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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 수 8:18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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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여호수아 8 : 18 - 23


사람들은 힘들어서 얻은 것은 쉽게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귀하게 생각하지만 반대로 힘들이지 않고 거저 얻은 것은 귀하게 생각하지 않는 버릇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강을 건너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갈에서 할례를 행하고 가나안 땅에서 첫 유월절을 지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여리고에 가까이 왔을 때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말하기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여리고성 함락 작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힘들이지 아니하고 여리고성을 함락시켰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아이성에서 대패하고 백성들의 마음이 녹아 물같이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아이성 1차 공격에서 대단히 소극적인 공격 태도를 취합니다. 아이성을 정탐한 정탐꾼들의 말을 듣고 삼천 명쯤 올라갔다가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정탐꾼들은 여호수아에게 다 올라가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아이성 사람들은 소수이기 때문에 모든 백성을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수 7:2-4). 여기서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아이성 1차 공격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고 한 말씀 앞에 사무치는 후회를 남기고 끝이 났습니다.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여리고 성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감춘 아간을 잡아 처형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아이성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두 번째 공격에는 군사를 다 거느리고 아이로 올라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매복 작전에 들어갔습니다.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그들 앞에서 거짓으로 패하여 광야 길로 도망할 때 아이성의 모든 사람들이 여호수아의 유인 작전으로 성을 먼저 떠났습니다.
마침내 아이성은 아이와 벧엘에 이스라엘을 따라가지 아니한 자가 하나도 없었으며 성문을 열어놓고 이스라엘을 따랐습니다.
이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Ⅰ. 여호와 하나님의 임마누엘 현장 계시입니다.

본문 8장 18절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고 했습니다.
여기 단창은 지휘자가 가지고 있는 창으로 일반 창과는 달리 비교적 작고 짧은 창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높이 쳐들어도 적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복병에게는 보일 수 있는 창입니다. 마치 오늘날 군대에서 지휘관들이 지휘봉이나 권총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군대에서는 지휘관은 권총을 차고 지휘봉을 가지고 다닙니다. 반드시 지휘관만 지휘봉을 가지고 다닙니다. 참모는 아무리 계급이 높아도 가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지휘봉은 힘의 상징인 동시에 위로부터 주어진 권위의 상징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군대의 지휘관이었습니다. 모세에게는 지팡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기적을 행할 때마다 언제나 모세의 지팡이가 등장합니다.

그 지팡이가 모세에게는 일생동안 그 백성을 인도하는 결정적인 권위의 상징이었습니다.
신약에 와서 예수님도 12제자를 파송하실 때 아무 것도 가지지 말고 지팡이만 가지고 가라고 했습니다(막 6:8).
하나님은 그의 사자들에게 지팡이를 주셨습니다. 따라서 지팡이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수단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단창을 들므로 백성들은 지도자를 신뢰하게 되고 용기 있는 지도자를 보고 백성들은 전쟁으로 인한 불안감이 제거될 뿐만 아니라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단창으로 지휘했습니다.

본문 8장 26절에 『아이 거민을 진멸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고』라고 한 성경이 약속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으로 그의 종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가 지휘관의 상징인 단창을 들어 전쟁의 목표가 되는 아이를 가리킬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과 권위를 여호수아가 든 단창을 통하여 나타나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는 말씀은

Ⅱ. 하나님의 거룩한 언약의 성취 계 시입니다.

창세기 46장 3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고 했습니다.
가나안에 흉년이 들어 애굽의 총리가 되어있는 요셉의 초청으로 이스라엘(야곱)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애굽으로 내려갈 때 브엘세바에 이르러 희생제사를 드렸습니다. 이 말씀은 이 때 하나님께서 이상(異像) 중에 야곱에게 나타나서 하신 말씀입니다.
본문 8장 1절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 백성과 그 성읍과 그 땅을 다 네 손에 주었노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언약의 말씀이 여호수아를 통하여 현실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다 올라가라'고 하신 것은 한 몸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약의 주님의 몸 된 교회 운동의 계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모인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한 몸을 이룬다는 말입니다. 한 몸을 이루지 못하면 교회운동은 실패합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아이성 정복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철벽 금성 여리고는 쉽게 함락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이 싸워서 점령한 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아이성에서는 대패했습니다. 아이성에서의 패전 이유는 교만과 불순종과 안일함을 더하여 하나님을 크게 오해했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한 몸을 이루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할 일은 최선을 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단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마치 큰 구원을 얻었으면서도 정작 구원 얻은 자로서의 윤리적 도리와 책임은 다하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첫 번째 공략에서 대패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을 다시 한번 주지시키면서 여호수아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성 공략과 작전을 친히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바로 ① 두려워하지 말 것과 ② 한 몸을 이루어 총력을 기울일 것과 ③ 복병 작전입니다.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는 말씀은

Ⅲ. 전쟁승리의 축복 계시입니다.

본문 8장 24절에 『이스라엘이 자기를 광야로 따르던 아이 모든 거민을 들에서 죽이되 그들을 다 칼날에 엎드러지게 하여 진멸하기를 마치고 온 이스라엘이 아이로 돌아와서 칼날로 죽이매 그 날에 아이 사람의 전부가 죽었으니 남녀가 일만 이천이라 아이 거민을 진멸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 하였고』라고 했습니다.
총 3만 명의 주력부대 중에서 5천명을 매복시켰습니다. 여호수아는 작전 명령 중에도 하나님의 승리의 약속을 주지시키는데 결코 소홀하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아이성과 그 백성과 그 성읍과 땅을 다 네 손에 주었노니』라고 하신 본문 8장 1절의 약속을 본문 8장 7절에서도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에 붙이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승리의 약속을 기억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마침내 아이성 전투가 시작 되었습니다. 아이성과 마주보고 있었던 여호수아와 그의 군대는 거짓으로 도망했습니다.

