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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길이 참으라 / 약 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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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참으라
약5:7 -11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중국 고사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젊은이가 벼슬자리를 얻어 임지로 떠나는데 전송나온 친구가 같이 걸어가면서 충고를 했습니다. "벼슬자리에서 일하려면 무엇이건 참아야 하네"하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 젊은이는 "암, 참아야지..."하고 응답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가더니 그 친구가 또 하는 말이 "벼슬자리에서 일하려면 무엇이건 참아야 하네. 명심하게"하고 또 충고를 했습니다.
그때 그 젊은 친구는 "참고 말고... 참아야지"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가더니 또 세 번째로 "몇 번이라도 참아야 하네... 참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네."하고 충고를 했습니다. 세 번째 충고에도 그 벼슬하는 친구는 "암, 참고 말고..."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가다가 네 번째로 참아야 한다고 충고를 또하는 것입니다. 칭찬도 세 번 하면 듣기가 싫다고 한다는데 네 번씩이나 충고를 하니 벼슬하는 친구가 화가 났습니다. "아! 이 사람아, 한두 번 말했으면 됐지 네 번씩이나 누구를 조롱하는 것인가."하고 화를 불끈 내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때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친구여, 보게나 네 번 말했다고 화를 낸다면 쓰겠나... 인내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이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열심히 기도하다가 응답이 없으면 기도를 멈춥니다. 열심히 전도하다가 효과가 없으면 전도를 포기합니다. 열심히 충성하다가 열매도 없고 아무 축복도 없는 느낌이 들면 충성의 자리를 떠납니다. 열심히 말씀대로 사노라고 했음에도 건강이 나빠지거나 자녀가 삐뚤게 나가거나 사업의 큰 어려움을 만나면 신앙의 회의에 빠지기 일쑤입니다. "나는 열심히 기도도 하고 주일 성수도 하고 십일조 생활에도 성실하고 충성했는데 축복은커녕 어려운 문제만 만나게 하시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오직 하나, '길이 참으라'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14:12) 또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히10:36)
존 매칼은 대학에서 지질학을 전공하고 석유가 나오지 않는 폐광을 인수한 후 600피트까지 파내려 갔지만 석유가 나오지 않아 식구와 친척들의 비난과 채무자들의 아우성 속에서 자살을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다 어차피 죽을 목숨, 끝장을 봐야 겠다는 생각으로 70피트를 더 파내려 갔을 때 엄청난 석유가 터져 나와 석유 재벌이 되었던 것입니다.
반드시 성도들에게 풍성한 열매를 주시는 하나님을 의뢰하며 소망 가운데 길이 참고 인내하면서 믿음의 씨를 심으십시오. 기도의 비료를 더 주십시오. 인내의 삽으로 더 깊이 파내려 가십시오. 그러면 어느 날엔가 큰 열매, 큰 터짐, 큰 방주의 새 삶이 열리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어떤 걸 먹어도 잘 소화하고 아무리 춥고, 더워도 잘 참고 견딥니다. 그러나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조금만 추워도 감기 걸리고, 뭘 하나 잘못 먹으면 금방 토하고 야단입니다. 마찬가지로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어디서 별로 반갑지 않은 전화 한 통이라도 받았다 하면 밤에 잠을 못자고, 좀 좋은 일이 있으면 얼굴이 환했다가 또 조금 어려운 일 만나면 금새 고꾸라져 온 집안 식구를 못살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인내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좋은 칭찬을 들어도 교만하지 않고, 억울함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고 넉넉하게 견디고 참아냅니다. 참을성이 인격의 척도가 되고, 교양의 바로미터가 됩니다.
일본의 춘추전국시대에 천하를 주름잡던 세 인물이 있었습니다. 오따 노부나가와 도요또미 히데요시 및 도꾸가와 이에야스입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이 앵무새를 보고 언급했던 말을 비교해 보면, 오따 노부나가는 말하기를 "앵무새가 울지 않거든 죽여버려라"했고, 도요또미 히데요시는 "앵무새가 울지 않거든 어떻게든 울게 만들라" 했으며, 도꾸가와 이에야스는 "울 때까지 기다려라"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 중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고 정권을 차지한 사람은 도꾸가와 이에야스입니다. 참고 기다림이 없는 사람은 인격도 교양도 없는 사람일 뿐 아니라 성공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인내에 의해서 평가됩니다. 많은 시련, 많은 고통을 얼마나 잘 참고 견디느냐에서 신앙의 수준이 평가될 것입니다.
