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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리의 영 (행 3:18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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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의 영 (행 3:18 ~ 21)   

구약의 말씀: 여호수아기 24:22 ~ 27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이 주님을 택하고 그분만을 섬기겠다고 한 말에 대한 증인은 바로 여러분 자신들이오." 그러자 그들은 말하였다. "우리가 증인입니다." 여호수아가 또 말하였다. "그러면 이제 여러분 가운데 있는 이방 신들을 내버리고, 마음을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바치시오." 백성들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주 우리의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그 날,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들과 언약을 세우고, 그들이 지킬 율례와 법도를 만들어 주었다.  여호수아가 이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책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주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두고, 모든 백성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될 것이오. 주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기 때문이오. 여러분이 여러분의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면, 이 돌이, 여러분이 하나님을 배반하지 못하게 하는 증거가 될 것이오."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제각기 유산으로 받은 땅으로 돌려보냈다.

서신서의 말씀: 사도행전 3:18 ~ 21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아야만 한다고 미리 선포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회개하고 돌아와서, 죄 씻음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주께로부터 편히 쉴 때가 올 것이며, 주께서는 여러분을 위해서, 미리 정하신 그리스도이신 예수를 보내실 것입니다. 이 예수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께서 자기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 마땅히 하늘에 계실 것입니다. 

복음서의 말씀: 요한복음서 15:18 ~ 2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세상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더라면, 세상이 너희를 자기 사람이라고 하여 사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고,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가려 뽑았으므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했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또 그들이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의 말도 지킬 것이다.  그들은, 너희가 내 이름을 믿는다고 해서, 이런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에게는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자기 죄를 변명할 길이 없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까지도 미워한다. 내가 다른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그들 가운데서 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내가 한 일을 보고서도, 나와 내 아버지까지 미워하였다. 이것은 그들의 율법에 '그들은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고 기록한 말씀을 이루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내려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 영이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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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봉독한 말씀들 가운데 여호수아 24장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재미있고도 심각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4백 년 동안 종살이 하다가 모세라는 지도자를 따라 홍해를 건너서 광야에서 40년을 살았습니다. 모세라는 지도자는 훌륭했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가나안 땅이 바라다 보이는 비스가 언덕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지도자라도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있습니다. 이제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잇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가나안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두 지도자의 카리스마는 오늘날까지 이스라엘 역사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봉독한 24장은, 여호수아가 이제 가나안 정착을 거의 완료하고서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듯이, 일종의 고별사를 낭독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고별사에 동의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모세나 여호수아의 지도력은 이제 끝납니다. 구약성서에서 여호수아기 다음에는 사사기가 이어집니다. 그건 무엇을 뜻합니까? 카리스마적 지도력을 지녔던 모세 시대가 끝나고, 가나안정복과 정착이 완료된 지금에는 여호수아라는 큰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력도 끝나고, 그 이후부터는 부정적으로 얘기하면 군웅할거 시대가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이제 백성의 뜻과 하늘의 뜻을 담은 지도 이념에 따라서 각 지역에서 작은 지도자들이 나타나 분권시대를 이어갑니다. 이 시대를 사사시대라고 부릅니다. 시대가 완전히 달라진 것입니다.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시대에서, 작은 지도자들이 필요에 따라 협력하는 시대로 바뀐 것입니다.

