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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 데나리온 (마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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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데나리온 (마태복음 20:1-6)

어떤 포도원 주인이 포도열매를 수확하기 위하여서 일꾼을 불렀습니다. 평소에는 집에 있는 종들이 일을 할 수 있지만 수확기가 되면 일손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날그날 일하는  일일(一日) 일꾼들을 부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인력시장(人力市場)이 있어서 일꾼이 필요한 사람들은 그 곳에 가서 적당한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일을 시키곤 하는데,  2천년 전 유대나라에도 인력시장이 있어서 그때그때마다 필요한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일을 시킨 것 같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이른 새벽에 나가서 일꾼을 모집했습니다. 하루에 한 데나리온(denarius)씩의 품삯을 주기로 결정을 하고 일꾼들을 불렀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유대나라의 시간은 우리나라의 시간에 6시간을 더하면 계산이 됩니다. 하루가 12시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해가 뜨는 6시에 시작됩니다. 그래서 새벽 6시부터 일을 하는데, 요즘처럼 8시간 일하는 것이 아니고 12시간씩을 일하는 시대였습니다.

주인은 새벽 6시부터 일꾼들에게 일을 시켜 놓았습니다. 그리고 한 9시쯤에 인력시장에 나가보니까 일하러 못가고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너희들도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면 상당한 품삯을 주겠노라”고 약속을 하고 일을 시켰습니다.

12시에 나가보니까 아직도 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라”고 했습니다. 오후 3시에 가니까 또 놀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라”고 했습니다. 오후 5시에 시장에 가보니까 아직도 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왜 이렇게 하루 종일 여기서 놀고 있느냐?” 물었더니, “우리를 품꾼으로 써주는 사람이 없어서 놀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 1시간만 일하면 끝납니다. 시장하고 포도원하고 얼마나 거리가 먼지는 모르겠지만 가는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가는 시간이 10분이면 50분 일할 수 있고, 반 시간 가야한다고 하면 일하는 시간은 30분도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포도원에 너도 가서 일하라”고 해서 이 일꾼은 기쁨으로 가서 일을 하였을 것입니다.

저녁 6시가 되었습니다. 일을 마쳤습니다. 주인은 일꾼들을 불러서 그날 일한 품삯을 한 사람 한 사람 주기 시작합니다. 오후 5시에 온 사람부터 한 사람 한 사람 불러서 한 데나리온씩 줍니다.
아침 6시에 와서 12시간, 온 종일 일한 사람이 보니까 정말 기대가 됩니다. ‘1시간 일한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씩을 주면, 나는 12시간 일했으니까 열두 데나리온은 안 줄지라도 적어도 한 대여섯 데나리온은 주겠지’ 하는 기대를 가지고 주인 앞에 갔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자기들에게도 한 데나리온씩 주는 것입니다. 12시간 일한 일꾼들이 불평을 합니다. “12시간 일한 사람과 1시간도 채 일하지 못한 사람과 같이 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하고 불평을 합니다.
주인이 그 소리를 듣고 한 사람을 불렀습니다. “여보게, 나와 하루에 한 데나리온씩 주고받기로 계약하지 않았나? 나는 그 계약대로 당신에게 주었는데, 뭐가 그렇게 내가 잘못하였느냐? 나중 온 사람에게 내가 후하게 주는 것은 이 사람들의 가족들이 저녁도 먹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에 후하게 준 것 뿐인데, 그게 뭐가 잘못되었는가?” 라고 주인은 말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1절에 있는 대로 천국에 관한 비유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천국은 어떤 곳인가?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천국에 들어갈 자가 어떻게 일해야 되는가? 그리고 천국에 들어간 사람의 마음의 상태가 어떤가? 하는 것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1.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한 데나리온만 있으면 됩니다.

