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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하는 자의 축복 / 고후 9: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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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하는 자의 축복
              고후9:6-11,2003.11.16.늘찬양교회
                http://www.everpraise.or.kr)

   
  어제 국민일보 15면에「추수 감사절을 축하하며...하나님의 축복에 감사 드립니다.」
는 제목 하에 "감사는 영적 건강의 좌표입니다. 감사는 축복을 두 번 누리는 것입니다. 한 번은 받을 때이고 또 한번은 회상할 때입니다. 욕심을 따라 사는 사람은 항상 부족한 것 투성이고, 은혜를 따라 사는 사람은 늘 감사합니다. 감사를 모르는 사람은 늘 가난합니다.
주님에 대한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전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면서 살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고백을 간직한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은 소원이 있는 사람들입니다.."는 글을 읽으면서

"그렇다! 감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은 사람들의 신앙고백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03년 추수감사절의 설교를 고후9:6-11 말씀을 배경으로 "감사하는 자의 축복"라는 제목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오늘은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11월 셋째 주 드리는 '추수감사절'입니다.
추수감사절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축제의 절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을에 추수를 끝내고 곡식을 거두어서 창고에 쌓아둔 다음에 하나님께서 이 귀한 곡식을 수확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심에 감사를 드리며 수장절 즉 지금의 추수감사절을 드렸습니다. 이 기간이 무려 7일 동안이나 되었습니다.

현대의 추수감사절은 미국에서 시작되었는데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위해 메이플라워호라는 배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여 미국 동부의 플리머스에  도착하였습니다. 그곳에서  한 해 겨울을 지내게  되었는데 한 해를 지낸 다음에 농사를 지어 첫 추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고맙게 느껴져서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린 것이 바로 추수감사절의 시작인 것입니다.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매사에 모든 일에 원망하고 불평하고 짜증내고 신경질을 내면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있어도 감사 없어도 감사, 되도 감사 안 되도 감사, 아파도 감사 건강해도 감사, 주셔도 감사 안 주셔도 매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어떤 사람을 사귀겠습니까? 아마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삽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복된 삶을 삽니다.

1. 행복한 우리집
       
행복한 우리집 11월호에 아주 좋은 내용의 감사가 있어 소개합니다.
5년간 암 투병을 하다가 하늘나라로 간 문학가 코렐리어스 라이언(Cornellius Ryan)의 아내가 생전의 남편의 모습을 기록한 글을 소개합니다.

"남편은 아침마다 일어나면 똑같이 기도를 소리내어 반복하였습니다. ' 하나님이 또 하루 좋은 날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라는 단순한 기도이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남편에게 암이 걸려서 머지 않아 죽을 사람이 하루 하루가 무엇이 그토록 좋은 날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남면은 새날을 맞이하는 기쁨을 다섯 가지로 요약해 말했습니다. 첫째: 새로운 하루가 좋은 이유는 사랑하는 아내 당신을 볼 수 있기 때문이고, 둘째: 사랑하는 가족들을 다시 볼 수 있기 때문이며, 셋째: 더 아파서 자리에 눕기 전에 나의 마지막 작품인 「가장 길었던 날」을 탈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고, 넷째: 병과 싸울 수 있는 의지의 힘을 주시기 때문이며, 다섯째: 주님께서 항상 내 앞에 가까이 계신 것을 알기 때문이요."
이렇듯 남편 라이언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한 감사가 성품화된 크리스찬 문학가이었습니다.

또 한 사람, 감사가 성품화, 체질화, 생활화 된 사람을 소개합니다.
영국의 해군 병사가 세계 제 2차 대전이 끝나자 자기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마을은 모두 폐허가 되었습니다. 집도 없어지고, 가족과 마을 사람들이 굶고 있었습니다. 그는 비참한 상황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분노와 증오의 감정이 끓어올랐습니다.
감정을 억제 못하고 살을 비관하면서 불평 불만을 일삼다가 전신마비가 왔습니다. 병원에 입원을 하고 진찰을 받은 후 의사의 처방이 내려졌습니다. "당신은 우선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불평 불만 비관한 것을 하나님께 회개하고 하루 3번씩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십시오."

그는 못마땅했지만 의사의 처방이어서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온 몸이 마비된 상태에서 하루 3번 감사기도는 그에게 중노동이었습니다. 몸보다 마음이 잘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했습니다. 얼마가 지난 후 그의 마음에 평안이 왔습니다. 불평했던 죄를 회개하고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가 나왔습니다. 기쁨이 넘쳤습니다.