이 지도력의 급변 직전의 시점에서 여호수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는 백성 여러분, 이제 나와 약속을 해주어야겠습니다. 여러분은 이제부터 야웨 하나님만을 섬기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스스로 그 약속의 증인이 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이 지킬 율례와 법도를 만들어 주고 그 모든 말씀을 율법 책에 기록하였습니다. 그러고서는 이스라엘이 좋아하는 상수리나무 밑에다가 큰 돌 하나를 갖다놓고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보시오.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될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을 이 바윗돌이 다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사랑하는 백성 여러분, 우리에겐 다른 신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도 섬기다가 세월이 나빠지면 우상도 섬기고, 필요할 때마다 이 신, 저 신을 다 섬기는 혼합종교도 우리한테는 필요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어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하신 야웨 하나님 그분만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제 오래지 않아서 나도 갑니다. 그러면 여러분만 남게 될 텐데, 그때 여러분은 한 특정한 인물을 중심으로가 아니라,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한 약속, 최고의 가치관, 그걸 중심으로 하여 서로 협동해서 나라를 이끌고 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여호수아는 상징적인 일을 했습니다. 이집트에 있던 요셉의 시신을 이장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집트 땅에서의 종살이도, 출애굽의 역사도, 광야 생활도 다 끝났으며, 이제 가나안에서 새로운 나라가 시작된다는 것을 상징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시신이 가나안 땅으로 이장되는 것을 통해서 조상 요셉이, 이스라엘의 운명이, 과거 역사가 이제 한 매듭을 짓고, 새로운 땅에서 새 출발한다는 것을 공표합니다.

새 출발은 이전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뜻합니다. 여호수아라는 지도자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여호수아와 함께 했던 지도자, 대제사장, 엘르아살 등도 여호수아와 함께 무대의 뒤로 물러납니다. 큰 지도자의 시대는 정치적이든 영적이든 끝납니다. 이제 야웨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신앙의 약속이 이스라엘을 이끌어야 합니다. 이후에 등장할 사사들이 이 신앙의 약속을 따라서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야 합니다.

사사시대, 행복한 시대는 아니었습니다. 군웅할거의 시대였습니다. 힘들기도 했습니다. 침략도 받았습니다. 국론도 분열되었습니다. 이런 사사시대의 끝 무렵에, 이스라엘이 나락으로 떨어지기 직전, 다윗이라는 임금이 나와서 이스라엘을 통일하여 오늘의 이스라엘 국가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큰 리더십이 끝난 다음에 작은 리더십에 기댈 수밖에 없는 기간, 이때 필요한 건, 여호수아가 보기에 야웨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확고한 신앙이었습니다.

어쩌면 상황이 지금의 우리나라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세상이 많이 변했고 세계 이념도 변했고 가치관도 변했습니다만, 이젠 우리는 뭘 가지고 어려운 이 난국을 헤쳐가야 합니까? 신앙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하나님만 믿고 가야 합니다. 누가 나서고,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하나님만 믿고 가는 신앙, 하늘의 뜻을 섬기고 하늘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 보겠다는 그 의지 하나만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한 권위의 시대는 가고, 모든 사람이 머리를 맞대야 할 민주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어렵습니다만 더욱더 단결하고 협동하여, 야웨 하나님만 섬기겠다는 신앙의 약속을, 이스라엘 백성이 했던 그 약속을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토기를 만드는 사람은 진흙 반죽이 최상의 상태일 때, 그걸 가지고 토기를 만듭니다. 그 상태가 지나고 나면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토기를 만들 수 없습니다. 여호수아가 물러나는 바로 그 시점이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결단할 최적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독촉합니다.