먼저 포도원은 천국과 같다고 했습니다. 포도원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씩의 품삯을 주겠다고 약속한 것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 구원 받는 것은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뭐가 같습니까? 아침 6시에 와서 12시간 일한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 저녁 5시에 와서 한 시간도 일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씩 똑같이 주는 것처럼 오래믿은 사람이나 짧게 믿은 사람이나 구원의 데나리온은 같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어떤 회사에서 이렇게 했다고 하면 노사분규가 일어나서 굉장했을 것입니다. “불의한 사장 물러가라”, “사람 차별하는 사장 물러가라”고 임금 투쟁이 굉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에게 잘못이 없는 것은 아침에 온 사람과 한 데나리온씩 주기로 약속을 하고 그 약속대로 주인은 지켰습니다. 일꾼은 그만큼 받는 것도 정말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11시에 온 사람들도 아침부터 인력시장(人力市場)에 있었는데 써 주는 사람이 없어서 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침 6시부터 일한 사람들은 처음부터 주인이 잘 보아서 그를 써 주었기 때문에 얼마나 감사하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오후 5시에 온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준 것은 이른 아침부터 일한 사람의 품삯을 빼앗아서 오후 5시에 온 사람에게 준 것이 아닙니다. 주인의 것을 가지고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주인은 먼저 온 사람에게도 약속을 지키는 신실한 주인이요, 또 나중에 온 사람, 즉 한 데나리온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도 후한 마음을 가지고 주었기 때문에 자비로운 주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도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녔던 사람이나 임종직전에 예수 믿은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이 하나님께서 꼭 같은 동일한 구원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보면, 세례요한은 아침 6시에 일한 사람과 같습니다. 모태에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태어나서 이스라엘 자손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했고,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한 사람입니다.
디모데 같은 사람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청년 때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일평생 동안 믿음 안에서 살았습니다. 사도바울 같은 사람은 중년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반평생을 오직 주님을 위해서 살다가 순교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 한편 강도는 오후 5시에 온 사람인데, 어떤 의미에서는 오후 5시가 아니라 오후 5시 59분에 부름받은 사람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평생을 하나님없이 살았습니다. 온갖 죄를 다 지었습니다. 그러다가 범죄하여 잡혀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한쪽 편에 달려서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는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니까 자기가 듣던 대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조롱하는 다른 한편에 달린 강도를 보고 말하기를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 마땅한 일이지만 이 분은 하나도 잘못한 일이 없는데 이렇게 세상을 떠난다.”고 했습니다. 이 분이야말로  모든 인류의 죄를 위해서 세상을 떠나신다. 이분이야 말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그는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천국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옵소서. 생각하여 주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너와 내가 오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례요한도 구원받았습니다. 디모데도 구원받았습니다. 바울도 구원받았습니다. 강도도 구원받았습니다. 그런데 구원의 질(質)에 있어서 세례요한의 구원이나, 디모데의 구원이나, 바울의 구원이나, 강도의 구원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말입니다. 구원에 있어서는 일꾼들이 모두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받은 것처럼, 똑같은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운동경기를 잘하면 금메달을 받기도 하고, 은메달을 받기도 하고, 동메달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구원받는 데에는 구원의 금메달이 있고, 구원의 은메달이 있고, 구원의 동메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다 구원의 금메달, 동일한 구원의 금메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믿기만 하면 들어가는 곳입니다. 믿기만 하면 한 데나리온의 구원을 받아서 누리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보면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데에는 ‘열심히 교회를 나와야 된다, 또 헌금을 많이 해야 된다, 전도를 몇 명 해야 된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야 된다’ 는 말이 전혀 없습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믿기만 하면 천국가고, 믿기만 하면 구원의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이지, 다른 것 가지고 구원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고 예배드리는 이유는 이렇게 우리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예배드리고, 감사해서 헌금하고, 감사해서 기도하고, 감사해서 전도하는 것이지, 이것이 구원의 조건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구원을 얻습니다. 구원은 일찍 믿었다고 해서 더 좋은 구원, 늦게 믿었다고 해서, 5시에 왔다고 해서 덜 좋은 구원이 없습니다. 모두 다 한 데나리온씩 받았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구원의 상징입니다. 그러니까 이 데나리온은 일한 대가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5시에 온 사람은 은혜로 받은 것이지, 일한 대가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구원의 데나리온을 받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도 한 데나리온을 주면서 “네가 얼마나 많은 노동의 양(量)을 했느냐?” 다시 말하면 “얼마나 포도를 많이 땄느냐? 몇 시간을 땄느냐?” 또 “네가 얼마나 기술이 좋으냐?” 이런 것 전혀 묻지 아니하시고, 5시에 온 사람은 한 시간도 일 안했지만, 30분을 했는지 10분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주인의 말씀에 순종하여서, “너도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라”하는 이 한 마디에 순종하는 것보고 그에게 한 데나리온의 동일한 축복을 허락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오래 믿을 필요 있느냐? 어릴 때부터 예수 믿을 필요가 어디 있겠느냐? 세상에서 마음껏 살다가, 하고 싶은 것 다 하다가 마지막 죽기 한 1년 전에 예수 믿어서 구원받으면 되지, 그렇게 오랫동안 예수 믿을 필요가 뭐 있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동대신동 어느 집사님의 남편이 국제시장에서 사업도 아주 잘 하시는 분이었는데, 전도를 하면 “내가 죽기 전 1년 전에 나오겠다”는 거예요. 자꾸 복음을 전하니까 이제는 “죽기 전  7년 전에 나오겠다.” 그러다가 교회를 나오고 난 다음에 오랫동안 사시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죽기 전에 1년 전에 나온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적어도 몇 가지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합니다.
먼저,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세상을 떠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익은 감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설익은 감도 많이 떨어지는 법입니다. 어떤 감은 감꽃도 떨어지지 아니하고 꽃과 함께 열매가 떨어집니다. 이 땅에 온 순서는 아버지, 어머니, 형님, 동생 순서로 오지만, 갈 때는 순서가 전혀 없습니다.
언제 이 세상에서 떠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천국 갈 준비를 항상 할 수 있는 사람이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의 날짜를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나는 좀 더 천천히 있다가 예수 믿지’ 하다가 구원의 은총을 잃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말들을 하는 것입니다.

