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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 창 2:8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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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청년대학부설교홈 myhome.naver.com/chapelainkhj 천안외대 김홍진 목사
창세기 21:8 - 21

  마거리트 히긴스(Marguerite Higgins)라고 하는 분은 한국 전쟁 때에 종군하면서 참전 취재해서 퓰리처상을 받은 유명한 기자입니다. 그녀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말미암아 전세가 불리해져서 후퇴작전을 하고 있는, 그리고 포위당해서 아주 절망 속에 있는 미 해병 중대를 일선에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얼어붙은 콩 통조림을 따먹고 있는 한 병사에게 이렇게 물어 보았다고 합니다. "만일 내가 하나님이라면 당신은 내게 어떤 소원을 구하겠습니까?" 그는 슬픈 낯으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Give me tomorrow." 아주 유명한 얘기가 됐습니다. "내게 내일을 주십시오." Give me tomorrow. 미래가 보장되기만 한다면 이까짓 고생은 문제가 안 됩니다. 우리에게 밝은 미래만 있다면 우리가 무슨 고생을 한들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문제는 미래가 암울하고 이러다가 아주 망하는 게 아닌가, 아주 끝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 때문에 우리는 괴로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일 일을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답답해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14절에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잠언 27장 1절에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우리는 내일 일을 잘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고 답답하고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한 여인의 정처 없이 방황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내일 일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하갈이라는 여인이 어떻게 내일 내일을 하루 하루 어떻게 지내는가를 보면서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열어갈 것인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가 둘입니다. 첫째는 사라, 둘째는 하갈입니다. 이 시대에는 일부다처제가 있었던 시대입니다. 사라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둘째 부인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이란 아들을 낳았습니다. 13년 후에 첫째 부인이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러니 둘째 부인의 아들 이스마엘과 첫째 부인의 아들 이삭이 같이 놉니다. 이스마엘은 13살이고 첫째 부인 의 아들 이삭은 한 살입니다. 같이 노는데 첫째부인 사라가 보니까 이복형 이스마엘이 자기 아들 이삭을 놀리고 때리거든요. 물론 그렇게 느꼈겠지요. 이래서 두 부인 사이에 갈등이 있게 됩니다. 가운데서 남편 아브라함이 갈등합니다. 어떻게 하나? 할 수 없이 둘째 부인을 집에서 나가게 합니다.

  이 때 본문 창세기 21장 14절을 보면 "다음날 아침에 일찍, 아브라함은 먹을거리 얼마와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에게 주었습니다. 그는 먹을거리와 마실 물을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서, 그를 아이와 함께 내보냈습니다. 하갈은 길을 나서서, 브엘세바 빈 들에서 정처없이 방황하며 다녔습니다."

  정처 없이 방황하며 브엘세바 빈 들을 거닐고 있는 하갈의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내일 일을 모릅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살아야할지 어디서 정착할지 어떻게 무엇을 먹을지 도무지 앞길이 없습니다. 방황하고 있을 뿐입니다. 정처 없이 헤매고만 있습니다.

  청년 여러분, 마치 자신의 현실을 보는 것과 같지 않나요? 이런 일을 경험할 때, 앞길이 보이지 않고, 내일을 알 수 없어 정처 없이 방황하고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17절, 하나님은 우리의 현실을 아시고 들으심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방황과 정처 없이 거닐고 있는 현실을 아시고 우리의 고통스러워하는 애통함을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나의 정처 없이 방황하는 나를 아십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현실을 아시고 나의 고통 하는 신음소리를 들으시는 분입니다.

  15절에 보면 "가죽부대에 담아 온 물이 다 떨어지니, 하갈은 아이를 덤불 아래에 뉘어 놓고서 "아이가 죽어 가는 꼴을 차마 볼 수가 없구나!"하면서, 화살 한 바탕 거리만큼 떨어져서, 주저앉았습니다. 그 여인은 아이 쪽을 바라보고 앉아서, 소리를 내어 울었습니다. 이 때 17절에 하나님이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천사가 하갈을 부르며 말했습니다. "하갈아, 어찌 된 일이냐? 무서워하지 말라. 아이가 저기에 누워서 우는 저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셨다" 그럽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슬퍼서 고통하며 애통하는 음성을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17절 말씀처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일 일을 난 모르지만 주님은 아십니다. 내 삶의 고통을 아시는 하나님, 나의 문제의 원인과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시는 하나님, 그 분이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내일은 모르지만 그분을 의지하고 오늘 하루 하루를 살 뿐입니다.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합니다. 즉, 하루를 보내고 일을 끝마칠 시간이 되면 낙타는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등에 있는 짐이 내려지길 기다리며, 또 새날이 시작되면 또 다시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주인은 낙타의 사정을 잘 압니다. 낙타는 내일 어디로 갈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인은 압니다. 주인은 낙타의 힘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타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만 짐을 얹어 줍니다. 낙타는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낙타는 당신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짊어질 수 있을 만큼 당신에게 짐을 얹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를 아십니다. 그 하나님을 모시고 있기에 17절에 뭐라고 하시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마라.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느니라." 내일은 잘 모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오늘 하루 하루를 살 뿐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혈실의 답답함, 미래의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의 형편과 고통과 쓰라림과 아픔과 애통을 아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지금 암담해도 주님과 함께 거닐기에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분과 함께 거니는 길이라면 내일 일은 난 모르지만 오늘 하루를 신실하게 희망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18절, 하나님은 내 인생에 복 주시기를 원하심을 믿으십시오.

