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예수는 우리 모두의 구원자] 막 6:53-56

  • 잡초 잡초
  • 511
  • 0

첨부 1



<예수는 우리 모두의 구원자> 막6:53-56
새문안교회 2003.11.23 주일예배

세례 요한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잠시 조용히 기도하실 시간을 갖기 위하여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 북동편의 어느 빈들로 가셨고, 거기서 사방으로부터 몰려온 사람들에게 먹을 것이 떨어지자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으며, 그 때문에 그를 붙잡아 억지로 임금 삼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자 다시 맞은편 갈릴리 호수 북서쪽으로 건너가셨습니다. 이 때 예수님에 앞서 먼저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던 제자들이 광풍노도를 만나 고생하다가 새벽녘에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는 유령이라 소리지르기도 했고 유령이 아니라 예수님이신 줄 알고는 베드로가 자기도 물 위를 걸어보겠다고 했던 해프닝이 있기도 했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바람과 파도는 잠잠해졌고 그래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무사히 호수를 건너 육지에 닿았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첫 말인 “건너가”라는 말은 앞섰던 이 일련의 사건들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 일행이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 도착한 곳은 게네사렛 땅이었습니다. 게네사렛 땅은 갈릴리 호수의 북서편의 가버나움과 디베랴 사이에 길이 3마일, 폭 1마일에 걸쳐 펼쳐진 평지를 가리킵니다. 그 땅은 비옥한 땅이었고,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는 인구가 밀집해 있던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도착하신 예수님을 사람들이 곧 알아보았습니다(54절). 그도 그럴 것이 예수님의 본 동네인 가버나움에서 그가 행하신 일들 때문에 그의 병 고치는 능력에 대한 소문은 그 일대에 널리 퍼져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가버나움과 인접해 있었던 게네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곧 알아본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땅에 오셨다는 사실에 그 인근 도시나 마을들은 한 바탕 떠들썩했습니다. 본문 55-56절에 따르면 사람들은 온 지방으로 뛰어다니며 도시건 마을이건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데마다 병자란 병자는 모두 데리고 나아왔던 것입니다(55-56절). 예수님께서는 거기서도 그에게 나아온 모든 병자들을 다 고치시는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비교적 짧고 특별히 전하는 사건이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 본문을 면밀히 들여다 볼 때 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본문이 드러내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권능”입니다. 이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 한 마디라도 하셨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저 누구든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기만 하면 병이 다 낫다고 전합니다(56절). 이것은 무슨 마술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절대적인 권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의 주권자이심을 드러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어떤 병도 다 고치시고 그 누구에 대해서도 구원자이심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 모두의 유일하신 참 구원자이심을 말없이 그러나 힘 있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게네사렛 땅은 아주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땅에서는 사람들이 부유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병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땅의 비옥함과 사람들의 부유함도 병자들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문제는 예수님께서 오심으로써 비로소 해결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모든 문제의 치유와 해결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달려 있다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를 그에게 가지고 나아가 그의 손에 맡기고 그의 손이 닿게 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우리가 이 본문에서 주목할 것은 병든 이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나아오는 사람들의 믿음과 사랑과 열심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이 전하는 사람들의 행동에서 예수님과 그의 치유의 능력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병자들이 예수님의 옷깃만 만져도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믿을 만큼 그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또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병자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려는 사람들의 사랑의 관심과 간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다니며 예수님께서 어디 계시다는 말을 듣는 대로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왔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일어나 걸을 수 없는 병자들은 아예 침상채로 메고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그들은 병자들이 확실하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따라서 예수님께서 지나가실 확률이 가장 높아 보이는 시장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께서 지나가실 때 병자들이 그의 옷깃이라도 만질 수 있게 해주시기를 예수님께 간청했던 것입니다.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권능뿐 아니라 그에 의해 병 고침을 받고자 하고 또 받게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믿음과 사랑과 간절한 마음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는”(56절) 그 놀라운 역사를 행하시게 한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막6:1-6이 전하는 일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을 때입니다. 안식일이 되어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시자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됨이냐?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면서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비록 능치 못할 것이 없으신 주님이시지만 그가 그의 놀라운 권능을 드러내시도록 사람들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내 형제이웃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고침 받기를 원하는 사랑의 관심과, 어떻게 해서라도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해주려는 간절한 마음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었다(56절)고 했습니다. 여기서 “성함”이란 단순히 육체적인 병의 치유뿐 아니라 구원을 의미하기도 하는 말입니다. 믿음은 신체적 치유뿐 아니라 온전한 구원을 얻는 수단입니다.