또, 두 번째 그 사람들이 모르는 것은 예수 믿는 재미를 모릅니다. 이 세상에 어떤 것보다도 더 재미있는 것이 예수 믿는 재미인데, 흔히 안 믿는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은 무슨 재미를 가지고 살아가나? 이것도 하지 말라, 저것도 하지 말라, 이것도 보지 말라, 저것도 보지 말라, 이것도 먹지 말라, 저것도 먹지 말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아가나?’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예수 믿는 재미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예수님 믿는 재미, 세상 재미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천국을 믿고 살면 계시록에 나와 있는 천국 묘사(描写만 바로 믿고 산다고 할지라도 세상의 어떤 아름다운 장소, 어떤 구경거리 있다고 할지라도 시시하게 보입니다. 아무리 금강산 일만이천봉이 아름답고 기묘절묘하다고 할지라도 천국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세상 어느 곳을 보아도 정말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이 시시하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 은금패물을 차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씁니까? 결혼할 때 다이아몬드 몇 캐럿을 받았다는 것이 자랑거리이고, 안 받으면 섭섭해 하는데, 사실 하늘나라에서 누릴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은, 천국이 온통 보석으로 꾸며져 있는데, 눈에 보일 듯 말 듯 하는 조그만 보석하나 손가락에 끼워가지고 만족할 수 있습니까?

아름답고 영광스런 하나님 나라를 제대로 믿고 산다고 하면, 이 땅에 있는 은금패물이 아무 것도 아니게 보여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믿어서 오는 행복, 예수 믿어서 맛보는 기쁨, 만족, 하나님 자녀의 권세, 이런 것을 몰라서 그렇지, 정말 하나님 앞에 이런 맛을 알게 되면 세상 맛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담배맛, 술맛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34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여호와의 맛이 얼마나 대단하지, 얼마나 기막히는지,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다윗은 그 맛을 보았습니다. 

그는 사울의 쫓김을 받아서 더 도망갈 곳이 없어 블레셋 지방으로 갔는데, 블레셋 아비멜렉의 신하들이 다윗을 알아봅니다. “왕이여, 이 사람이 우리 장군 골리앗을 죽인 사람입니다. 제발로 들어왔으니까 처치하십시다.” 완전히 독 안에 든 쥐 아닙니까? 왕이 “아, 그래. 죽여라” 하면 끝나는 순간입니다.
그때 다윗은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를 기름 부으셔서 오늘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나를 이렇게 죽도록 기름 부으신 것이 아닌 줄 압니다. 하나님, 이 위기에서 나를 건져 주시옵소서”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그 환란에서 건져주시는데, 주의 사자가 둘러서 진을 치고, 마치 그 속에서 하늘로 쏙 뽑아 올리듯이 뽑아 올려서 그를 살게 해주시는데, 얼마나 놀라운 경험을 했는지, 그래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한번 해보라는 말입니다.

