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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처럼 풍랑을 다스리라 (마 8: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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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처럼 풍랑을 다스리라
마태복음 8:18-27


문명의 발달과 함께 문명의 이기가 우리 모두에게 편안하고 안전한 생활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이 문명의 이기는 우리에게 더 많은 문제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컴퓨터는 우리 생활의 필수적인 이기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컴퓨터 발명과 함께 새로운 삶의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이버 세계가 우리에게 새로운 문명의 세계를 만들고 있지만 아울러 우리 인간들에게 예상 못한 사건과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급변하는 시대현상은 내일을 예측하기 어렵게 되었고 복잡해진 사회생활 자체가 우리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어 우리를 짜증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일정한 기간과 시간 안에 이루어야 할 많은 일들과 끝날 주 모르는 경쟁 속에 찾아오는 스트레스는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필요 없는 오해와 갈등 속에서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비교와 경쟁 속에서 나보다 못한 사람이 더 잘 살고 더 나은 대우와 인정을 받는 데서 불만스러움을 가지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악한 사람이 잘되고 선한 사람이 잘못되는 현상을 볼 때에 현실이 증오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인간 실존에서 찾아오는 불안과 위기감도 있습니다. 양심에 꺼리는 일들을 행함으로 오는 불안이 있고, 이유 없는 허무감과 이유를 알 수 없이 우리를 짓누르는 불안이 있기도 합니다. 어느새 내 나이가 이렇게 되었을까? 지금까지 내가 해 놓은 것이 무엇인가? 하는 위기감과 초조함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각종 질병에 대한 불안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때로는 복잡하게 살 것이 없다고 단정하고 모든 것을 잊고 적당히 살아보려고 하고 알콜과 유흥에 취해보지만 더 큰 외로움과 고독이 찾아옴을 확인할 뿐입니다.

교인이면서 주일 낮 교회가면 하나님께 죄송함이 더 많아 유원지로 낚시터로 향하고 여행도 다녀보지만 죄책감이 우리를 붙들고 있음을 봅니다.
우리로 만족할 수 없도록 흔들어 대는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입니까? 우리의 삶에서 즐거움과 기쁨을 빼앗아 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흔들어 대는 삶속의 다양한 풍랑들은 다스릴 수 없는 것입니까? 다스릴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오늘의 말씀 중에서 풍랑을 다스리시고 바다를 잔잔하게 하신 예수님을 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향한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 예수님처럼 풍랑을 다스리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알고 계신 것과 그 분의 믿음,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그분의 삶을 가짐으로 풍랑을 다스리는 사람이 됩니다. 그럼 예수님은 어떻게 풍랑을 다스렸습니까?

예수님은 인간이 머리 둘 곳이 어디임을 아시는 데서 풍랑을 다스리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서기관이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할 때에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들 세계에서는 결코 어느 누구에게도 머리를 맡기고 편안하게 쉬실만하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없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이 세상 가운데서는 어느 무엇에도 머리를 맡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우리가 머리 둘 곳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가장 믿고 신뢰한다고 하는 그 사람도 우리의 머리를 둘만한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내가 가진 물질과 재산이라는 것 머리를 둘만합니까?

삼풍백화점 주인이신 장로님은 약 3000억 가까운 재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화점이 무너진 후 그 재산은 하루아침에 모두 사라지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 장로님의 아들은 재산이라는 것 물질이라는 것이 머리 둘만한 것이 못됨을 깨닫고 선교사가 되어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세상의 권력이라는 것 그곳에 우리의 머리를 맡길 만합니까? 우리 나라의 역대 대통령을 보시고 역대 정치가들을 모십시오. 그 권력과 함께 망신당하고 무너지고 망하는 것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인간은 세상의 어느 것에도 머리 둘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머리를 둘 곳은 아무 것도 없고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우리는 우리자신에게도 머리를 둘 만큼 우리자신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이 인간자신을 신뢰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만족할 수 없고 불안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은 인간일 뿐입니다. 나 자신도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생각할 수 있다는 것, 강하다는 것,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것, 이 모두가 인간의 생각이고 인간의 강함이고 인간의 능력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실재의 모습과 자신을 바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머리를 둘 만한 것이 아님에도, 자신이 완벽하고 믿을 만한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미워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고, 아니라고 부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다른 것임을 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이 완벽해서가 아니고 오히려 지신에게 미움받을 모습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비판 잘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옳기 때문이 아니고 오히려 자신에게 부정적이고 비판받아야 할 모습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나온 과거의 시간을 부정하는 이유는 자신의 과거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현실을 부정하는 이유는 현실을 용감하게 살아갈 용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자신에게 머리를 둘만큼 자기가 완벽하고 옳다는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버리는 데서, 하나님께 머리를 두는 겸손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인간은 인간 자신 뿐 아니라 이세상의 모든 것에 머리 둘 곳이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인간이 머리 둘 곳은 하나님뿐입니다. 우리가 머리 둘 곳이 없는 인간임을 깨달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가 머리를 둘 수 있는 분임을 깨닫고 확신하는 데서 풍랑을 다스리는 삶을 찾게 됩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이 세상에는 머리 둘 곳이 많다고 믿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돌아서게 합니다. 그러나 이 거짓말과 속임수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인자는 머리둘 곳이 없다"고 하신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 이 속임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할 수 있는 깨달음을 가져야 합니다. 머리 둘 곳이 없는 사람이라는 깨달음과 시인함에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하나님과 함께 풍랑을 다스릴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풍랑 중에도 깊이 잠드실 수 있음으로 풍랑을 다스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배 밑에 내려가 깊이 잠드셨습니다. 예수님은 시끄러운 밖을 향해 자신을 단절시키시고 평화스럽게 잠이 드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위에 계셨기에 풍랑 중에도 잠을 주무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풍랑 중에 두려워하며 소란을 피우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풍랑이나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풍랑은 그 풍랑의 소란함에 대해서 눈을 감을 수 있을 때 풍랑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풍랑이 일어나 시끄러운 밖을 향해 눈을 감고 잠을 잘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향한 긴장감을 풀고 평화스럽게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전기 불을 끄듯 밖의 시끄러운 세계에 대하여 눈을 감을 수 있어야 합니다. 밖으로부터 들려오는 불필요한 것, 무가치하고 공해가 되는 어둠의 것들로부터 눈을 감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지는데서 평안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평화스럽게 깊은 잠을 주무실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 때문입니다. 모든 염려와 근심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밖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꺼버리는 스위치와 같습니다. 누가 모함하고 욕해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해 주시니까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겠지.....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은 아시겠지..." , "하나님께서는 언젠가는 진실과 거짓이 드러나게 하시겠지...."라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판단을 믿을 수 있을 때에, 불쾌감이나 섭섭한 감정의 풍랑이 다스려 지는 것입니다.