“지금 결단하십시오.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내일은 너무 늦습니다. 지금 이 시간, 자기 생활이 가장 좋다고 생각할 지금, 행복에 겹다고 느끼는 지금, 더 이상 바랄게 없다고 생각하는 지금, 새롭게 다가올 내일을 위해서 결단하십시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최상의 덕이요 최상의 가치관입니다. 이 결단을 여러분이 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돌을 상수리나무 아래에 세웠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는 고난도 많았고 혼란도 많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고난과 혼란이 극치에 달했을 때 유대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봉독한 요한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곧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도 떠나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모아놓고 유언을 합니다. “세상이 여러분을 싫어할 겁니다. 세상이 나를 싫어하기 때문에, 나를 따르는 여러분을 싫어하는 건 당연합니다. 여러분은 세상에 살지만 그러나 세상에 속했다고 그렇게 좌절하진 마십시오. 세상에 몸담고 살지만 또 다른 세상, 하나님 나라라 이름하는 세상에 여러분의 집이 있습니다. 그 세상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말고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예수님도 없는데, 세상에서 제자들이 쓰러지면 누가 일으켜 줄 겁니까? 여호수아가 없는 이스라엘의 상황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가 없는 세상에는 예수를 대신할 분이 오십니다. 그분이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은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오실 겁니다. 듣지 못하는 음성으로 오실 겁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마음으로 성령의 모습을 보고 성령의 음성을 듣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이 오실 테니 염려하지 말고 성령의 지휘 아래 삶을 계속 이어가라고 하십니다. 그 영은 진리의 영입니다. 진실의 영입니다. 그 영 안에서, 이 세상에 속했으나 속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하늘 뜻을 품고 이 세상을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저는 여러분께 진실로 축원합니다. 성령을 받되 충만히 받으시길 바랍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되 가득 차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요? 세상에 몸담고 살지만 하늘에 속한 사람이란 말이 무슨 뜻입니까? 헤르만 헤세라는 사람이 쓴 [데미안]이라는 책에는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알은 새의 세계입니다. 진실로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자기가 몸담은 세계를 깨뜨리고 나와야 합니다.
그 세계를 깨뜨리고 나온 새는 하나님에게로 날아갑니다.“

아주 짧은 시이지만 우리한테 주는 의미가 큽니다. 새는 알을 깨야 새 생명이 됩니다. 알 속에 있는 동안에는 그것이 세계 전부인 것 같지만, 그래서 알이 깨지면 혼란스러울 것 같지만, 알을 깨고 나오면 또 다른 세계,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상상도 하지 못한, 그런 세계가 펼쳐집니다. 새는 이제 새 세계의 일원으로서 날개를 펴고 하나님에게로 날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계에서 몸담고 살지만, 우리의 세계를 깨뜨리면 또 다른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불의한 세계의 사슬을 깨면 의가 지배하는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믿고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사람마다 작고 큰 자기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 세계는 이데올로기로 뭉쳐져 있기도 하고, 권력으로, 또는 돈으로 감싸여 있기도 합니다. 그 세계는 우리가 거역하기 어려운 세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세계가 깨지면 또 다른 세계가 열립니다. 우리는 그때 비상의 날개를 펼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은 알을 깨고 새 세계로 나가려고 노력하는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이 세계를 넘어 새로운 희망으로 나아가려 할 때 도와주십니다. 그걸 보여준 사람 가운데 하나가 베드로입니다.

오늘 봉독한 사도행전에서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킵니다. 베드로는 예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을 행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했지만, 예수께서 거기 계셨던 것은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의 이름으로 성령의 능력을 받아 앉은뱅이를 일어나게 한 것입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났습니다. 이 앉은뱅이가 일어나 첫 번째 한 행동은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앉은뱅이는 앉아서 구걸하여 살아가는 것, 그것이 자기 세계의 전부입니다. 혼자 이동할 수도 없습니다. 누가 옮겨 주어야 합니다. 혼자 벌어먹을 수도 없으니, 누가 도움을 주어야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앉은뱅이란 것은 단지 신체적으로 일어설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앉은뱅이라는 것은 이 사람의 총체적인 세계입니다.

그 갇힌 세계를 어떻게 깨뜨립니까? 아니 얼마나 깨뜨리고 싶었겠습니까? 베드로가 성령의 능력으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세계를 깨뜨리라고 합니다. 앉은뱅이 세계는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남으로써 깨어집니다. 앉은뱅이는, 알을 깨고 새가 나오듯이 앉은뱅이의 세계를 털고 일어나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확신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할 일은, 새로운 세계를 주신, 절망에서 희망으로 옮겨주신 그 하나님께 찬양, 감사, 찬미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우리 세계가, 우리 사회 현실이 여러 가지로 어둡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 세계를 깨고 새로운 세계로 향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렇게 증거하고 실천할 증인을 원하십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너희가 바로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여호수아나 모세 같은 카리스마적 리더가 아닙니다. 그는 보잘것없는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작은 어부였던 베드로는 자신에게 성령이 임하자 엄청난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이 은혜는 베드로에게만 주어진 복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여러분 모두에게 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여기 앉아계신 여러분 모두가 다 베드로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가 경험해야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진리는 머릿속으로 깨닫는 것으로는 불충분합니다. 진리는 몸으로 체득할 때에만 온전해집니다.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서는 먼저 이론시험을 봅니다. 그러나 이론시험에서 합격했다고 바로 운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론을 다 알아도 운전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운전 선생을 옆에 앉히고 실제로 차를 몰면서 연습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합격을 했다고 해서 운전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번, 오래 차를 운전하고 다녀야 합니다.

