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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대답(합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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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대답
합 2:1-4

학교에서 공부 하는 아이들을 보면 유난히 질문이 많습니다. 대개 질문이 많은 아이들 가운데는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많지요. 그러나 어떤 아이는 엉뚱한 질문을 계속하여서 수업을 방해 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어쨌든 질문이 많다는 것은 좋은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인생살이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우리인생살이가 다 이해가 됩니까? 궁금한 것이 없습니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실 우리 인생이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신앙으로 모든 것을 풀려 해도 이해되지 않습니다. 내가 잘 믿었는데 왜 병이 생길까? 왜 나에게 사고 가 나는 것인가? 왜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일찍 세상을 떠날까 하는 생각들입니다.

하나님모르고 제멋대로 사는 사람들도 잘살고 행복하게 살고 가족들이 다 건강한데 하는 일마다 잘되는데 나는 왜 그런가? 열심히 믿음생활 잘했는데 봉사도 많이 했는데 교회일이라면 이일 저일 다 제껴 놓고 쫓아다녔는데 왜 내겐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은 여러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제게도 있습니다. 왜 내겐 부모가 없는가? 왜 나는 병이 들었는가? 왜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을 일찍 데려 가셨는가? 등등 이러한 질문들이 살아오면서 제 일생을 통하여  끊임없이 찾아온 질문들입니다. 

오늘 성경 하박국 선지자에게도 이러한 질문이 찾아왔습니다. 1장에는 그러한 질문들이 줄을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은 고통을 당하고 원수들, 이방나라들은 잘사는가? 왜 원수들이 우상을 섬기는 나라들이 망하지 않는가? 하나님이 계신가?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원수들을 그냥 놔두는 것인가? 하는 질문들입니다. 결국 시대는 다르지만 그리고 사건은 다르지만 본질은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질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러한 질문이 생길 때 사람들은 두 가지 방법을 가지고 해결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아예 포기하고 사는 것입니다. 내 팔자거니 내 운명이거니 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저 소망도 없이 한숨쉬며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삶의 발전이란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질문하고 답을 듣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해답을 찾습니다. 오늘 성경에 하박국 같은 사람입니다. 본문으로 들어 가 보겠습니다.

1,내가 서리라

1절 “내가 서리라.”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 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 하실는지 보리라” 내가 서리라 말합니다. 그냥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냥 좌절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일어섰습니다. 성도 여러분 앉아서 한탄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일어서기 바랍니다. 

하박국은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손을 뗀 것입니까?  하나님을 불신하기 때문에 하는 질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기 때문에 하는 질문입니다. 남에게는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가족에게는 합니다. 믿기 때문입니다.  아무에게나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친구에게는 합니다.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기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물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서리라 하는 말에는 답을 듣겠다는 것입니다. 우리하나님은 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질문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께 늘 질문하며 살았습니다. 다윗도 하나님께 질문하며 살았습니다. 모세도 하나님께 질문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때마다 대답하십니다. 욥도 고난가운데서 하나님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러한 고통이 있습니까?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 축복입니다. 욥의 고난은 고난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 고난을 하나님은 축복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그가 양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중략.  전국 중에 용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했습니다. 재산을 배나 더 주셨습니다. 욥을 버리고 도망간 여인 대신 부인을 다시 얻었는데 그 딸들이 전국에서 가장 예쁘다는 이야기는 그 부인이 아름답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고난을 축복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기에 하박국이 일어섰습니다. 또 하나 본문에서 찾는 말씀은 기다리고 바라보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실망시키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기다리는 자에게 바라보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믿고 기다리며 믿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 하였더니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2.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기다리고 바라보고 어떻게 대답 하실는지 보리라하는 믿음으로 서 있었더니, “그리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하박국이 가진 의문에 대하여 대답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에게 반드시 응답해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데 달려  가면서도 읽을 수 있도록 판에 새기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 입니까?

하나님의 응답은 흐지부지하게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고 확실하게 분명하게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도록 판에 새기는 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것이지요, 정확하고  틀림이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내용이 엄청납니다.  하나는 악인은 다 망한다는 것이고 의인은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다만 정한 때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 때가 아직 차지 않았기에 그냥 버려두는 것입니다.

악인이 잘되는 것이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의인이 고통 받는 것이 고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정한 때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한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을 모르기에 우리 보기로는 불공편한 것 같고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달려가면서도 볼 수 있듯이 밝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옛날에는 농촌에서 집집마다 돼지를 한 마리씩 대게 키웠습니다. 그 이유는 돼지를 키워서 살림살이에 보탬이 될까하고 키우기도 하지만 어느 집은 돼지를 키우는 이유가 분명한 집도 있습니다. 성년이 된 자식을 결혼시키는데 그때를 맞추어 돼지를 사다가 키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집은 돼지막이 허술해서 어릴 때는 괜찮았는데  돼지가 크고 힘이 쎄지니까? 문을 부수고 나옵니다.

나와서 마당도 제 파 놓고 장독도 넘겨뜨려 깨놓고 난리를 치는 거예요. 그래도 주인이 가만 놔둡니다. 오히려 돼지 막에 몰아넣은 다음에 먹을 것을 더 많이 줍니다. 어린 아이들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왜 그러는지, 그런데 거기에 이유가 있어요. 그 이유가 잔치 날에  잡아먹기 위해서... 잔치 날이 가까우면  더 많이 주고 더 좋은 것을 주고, 자꾸 살찌우는 거예요, 돼지는 그것도 모르고 마냥 좋은 거예요. 이게 축복입니까? 악한 자는 반드시 심판이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일 때문에 속상해 하지 말고  하나님의 정한 때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며 바라보며 기다리세요. 하나님이 정한 때 그날이 오고 있어요. 그럼으로 오늘 본문은 모든 성도에게 주는 권면의 말씀이 있습니다.

3.오직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요. 그런데 그 믿음입니다. 자기가 가진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가진 믿음으로 사는 것 아니고 자신이 가진 믿음입니다. 살ㅇ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가진 자들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내게 고난이 있다면 거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쇼프내시란 목사님이 있습니다. 이분이 서울에 집회를 인도하기 위하여 로스엔젤스 공항에서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쾅하더니 삽시간에 주변이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어느  괴한이 시한폭탄을 장치해 놓았다가 터트린 것입니다. 목사님주변의 사람들이 거의 다 죽거나 중상자가 되었습니다. 목사님도 중상자가 되어서 수술실에 실려 들어갔는데 살아날 확률은 30%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의사들은 그런 가운데 목사님의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고 찢겨 나간부분들을 봉합하며 수술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도우시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기적처럼 목사님의 의식이 돌아오고 살아났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원망스럽지 않습니까? 그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천만에요 나는 원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폭탄이 장치되어 있다는 것도 다 아시고, 내가 거기에 있다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 폭발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당연한 사건이지지요, 나는 우연한 사고라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모든 일을 우리의 유익을 위해 선처해 주시는데 하나님이 모르는 우연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는 분명히 나를 위해 기적과 같은 큰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나는 단지 그것을 몰랐을 뿐입니다. 이제는 압니다. 그 사고 이후 나는 목회에 큰 기적을 가져 왔습니다. 그 기적으로 나는 지금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나는 폭발의 희생자가 아니라 덕을 본 사람입니다. 

믿음의 그릇에 담지 못할 고통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신앙의 선배들은  이 믿음의 그릇에 고통을 담아  꽃을 피운 사람들입니다. 당신의고난이 영광으로 피어지기를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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