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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의 말을 들으라 (마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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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그의 말을 들으라
본문 : 마17:1-8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영웅적인 인물 두 사람을 꼽으라면, 모세와 엘리아입니다. 어째서 모세와 엘리아가 영웅적인 인물인가 하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400년 이상 노예로 붙잡혀 있을 때 저들을 구원하여 해방시킨 장본인입니다. 그리고 또한 엘리아는 이스라엘 전체가 바알을 섬기며, 하나님을 배도하며, 과연 「여호와 하나님이 참 신이냐? 저 바알이 참 신이냐?」긴가민가 헷갈릴 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을 벌여서 통쾌하게 승리를 거둔 선지자입니다. 그렇다면 정리해 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정치적 위기에서 구원한 영웅이고, 엘리아는 종교적 위기에서 구원한 영웅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구약을 대표하는 양 기둥을 말한다면 서스럼 없이 모세와 엘리아를 말하게 되는 겁니다. 실제로 성경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모세와 엘리아는 실로 대단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모세 :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율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때가 바로 모세를 통해서였습니다. 물론 아브라함, 이삭 야곱... 족장들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는 들었습니다만, 그러나 그런 경우는 개인에게 들려준 사건이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들려준 음성은 단순히 모세 한 사람에게만 들려준 음성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에게 들려준 음성이 되는 데, 그것이 곧 율법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이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모세가 영웅이라는 것은 단순히 그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대리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에 모내실 때, 신과 같이 하여 보내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는 신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높여주셨습니다. 모세를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으로 간주하셨습니다. 모세에게 대항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죽이셨습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모세를 거역하는 자는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말을 듣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으로 알게 하셨습니다.

엘리야 : 세월이 지나서 이스라엘 가운데는 왕이 세워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대리자로 세우시고, 또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을 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직접 다스리고 통치 하셨는데,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점차 세월이 지나면서 직접적인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우리들끼리의 왕국을 건설하기를 원했는데 이것이 바로 왕정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직접 다스리시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이렇게 해서 하나님은 하는 수없이 저들의 요구대로 왕을 세우시게 되는데, 그런데 왕을 세우면 왕이 제대로 못 할 때에 제제할 마땅한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왕을 견제하고, 또한 왕이 하지 못하는 종교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세우시게 되었는데, 곧 이들이 선지자입니다. 이 선지자의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엘리아인 것입니다. 엘리아는 남방 출신으로 북방에 가서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이스라엘의 역대 왕 가운데서 가장 악랄하고 포악한 왕이라면 아합 왕을 꼽을 수 있는데, 이 아합 왕은 이방 여인 이세벨을 아내로 맞이하면서 이스라엘 가운데 바알이라고 하는 우상을 퍼트린 장본인입니다. 이 때 저들과 맞서서 「바알은 거짓된 신이다. 우상이다. 바알을 섬기게 되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이렇게 해서 어떤 신이 참 신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 갈멜산에서 한바탕 영적 전쟁을 벌이게 되는데, 이 때의 장면은 너무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하늘에서 불의 내리는 신이 참 신인 것을 증명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바알신은 비를 내리지 못하고 엘리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불을 내리시게 되었는데, 이 사건이 주는 중요한 교훈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상천하지에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되심을 천하 만방에 드러낸 것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선지자가 있기 전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모세를 통해 율법으로 들려 주셨고, 그 다음으로 선지자가 등장함으로 선지자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제는 모세의 말도 아니고, 선지자의 말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과 함께 변화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산에서 아주 이상한 광경이 벌어진 것입니다.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께서 서로 대화를 나누고 계신 것입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입니다. 말로만 들어오고, 명성으로만 들어오던 모세와 엘리아를 여기서 뜻하지 않게 만나다디... 애굽에 10가지의 재앙을 내리고 통쾌하게 바로를 굴복시키고,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을 영도한 모세, 하나님께로부터 율법을 받아서 율법을 통해서 이 민족을 훈련시키고 가나안으로 인도했던 모세,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시체를 이 땅에 남겨 두지 않으셨습니다.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영웅시 했습니까? 행여 시체를 놓고 서라도 자기들의 신이라고 섬길까봐 하나님께서는 감쪽같이 모세의 시체를 어떻게 수습하셨는지, 하여간에 시체를 남겨두지 않으셨습니다. 항간에는 모세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하기까지 합니다. 엘리아도 마찬가지이지요. 갈멜산에서의 통쾌한 승리를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대적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혼란에 빠뜨렸던 바알의 선지자들을 모두 죽여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을 큰 혼란과 위기에서 건졌습니다. 하나님을 비리고 바알을 섬기는 파멸 직전의 이스라엘을 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했습니다. 말로만 듣고 상상 속에서만 그리워하던 모세와 엘리아를 지금 여기서 본 것입니다. 요즘 말로 실감 있게 말을 해 본다면, 제자들은 완전히 뿅 간 것입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꿈이라면 깨지 않았으면 좋겠고, 생시라면 언제까지 지금의 이 상태를 유지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끔이 아니라 생시입니다. 모세와 엘리아가 나타난 것도 사실이고 예수님께서 영광 가운데 변화되어 저들과 대화를 나누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이런 제안을 합니다. 「선생님, 우리는 너무 행복합니다. 황홀합니다.」모세가 있고 엘리아가 있고 그리고 예수님이 계시고...「 여기가 천국입니다. 다시 세상으로 내려가지 말고 여기서 우리끼리 초막 셋을 짓고(하나는 예수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아를 위하여), 그냥 우리끼리 오순도순 삽시다.」