어느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한 노 교수에게 하루는 그 아들이 나이도 들고 힘도 들텐데 그 직무를 다른 교수들에게 넘겨주고 편히 쉬라고 권유를 했습니다. 그러자 이 노 교수는 "달리기하는 경주자가 만약에 그 달릴 거리가 50㎞인데 49㎞에서 지쳐 떨어지면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니냐 잠자리를 따뜻하게 하기 위해 불을 지피는 것도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 충분히 지피면 편안히 잘 수 있지만 낮에는 많이 지피고 저녁 무렵에 꺼뜨린다면 떨면서 잠자리에 들어야 하고 아마 무덤도 차가울 것이다"라는 말로 아들의 권유를 거절했습니다. 승리하려는 경주자는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완주하는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1. 인내는 성공의 기초
어느 두 사람이 길을 떠났습니다. 길은 너무 멀고 험했지만 그들은 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찾는 것은 하나의 성공의 깃발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느 산정에 다달았습니다. 많은 박수가 사방에서 나오며 여기 저기서 "이봐 젊은이들, 그렇게 고생할 필요없어. 우릴 보라고! 우리도 자네들처럼 푸른 꿈을 안고 왔다가 여기서 정착해 버렸어. 여기서 같이 살자."하는 말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곳에는 그들이 찾는 깃발이 없었습니다. 이번엔 더 높은 산 위에 올랐습니다.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은 "어서 오게나 정말 수고했네 자네들도 이젠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걸세"하며 그들 두 사람에게 그곳에서 정착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렇지만 이곳에도 그들이 찾는 깃발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많은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어느 날, 그들은 굴 앞에 섰습니다. 이때 같이 가던 한 사람이 "난 이제 그만 두겠어. 지금까지 수고한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날 위대하다고 할거야. 난 사람들이 꺼려하는 가시밭길도 이겨내었어"하고 말했습니다. "여태까지 고생하고 여기서 주저 않으면 안 돼. 우리에겐 목표가 있잖니?"라고 말렸으나 듣지 않아 결국 한 사람만 굴을 통과하였습니다. 굴은 생각보다 짧았습니다. 굴을 통과하자 그 곳은 전혀 다른 세계였습니다. 그 곳에 있던 분이 그에게 성공의 깃발을 주며 반겼습니다. "깃발 하나만 더 주십시오. 제 친구가 저 굴 밖에 있습니다. 이렇게 조금만 더 가면 되는 줄도 모르고..." "안됩니다. 성공을 눈앞에 두고 주저 않은 사람은 그 친구뿐만이 아닙니다. 성공의 깃발은 결코 남이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깃발은 이내 망가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의 그 아픈 고통을 참고 견디어 낸 끝에 위대한 사랑을 실현시켰습니다. 우리는 인내하신 예수님과 선지자들을 본받아야 합니다.(약5:10-11) 끝까지 인내한 사람에게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딤후4:7-8) 인내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실패하고 끝나는 바로 그곳에서 성공하기 시작합니다.