그는 4백 명의 군사들과 함께 쫓겨 다닙니다. 강원도만한 지역에 4백 명이 쫓겨 다닌다고 한번 상상해 보세요. 제사장 한 사람은 골리앗의 칼과 약간의 무기를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제사장들이 다 몰살당했습니다. 그런 상황에 만약 누군가가 다윗에게 음식이라도 제공했다고 하면 그 가문이 멸절 당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 것도 줄 수 없습니다.

이런 극한 상황에 있었지만, 한번도 4백 명의 군사가 굶주리거나 어려운 일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하나님께서 채워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나에게 축복해 주셨다>고 고백하고 “너희도 이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맛 좀 보았습니까? 예수님의 맛 좀 보았습니까? 세상에 있는 어떤 맛도 이 신앙의 맛, 하나님의 맛, 예수님의 맛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고, 담배 맛, 술 맛은 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늘 이 맛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맛을 보면, ‘세상 재미 좀 더 보다가 마지막에 죽기 전에 예수 믿어서 구원받지.’ 그런 소리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로는 예수 믿어서 구원받는 것은 같습니다. 다같이 한 데나리온입니다. 그러나 그 상급(賞給)은 다릅니다. 오늘 본문 바로 전 19장 끝부분에서 그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를 보세요. 베드로가 이야기합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쫓았습니다.” 마가복음에는 베드로의 말에 예수님께서 “그래, 네가 나를 위해서 버린 것의 백배나 이 땅에서 갚아주마.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영생을 주마.”라고 하셨습니다.

구원은 똑 같습니다. 다 한 데나리온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상급(賞給)은 다릅니다. 이것을 바로 알면 좀 더 빨리 예수 믿어서 좀 더 많은 주님의 일을 하려고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믿어 구원받고 더 많은 주의 일을 해서 상급 받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상(賞)받는 것을 어떤 사람은 유치하게 생각하는데, 그 사람은 하나님을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 11장에, 어떤 사람이 믿음의 사람인가하면 <하나님께서 계신 것과 상(賞)주시는 이심을 믿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라고 했고, 바울은 그 상을 얻기 위해서 푯대를 향해서 쫓아간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누가 바울을 유치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누가 하나님을 향해서 유치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상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서 구원의 한 데나리온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알면 ‘내가 좀 더 세상 즐기다가 늦게 예수 믿지.’ 그런 말 안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독생자까지 내어주신 그 놀라운 사랑을 깨닫게 되면 시간가는 것이 아쉽습니다. ‘좀 더 주의 일을 하다가 하나님 나라 가야 될 것인데….’ 그런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 하지 말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최선을 다해서 주님의 일 하리라. 구원의 한 데나리온은 같지만 상급은 다른 줄 알고, 열심히 신앙생활 하여서 주님 앞에 섰을 때에 별과 같이 빛나고, 면류관 받아쓰고, 그 나라에서 정말로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한 데나리온을 받는 데는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기준을 정했다고 한번 생각해 보세요. 적어도 구원받으려고 하면 너희 생(生)의 3분의 1은 믿어야 된다, 혹은 너희 생(生)의 반 정도는 믿어야만 된다, 그렇게 한 일년 믿어가지고 천국 가겠다는 것 뻔뻔스럽지 않느냐? 그렇게 하셨다고 하면 누가 구원 되겠어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사람이 참으로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5시에 온 사람도, 강도처럼 5시 59분에 온 사람까지도 믿음이라는 한 데나리온만 받으면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5시 쯤, 마감 전에 불러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비유에 나오는 일꾼들은 하루 일해서 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일하지 못하면 당장 가족들이 오늘 밤에 굶어야 합니다. 5시가 되었습니다. 이제 오늘은 끝났다고 생각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와서 “내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일한 사람과 같은 품삯을 줍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가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포도원에 이른 아침에 들어가서 일했든지, 점심 때 들어가서 일했든지, 오후 5시에 일했든지, 들어간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들어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 주인이 불러서 들어갔지, 자기 자의로 들어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포도원 되는 교회에 들어온 것도, 내가 내 발로 들어오는 것 같아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불러주셔야만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고 싶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올 수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 44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예수님에게 아무도 올 수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혈통(血統)으로 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어떤 의지로나 계획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만세(萬世) 전에 택하여 주시고  때가 되어서 이런 환경 저런 환경을 통해서 부르시고 믿음주어서 믿게 하셔야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사람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되는 것입니다. 아침부터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한 사람들도 “나는 한 데나리온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12시, 오후 3시, 5시에 온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품꾼으로 써주시는 그것만 해도 감사해야 될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침 6시에 일꾼을 부르시고 마감해 버렸다고 하면 우리 같은 사람은 구원받지 못했을 것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11시까지, 임종할 그때까지 불러주셨기 때문에 우리 같은 사람까지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3. 11시가 무슨 뜻입니까?