히브리저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자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고 하시면서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으로 나라를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히11:34)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일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하나님께서 기르시나니 너희가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6:26)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두려움의 풍랑에 휩싸여 있던 제자들을 향하여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고 꾸짖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는 데서 염려와 근심의 스위치를 끌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지방신문에 이상한 판매 광고가 게재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부인의 재산만 축내고 사냥만 다니는 남편을 증오하고 미워하는 여인이 낸 광고였습니다. "남편을 팔려고 합니다. 내 남편은 10월부터 12월까지 집을 비우며 가족과 모든 것을 잊고 사는 사람입니다. 남편을 사시는 분에게는 개도 끼워 팝니다. 옷 두벌과 사냥도구 일체도 함께입니다" 이 광고가 나가자마자 60여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혼자 사는 외로운 부인들에게서 온 전화가 많았는데 그 중의 어떤 내용을 보면, "10월에서 12월까지 비워도 1월에서 9월까지는 집에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남편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지는 남편을 잃고 난 뒤에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으로 만족하고 감사하세요" 였고, 또는 "아이들을 기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니 남편을 팔지 마세요. 팔려면 개나 파세요" 라는 충고의 전화도 있었습니다. 결국 이 여인은 "사냥개만 팝니다"고 광고를 고쳐서 다시 냈다고 합니다.
남편을 팔려고 하기까지 남편을 미워하고 증오하던 시끄러운 감정의 풍랑에 시달렸던 이 부인은, 주위의 격려의 전화에 따라 남편의 귀중함을 믿을 수 있을 때에 그 시끄러운 감정의 소리에 눈을 감을 수 있고 부부의 관계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때로 우리는 끓는 주전자와 같이 격분하고, 여유를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이런 모습에서 이러한 감정의 풍랑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배 밑으로 내려가듯, 우리의 내면을 가라앉히고 영적 공해가 되는 시끄러운 조건에 눈을 감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평화스럽게 주무셨던 예수님처럼 잠들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모두는 하나님을 우리를 사랑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확신하고 믿기에 잠들 수 있는 그런 믿음을 가짐으로 풍랑을 다스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풍랑을 꾸짖어 잔잔케 하실 수 있는 능력으로 풍랑을 다스리셨습니다.
예수님은 거센 풍랑 중에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심으로 풍랑을 다스렸습니다. 예수님은 풍랑을 다스리는 능력과 자원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자원과 능력은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이 하나인 사랑 안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저에게는 두 딸이 있습니다. 이 두 딸이 어렸을 때에 어려운 해외의 삶을 잘 감당해 냈습니다. 다른 환경, 다른 인종, 다른 언어 속에서 두 딸들은 그곳 생활을 잘 적응하고 극복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부모와의 사랑의 관계 안에서였습니다. 지금은 두 딸이 장성하면서 새로운 갈등과 어려움을 맞이하지만 저는 부모와의 사랑의 관계 안에서 극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외로움과 쓸쓸함, 불안과 두려움, 무의미함과 허무감등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자원과 능력으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이 능력과 자원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관계는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아버지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나의 것으로 받아드리는데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은 육군장교가 그의 가족과 함께 외국으로 파병되게 되었습니다. 많은 병력의 이동이라 큰배를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항해를 시작한지 3일이 지난날 격렬한 푹풍을 만났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가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으나 유독 그 장교만은 아무 일도 없는 듯 태연했습니다. 이러한 남편을 보고 아내는 "당신은 두렵지 않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죽을지도 모르잖아요. 나는 정말 무서워 죽겠어요" 라고 했습니다. 아내의 말에 육군 장교는 아무 대꾸도 없이 선실을 나가더니 잠시 후 대검을 가지고 와서 단호한 표정으로 칼을 빼어 아내의 가슴에 들이댔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전혀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왜 그러느냐는 듯이 남편을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아내에게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이 칼이 당신을 죽일지도 모르는데 두렵지 않소?" "아니오. 나를 사랑하는 당신의 손에 있는 칼이 무서울 리가 어디 있어요" 이 아내의 대답에 남편은 빙그레 미소지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그렇다오. 나를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손안에 이 사나운 풍랑과 비바람이 있으니 무섭지 않다오"

하나님과 사랑의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인생의 삶의 풍랑을 다스리는 자원과 능력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요일4:18)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풍랑을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이 사랑 안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어떤 실수를 했을지라도 부끄럽고 험악한 일을 당했을지라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뿐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제물로 삼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 사랑 안에서 변함없이 가치 있고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그 사랑 안에 있는 존귀한 자임을 깨닫는데서 우리는 풍랑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모든 풍랑을 잔잔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자원을 간직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이 자원으로 풍랑을 꾸짖어 잔잔하게 하시는 승리자가 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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