영국 켐브리지 대학을 나온 아랍인 '무사 알라미'라는 청년이 고국으로 돌아와서 옥토를 만들려는 계획을 세우고 여리고 계곡으로 갔습니다. 멀리 사해와 모압산지가 보이는데 그곳은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지대라 무사 알라미는 이 사막을 파고 지하수를 개발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일을 시작하였는데 주위 사람들은 절대로 이 마른 땅에서는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창조 후 아직까지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모래밭이었지만, 창조의 하나님은 여기서도 생명이 살 수 있도록 하셨으리라는 가능성을 믿고 그는 곧 지하수 개발에 착수하였습니다. 그런데 일 주일을 파고 열흘을 파보았으나 여전히 모래뿐이었습니다.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석 달이 지났지만 물기조차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낙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여섯 달을 팠는데 마침내 물이 조금씩 고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솟아나는 물줄기를 보고 감격의 눈물을 쏟으면서 그는 그 물을 끌어들여서 사막을 옥토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농장을 만들고 농민학교도 세웠습니다. 농장에서 수확된 바나나와 오렌지를 비행기에 실어 베이루트, 쿠웨이트로 수출을 하기까지 하면서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그는 인내로 성공하였습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잠24:16)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은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담임교사가 머리가 너무 나빠서 아무리 가르쳐도 안되니 집에서 가르쳐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낙심하지 않고 열심히 가르치며 약해지지 않도록 힘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11 살이 된 에디슨은 기차 한 모퉁이에서 신문팔이를 하면서 무슨 실험을 하다가 기차내에 불을 일으켜 차장에게 따귀를 맞고 한쪽 귀의 청력을 잃었습니다. 그런 어려운 처지에서도 그는 굴하지 않고 노력하여 2천여 종 이상의 발명품을 내서 발명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늘 기도하고 감사하는 신앙의 사람이었는데 전구를 발명하고 완성할 때까지 무려 12만 번이나 기도하고 1만 번이나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한번 실험해서 실패하면 3시간을 기도했습니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80번이나 다시 써 완성했다고 합니다. 조지 반크로프는 미국의 역사를 집필하는데 26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영국의 물리학자 아이잭 뉴턴은 새벽2시전에 잠자리에 든 적이 없었습니다. 아담 클리크는 성경을 주석하는데 40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인고 없이 열매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꾸준히 전진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당해 낼 장사가 없습니다. 산다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소망을 가지고 꾸준하게 달려가는 자에게 기적의 열매는 맺히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에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8:2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8:15)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3-4)하였습니다.
서양속담에 "세계는 인내하는 자의 것이다"라는 말이 있고, 러시아 속담에는 "병사여, 인내하라. 곧 장군이 될 것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운명은 무엇이든 반드시 인내에 의해 극복되며, 인내는 모든 것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특히 복음과 이웃 사랑을 위해 우리는 인내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내라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잘 참고 인내하는 사람만이 마침내 성공과 승리의 꽃을 피게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마치 농부가 씨를 뿌린 후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약5:7) 만약 농부가 인내하지 못하고 중단한다면 농사는 망치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긴 안목으로 인생을 바라보지 않고 짧은 안목으로 보기 때문에 자주 낙심하고 포기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장거리 경주이기 때문에 당장에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더라도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농사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내하는 농부처럼 우리가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열심을 다할 때 풍요로운 신앙의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히12:1)

2. 사랑은 오래 참는 것
중국의 장공예 씨는 한 집에 4대가 동거했습니다. 어떤 날 친구가 찾아와서 4대가 함께 동거하는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때 장 공예는 친구의 손목을 잡고 자기의 광으로 들어가서 항아리 뚜껑을 열어 보이며, ‘여기에 비결이 있노라’고 하였습니다. 항아리 속에는 참을 인(忍)자 종이 조각이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어느 가정인들 불평 불만이 없으리요 마는 우리 가정에는 마음이 상할 때마다 참을 인(忍)자를 써서 항아리에 넣고 참았다는 것입니다. 그 옆에는 글씨를 쓰는 붓과 벼루가 있었습니다.