여기에 나와 있는 11시가 어떤 의미겠습니까?
시간적(時間的)으로 말하면 기독교 2천년 역사 가운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11시에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2천년 전에 기독교가 시작되었는데, 우리나라가 기독교의 복음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불과 백 2십년 밖에 안 됐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11시에 지금 부름 받은 대한민국의 사람들입니다.

지리적(地理的)으로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시작된 복음이 구라파로 갔습니다. 온 구라파가 복음화 되고나서, 그 사람들이 미국으로 갔습니다. 미국에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을 때 그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니까 지리적으로도 보면 우리는 제일 마지막 11시 지역에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영적(靈的)으로 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11시에 부름을 받는지 모릅니다. 어릴 적부터 예수 믿은 사람은 6시에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소년시절에 부름 받은 사람은 9시에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청년시대에 부름 받은 사람은 12시에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40대 장년쯤  되어서 부름 받은 사람은 오후 3시에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50대가 되어서 부름 받은 사람은 오후 5시에 부름 받은 사람, 11시에 부름 받은 사람과 다를 바가 없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청장년 때에 혹은 노년 때에 복음을 받아서 구원에 동참하는지 모릅니다.

또, 이 11시는 우리의 형편상 11시입니다. 11시는 절망의 시간입니다. 소망이 없는 시간입니다. 막다른 골목인데 아무도 찾아주지 않습니다. 밤이 곧 오게 됩니다. 이런 환경의 11시에 처해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 모두는 11시에 부름 받은 사람과 같습니다. 11시에 부름 받은 사람의 처지가 어떻습니까? 마지막 막다른 길에 있을 때 불러주었기 때문에, 끝장났다고 하다가 아무도 찾지 않는 시각에 불러주었기 때문에 부름 받았을 때 얼마나 감격했겠어요?

11시에 부름 받은 사람은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점심 때가 지나서 오후에 나온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루 종일 그 사람들은 노동시장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다 불러갔는데, 이 사람은 신체적으로 약점이 있든지, 또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부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시간도 다 되었는데 주인이 너도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라고 했을 때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요즘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대학 졸업자 가운데는 절반이 직장을 갖지 못하고 있는데, 일하는 사람이 일하지 못할 때 오는 고통은 죽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부모는 학교에다가 취직을 시키면서 “월급은 내가 줄 테니까 일만 시켜 달라”고 한 사람까지 있습니다.
11시에 부름 받은 사람은 ‘돈 안 받아도 좋다. 단순히 오늘 가서 한 시간 일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일했을지도 모릅니다. 단지 불러주심에 감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불러주실 뿐만 아니라 한 시간도 일하지 못했는데, 늦게 온 사람부터 한 데나리온씩을 주는 것입니다. 먼저 온 사람보다도 먼저 한 데나리온을 주는 것입니다. 너무너무 감격했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천국입니다.