진실로 운전이 뭔가를, 인생이 뭔가를 알려면 우선 경험해 보십시오. 무엇을 ‘한다’는 말은 독일어로는 파렌(Fahren)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무언가를 하다가 깨닫는 게 있을 겁니다. 그 경우 ‘파렌’에다가 ‘에어’(er)를 붙여서 에러파렌(Erfahren)이라고 합니다. 에어파렌은 실제로 하면서 깨닫는다, 몸으로 부딪히면서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머리로만 아니라, 직접 실제로 운전을 해서 운전이 뭔가를 아는 것, 이론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살면서 인생이 무언지를 아는 것, 그것이 경험입니다. 사는 것, 그것은 독일말로 레벤(Leben)입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까 깨닫는 것, 그것은 “에어레벤”(Erleben)입니다. 인생을 살아보고 나서, 몸으로 부딪히고 나서 깨닫는 것을 가리킵니다. 성령의 역사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성령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안다고 해서 성령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아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앉은뱅이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정상적인 사람이 됐습니다. 앉은뱅이에서 일어선 사람으로! 엄청난 변화입니다. 세계는 이렇게 바꿔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한 세계가 깨진다고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성령의 진리를 따라 살면 놀라운 역사가 생깁니다.

그런데 그런 놀라운 역사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분은 우리를 대신해서 죄악 세상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분에게는 못 자국이 있고 찔린 흔적이 있습니다. 그 흔적이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사람은 악한 세상의 미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미워한다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세상을 이긴 것처럼 여러분도 이길 것입니다.” 그래서 증언한다는 말은 순교한다는 말과 동의어로 쓰입니다. 마르뜨리아(martyria)!

예수 당시에 예수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오늘과 같은 사회현실에서도 미래를 바라보는 말을 하면 핍박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산다고 하는 사람들을 세상이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세계가 깨어지고 하나님의 세계가 임하면 우리는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작은 이야기 하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한 아이가 남한테 말 못할 고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손은 화상으로 인한 상처가 너무 커서, 어머니 손을 보기가 싫었답니다. 한번은 친구들을 불러서 생일 파티를 하는데, 어머니한테 부탁을 했습니다. “엄마 친구들 오면, 음식 차릴 때 꼭 장갑을 끼고 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너무 바빠서 장갑 끼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니 아이의 친구들이 험상궂은 손을 보고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창피한 아이가 막 난리를 칩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한 가지 비밀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네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 집에 불이 났단다. 사람들이 다 피하는데, 어린 네가 방에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엄마가 뛰어 들어가 너를 안고 나오는데, 엄마 오른팔 끝 옷자락이 걸려서 불이 붙어 오른 손에 심한 화상을 입고 말았단다. 내가 처음 이 말을 내게 하는구나.” 불에 탄 그 손, 그것은 자식을 살린 엄마의 상처였습니다. 아이가 이 말을 듣고는, 엄마의 손이 가장 아름답다며 울었습니다. 아이가 자기의 세계를 바꾼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를 보고 제자들은 외쳤습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었습니다. 험상궂게 죽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도대체 뭡니까? 상처 받은 예수, 그 예수를 아름답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부활의 영광을 본 증인들에게 주님의 상처는, 그분의 처참함은 오히려 아름다움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진리의 영이 임하시면 세상이 바뀝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모든 것이 바뀝니다. 이제 여러분은 날개를 펴고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비상하십시오.

여러분, 성령을 충만히 받으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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