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무화과나무 아래와 같은 교회 (요 1:43-51)

  • 잡초 잡초
  • 615
  • 0

첨부 1


무화과나무 아래와 같은 교회


오늘 본문에 보면 나다나엘이라고 하는 제자가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나고 제자가 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나다나엘이란 제자의 이름은 이곳 외에는 성경의 다른 데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만, 대부분 성경학자들은 이 나다나엘이 예수님의 12 제자 중에서 바돌로메라고 하는 제자와 동일한 인물일 것으로 추정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빌립의 인도를 받아 나다나엘이 예수님께로 나오는 모습을 보시고,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안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고 칭찬을 하십니다. 여기서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말은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나다나엘의 어떤 점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칭찬을 하셨겠습니까? 제일 먼저 그의 속에는 간사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간사함이 없는 인격, 이것은 참된 이스라엘 사람, 즉 참된 하나님 백성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시편32:2에서도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는 자가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이렇게 말하고 저기서는 저렇게 말하는 사람, 또 하나님 앞에서 진실히 살기보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행동을 하는 사람,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얄팍한 잔꾀를 부리며 사는 사람, 그런 사람이 곧 간사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잔꾀를 의지해서 살기보다는 진실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 사람들이 보든지 안 보든지 하나님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간사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참 이스라엘 사람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나다나엘이 참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가졌던 또 하나의 특징은 진심으로 기도하는 사람이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은 뜨거운 지방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한낮에 커다란 무화과나무의 그늘 밑에서 쉬기도 하고, 경건한 사람들은 거기서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보고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하신 것은 예수님은 이처럼 나다나엘이 사람들이 보든 안보든 한적한 곳을 골라서 늘 기도하기에 힘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셨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신 데에는 나다나엘이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이었다고 하는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열왕기상 4장 25절에 보면 솔로몬 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더라’고 하는 기록이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솔로몬 왕 당시에 이스라엘 나라가 태평성대를 누렸다고 하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스라엘의 민족의 역사는 조용한 날이 없는 역사였습니다. 수많은 강대국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지정학적인 조건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늘 주변 열강들의 침략을 받으며 전쟁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한때 아주 태평하고 번영하는 그런 시대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솔로몬 임금이 통치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솔로몬 임금의 통치하던 시대는 마치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것과 같은 태평성대였음을 묘사하는 표현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더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솔로몬 왕 이후에 또다시 끊임없이 이방 나라들에게 침략을 당하며 약탈을 당하며 살아야 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제 메시야가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고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아무런 전쟁이나 재앙이 없는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기를 고대했습니다. 그러면서 그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들은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편안히 지냈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무화과나무 아래로 나가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러한 평화의 시대와 하나님이 친히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다나엘이 예수님께 나오기 바로 직전에도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다고 하는 말은 그는 이 땅에 메시야가 오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고대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이었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이 그처럼 하나님 나라를 향한 소망을 가지고 남들이 보든 안보든 하나님께 나가 기도하는 사람이란 사실을 아시고 그를 가리켜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칭찬해 주시며 그를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오늘 우리 성도 여러분들도 다 이 나다나엘처럼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는 주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라며, 사람들이 보든 보지 않든 기도하는 일에 힘쓰며 기도를 하되 내 육신의 것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우리 주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하는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류를 구원하실 구세주로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물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따라 오신 것입니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다나엘과 같은 참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오신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다나엘과 같은 참 이스라엘 사람을 성경에서는 그루터기라고 하며 남은 자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남은 자들이야말로 이 땅에 거룩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거룩한 씨앗들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사6:13).

  그렇습니다. 오늘도 이 땅에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이루어 가는 주체 세력은 권력을 잡은 자들도 아니고 이름과 명성을 떨치는 자들도 아닙니다. 오직 그루터기와 같은 남은 자들, 나다나엘처럼 간사함이 없으며 조용한 중에 무화과나무 아래 나아가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이 땅에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이루어 가는 주체 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 걱정이 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동안 경제가 성장하고 선진국의 문턱까지 가는가 했지만 최근에 경제가 침체되고 여러 부문에서 중국에게 추월을 당하는 입장에 이르렀고, 사회적으로는 부정과 부패와 각종 죄악들과 계층 간의 소모적인 갈등으로 얼룩져 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참으로 이런 현실들만 바라본다면 이러다가 우리 민족은 또 다시 절망과 좌절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이 사회 곳곳에 나다나엘과 같은 진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거룩한 씨앗들로 사용하셔서 이 땅에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나타내실 줄로 믿습니다. 그런 가운데 저는 우리 연희 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이 나다나엘과 같은 참 이스라엘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연희 교회가 나다나엘을 비롯한 참 이스라엘 사람들이 조용히 나아가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던 ‘무화과나무 아래’와 같은 장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연희 교회의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우리 교회 본당의 수리가 완료되어서 다시 입당하여 감사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비록 새롭게 건축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기도 생활을 하는데 보다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내부 시설을 새롭게 꾸몄습니다. 아무쪼록 새롭게 꾸며진 환경 속에서 이 예배당이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신령한 처소가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지친 영혼들이 그 그늘 아래 나가 휴식을 얻기도 하고 그 과실을 먹고 힘을 얻기도 하는 한편 참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향한 소원을 품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도 했던 무화과나무 아래와 같은 장소로 쓰여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무화과나무 아래서 기도하던 나다나엘에게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고 약속하신 것처럼 이 예배당에 나아와 하나님을 예배하며 기도하는 우리 성도들도 예배와 기도의 시간에 하늘이 열리는 것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며 체험하는 신령한 은혜가 있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