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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족하는 삶 / 딤전 6: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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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족하는 삶

본문: 딤전 6: 6- 8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6:6-8)

이솝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눈병이 난 나이 많은 한 여자가 눈병을 고쳐주면 크게 사례하겠다고 약속하고 의사를 불렀습니다. 의사는 매일같이 그 여자의 집에 가서 그녀의 눈에 약을 넣기 위해 눈을 감게 하고서 그 사이에 그 집에 있는 값비싼 물건들을 하나씩 둘씩 몰래 집어갔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녀의 눈병이 거의 나을 무렵, 그녀의 집에는 변변한 가구라곤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의사는 자기가 탐이 나는 물건을 모두 훔쳐갈 수 있을 때까지 눈병 치료를 질질 끌어온 것입니다. 마침내 여자의 눈이 다 나았으므로 의사는 약속한 대로 사례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약속한 사례를 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재판장에 불려나온 그녀는 "어찌하여 약속한 사례를 치르지 않느냐?"는 재판장의 심문에 태연스럽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확실히 내 눈이 잘 보이도록 고쳐주면 상당한 사례를 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저 의사의 치료를 받고 나서는 내 눈이 전보다 더 나쁜 형편이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의사는 물론 재판장도 크게 놀라 그 곡절을 다시 물었습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습니다. "제가 저 의사의 치료를 받기 전에는 내 집에 있는 값비싼 물건들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내 눈은 좋아진 것이 아니라 전보다 더욱 나빠진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사례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이 악덕 의사의 절도 사실이 법정에서 밝혀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소유욕의 노예가 되어 마침내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 같습니다.
이 땅에 교회가 시작된 이래로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은 바로 성령강림 이후 시작된 최초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한 때 잠시나마 지구촌 한 모퉁이에서 이런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성령님의 역사로 감동된 사람들이 탐욕에서부터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죠지 번(코메디안)의 농담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신이 아담과 이브에게 옷을 주지 않은 이유는 옷을 주면 인간은 주머니를 달아달라고 할 것이고 주머니를 주면 거기에 돈을 채워달라고 할 것이니까 옷을 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인간은 탐욕의 노예가 되어 살아왔습니다.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싸우고, 죽이고, 빼앗는 가운데 그들의 삶은 황폐해져 갔습니다 인간의 행동 속에는 탐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더욱 부패하고 타락한 존재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탐욕은 인간의 정신을 혼란케 합니다 탐욕은 인간으로 하여금 끊임없는 불평과 소외를 갖게 하고 나태와 절망, 그리고 끝없는 갈등을 만들어 냅니다 이것은 결국 전쟁으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탐욕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이 사회를 더욱 살벌한 곳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탐욕에 대해서 ‘매우 심각한 죄’로 규정짓고 있습니다 스피노자는 “탐욕스러운 사람이 자기의 죽음을 피하기 위하여 자기의 부를 바다에 던져 넣을 지라도,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탐욕스러울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바울 사도 역시 탐욕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불행한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사회가 겪고 있는 모든 갈등과 고통의 배후에는 탐욕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갖기를 원하고,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를 원합니다 또 고급스런 차를 타고 싶어하며, 크고 좋은 집에서 살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마음에는 늘 만족함이 없고 현실의 삶이 힘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소망이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욕심으로 얼룩진 이 민족과 교회 공동체가 사는 길은 바로 ‘자족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인생의 만족은 결코 풍성한 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을 만족시킬 만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울의 고백대로라면 진정한 만족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부족함 없는 하나님의 풍성하심, 우리와 늘 함께 하시며 도우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알게 되면 우리는 모든 일에 자족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세워졌던 초대 공동체의 모습은 바로 자족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뤄낸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콩글렌튼'경은 어느 날 아침 부엌문 앞을 지나가다가 '아이참! 내게 5파운드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만족할 텐데'라고 중얼거리는 요리사의 말소리를 들었습니다. '콩글렌튼'경은 즉시 그녀에게 5파운드를 주었습니다. 그녀는 수다스럽게 감사의 표시를 했습니다. 경은 이때 그녀가 나가면서 만족한 표정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나 보려고 유심히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몇 발자국 가더니 '하나님! 제가 왜 10파운드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하는 게 아닙니까!
사람들은 만족하는 법을 모릅니다.
미국의 한 유명한 신문에 기사 하나가 실렸습니다.‘만일 자신이 가진 것에 참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10만 달러를 주겠다’. 이 기사를 읽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들은 서로 자신이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 한 사람도 돈을 받지 못했습니다 광고를 낸 사람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은 “당신이 지금의 환경에 만족한다면 왜 10만 달러의 돈이 필요합니까?”였습니다 우리들도 이들 중의 한 사람은 아닐까요.
