안을 향하여 걸음을 재촉하고 때로는 값있는 희생 제물을 요구하실 때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의 약속 외에 다른 것을 믿고 의지하거나 속된 것에 미련을 갖는 것은 파멸일 뿐 운명 같은 우리의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생활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하나님이 예비해 놓은 땅을 향하는 가나안 행진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 살벌하기 짝이 없는 신앙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는 신앙뿐입니다. 세상이 변하고 없어진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악한 세대와 맞추어 얼마간의 융통성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타락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소위 교회 지도자들은 마땅히 회개하여야 합니다. 변화무쌍한 이 세대를 신세대 운동이니 신세대문화니 하는 미명아래 결코 하나님을 거역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예술이니 창작이니 하는 미명아래 개인의 이권과 영합해서 하나님의 진리 운동 자체를 퇴색시켜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늘의 가나안을 향한 행군은 오늘의 주님의 몸 된 이 지상 교회 운동에서 그 열매를 봅니다.

결국 오늘의 교회운동의 승리는 오직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은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분명하고 쉬운 것인데도 사람들은 이것을 하지 못해서 스스로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은 신자의 눈에도 불신자의 눈에도 보이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증거는 있습니다. 바로 이땅의 교회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능동적이고도 공격적으로 믿어야만 합니다. 우리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불신과 불확실성은 우리의 공격대상입니다.
비록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라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경쟁력입니다. 신앙승리자들의 간증을 관심 없도록 만드는 거침없는 사탄의 흉계에 깨어 있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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