  내일을 알 수 없어 정처 없이 방황하고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내 방황과 정처 없이 거닐고 있는 현실을 아시고 결국 내 인생에 복주시기를 원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18절에 하갈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아이를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복주시겠다고 작정하시면 무슨 방법을 통해서든지 우리에게 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시고 복을 주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믿으십니까? 그 하나님 앞에 선 하갈을 향해 천사가 이렇게 말 합니다.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할렐루야!

  하나님은 하갈이 내일이 없이 정처 없이 방황하는 것을 보시고 아시고 그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축복하셨습니다. 아이를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축복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다.

  세계적인 부호 록펠러에게 위기가 닥쳤습니다. 그는 친구의 권유로 광산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사기를 다해 원금을 모다 날렸습니다. 광부들은 폭도로 변해 밀린 임금을 요구했습니다. 빚 독촉에 시달리던 록펠러는 너무 괴로워 '자살'을 떠올렸습니다. 기업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철저한 십일조 생활을 해온 록펠러는 황량한 폐광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없음을 믿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왔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 주십시오." 록펠러는 통곡했습니다. 그때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위로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때가 되면 열매를 거두리라, 더 깊이 파라." 록펠러는 이 말씀을 믿고 폐광을 더 깊이 파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록펠러가 제정신이 아니라며 수군거렸습니다. 그 때 갑자기 황금대신 '검은 물'이 분수처럼 공중으로 솟구쳤습니다. 그것은 바로 석유였습니다. 자살 직전의 록펠러는 유전을 발견해 일약 거부가 됐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통해 록펠러가 대부호가 된 것은 철저한 십일조를 해서 비롯됐다고 하는 교훈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위기가 오고 정처 없이 방황하는 일 앞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세가 중요함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기약할 수 없는 때에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고 믿은 신앙이 중요합니다. 복 주시는 하나님,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복을 기대하십시오. 불확실한 미래와 암담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믿음의 모습은 복주시기를 좋아하시는 하나님에게 복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 복을 기다리며 발에 힘을 얻어 새롭게 일어서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 19절, 하나님이 길을 밝혀주심을 믿으십시오.

  내일을 알 수 없어 정처 없이 방황하고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내 인생길을 밝혀주심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방황하며 정처 없이 거닐고 있는 나의 현실을 아시고 결국 내 인생에 복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하나님이 내 인생길을 열어주시고 밝혀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9절에 보면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갈의 눈을 열어주었습니다. 샘물을 보게 하셨습니다. 이 물로 죽어가는 아이를 살리었고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정처 없이 방황하고 내일을 보지 못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아시고 그 길을 알려주십니다. 하갈은 샘물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도 볼 수도 없습니다. 눈은 있으나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그 길을 제시해주십니다.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주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정처 없이 방황하며 내일을 알지 못하고 있는 하갈에게 하나님은 눈을 열어 샘물로 이끄셨습니다.

  20절에 보면 아이의 미래를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 거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우리는 내일 일을 몰라서 방황하고 정처 없이 헤매고 다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열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그 분을 의지하고 하루 하루 그 분을 바라보며 살 뿐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사 이스마엘을 장성케 하시고 활 쏘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스위스의 알프스 산에 한 오두막집이 있다고 합니다. 이 집은 종치는 집이라고 불리었는데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집입니다. 이 깊은 골짜기에는 겨울이 찾아오면 눈이 바람에 날려 앞을 볼 수가 없고, 사방이 흰눈으로 덮여버리므로 등산하는 사람들이 길을 잃기 쉬웠습니다. 바람 부는 날이면 누구든지 이 집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이 곧 종을 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길을 잃은 사람들이 종소리를 듣고 구조를 받게 된다고 합니다.

  마치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길을 잃어 방황하고 있을 때 구조하는 종소리 같은 분이십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있을 때 우리가 조용히 그분과 함께 있으면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십니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길을 생각나게 해주십니다. 내가 보지 못한 다른 길을 일깨워주십니다. 예기치 못한 예비하심을 보여주십니다. 알지 못했던 길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안전한 구원의 신호입니다. 그분의 처소는 가장 안전합니다. 그분의 처소는 가장 평안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고 구하고 바랄 때 가장 선명한 길을 제시해주십니다. 방황하고 있는 이 때 그분과 함께 길을 열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정처 없이 길을 찾고 있는 이 때 그 분과 함께 눈을 열어 샘물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샘물은 아주 당신 가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혜의 눈을 열어주어야 볼 수 있습니다. 그 은혜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맺는 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혹시 미래가 불확실하여 방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청년 시절은 미래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 가장 혼돈되는 때입니다. 직장과 결혼과 인생설계의 과정에 우리는 정처 없이 방황할 때가 있습니다. 내일 일이 보이지 않고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앞길이 보이지 않으면 우리는 방황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이런 가사를 주었습니다. "내일 일은 날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세상 사람들이 이런 노래를 부른다면 인생 한탄하는 노래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른 이 찬송은 내일 일은 난 모르지만 아시는 분, 하나님이 계시기에 하루 하루 그 분을 신실하게 믿고 따라가는 결단의 찬송이 됩니다.

  오늘 이 시간도 정처 없이 방황하며 브엘세바 빈 들을 거닐고 있는 청년은 없습니까? 내일 일을 모른다고 한숨만 쉬고 있지 마십시오.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살아야할지 어디서 정착할지 어떻게 무엇을 먹고 살지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방황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을 믿잖아요. 그분은 나의 미래를 아시기에 우리의 든든한 인도자입니다. 그분과 함께 다시 시작하십시오. 나를 복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 이제 눈을 열어 보게 해달라고 요청하십시오. 하나님께 미래를 열어 보여 달라고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복된 자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내일 일은 난 모르지만 이 하나님과 함께 오늘 하루 하루를 신실하게 의지하고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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