여기서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이 게네사렛 땅과는 반대편에 있는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있었던 사건(막5:1-20)을 오늘 본문의 이야기와 대조하여 상기해보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의 지방에 가셔서 행하신 일이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군대만큼이나 많은 귀신에 사로잡혀 무덤 사이에 살던 한 불쌍한 사람을 구하여주신 일입니다. 그 거라사인 속에 들어있던 귀신들은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명하시자 그 대신 마침 근처에 있던 돼지떼에게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청했고, 예수님께서 허락하시자 이천 마리 쯤 되는 그 돼지들에게로 들어갔으며, 그 돼지떼는 호수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물에 빠져 몰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알려지자 그 지방 사람들은 예수님께 몰려와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했던 것입니다. 아무도 고칠 수 없고 손 댈 수도 없었던 사람을 정신이 온전한 사람으로 되돌려주신 예수님을 알았으면 다른 모든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다 예수님께 데리고 나아왔어야 할 터인데, 사람의 치유에 대한 사랑의 관심은 없고 오직 돼지떼의 몰사와 그로 인한 물질적 손실만을 염려하는 물질주의에 사로잡혀 예수님에게 떠나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믿음과 어려운 이웃에 대한 사랑의 관심, 그리고 주님에 의한 치유에 대한 갈망과 열심이 없는 그런 곳에서는 예수님께서 귀신 들렸던 한 사람을 온전하게 하신 일 외에 다른 어떤 구원의 역사도 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야이로라 하는 회당장이 자기의 죽은 어린 딸 위에 예수님께서 손을 얹으시기만 하면 살아날 것이라 믿고, 오셔서 살려주시기를 간구했을 때에는 기꺼이 그 집에 가셔서 이미 죽었던 아이를 살려주셨습니다(마9:18, 막5:35-43). 또 그 아이를 살리시기 위하여 집으로 향하시던 중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하고 예수님의 뒤로부터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었을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믿음의 역사가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게네사렛 땅 사람들에게서도 놀랍고도 풍성하게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렇듯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만유에 대한 그의 주권과 그의 치유와 구원의 능력을 드러내줄 뿐 아니라, 이에 대한 믿음과 함께 이웃에 대한 사랑의 관심을 가지고 온 지방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는 열심과 한 사람이라도 빠짐없이 어떻게 해서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와 접촉하게 하려는 간절한 마음이 있는 곳에 주님께서 크고 놀랍게 역사하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본문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 사회는 옛 게네사렛 땅이 그랬듯이 비옥하고 부유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사치와 낭비가 넘쳐흐르는 나라도 드뭅니다. 서울의 유명 백화점에 가면 세상의 온갖 좋은 것은 다 모여 있는 것 같습니다. 외국보다 몇 배 비싸게 값을 붙여도 없어서 못 파는 것이 우리의 실정입니다. 최근에 일본에 다녀왔는데 도쿄가 세계에서 제일 물가가 비싸다는 말은 옛말임을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도쿄보다 음식값이 더 비싸고 터무니없이 물가 비싼 곳은 바로 한국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부가 넘치는 나라인데 다른 한 편 가난하고 병든 사람은 왜 그렇게 많습니까? 가끔 제 자신 검사를 받거나 또 환자들 심방하려 병원에 가보면 그 대형병원들이 얼마나 사람들로 붐비는지 모릅니다. 육신의 병자만 많은 것이 아닙니다. 국민들의 정신적인 병폐와 사회적 병리현상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일류병, 사치병, 대학병, 과외병, 성적 나쁘다고 자살하는 병, 국회병, 대통령병, 대통령측근병, 선거자금병, 편파수사병, 특검병, 거짓폭로병, “사실이면서도 일단 부인하고 보기”병, 모르쇄병, “배 째라”병, 방탄국회병, 분당(分黨)병, 철새정치인병, 공무원병, 뇌물병, 재벌병, “재산 빼돌리기”병, 투기병, 한국에만 존재하는 괴상한 노조병, “파괴형 파업”병, 불법폭력시위병, 세대차병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나라 망치는 중병인 줄 알면서도 고칠 사람이 없습니다. 개혁하겠다고 제일 크게 소리치고 뽑힌 사람들이 조금 지나고 보면 제일 뒤 구린 사람들이고 진짜 개혁의 대상임이 드러나곤 합니다. 이런 나라를 누가 어떻게 진정 치유할 수 있겠습니까? 누구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젠 눈을 씻고 봐도 믿을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때에 우리의 눈을 돌려야 할 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나라의 주인이시고 주권자이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만이 우리를 고치실 수 있고 구원하실 수 있음을 우리는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손을 댈 수도 없고 사람의 손으로는 고칠 수도 없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가 손을 대시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이 땅에 열심히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진리와 사랑이 이 땅에 충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적 양심과 사랑과 공동체 의식이 이 사회를 지배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이 땅의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우리가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어둡고 썩어져가는 이 세상을 밝히고 깨끗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신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그리스도를 따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룩처럼 이 세상에 퍼지는 것입니다. 물론 이 나라를 위하여 더욱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주님은 우리 모두를, 우리 사회를,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을 반드시 치유하시고 구원하실 것입니다. 이 믿음과 소망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려 그의 집을 향해 길을 가실 때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고하기를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했습니다. 그 말이 무슨 뜻입니까? “다 끝났습니다. 이제는 예수님도 필요 없습니다”라는 뜻입니다. 그 말을 예수님께서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눅8:50)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암울한 현실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어야 합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지금의 난국을 타개하는 일에 앞장서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이 사회, 이 나라, 이 민족은 우리의 결단과 실천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주님께서 그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고치시고 구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를 믿고 그에 의해 고침 받기를 갈망하여 그에게 나아오기를 주님께서는 원하시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고침 받고 구원 받는 이 나라 이 사회가 되게 합시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구원자이십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