이것을 본 아이성 군대는 그들을 진멸하기 위하여 성읍을 열어놓은 채로 뒤따랐습니다(수 10-14). 바로 이때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다시 승리의 약속을 주지 시켰습니다. 본문 8장 1절에 말씀하신 그 말씀대로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주리라"고 했을 때 여호수아는 그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성읍을 가리켰습니다.
여호수아가 그 손을 드는 순간에 그 틈을 이용해서 성 뒤에 매복해 있던 복병들이 아이성에 들어가 불을 지르자 이른바 아이성 군대는 진퇴유곡(進退維谷)에 빠졌고 마침내 전멸하게 되었습니다(수 8:18-29).

여리고성 함락과 두 번째 아이성 공격의 승리의 비결에서 확연히 들어내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여 한 몸을 이룬 결과입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 BC 538년에 고레스 왕을 통하여 성전 재건 공사를 착수할 때 여호와의 신이 감동된 고레스왕은 조서를 내려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고 했습니다(스 1:3). 이 말씀 역시 한 몸을 이루라는 말씀입니다.
교회 운동에 있어서 모이지 아니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모임을 폐하는 것은 주님의 몸을 허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미 여리고 성을 점령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온 자들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 완전 정복과 정착을 위하여 우리가 꼭 정복해야만 하는 아이성이 있습니까?
전자를 구원이라는 한다면 후자는 성도로서의 합당한 진실한 윤리행위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들이라고 해서 아이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는 각 사람에게 다양하게 나타나는 아이성과의 싸움이 언제나 상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아이성이 무엇입니까? 우리를 죽일려고 하는 원수마귀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신앙 전진을 가로막는 원수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행복과 축복을 가로막는 원수의 정체가 과연 무엇입니까?

①무엇보다 우리의 불신앙일 수 있습니다 ②편협한 이기주의 일 수 있습니다 ③교만 ④가난 ⑤질병 ⑥가족의 불화 ⑦미래에 대한 두려움 ⑧거짓 ⑨질투심 ⑩무지 ⑪황금만능주의 ⑫과학지상주의 ⑬가족지상주의 이 모두는 우리의 아이성입니다.
아이성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진을 결코 저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을 잊지 않도록 하나님은 그 전쟁의 와중에서도 계속해서 주지시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연단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성화과정에서 일어나는 고통스러움입니다. 우리는 이미 승리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고통스러워할 때 주의 영이 우리를 위로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아이성 공략의 승리를 위해 '네 손에 잡은 단창'이 무엇입니까? 이 단창은 우리의 신앙 전진을 방해하는 원수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결정적 수단입니다.
그것은 바로 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열왕기상 17장 24절에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11장 4절에 『그 입의 막대기로 산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49장 2절에 『내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시고』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5장 14절에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23장 29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라고 말했습니다.
계시록 2장 16절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고 했습니다.
계시록 19장 15절에 『그의 입에서 이 한 검이 나오니』 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습니다.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 성을 돌았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히 11:32).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했습니다(히 11:33). 믿음으로 불의 세력과 칼날들을 피했는가 하면 전쟁에서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했습니다(히 11:34). 믿음으로 모든 환난을 이겼습니다.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② 각자가 받은 사명에 대한 의식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사명에 대한 의식전환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습니다(마 6:33).

의식전환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잘 모이는 운동입니다. 즉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모이는 것을 폐하지 말아야 합니다(히 10:25). 모이는 것을 폐하는 자가 바로 주님의 교회를 허는 자입니다.
모이지 아니하고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주님의 몸 된 교회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른 예배운동입니다. 바른 예배운동은 바른 교회운동의 동력입니다.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는 말은 바로 ③ 우리의 기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칼빈은 말하기를 "역경에 사로잡힐 때의 그것은 우리를 자극하여 기도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징계의 막대기라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신앙의 참된 증거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진정으로 이루실 것이라는 확신이라"고 또한 칼빈이 말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성공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기도라고 하는 대명제 앞에 통일성과 일체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Harry Thomas Stock는 "기도는 우리가 이미 가진 힘에 능력을 더하는 수단이라"고 했습니다.
Phillips Brooks는 "기도의 가장 간단한 정의는 하나님께 향하는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프랑크 라우바흐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은 기도뿐" 이라고 했습니다.
Christian Advocate는 말하기를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시간이다. 우리는 기도한 뒤 하나님께 대답하실 기회를 드리지 않고 서둘러 떠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Adam Darke 는 "기도는 혀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Harry Emersun 은 "오늘의 비극은 응답 없는 기도가 아니라 드리지 않는 기도라"고 했습니다.
Thomas Beuton 은 "네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듣게 하시려면 그가 말씀하실 때 네가 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교회에 걸려있는 표어를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너의 능력에 맞는 일을 달라고 기도하지 말라. 너에게 주어진 일에 맞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라. 그러면 네가 하는 일이 기적이 아니라 바로 네 자신이 기적이 될 것이다"
우리 주님은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 신앙 전진을 방해하는 원수마귀의 정체를 가리킬 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결국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우리와 우리의 자손의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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