천국에 가는 일은, 천국에 가는 축복은 내가 행했기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어떤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을 찬송할 것 같습니까?
나 같은 죄인,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천국에 올 수 없는 내가 천국에 오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깨닫고 하나님의 은총을 찬송하게 될 것이고, 천국에서 면류관(冕旒冠)을 받아쓰게 될 것인데, 요한계시록을 보면 천국에 있는 성도들이 다 면류관을 벗어서 주님에게 드립니다.
면류관을 왜 벗어 드릴까? 내가 천국에서 받아쓰는 면류관은 내가 받아쓸 면류관이 아닙니다.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주님께서 은혜로 주신 구원이기 때문에, 면류관이기 때문에, “이 면류관은 내가 받아 쓸 수 없습니다. 주님 받으십시오.” 하고 주님 앞에 다시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아름다운 감격을 천국에서 우리가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나는 너무 늦게 부름 받아서 일할 수 없다는 말은 통하지 않습니다. 너무 늦게 부름 받았기 때문에 남은 한 시간을 더 감격적으로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발은 비록 늦었지만 늦게 불러 주었기 때문에 더 죽도록 충성하여서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정말 아름답게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은 시간은 한 시간 밖에 없음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은 한 시간이지만 나를 천국의 포도원으로 불러주신 은혜가 감사해서 주를 위해서 생명을 다해서 남은 한 시간 잡담하지 말고 머뭇거리지 말고 일할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11시에 부름 받은 자세로, 이제 일할 시간이 한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자세로 신앙생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실제로 시기적으로 우리는 금년의 11시에 와 있습니다. 나이도 11시에 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생활도 11시에 와 있습니다. 역사적인 관점도 11시에 와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너도 내 포도원에 들어와서 일하라. 너의 인생이 11시냐? 그래도 한 시간만이라도 일하라. 지난날을 후회하지 말고 일하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가진 것 없다. 나는 배운 것도 없다. 나는 건강도 없다. 내게는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게 있는 것 가지고 주님을 위하여서 남은 한 시간을 최선을 다해서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인이 듣고 싶은 말은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했을 때에 “예!”하는 이 말 한 마디입니다. “예!” 외에 다른 말은 필요치 않습니다. 기술이 없습니다. 가진 것이 없습니다. 힘이 없습니다. 이런 핑계하여서 머뭇거리지 말고, “너도 내 포도원에서 일하라, 너의 인생이 11시에 있느냐? 너도 일하라”하는 말씀에 “예! 감사합니다”하고 가서 감격적으로 남은 한 시간을 일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이사벨이라고 하는 부인이 아기를 낳다가 그만 하반신을 전혀 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부인은 병을 고치기 위하여서 수많은 의사를 찾다가 재산을 많이 허비하였습니다. 그러나 병세가 점점 악화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인은 병 치료하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치료비를 모아서 당시 6 ․ 25동란으로 고생하고 있는 부모를 잃은 전쟁고아들을 위해서 우리나라에 기금으로 보냈습니다.

그것을 기금으로 해서 부산에 한 보육원이 생겨졌습니다. 그 보육원이 얼마가지 않아서 학교가 되었습니다. 이사벨 부인은 그 기금을 보내고 난 다음 1년 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장례식을 위해서 모인 가족과 친척들은 그 부인이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치료비를 한국에 보내어서 학교가 세워졌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한 부인의 마지막 치료비가 학교가 되고, 수많은 사람들을 양육하게 되었습니다. 학교 창립 2주년 되던 날, 그의 남편 데이빗 씨가 초청을 받아 창립 기념식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아내가 치료비를 모아서 보내어서 세워진 학교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는 매우 감격했습니다.

때마침 학교에서 또 다른 건물을 짓고 있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았던 데이빗 씨는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 자기의 집과 재산을 저당 잡히고, 학교를 지을 수 있는 돈을 다시 보내 주었습니다. 그 학교가 바로 동래에 있는 이사벨 여자 중 ․ 고등학교 입니다.

이사벨 여사는 자기의 삶이 11시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한 시간 동안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언가를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죽는 몸 위해서 내가 쓰지 말고, 그것으로 남을 위해서 써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남모르게 그 기금을 보냈더니 수만 명의 학생들이 배출되어서 이사벨 여사의 봉사의 정신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11시에 부름 받은 우리나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11시에 부름 받은 사람들인데, 11시에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너도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서, 비록 내 나이가 11시라고 할지라도, 내 환경이 11시라고 할지라도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일하여서 한 데나리온의  구원의 축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상급까지 받아서 하나님 나라에서 활짝 웃을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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