하나님의 행복관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이 행복하다"라는 말로 요약됩니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지 않은 것에 초점을 두는 한, 우리는 불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일생 동안 행복할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주지 않을 것이며, 또 혹시 주신다고 해도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 충분히 주시지 않을 것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어느 날 태산을 유람하던 공자는 사슴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새끼로 만든 띠를 졸라매고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부르는 노인을 보았습니다. "선생께서 즐거워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나의 즐거움은 많소. 하늘이 만물을 낼 때에 모든 것들 중에 사람을 가장 귀한 존재로 내었는데 내가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이것이 바로 첫째 가는 즐거움이요, 또 사람이 태어나면서 빛나는 해와 달도 보지 못하고 강보 속에서 죽음을 맞게 되기도 하는데 나는 이미 90세나 되니 그 또한 내 즐거움이요, 가난하게 사는 것은 도를 닦는 이에게 당연히 있는 일이요, 죽음이란 산 사람에게 있어서 당연한 종말이오. 그러니 이제 나는 당연히 있는 일에 처하여 살다가 제명에 죽게 되니 내가 무엇을 근심하겠소?"
"참으로 좋은 말씀입니다. 선생은 스스로 마음을 너그럽게 가질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습니다.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함같이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않습니다. 말 타면 종 부리고 싶고, 앉으면 눕고싶습니다. 자전거 한 대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던 사람은 막상 갖고 보면 자가용이 눈앞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단칸방이라도 좋으니 내 집만 있으면 여한이 없겠다고 큰 소리쳐도 막상 단칸방 창문 너머 보이는 30평 아파트가 눈이 시리도록 아른거리는 것이 사람입니다. 적당한 욕심은 발전을 가져옵니다. 형편과 처지에 따라 브레이크를 밟을 수만 있다면 욕심도 필요하겠지요? 그러나 욕심이라는 승용차에는 브레이크가 없습니다. 어디엔가 크게 부딪혀야 서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브레이크를 밟으세요. 그리고 만족하세요. 감사하세요. 그래야 참 기쁨이 찾아옵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2)
독일의 신비주의자 타울러에 관해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습니다. 타울러가 하루는 거지를 만나서 “친구여, 오늘도 안녕하십시오” 하고 말하니 “나는 하루도 안녕하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행복하기를…” 하자 거지는 “난 불행해 본 적이 없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타울러가 놀라서 “그것이 무슨 뜻이오?” 하고 묻자 거지는 “날이 좋으면 감사하고, 비가와도 감사하고, 먹을 것이 넉넉하면 감사하고, 배고파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나의 뜻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 나를 기쁘게 합니다. 그러니 제게 무슨 불행이 있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타울러는 더 놀라서 “대체 당신은 누구시오?” 하고 물었습니다. “나는 왕이오” 하고 그 거지가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의 나라는 어디에 있소?” 하고 타울러가 물으니 거지는 “내 마음속에 있소”라고 대답했습니다.
랍비 시므온은 “평생 동안 나는 한번도 사슴이 무화과를 말리는 것을 보지 못했고, 사자가 물건을 운반하고 여우가 장사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염려 없이 먹고산다. 만일 나를 섬기기 위해 창조된 그들이 걱정 없이 먹고 산다면 창조주를 섬기기 위해 창조된 나는 얼마나 더 걱정 없이 먹이시겠는가? 그러나 나는 염려함으로 내게 있는 것까지 부패시켰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이미 영원토록 행복하게 되는 데 필요한 것을 모조리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으며 영생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며, 소유하지 못한 것을 탐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국의 어떤 공동묘지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적힌 비석이 서 있다고 합니다. "그녀는 많은 것을 소유하기를 원하다가 죽었다." 이 비문은 우습기도 하지만, 오직 이 세상의 물질만을 위해서만 살았던 어리석음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세상 재물에 매우 도취되어 있어서 그것을 얻는 것이 그의 주된 목표가 되고 있다면 그는 언젠가 반드시 좌절과 실망에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며 물질적인 것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욕심은 한정이 없습니다. 한 가지 욕망을 채우면 다음의 싹이 돋는 것입니다. 즉 천만 원 재산을 모으면 이천만원을 모으고 싶고, 일억 원을 모으면 이억 원을 모으고 싶고 또 그 이상 한이 없습니다. 이러한 욕심들을 억제하지 못하면 죄를 범하게 되고 그에 따라 형벌을 받게 됩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5:10)
나는 아직까지 큰 재물을 모아놓은 불신자가 이제는 더 이상 원치 않는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재물에는 만족함이 없으며, 사람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이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알고 "위엣 것"에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은 겨우 연명할 정도의 물질에도 완전한 만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우리 사람들이 목마르게 찾고 또 그것을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수고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만족한 생활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만족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이사야 55장, 1, 2절) 무슨 말입니까? 세상의 물질이나 육신의 쾌락은 사람에게 참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짐승은 본능대로 살고 본능을 충족시키면 그것으로 다 됩니다. 