어느 날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빵 한 개를 사 가지고 와 아버지에게 내밀었습니다. "아빠! 빵 잡수세요!" 아버지는 기뻐하면서 빵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 순간 그의 손이 퍼졌습니다. 극도의 전신 마비 증세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완치되었습니다. 그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더욱 뜨거운 감사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이는 감사를 성품화, 체질화, 생활화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네 운명이 어떻게 되든지 감사를 계속하라."는 말씀입니다.(코리바르,Conybare)
"우는 일이 생겨도 하나님께 감사하라"(스피드 good-speed)
"무슨 일에든 감사하는 습관을 만들라"(윌리암스, Williams)
감사의 성품화, 습관화, 체질화, 생활화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삶으로서 빛을 발하는 삶입니다. 
삶의 상황이 아무리 힘들어도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때 삶은 날로 윤택해집니다.

2. 감사하지 않는 이유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일까요?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 공통적인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우연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어날 일이 당연히 일어난 것이고 좋은 일이면 재수가 좋아서 된 것이고 나쁜 일이면 재수가 나빠서 된 일로 여깁니다.
둘째는 모든 일을 자기 힘으로 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었고 내가 힘써서 일이 이루어진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감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셋째는 남과 비교해서 자기 처지가 그렇게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올해는 태풍 매미와 냉해로 인하여 농촌의 수확량이 반 이상이 줄었습니다. 거기다가 장기적인 경제불황으로 인하여 전보다 더 먹고살기가 어렵다 보니까? 더욱 감사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에 두 가지 실례에서도 살펴볼 수 있었듯이 기쁠 때든 슬플 때든 어떤 때이든 내가 주님께 감사하며 살겠다고 신앙의 고백을 가진 자들은 이럴 때에라도 능히 하나님께 귀하고 풍성한 감사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원리를 알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8절에 "하나님께서 능히 우리에게 모든 은혜를 넘치게 하사 우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하심이라."하셨듯이 먼저 위로 하나님께 착한 행실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감사합니다. 아울러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내 안에 11절에 있는 말씀처럼 "참된 부요와 안식이 넘쳐나며 하나님께 감사함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할렐루야!

이 같은 영적 원리를 뒤늦게나마 깨달은 하박국 선지자는 하박국 3장 17절-18절에서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했습니다.
조건 없는 감사입니다. 감사할 조건이 없어도 오직 구원의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한 가지 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은 어떤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불치의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집사님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하나님의 능력을 믿사오니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로 살려주시옵소서. 아들을 고쳐 주시면 재산의 반을 감사헌금으로 드리겠습니다"고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아들은 죽었고 온 성도들의 슬픔 속에서 장례를 치렀습니다. 몇 주일이 지난 후 그 집사님은 상당히 큰 액수의 감사헌금을 성전에 봉헌하였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불러서 감사헌금을 하게 된 이유를 물으니 "목사님, 하나님께서 제 아들을 살리시어 여기보다도 더 좋은 나라로 데려가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제가 약속대로 감사예물을 드렸습니다" 이게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 삶 깊은 곳에 늘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한나선교원

저는 이번 주 수요일에 한나선교원 어린이들에게 말씀을 증거하면서 이번 주 주일은 추수감사절이니까? 다들 1000원 짜리 한 장씩 감사헌금 봉투에 넣어서 여러분이 다니는 교회에다 드려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왜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일까요? 만일 교회와 물질에 대하여 예민한 사람들은 "무슨 놈의 목사가 선교원 아이들에게 까지 돈타령이야! ..../ 야! 그 선교원 돈 돈 하는 것 보니까? 앞날이 훤하다야!"하면서 다른 선교원으로 보낼 위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늘찬양교회 어린이들에게는 어려서부터 십일조를 하도록 가르치며, 또 선교원 아이들에게는 추수감사절 헌금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일까요?

그것은 어려서부터 또는 어느 때든지 범사에 감사하기를 기뻐하며 즐겨하는 자는
첫째, 범사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통하여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감사와 찬송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이 됩니다. 시편 50편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의 제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반대로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을 하나님은 가장 싫어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생활할 때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불 뱀에 물려 죽기도 하고 질병에 걸려 죽기도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 예수님께서 열 명의 문둥병자를 고쳐주셨을 때 한 명만 돌아와 감사하는 것을 보고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고 했습니다. 받은 은혜에 대해 감사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 한탄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감사하는 자에게 크신 사랑을 베푸시고 더 큰 축복을 주십니다. 요셉이 형들로부터 버림을 받아 노예로 팔리고 감옥에 갇혀 고생을 당하였지만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형들이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요셉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할 때 요셉은 형들에게 말하기를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50:19-21)고 했습니다. 원망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은 요셉을 하나님이 크게 축복하신 것입니다.

