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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 포도주를 맛 본 마태 (눅 5:2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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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포도주를 맛 본 마태 (눅 5:27~39)


  서언

  지난 해 봄쯤이었습니다. 북한 어린이를 돕기 위해 모금해 놓은 돈을 한민족 복지 재단에 전달하겠다고 청와대로 들어오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재단의 운영위원회 이사장이신 할아버지 목사님 그리고 당시 북한 어린이 돕기의 파트너였던 동아일보의 사장님을 모시고 청와대를 갔습니다. 영부인을 가운데 모시고 몇 몇 사람들이 둘러앉았는데 저로서는 처음 청와대 식탁에 앉아 보았으니 무슨 음식이 나오나? 순서가 어떻게 진행되나? 긴장되고 궁금했습니다. 제가 청와대를 다녀온 후 제 아내가 제게 물었던 첫 질문은 "무얼 먹었느냐?" 였습니다.

  여러분이 참석해 본 파티 중에 제일 굉장한 파티가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 파티를 생각하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입니까? 남자와 여자가 다를 것입니다. 남자는 누가 참석했으며, 누구하고 악수를 했고, 무슨 얘기를 했나가 중요한 것 같아 보입니다. 여성들은 그것도 관심이 있지만 그 사람이 무슨 옷을 입었나, 그 때의 메뉴가 무엇이었나, 어떤 음식이 어떤 그릇에 담겨져 나왔나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세리였던 레위(마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다음에 자기 선생님을 위해 파티를 열었습니다. 당신은 이 파티에 대해 무엇이 궁금합니까? 누가는 이 파티에 대해 무엇을 기록하고 있습니까?
  몇 명이나 참석했나? 누가는 "많은 세리와 그 밖의 사람들이 큰 무리를 이루었다고"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큰 규모의 파티였던 것 같은데 누가는 그 규모를 우리에게 전하는데 별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어떤 명사가 함께 있었나? 예수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지식인들, 고위직의 관료들, 부자들, 귀부인들도 있었는데 그들 중에 누가 참석했는지 한 마디도 없습니다.

  어디에서 파티가 벌어졌나? 마태가 "자기 집"에서 파티를 했다고만 언급합니다. 방의 규모나 장식에 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사용했던 그릇이 본 차이나인지, 이집트 수입품인지 언급하지 않습니다. 음식 맛이 어떠했는지 한 마디도 없습니다. 악사들? 정원의 잔디? 식탁보 색깔? 한 마디도 없습니다.

  옷을 제일 잘 입었던 사람이 누구였나? 제일 못 입은 사람은? 이런 것에 대해서도 무관심합니다. 이 기록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태가 어떤 사람이라고 설명하는지 생각해 보십시다.

  1. 마태는 새 포도주의 맛을 아는 자였습니다.

  39절을 보면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나서 새 포도주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묵은 포도주를 마신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한다.(표준새번역)고 누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묵은 것이 좋다고 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입니다. 그들의 포도주는 몇 년이나 되었다고 합니까? 모세 때부터 계산해서 1,500년 되었다고 말하기를 그들은 좋아 했습니다. 그들이 어릴 때부터 배워온 성경 해석과 이미 가지고 있던 자기 생각이 바로 묵은 포도주입니다. 자기에게 익숙한 생활 태도와 사고 방식이 바로 묵은 포도주입니다.

  새 포도주는 무엇입니까? 예수님 자신이요 그 분이 가지고 온 복음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주신 그 분의 사랑과 말씀이 새 포도주입니다.
  마태는 자신이 그렇게 열심히 모았던 돈이 주는 기쁨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전해 주신 복음의 맛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마태는 자신이 그렇게도 원했던 권력이 주는 기쁨보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기쁨이 더 큰 것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무엇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까? 그는 그렇게 돈이 잘 벌리는 세리직, 로마의 권력을 등에 업고 사람들을 호령할 수 있는 그 자리를 버린 것을 보면 그의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이었나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기쁨을 맛보았기 때문에 제자의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이 기쁨을 맛보았습니까? 맛만 본 것이 아니라 날마다 풍성하게 누리고 있습니까? 만약 우리가 이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면 제자의 길을 힘있게 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성경은 제자들에게 이런 기쁨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엡1:14 이 성령은 우리의 상속의 담보이어서 (표준새번역)
          이는 (성령은)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개역)

  담보, 보증은 계약금이라고도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물건을 사려고 하는 사람에게 계약금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잘 압니다.
  어떤 사람이 마이크를 사서 자기 집의 지하에 있는 방에 노래방을 만들려고 합니다. 가게에 가서 마이크를 여러 개 테스트해 보고 마침내 마음에 드는 것을 택했습니다. 계약금을 걸어 놓고 몇 일 후에 잔금을 지불하고 물건을 가져오기로 했습니다. 아직 그 물건을 집으로 가져오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가게 근처를 지나가다가 친구에게 얘기합니다. "야, 저 마이크는 내꺼야. 기가 맥히는 물건이다" 앞으로 그 마이크를 가지고 와서 노래방을 만들 생각을 하며 그렇게 흥분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들에게 약속된 "이 땅에서 누리는 기쁨"입니다. 마태는 이 기쁨을, 이 포도주 맛을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좋다는 돈 잘 버는 직업을 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마태는 낡은 가죽부대를 찢은 자였습니다.

