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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받고 사는 비결 (벧전 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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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은혜받고 사는 비결 (벧전5:12-14)

[1] 서 론

2천년 교회사에서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인을 사도 바울과 베드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그의 일생을 마감한 위대한 그리스도인으로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큰 사역을 이룬 위대한 분들로 역사가 존경하고 흠모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우리에게 깨닫게 해 준 학자요, 목회자였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우고 교인들을 바르게 섬겼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교통이 불편한 당시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걸어서 선교여행을 했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오가며 복음을 전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순교자로 그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토록 위대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갔던 비밀은 은혜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은혜로 살고 은혜로 죽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절).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일생을 살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전파를 위해 수고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면 사도 바울과 같이 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삶이 은혜받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는 거저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 커서 값으로 환산할 수 없기 때문에 거저 받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은혜는 크게 보이는 은혜와 보이지 않는 은혜로 구분됩니다. 보이는 은혜는 햇빛을 비춰주시고, 바람을 불게 하시고, 때를 따라 비와 이슬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보이는 은혜는 일반적인 은혜입니다. 이 일반적 은혜도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제한적으로 허락하시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는 은혜는 신령한 은혜요, 내적인 은혜입니다. 천국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속의 평화도 보이지 않습니다. 양심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특수한 은혜입니다.
보이는 은혜는 비교되는 은혜요, 보이지 않는 은혜는 비교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일반적으로 은혜를 더 받았다 덜 받았다 하는 것은 눈으로 보이기 때문에 비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천국의 은혜와, 사죄의 은총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무 것과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은혜는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감동하시므로 받는 큰 특별은혜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 베드로전서를 쓰는 베드로는 백발이 성성한 노 사도입니다. 그러니 눈이 어둡고 손이 흔들려서 붓을 잡고 글을 쓰기가 어려웠나 봅니다. 그래서 신실한 형제 실루아노를 통해 글을 쓰게 하고, 편지를 전해 준 것 같습니다.  실루아노가 누구입니까? 바로 실라입니다.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찬송 부를 때 감옥 문이 열린 기적이 있었는데, 그 실라가 바로 실루아노입니다.

  실루아노에 대해서는 고린도후서에도 데살로니가후서에도 나오는데, 바울이나 베드로 뒤에서 그들을 돕는 모습으로 나타나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그 이름이 보석같이 빛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앞서서도 일을 잘 해야 하지만, 실루아노처럼 뒤에서 협력하는 일도 잘 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편지를 마감하면서 실루아노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은혜에 굳게 서라."
베드로가 일생 살아보니, 일생 목회해 보니, 하나님의 은혜가 제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보이는 은혜와 보이지 않는 은혜를 못 받으면 인생은 헛수고라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도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아브라함은 빈 들에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니 잘 되었고, 조카 롯은 물이 풍부한 옥토인 소돔과 고모라에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거두어 가시니 알거지 헛수고 인생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물고기는 물 속에 있어야 자유도, 생명도, 사랑도, 미래도 있는 것입니다. 물고기는 물을 벗어나면 그 날이 끝입니다. 물고기에게 물이 필요하듯이 우리에게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벗어나는 것, 그것은 자살행위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은혜을 받고 사는 비결

1. 말씀에 굳게 서라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입니까?
본문 12절에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문장을 보면, 베드로가 지금 실루아노에게 쓰게 한 하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은혜라는 뜻 입니다. 즉 은혜에 굳게 서라는 말은 말씀에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말씀 자체가 은혜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선포되어 나가는 그 곳에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말씀에 의지하여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내 상황이나 하나님께 받은 축복에 기대어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받은 축복은 언젠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나이 75세에 '내가 너로, 네 씨로 큰 민족을 이루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는데, 10년이 지나도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이루어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99세가 되어도 아들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의 몸은 이제 남자로서는 죽은 것과 같이 되었고, 아내 사라도 여자로서는 죽은 것 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4장 18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따라합시다.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말씀을 믿었다." 이런 믿음이 기적을 불러오는 믿음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대로 100세에 이삭을 주시고 큰 민족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신앙 생활을 해도 내 상황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왜 이럴까?'하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5년을 기다려도 10년을 기다려도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지 않으실 때가 있습니다. 그 상황을 보면 우리가 낙심할 수 있지만, 그때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면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은혜의 샘이다."  언제 어디서나 말씀에 서 있으면 은혜를 마시며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내가 어떤 상황에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면 은혜로 승리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되새김질하며 살면, 하나님은 보이는 은혜와 보이지 않는 은혜를 폭포수처럼 쏟아 주십니다.

2. 교회 생활에 굳게 서라

이제 본문 13절, 14절 앞 부분을 보시겠습니다.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
이 말씀은 교회 생활에 굳게 서라는 뜻입니다.
"교회 생활에 굳게 서라."  교회는 엡1:23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할렐루야!

