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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님이 하시는 두 가지 사역 (고전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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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이 하시는 두 가지 사역
(고린도전서12:1-7)


[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 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지난주일 나눈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성령님께서 계신다는 사실은 확인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으로 돌아가시면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세상 끝날 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우리를 격려해 주십니다.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 두지 않고 세상 끝날 까지 자상하게 동행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영이십니다.(할렐루야)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성령님에 대하여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이 알지를 못합니다. 바르게, 정확하게 알 수만 있다면 많이 알수록 좋습니다. 많이 알수록 그로 인하여 기쁨을 더 많이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령한 것, 영적인 것을 더 많이 알고 누리십시다.

우리의 본문 말씀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더 많이 알게 되기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을 가지시고, 더 많이 알게 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을 더 알고 싶으시다면 더 많은 시간을 ‘말씀과 기도’에 할애하셔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듣고 배울 때 성령님에 대한 믿음도 커지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외에는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적인 이론을 배제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오늘은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 가운데 중요한 것 두 가지를 상고하기로 합니다.

1. 예수님을 믿게 하십니다.

3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인가?/ 나는 예수님이 믿어진다 일까?’ 두 가지 다 맞습니다. 성경에 “주 예수를 믿으라(행16:31)”고 했으니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겠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1:8-9에도 의지적으로(will), 적극적으로(positive) 믿을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그런데 성경은 이 믿음마저도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이 그러합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어떤 존재들입니까?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였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였고 마음은 둔하고 우매하기 그지없었던 자들 아니었습니까? 이러한 존재들이 무슨 재간으로 하늘에서 내려오신 그 분/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사람의 아들로 우리 곁으로 다가오신 그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살후3:2)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조금 이색적인 방언만 하게 되어도 이것이 성령 받은 큰 증거라고 아주 자랑스러워합니다. 어느 날 열이 펄펄 끓는 아기 머리에 하도 다급하여서 손을 짚고서 기도하였더니 그만 덜컥 열이 내려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럴 때 우리는 ‘성령님께서 황송하게도 이 종을 도우셔서 응답하셨구나’ 이렇게 깨닫고는 감격에 겨워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합니다. 그렇다면 하늘로서 이 지구 세상에 인간 몸을 입으시고 내려오신 그 예수님을 나의 본능만으로 덜렁 믿어지겠습니까? 그 신비로우신 예수님이 이해되어지겠습니까? 우리는 사물을 보고서도 믿지 못할 때가 많은데 그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서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힘으로, 지식으로, 능력으로는 결코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비로소 믿어지는 것입니다.(슥4:6, 롬8:26, 요1:12, 롬10:9-10, 마16:15-17, 엡2:8-9, 고전15:9-10)

자 정리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으시지요?(아멘)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재차 묻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로 믿고 받아들이시죠?(아멘)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미 ‘성령의 사람’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천년전의 그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주님이라고 믿어진다는 것은 성령을 받아도 정확하게 받았으며 크게 받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2. 성령님의 두 번째 중요한 일은 ‘은사활용’입니다.

성령님은 좋은 선물들을 참 많이 갖고 계십니다. 4절을 보십시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우주를 바라보십시오. 자연세계를 바라보십시오. 참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선물들이 지천으로 늘려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늘 위에는 수많은 별들이 있습니다.(수억, 수십억개의 아름답고 다양한 별들! 그래서 별을 연구하는 것에 자기 일생을 투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땅위에는 수많은 생물들이 있습니다.(식물, 동물, 조류, 곤충, 짐승,) 바다 속에는 수많은 어류들, 해초들이 있습니다. 이것들 하나하나가 너무 아름답고 신기해서 여기에 자기 일생을 투자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여러분!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창조세계도 이렇게 다양하고 무궁무진하거늘,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도 그 내용이 얼마나 무궁무진하지 않겠습니까? 성경 야고보서 1장17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7-11절을 보십시오. 얼마나 귀한 은사들인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께서는 각양 좋은 은사들을 너무 많이 가지고 계신답니다. 성령님께서는 이 좋은 은사(선물: 거저 주시는 선물이라는 뜻)들을 어떻게 하기를 원하실까요? 이름 자체가 거저 나누어 줄 선물이니 감을 잡을 수 있지요? 예 그렇습니다. 나누어주기를 원하십니다. 믿는 자들에게 나누어주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골고루 나누어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여 드려야 할 반응은 무엇일까요? 감사함으로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 받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적극적인 마음으로 은사를 사모하는 것은 지혜로운 자세입니다. ‘주고 싶으면 주시고, 주기 싫으면 그만 두십시오.’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에게 성령님께서 은사 주고 싶은 마음 일어나실까요? 고전12:31을 보십시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분명히 “은사를 사모하라”고 합니다. 은사를 사모하되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합니다. 14:1에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모두 은사를 뜨겁게 사모해 봅시다. 그런데 문제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사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4:2-3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정말 좋은 것이 성령님의 은사이니, 작심하고 구해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간절히 사모하고 힘써 구하여서 성령님의 은사를 많이 받읍시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께서 모두 성령님과 친하게 지내시고, 성령님을 모시고 살기를 소원합니다. 뿐 만 아니라 성령님이 갖고 계시는 저 아름다운 선물들을 한 가지 이상씩 받아 가지고 아름답게 사용하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12-14장과 로마서 12장을 묵상하면 은사의 종류와 성격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여기서 가장 주의를 요하고 강조하는 것은 은사를 잘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은사를 많이 받는 것, 특별한 은사를 받는 것도 좋을 수 있으나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은사를 바르게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불이 좋은 것이지만 바르게 잘 사용하지 않으면 재난의 원인이 되고 맙니다. 은사를 바르게 잘 사용하는 것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나의 은사 사용이 교회에 유익이 되고 은혜가 되고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를 세워주고, 회복시켜주고 치유시켜 주어야 합니다. 즉 은사를 행할 때에 우리는 지혜롭게 생각해야 합니다.(롬12:3) 즐거움으로 임해야 합니다.(롬12:8) 항상 각 사람의 유익을 생각해야 합니다.(고전12:7) 사랑으로 사용(활용, 봉사)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유익이 됩니다.(고전12:2-3) 신령한 것,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고자 은사를 받고, 교회의 덕을 위하여 은사를 사용하라고 합니다.(고전14:12) 나는 은사를 받았으므로 이 은사를 신나게 누렸을지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선한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면 이 은사활용은 권장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14:26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모든 은사 활용은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특히 이 말씀은 은사론의 대원칙입니다.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사를 많이 받고 싶어서 기도하되 은사를 바르게 잘 사용하도록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나의 은사활용을 통하여 교회와 성도들에게 유익을 주고, 덕이 되어지도록 특히 기도해야 합니다.(고전14:33,-40참고) 여기서 성령님을 참으로 모시고 있는 신자와 그렇지 못한 신자가 구분되어 집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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