  마태가 새 포도주의 맛을 본 후에 예수님의 부름을 따라 세리직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소중하게 간직해 왔던 낡은 가죽 부대를 찢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마태 당시의 세리직이 비록 죄인이요 도적이라는 비난을 받던 직업이지만 예수를 만났기 때문에 그 직업을 박차고 나와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을 만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수행하는 제자로 부름을 받지 않고 집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므로 술장사나 색시 장사는 무조건 버려야 할 직업이지만 우리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 주님의 제자로 살도록 부름을 받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직업을 바꾸는 것이 아니고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회개"란 말은 "방향을 바꾼다"는 말이라는 점을 자주 말씀 드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새 포도주를 담기 위해서 우리의 낡은 생각의 가죽 부대를 찢어 버리고 새 가죽 부대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는 돈을 목표하고 살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생각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낡은 생각의 가죽 부대를 찢어 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찢어야 할 낡은 가죽 부대가 없습니까?
  개인적으로 버려야 할 것들을 잘 생각해 봅시다. 아직도 다른 사람의 고통 위에 자기 성공을 쌓아 가려는 자가 있습니까? 이런 유형의 삶은 새 포도주를 담지 못할 낡은 부대의 삶입니다. 찢어 버려야 합니다.

  가정적으로 버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맨 날 서로 탓하며 싸우는 것을 그치지 못하고 오늘도 교회 오기 전에 다투고 오신 분은 없습니까?

  교회적으로 버려야 할 것들은 무엇입니까?
  검소함 : 버려지는 쓰레기들을 보십시오.
  게으름 : 교사가 없다? 식탁 봉사자가 없다? 안내자가 없다? 게으름 때문이 아니고 분주함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강팍함 : 고집입니다. 본문의 바리새인들을 보십시오. 금식에 대해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자기 생각에 매여 있습니다. 금식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한 가지 방편입니다. 나는 금식하는데 왜 너는 하지 않느냐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왜 죄인들과 식사하느냐고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있는 사람들을 섬김의 대상으로 보지 못하고 비난의 대상으로, 상종하지 말아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낡은 사고 방식을 찢어버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으로 인해 기뻐하듯이 기뻐할 때입니다. 그러나 이 소위 성경 박사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르고 옛 생각에 묶여 있는 것입니다.

  금식과 식사 뿐이겠습니까? 예배를 예로 들어봅시다. 주께서는 예배의 길이와 내용에 관해서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고 원리만 말씀하십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내게 익숙한 예배 "형식"이나 "문화"를 고집하면 안 됩니다. 형식은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에게 각기 다르게 만들어질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원리입니다.

  3. 마태는 이 포도주 맛을 혼자 누리지 않았습니다.

  마태는 혼자 갖기에는 너무 아깝고 벅찬 기쁨을 발견했습니다. 이 기쁨을 가지면서 세상의 좋다는 것들이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를 위해 잔치를 열었습니다.
  마태는 자신의 스승이 무엇을 기뻐하는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자기와 같은 인간들을 만나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을 위해 연 잔치에 세리들을 초대했습니다.

  언젠가 금식할 때도 온다는 것을 마태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배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금식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고통스러운 환경을 넉넉하게 이겨내게 한 힘이 무엇일까요? 금식이 그를 세상을 이기는 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금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기쁨을 회복하는 것이 그의 삶의 원동력이었습니다. 도저히 혼자 누릴 수 없는 이 기쁨, 누군가와 나누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 기쁨 때문에 그가 제자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쁨을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기쁨이 필요한 세리와 식탁에 앉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금식이 중요한 사람은 기쁨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아는 전통과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따라 죄인과의 식사를 비난하게 됩니다. 그 기쁨이 망가져도 상관하지 않고 자기에게 익숙한 낡은 형식과 전통을 고집하게 됩니다.

  당신은 예수께서 주신 이 기쁨을 나누기 위해 잔치를 열어본 적이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금년 생일 잔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을 모르는 사람들을 초청하는 자리가 되도록 하면 어떻겠습니까? 10월 초순에 우리 교회에서 이웃 초청 잔치가 있을 것입니다. 미리 기도하며 준비하십시다.

  결언

  마태는 우리의 모범으로 보여주시는 분입니다.
  일주일에 한번 설교 시간에 잠깐 만나고 가면 되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가 새 포도주 맛을 본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기쁨을 날마다 누리는 제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힘으로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있도록 우리의 낡은 가죽 부대는 찢어 버립시다.
  특히 낡은 생각을 찢어 버립시다.
  그리고 이 기쁨을 다른 사람과 나누며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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