이 때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이것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모세의 말도 아니고, 엘리아의 말도 아니고 오직 예수의 말입니다. 이것은 아주 혁명적인 말씀입니다. 모세나 엘리아의 말 외에는 받아 주지 않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수의 말을 들으라는 것은 아주 대혁명입니다. 이제는 모세도 아니고 엘리아도 아니고 오직 예수입니다. 모세의 말을 들어서도 안 되고, 엘리아의 말을 들어서도 안 되고 예수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왜 모세도 아니고, 엘리아도 아니고 오직 예수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성경의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이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인류를 죄 가운데서 구원할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라는 얘기입니다. 강력한 하나님의 영광이 저들에게 임했을 때, 저들은 그 영광에 압도되어 그만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저들에게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때서야 저들은 고개를 들고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방금 전에 있었던 모세와 엘리아의 모습은 어디론가 없어지고 예수님만 홀로 남아 있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님들! 오직 예수입니다. 예수 밖에는 없습니다. 모세가 보여도 안 되고, 엘리아가 보여도 안 되고 오직 예수가 보여야 합니다. 모세의 음성도 아니고, 엘리아의 음성도 아니고 오직 예수의 음성입니다. 예수 외에 다른 것이 보이면 안 됩니다. 다른 음성이 들려도 안 됩니다. 왜냐면 오직 예수만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하나님의 기뻐하는 자, 다시 말해서 온 인류를 죄 가운데서 구원할 오직 유일한 우리의 구주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이해할 때 핵심적인 기준이 있습니다. 이 기준을 벗어나면 성경을 바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구약성경의 내용이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단순한 이스라엘의 역사에 불과한 것인가? 단순히 종교적인 전통을 보여 주는 책에 불과한 것인가?」아닙니다. 구약성경의 핵심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고, 엘리아는 선지자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러니까 율법이 가르치고 선지자들이 여러 말로 가르치고 한 내용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까 모세나 엘리아를 통해서 예수를 봐야 합니다. 모세가 누구입니까? 예수를 소개하는 자입니다. 엘리아가 누구입니까? 예수를 소개하는 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율법을 받아 우리에게 증거한 역사적으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맞습니다. 맞는 얘기입니다. 엘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합을 굴복시키고, 850:1의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여 3년 6개월 하늘의 문이 닫혀 비가 오지 않을 때, 하늘의 문을 열고 비를 내리게 한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선지자입니다. 어쩌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저들을 영웅시 하는 것도 일리는 있다고 보여 집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저들은 모세요, 엘리아에 불과하지, 결코 하나님의 아들 즉 메시아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직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오직 예수가 우리의 구주요,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오직 예수에게만 영생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성경은 모세나 엘리아가 구원이요 생명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율법으로는 절대로 죄사함이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없습니다.

a.모세의 법은 거의 대부분이 「하지 말라.」는 강제적인 법입니다. 10계명 가운데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는 계명 이외에는 모두 하지 말라는 부정저인 계명입니다. -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숭배 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온통 하지 말라는 부정적 계명입니다.

b.선지자들의 외침의 주된 주제가 뭡니까?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죄와 불신앙과 불순종과 우상숭배... 이런 자리에서 속히 돌아오라는 겁니다.