현대는 참지 못하는 사람들의 조급한 행동 때문에 험악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공중전화 부스에서 몇 분을 기다리지 못해 시비가 벌어지기 일쑤이고, 차량들은 신호등 앞에서 초록불이 미처 켜지기도 전에 조급하게 출발합니다. '1분이면 OK' 하는 인스턴트의 시대, 빠른 것만을 선으로 여기는 스피드 시대의 선물입니다. 현대인들은 조급하여 어느 것에 대해서도 참지 못합니다. 심지어 사랑한다 고 고백하는 연인들 사이에서도 상대방의 잘못에 대하여 참지를 못합니다. 그 결과 사랑을 맹세하고 신혼여행을 떠났지만 돌아오자마자 이혼 수속을 밟는 신혼부부가 속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달콤해야 할 사랑의 밀월여행이 상대의 조그만 잘못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인내 부족으로 이별여행이 되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어머니께 꾸중을 듣다가 참지 못해 자식이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다는 뉴스가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의 잘못을 참지 못하고, 자식은 부모의 훈계를 참지 못하였습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이 비뚤어졌던 탓입니다. 사랑은 그 본성이 오래 참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근원이시고, 그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과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신다는 말은 같은 뜻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면 오래 참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셨습니다. 첫 인간 아담이래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계속되는 인간의 불순종과 악행에도 불구하고 진작 있었어야 할 하나님의 심판은 아직 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도 참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을 참고 계시지 않는다면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생명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는 매순간 유혹에 따라 범죄하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으신 여호와께 죄악과 과실이 많은 이스라엘을 용서해 달라고 담대히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민14:18) 바울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얼마나 극적으로 나타났는가를 찬양하였습니다.(딤전1:15-16)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까지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참으셨습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의 참으심을 보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셨는가를 절감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오래 참으심을 본받을 의무가 있습니다. 먼저 자기에 대하여 참아야 합니다. 대개 분은 남의 잘못 때문에 낸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자기 자신의 감정에서 비롯되는 때가 많습니다.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스스로가 성숙하게 되기를 기다리는 인내가 그리스도인에게 절실하게 요구됩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며 때가 되면 거두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참아야 합니다. 또한 이웃에 대하여 참아야 합니다. 가정에서 서로를 향하여 참아야 합니다. 우리의 옛 어머니들은 모질고 고통스런 생활 속에서도 참고 살아왔습니다. 가난한 생활 속에서 시련을 참아낸 이런 위대한 어머니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들이 있게 된 것입니다. 요즈음은 부모들이 참지 못하기 때문에 결손가정이 생겨나고 심각한 청소년 문제를 야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향해서는 특별히 오래 참아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현재의 부족함을 참고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뜻을 따르지 않아도 눈물로 기도하며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부모들의 조급한 사랑이 자녀들을 병들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묵묵히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인간의 눈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바라보면서 거기서 불합리함을 느끼고 불평하곤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셔도 여전히 이 세상에는 악과 부조리가 있고 납득할 수 없는 의인의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순된 현실 속에서도 궁극적으로 선을 이루시도록 섭리하십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그 어떤 고난 속에서도 그것을 믿고 주님의 재림의 날을 기다린 것처럼,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이 모든 오래 참음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이 하나님께 속함과 같이 오래 참음도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참을 '인(忍)'자 셋을 가지게 되면, 우리 속담처럼 살인을 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세상에 생명을 주시되 더욱 풍성하게 주시려는 하나님의 역사에 참예하는 일이 됩니다. 흙으로 빚어진 피조물인 인간에게 이보다 더한 영광은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고전13:4)

3. 말과 행동에 인내가 필요
우리는 말하는 것도 인내해야 합니다. 너무 쉽게 말해버리면 후회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19절에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고 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리고 말했으면 좋았을 것을 참지 못하고 그만 말을 토했다가 뒷수습을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뿐만 아니라 행동에도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미국 뉴욕 맨하턴에서 25년 동안 레스토랑을 경영한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데, 자기 식당에는 각 나라 사람이 와서 식사를 하고 가는데 그 국적에 따라서 매너가 각기 각색이라고 합니다. 독일사람은 음식이 맛있다고 생각되면 "이건 무엇으로 만든 겁니까?"하고 꼭 물어본다고 합니다. 프랑스사람은 "참 이거 맛있습니다." 한마디하고는 조금씩 조금씩 계속 맛을 즐긴다고 하고, 일본사람은 "맛있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사람은 무엇이 바쁜지 음식 독촉을 하거나, 한마디 말도 없이, 후루룩 쩝쩝 금방 먹어치우고 나간다고 합니다. 음식 먹는 것뿐만 아니라 일도 대충 빨리 처리하고, 빨리 출세하고, 빨리 벌고, 빨리 잘살고...그러다가 망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서두르지 말고 참고 기다립시다. 히브리서 12장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라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는 거역한 자를 참으셨습니다. 또한 뉴턴은 "내가 한평생 연구하는 가운데 발견한 가장 중요한 진리는 인내다. 인내가 성공의 어머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생각하면서 그 귀한 인내의 본을 따라서 믿음으로 길이 참아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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