  교인 한 사람은 약해도 교회는 위대합니다. 위대한 성령 교회인 브리스베인순복음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같이 하면 뜨겁게 되는 것입니다. 꺼져가던 숯불도 숯불이 모여 있는 곳에 갖다 놓으면 확 달아오르게 되듯이, 교회 생활에 굳게 서면 넘치는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는 나이가 3천 살이나 되는 레드우드라는 참나무가 있습니다. 높이가 100m가 넘고 둘레가 9m가 넘습니다. 3천 년간이나 어떻게 버텨 왔는지 학자들이 조사해 보았더니, 뿌리가 깊이 내려져 있고, 또 그 뿌리가 옆에 있는 나무들과 꽉 엉겨 있었습니다. 그래서 심한 비바람에도 뿌리가 흔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전도서 4장 9절에서 10절에 보면, 두 사람이면 복이 있고 한 사람이면 화가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왜입니까? 혼자 가다 넘어지면 일으켜 줄 사람이 없어서 화를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잘 아는 한 분은 혼자 등산 갔다가 뇌진탕으로 쓰러졌는데 그 자리에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만일 두 사람이 갔으면 응급 조치를 해서 살 수 있었을 텐데 혼자 가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신앙 생활도 혼자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영적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합니다. 목사인 저도 늘 신앙이 고르지 않습니다. 한 개인의 신앙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영적인 분위기가 항상 같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와야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오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다 아시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프리스톨의 두 청년이 밤마다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느 날처럼 술을 마시러 가는 그 청년들의 눈에 하루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교회 게시판의 글이 들어왔습니다.
그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한 청년이 말했습니다. "나는 술집에 가지 않겠네. 교회에 갈 거야." "뭐?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같이 술집에 가세."
"아니야, 이제 나는 술집에 가지 않을 거야. 교회로 갈 거야."
교회에 간 청년은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가를,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인격자가 되고 마침내 미국의 22대 대통령, 24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다른 한 청년은 사형수가 되어 감방에서 자기 친구가 대통령이 된 기사를 보고 통곡을 했습니다. 그 대통령의 이름이 바로 클리블랜드입니다.  교회에서 사는 사람은 승리하게 되고 어디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줄로 믿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그의 영혼에 흘러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은혜의 저수지이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에 생명수로 적셔 주는 곳입니다. 아무쪼록 일생 교회 안에서 예배의 성공자가 되십시오.
  이사야 66장 10절에서 12절을 보면,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아기가 엄마 젖을 넉넉히 먹은 것처럼 만족하겠고,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젖을 실컷 먹고 엄마 품에서 잠든 아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 최고의 행복자인 것입니다. 더 이상의 행복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자는 엄마 젖을 실컷 먹고 엄마의 가슴에서 자는 아기처럼 하나님의 품에서 만족할 것이다." 이런 축복을 입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은혜의 샘터입니다(엡1:23).

3. 그리스도안에 굳게 서라

  본문 마지막에 베드로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은혜받는 셋째 비결은  "그리스도 안에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합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하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사람은 은혜가 충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서는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만족함과 행복이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왜냐면 그 분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귀한 사람도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아무리 귀한 직장도, 아무리 귀한 자리도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세상에는 만족함이 없습니다. 세상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히 만족함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는 분은 예수님뿐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의 반석은 예수님이십니다.

  미국 한 해변에 큰 바위가 있는 언덕이 있었는데, 그 아래에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 마을에 이사온 한 사람이 바위를 보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혹 저 바위가 굴러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그래서 주 당국에 '위험한 바위가 있으니 치워달라.'고 청원을 했습니다. 주 당국에서 그 청원을 받아들여 여러 날 동안 헬리콥터와 불도저를 동원하여 그 바위를 언덕 너머 고속도로로 굴려 떨어뜨렸습니다.  이 광경을 며칠이고 지켜보던 한 청년이 말했습니다.
"그 바위를 내게 파세요. 100불을 드리겠습니다."
어차피 그것을 치워야 하는 주 당국에서는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그 바위를 사들인 청년은 거기에 미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 존 웨인의 얼굴을 조각했습니다. 존 웨인이 조각된 그 바위는 얼마 후에 100만 불에 팔렸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 큰 바위를 제거했던 마을은 산사태가 일어나 집들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바위가 막아 주었던 흙들이 폭우 때 쏟아져 내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 보면,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예수만 믿지 않으면 내 마음대로 한 번 살아볼 건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고, 내가 교인만 아니라면 한 번 멋지게 살아볼 건데….'하는 유혹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반석이신 예수님을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인생의 산사태를 만나 비오는 날의 수채화처럼 녹아 내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반석이신 예수님을 잘 붙잡은 사람은 만 배로 잘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반석이신 예수님을 붙잡으면, 진리와 은혜가 충만한 그 분의 능력 충만이 우리들에게 흘러 들어오므로 영원히 잘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때 주님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흡족히 주십니다. 특별은혜와 일반은혜를 누리게 하십니다. 환경이 잘 되어 형통하고 영혼이 잘 되어 삶에 기쁨과 소망이 넘치게 됩니다.

[3] 결 론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을 잘 알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은혜를 알았기에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늘 감사했습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2)
일체의 비결이 뭡니까? 은혜로 사는 비결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그는 몸에 고질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간질이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안질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이 사도 바울을 괴롭히는 가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병이 떠나기를 하나님께 여러번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준 응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성공하고, 잘되고, 형통하고, 건강하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실패하고, 잘 안되고, 건강이 나빠지면 불평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어떤 일이 잘못되어 실패할 때도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주셨다고 믿어야 됩니다. 실패할 때 한가지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서 가져갔다고 믿는 것입니다. 만약 실패할 때 사람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한다면 견딜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일이 잘못되어 실패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주셨다고 믿어야 됩니다. 그때 내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사람에게 원망하면 나는 그것으로 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다' 하고 그것을 족하게 받아들이면 다시 형통한 은혜를 받게 됩니다.
은혜를 받으면 인생을 새롭게 창조하는 존재가 됩니다. 따라서 모든 일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받아 들이십시오.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진다는 비밀을 깨닫고 항상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이런 은혜받는 비결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따라합시다. "말씀에 굳게 서자." "교회에 굳게 서자." "주님 안에 굳게 서자."
이렇게 사는 것이 바로 은혜로 사는 길이요, 성공과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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