독일에서 한창 기근이 심할 때 한 부자가 매일 빵을 구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빵을 받아든 사람들 중에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 그저 큰 것만 골라잡을려고 애를 쓰더랍니다. 그런데 크레첸이라는 소녀가 있었는데 제일 나중에 남아서 사람들이 가져가고 남은 것, 제일 작은 빵을 가져가면서 "할아버지 감사합니다"하고 진심으로 꼭 인사하고 가더랍니다. 할아버지는 그 소녀의 "감사합니다."라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제일 작은 빵 다섯 개를 만들어 그 속에 은전 한 개씩을 넣어서 그 소녀가 가져가게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은전 다섯 개를 도로 가져와서 할아버지에게 되돌려 주더랍니다. 할아버지는 다시 그 소녀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할 줄 아는 자에게 더 큰 축복을 주신단다. 너한테 주려고 일부러 제일 작은 빵에다 은전을 넣어 만든 거란다"하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자에게 더 큰 축복을 주십니다.

셋째 행복한 인생을 살게 해줍니다.
인간의 기쁨과 행복, 그리고 만족은 감사에서 나옵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어떤 나쁜
환경 속에서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은 어떤 좋은 환경 속에서도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행복하려면 범사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직장에서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될 때 직장생활이 행복합니다. 교회에서도 서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가슴에 느껴지는 바가 다를 것입니다.
가정 안에서도 서로 칭찬하며 적은 일에도 감사하며 인사할 때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서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자녀들도 부모님께 감사하면 하루 하루 사는 것이 그렇게 기쁘고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당장 집에 가서 "여보 고마워요"해 보십시오. 분위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스펄죤 목사님은 "촛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햇빛도 필요없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빛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범사에 감사함으로 행복한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넷째 영육간에 건강한 삶을 살게 해줍니다.
왜 병이 생깁니까? 원망하고 불평하면 영혼이 병들고 심령이 병듭니다. 마음이 항상 무겁고 짜쯩내는 사람에게 병이 찾아옵니다. 감사하는 사람, 기뻐하며 찬송하는 사람의 얼굴에는 광채가 나며 밝은 표정이 됩니다.

우리 몸 속에 암세포가 매일 생기는데 근심, 걱정, 불평이 있을 때 이 암세포가 자라서 암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리게 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쁨으로 살고 열심히 찬송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성도들은 암에 걸리 확률이 그만큼 낮습니다.

"박사님 아멘 약 주세요"란 책을 쓴 황수관 박사에 의하면 우리 몸에는 내장인 심장, 위, 장, 신장, 및 방광을 지배하는 자율신경이 있습니다. 자율신경은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으로 구분되는데 교감신경은 주로 불안,공포,초조,시기,질투,놀람,분노,욕심,미워하는 마음이 있을 때 강력히 작용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감신경이 작용하면 그 여파로 심장이 급하게 뛰고 소화불량이 되는 등 내장에 병을 초래합니다. 죄를 지었을 때 마음이 불안하고 가슴이 뛰고 손이 떨리는 것도 바로 교감 신경 작용의 결과입니다.

이에 반해 부교감 신경을 활성화시키면 건강해집니다. 기쁜 마음, 아름다운 마음, 사랑하는 마음, 봉사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 고마워하는 마음, 겸손한 마음, 남을 귀히 여기는 마음이 부교감 신경을 자극하는 촉매제들입니다. 이 부교감 신경이 자극되어야 육체가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은 부교감 신경을 대단히 자극해서 건강한 삶을 살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아우슈비츠 같이 지옥 같은 포로수용소에서도 오래 살아 남을 수 있었던 사람은 원망과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는 사람들 이였다고 합니다.
영적인 건강, 정신적인 건강, 마음의 건강, 육체의 건강을 원하시면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본래 감사(Thanks)라는 말은 생각( Think)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깊이 생각하니 모두가 은혜요 감사뿐입니다. 그래서 감사의 원 뜻은 "은혜를 깊이 생각하고 염두에 두는 것"(mind fullness of benefist)입니다.  그 다음 감사의 마음은 입술로 고백(Confession Prising) 되어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행위(Pleasing)로 감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도 바울 사도와 같은 수준 높은 감사의 삶을 본받읍시다. 바울은 주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하자고 했습니다. 즉 예수 때문에 성도는 기뻐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는 특권자라고 했습니다. 죄인 괴수인 나를 불러 구원해주시고 복음의 증인으로 나를 사용해 주시는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감옥 안에서도 복음 때문에 당하는 고난을 영광으로 여기고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쓰임 받음의 기쁨! 사명적 감사라고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한 해였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박국처럼 바울처럼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고 감사합시다.
그리고 배우자를 인하여 감사하고 부모님으로 인해 감사하고 자녀를 인해 감사합시다.
'감사의 성품화, 습관화, 생활화, 체질화' 될 때에 우리는 2003년 교회표어처럼 「별같이 빛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제 감사의 넘친 삶을 통해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이룩해 가시는 늘찬양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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