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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요 4:3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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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요한 4:39-42) 

우리는 3월을 “선교의 달”로 지키고 있습니다.
불이 탐으로 존재하듯이 교회는 선교함으로 존재합니다.
선교의 최종적인 목적은 전도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수가성 우물가에서 주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으로부터 시작된 전도가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믿는 자의 수가 더욱 많아지며
또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만나게 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은 <사마리아 여인 때문>입니다.
  이들의 믿음은 사마리아 여인의 간증 곧 전도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유대인인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예수를 믿었던 것처럼(요12:11)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를 믿은 것은 바로 이 여인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변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영생 얻는 구원을 받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로마서10장 14절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듣지도 못한 이를 믿을 수 가 없습니다.
  전도자가 없이는 들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믿게 된 것은 전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전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전도가 짐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전도는 기쁨으로 하여야 합니다.
  즐기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일련의 프로그램을 준비하였습니다.
  아마 아직도 마음에 작정도 하지 않은 이는 한 사람도 없을 것으로 믿습니다.
  이제 그 분들의 이름을 적어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의 각오를 다지기 위한 것입니다.
 
  지난 주 칼럼을 통하여 억지로 메는 십자가는 짐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실 것은 십자가는 올라타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짊어지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새의 날개와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에게 자유와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저도 제 스스로 올무를 만들었습니다.
  올해 출석 목표 800명이라는 숫자입니다.
  동시에 여러분들에게도 말씀드렸습니다.
  송구영신 예배 이후 지난 두 달 동안
  여러분의 마음속에 전도대상자를 작정해 둘 것을 권했습니다.
 
  이제 이름을 적어 내시면 구역별로 이름을 부르며 구역별로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권사님들이 기도해 주실 것입니다.
  교역자들이 기도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기도하셔야 합니다.

  익지도 않은 감을 따지 마십시오.
  급하다가 벼이삭을 뽑으면 안 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전 가족 출석주일인 4월 20일 부활주일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우리 교회가 올해 지키는 추수감사주일인 10월 3차주까지를
  목표로 합니다.
 
  작정하고,
  적어내고,
  기도한 후에
  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그러나 지금 여러분들이 믿는 것은 <예수님 때문>입니다.
  믿음의 삶은 예수님 앞으로 나아와 주님과 동행함으로 가능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사마리아 여인의 간증을 듣고 주님을 만났습니다.
  이들은 사마리아 여인의 말을 듣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유하였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의 수가 더욱 많아졌습니다.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믿음이란 무엇인지를 되새기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듣고 머리로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아! 그 분이 나의 주님이시구나.
  내 죄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구나!
  주님을 믿어야 되겠구나!
  그래서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아멘>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믿어야 믿는다고 할 것 아니냐고
  하나님이 게시다면 나를 믿게 해 주어야 할 것이 아니냐고
  믿어지면 <아멘> 하겠다고 합니다.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병원에 찾아간 환자가 상처를 내어 보이며 의사에게 말합니다.
  “안 아프게 해 주세요!”
  “아프시군요! 그러면 상처를 치료해야 하겠는데요.”
  “아니요!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글쎄요. 아프더라도 치료를 해야 아프지 않게 됩니다.”
  “아니요. 안 아프게 해 주시면 상처를 치료받겠습니다.”

  고백부터 하세요.
  주님 내가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입니다.
  국민일보 기독교란에 겨자씨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어머니께서 며느리를 데리고 목사님에게 기도를 받으러갔답니다.
  아들을 낳게 해 달라는 기도를 목사님께 부탁드렸습니다.
  목사님께서 기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믿음으로 기도합니다. 꼭 아들을 주시옵소서!”
  시어머니 앞에서 며느리는 부끄러워서 <아멘>이라고 하지를 못했답니다.
  시어머님이 오히려 큰 소리로 <아멘>이라고 소리를 질렀답니다.
  그 후에 아들을 나기는 낳았대요.
  며느리가 낳은 게 아니고 <아멘>이라고 외친 시어머님이 낳았대요.

  입으로 “믿습니다.” 고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고백한 그 분을 마음속에 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보좌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주님을 모시고 함께 사는 것을 우리는 <영접>이라고 합니다,
  나의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주님! 영접합니다. 내 마음 속에 들어오시옵소서.” 
 
  그리고 주님께 내 인생을 모두 맡기는 것입니다.
  의지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모시고 살면서 내 맘대로 살면 안 됩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자기 맘대로 살면 부모님도 진노하십니다.
  주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과 함께 산다는 것은
  주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주님을 믿고 영접하여 그 분을 모든 것을 의탁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에서 말씀하시는 내용이 뭡니까?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3:5-6)

  처음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권하기 때문에
  부모님이 강요하시기 때문에
  남편이 믿고, 아내가 믿고, 친구가 권하기 때문에
  사마리아 여인 때문에
  나사로 때문에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이제 달라져야 합니다.
  이제 내가 믿는 것은 내가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함께 살아가게 됨으로 말미암습니다.
  주님과 동행함으로 그 은혜를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3. 그러나 온전한 자기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정말 이제 우리가 주님을 믿는 것은 그의  <말씀 때문> 입니다.

  이제 이들의 믿음이 더 이상 다른 사람들 때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경험하시고 은혜를 체험한 여러분!
  이제 더 이상 신비한 체험이나 기적 때문에 믿는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이제는 진리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믿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친히 그 말씀을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분명히 알기 때문입니다.

  수요일마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한 사도들입니다.
  그들이 예수님 때문에 고난당하고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채찍이나 몽둥이에 굴하지 않습니다.
  감옥에 들어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모두 말씀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담대히 외칩니다. 
  “너희들도 생각해 보라!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겠느냐?”(행4:19)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의 신앙이 더 이상 빌어서 온 신앙이 아니어야 합니다.
  나의 것으로 취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왕하 6:5-7).
 
  중매쟁이의 소개로만 이루어진 사랑으로는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없습니다.
  처음엔 중매쟁이의 소개로 이루어지는 “빌어온 사랑‘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차츰 내가 겪으며 이루어나가는 부부만의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남의 말만 듣고 사랑할 수 는 없습니다.
  자신의 입술로 사랑을 고백하고
  함께 살아가면서 사랑을 만들어 가고
  그래서 <미팅, Meeting>이 <엔카운트,Encounter>가 됩니다, 
  서로 의지하게 됩니다.
  결국은 자기 자신보다 배우자를 믿게 되고
  완고하던 사람도 사랑하게 되면 자신의 말보다 배우자의 말을 더 믿게 됩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아내로부터 빌려 온 신앙, 남편으로부터 빌려 온 신앙,
  부모에게 빌려 온 신앙
  친구의 강요에 의하여 마지못해 빌려 온 신앙으로부터
  우리는 이제 말씀으로 말미암은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42절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행4:42)

꼭 권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완전한 성인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으십니까?
나이가 많다고 어른이 아닙니다.
부모가 되어 자녀를 낳게 되면 어머니 아버지가 됩니다.
자식을 키워보아야 비로소 완전한 어른이 됩니다.
올해는 우리 모두가 다 어른이 됩시다.
믿음의 자녀들을 작정 하십시오.
그리고 다음 주일 그 이름을 적어 내십시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함께 기도합시다.
때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키우실 것입니다. 자라게 하실 것입니다.
그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익혀 주실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와 보라!” 한 마디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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