그러므로 짐승에게는 고민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물질적인 것만 가지고는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육신의 쾌락도 그렇습니다. 마치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마릅니다. 얻으면 얻을수록, 누리면 누릴수록 더욱 목이 말라집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의 몸이 마실 물이 없이 살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 없이 참 만족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영혼의 갈급함을 채워 주시는 분입니다.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사실, 영혼의 만족을 채워주지 못하는 단순한 세상적인 것의 번영은 오히려 고통만 더할 뿐입니다. 어거스틴의 참회록 첫 페이지에 있는 말은 꼭 옳습니다. 그리고 참 만족한 생활을 하는데 한가지 조건이 더 있습니다. 그것은 만족한 생활을 하게 하실 수 있는 분에게 나아와야 합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에게 나아오면 됩니다. 혹 어떤 이는 스스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그에게 나아가야지. 그러나 이대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나? 어느 정도 내 지금의 생활을 청산하고 나아가야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그대로 나아오라고 하십니다. 나아오기만 하면 모든 짐이 벗어지고, 불만이 해소되고, 참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의 2대 왕인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23편). 그렇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부족함이 없습니다. 만족합니다. 이렇게 주님께 나아오는 것을 회개라고 하며, 예수님 안에서 만족한 생활을 하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생활입니다. 실지로 내가 그대로 해보아야 그것이 무엇임을 알게 됩니다. 세상에서 만족한 생활을 하기 위하여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구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종래에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 앞에 나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비로소 참 만족을 얻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회계사가 비록 가난하지만 아주 진실한 교인의 세금보고서를 대신 작성해주려고 찾아갔습니다. 그 회계사는 "소유하고 계신 재산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겠습니까?"하고 부탁했습니다. "글쎄요,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거든요. 첫째, 나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둘째, 크고 아름다운 집이 천국에 있습니다. 셋째, 다른 사람들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평화와 기쁨이 있습니다. 넷째,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다섯째, 현숙하고 신실한 아내가 있고 여섯째, 건강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들이 있습니다. 일곱째, 진실하고 변함 없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여덟째, 캄캄한 밤중에도 찬송을 부를 수 있습니다. 아홉째, 생명의 면류관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열째, 나의 필요한 모든 것을 풍족하게 채워주시는 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러자 그 회계사는 장부를 조용히 덮으면서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당신의 재산에 세금을 부과할 수는 없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재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귀중한 하늘 나라 재산이 많이 있다는 사실과, 우리 성도는 가난한 자 같으나 부요한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고후6:10)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포식한다'는 말은 '부족함이 없다', '만족함이 있다'는 뜻입니다. 의인의 마음과 생활에는 만족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은 만족함이 없습니다. 아무리 호의 호식을 하고 재물을 쌓아 놓아도 마음에 만족함이 없고, 늘 무엇인가 부족한 듯한 결핍증에 시달립니다. 참 만족은 물질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참 만족은 오직 하나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시23:1)
성경에 보면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떠난 자이었지만 그의 가정에 갑자기 들이닥친 시련은 모든 것을 앗아갔습니다. 열 명의 자녀도, 그 많은 재산도 그리고 마지막에는 욥의 건강마저도 빼앗아 갔습니다. 그리고 사랑스럽기만 하던 아내도 “재앙을 주시는 하나님을 언제까지 섬기겠느냐"며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하고는 떠나버렸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욥은 위대한 고백을 합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기 1:21)
우리나라의 최대의 부자였던 정주영도 떠났고 김우중도 무너졌습니다. 자기가 얻은 부와 재물, 자기 것이 아닙니다. 명예도 재능도 시간도 자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고통과 슬픔과 시련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오로지 그 분의 뜻에 따라 쓰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물질에 대한 애착과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욥과 같은 정신자세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미국정부 조사에 의하면 미국에는 대략 23,552종류의 직업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침대요가 부드러운가를 조사하기 위하여 매일 8시간씩 맨발로 요를 밟고 다니는 직업이 있는가하면, 지하철 같은 곳에 붙은 광고 인물사진이나 그림에 누가 장난으로 그려놓는 그 수염을 하나 하나 좇아 다니며 지워야하는 직업도 있고, 접시의 강도(강도)를 시험하기 위하여 하루 종일 접시만 깨는 직업도 있습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족하는 삶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자족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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