-> 그런데 성도님들! 모세의 율법이나 선지자의 말들이 물론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려는 의도에서 하는 말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문제는 인생들이 그대로 행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은 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원천적으로 죄인인데 어떻게 안 할 수 있습니까?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만 어떻게 죄를 안 지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 저주하신다.」이렇게 강력하게 가르치고 권고하고 또 때로는 엄포도 주고 해도, 그런데 결국 인생들을 죄에서 돌이키지를 못합니다. 왜냐면 인생은 자기 안의 죄의 소원을 다스릴 수 없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숱한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이키려 했지만 그러나 결국 돌이키지를 못합니다. 결국에는 저들의 말이 오히려 무거운 짐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킬 수 없는데 지키라고 하니 짐일 수밖에요.



c.예수 그리스도는 뭡니까? 「믿으라.」는 겁니다. 그 자리에서, 그 현장에서 그를 하나님의 아들,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인정하고 믿으라는 겁니다.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믿음으로,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인격이 진리이고, 그분의 삶이 진리이고, 그분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또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뉘게로 가오리까?」그 말씀이 우리를 살립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위로합니다. 그 말씀의 능력으로 귀신이 떠나고, 병마는 떠나고, 저주는 떠나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우리를 자유하게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과거에 모세가 있을 때에는 모세의 법을 따랐으나, 선지자가 있을 때에는 선지자의 법을 따랐으나,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저들은 다 사라졌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는 오직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를 지배하는 계명은 모세도 선지자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과거에는 하나님을 직접 볼 수 없기 때문에 법궤를 만든다던가, 혹은 성전(성막)을 지어서 그곳에서 하나님을 뵈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상징도 없고 모형도 없습니다. 이제는 실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의 입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분의 삶입니다. 그분의 성품입니다.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오직 예수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어떤 사람이나 사건을 기념하는 기념관이 더러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전쟁기념관, 김구 선생님 기념관」등등... 그곳에 가면 그 때, 그 당시를 기념할 만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그런 기념품들은 모두 진열대 속에 갇혀 있습니다. 옛날 것에 불과합니다. 예를 든다면 지난 6.25전쟁 당시에 사용하던 무기들, 지금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는 정말이지 요긴하게 사용한 무기들입니다. 그것들을 가지고 싸워 이겼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가지고 지금 전쟁에 나가서 싸울 수는 없습니다. 이미 사용할 수 없는 구식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야말로 기념품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기념물이 아닙니다. 엑서서리가 아닙니다. 2,000년 전의 인물이었지만, 그러나 그분은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하신 분, 하늘로 승천하시어 하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며, 때가 이르면 다시 오사 어린 양의 피로 정결하게 씻김 받은 자기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다시 재림하실 것이니, 그분은 지금, 현재 우리 가운데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생명이요 능력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까지 사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생명의 구주가 되십니다. 저를 믿는 자는 죄사함을 받습니다. 죽어도 살고 영원히 죽지 아니합니다. 「성령이 오시면 내가 너희에게 명한 말을 기억나게 하고 더 확실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오셔서 모세의 말을 기억나게 한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의 말을 기억나게 한다고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나게 하신다고 요14:26에서 말씀하셨으니, 그의 말씀이 진리요 능력이요 생명입니다. 예수께서 오시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율법에 의하여 정죄 당하고 죽고 말았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의 저주를 종결시켰습니다. 더 이상 율법이 우리를 죄인이라고 정죄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하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자기의 아들 독생자를 죄 있는 육신의 몸으로 보내어 대속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강력하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마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니나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주님의 음성이 우리의 귀에 들여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주의 음성이 들려질 때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주이 음성이 들려질 때 풍랑도 파도도 잔잔해 졌습니다. 주의 음성이 들려질 때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주의 음성이 들려질 때 질병이 떠나갔습니다.


「오 주여! 주의 음성이 내 영혼에 들려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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