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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역사에 등용된 사람들 [시 37: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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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구원역사에 등용된 사람들
본문 : 시37:23-28>


□ 구원역사에 등용된 사람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
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
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
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
하라 그리하면 영영히 거하리니 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
지 아니하심이로다 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시편 37:23-28>

요즘 우리나라는 신용불량자가 무려 386만 명이나 된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신용불량자>란 의미로 보면, 그 사람의 말은 믿을 수 없다는 의미도 되고, 그
런 사람과는 무슨 일을 믿고 함께 할 수 없다는 의미도 되고, 그런 사람과의 약
속은 지킬 수 없다는 의미도 될 것입니다.
사정이야 어떻든, 우리 사회의 신용불량자가 400만 명에 가까운 나라가 되었다
는 것은 국제사회적으로도 도움이 되지 못할 뿐더러 빨리 이런 일이 사회적으
로 사라져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저는 신용불량자는 경제적 측면에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우리 신앙의 세계에서도 하나님 앞에 신용불량자들이 있게 마련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신용불량자로 리스트에 올랐다
면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무슨 일을 함께 할 수 없다고 인정되었다면, 장차 무슨 일
을 하나님과 상의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구원역사를 이루어 나가면서 사람들과 함께 이루어 나
아갑니다. 그것도 잘난 사람들과만 함께 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이만하면 쓸 수 있겠다고 인정하는 사람들을 등용하여 쓰신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강림절 넷째 주일을 맞이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등용된 세
사람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에 등용된 사람들 중에
이 세 사람들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은 무엇인가를 살펴서 남은 우리의 신
앙생활에 본을 삼아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1. 첫째가, 자신의 몸을 바친 <마리아>입니다. (눅1:26-38)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한 남자와 결혼을 약속한 약혼녀이었습니다.
이제 얼마 있으면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는 부푼 꿈에 결혼식 날만 손꼽아 기다
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약혼녀들의 공통적인 생각이 바로 이런 것 아니겠습니
까?
그런데 난데없이 가브리엘 천사의 수태(受胎) 예고를 들었을 때 얼마나 당황했
겠습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이런 일이 어찌 내게 있을 수 있겠는가?'고 하였습니다.
이 말 속에는 인간적인 당혹감이 서려 있는 말입니다.
처녀가 잉태하였다면 지금도 떳떳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하물며 유대인 사회에서야 더할 나위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 마리아와 천사와의 대화를 보더라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누가복음 1장 28절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
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
고 생각하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 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
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
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
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
로 내게 이루어 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마리아는 나중에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를 가지고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몸을 구원역사에 쓰려는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맡긴다는 뜻이
었습니다. 이러한 마리아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 주님은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강생하게 되었습니다.

내게 이러한 일이 닥친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하였을까?
아니 우리 딸에게 그런 일이 생겼으면 어떻게 반응하였을까?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조그마한 명예 문제로 서로 얼굴을 붉히면서 세상 법정으로 고소를 제
기하는 형편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마리아는 두고두고 존경을 받을만한 여인입니다. 인류 역사
상 성모 마리아처럼 존경을 받는 사람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자신의 몸을 바쳤기 때문입니다.

2. 두번째, 벳바게 동네의 <나귀주인> 입니다. (막11:1-6)
이 사람의 이름은 나타나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쓰시겠다고 할 때 거절하지 않고 허락하였습니다.
얼른 보면 으레히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 나귀주인의 믿음이 대단한 믿음이었
습니다. 자신의 소유로 구원역사에 동참한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나귀새끼라 할지라도 주님이 쓰겠다는데 주저하지 않고 내 주었다는 것
은 보통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평소에 주님께 대한 존경과 경외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오늘 내게 이러한 경우가 닥친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내 것이라고 소유하고 있는 것을 주저 없이 내어놓을 수 있을까?
요즘 교회 일을 하는 것도 보면, 희생이니, 손해보는 일은 안 하려고들 합니다.
어떤 교인이 시험 들어 그 교회를 떠나면서 그동안 십일조 헌금했던 것 도로
내 놓으라고 하였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 아니겠습니
까?'
요즘 말세가 되어 막가자는 교인들도 생겼는데, 이 나귀주인을 보면 볼수록 그
런 사람들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주님의 구원사역은 성취되었다고 봅니다.
주님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고 하지는 않는지 깊이 반성
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3. 셋째로, 억지로 십자가를 진 <구레네 시몬> 입니다. (눅23:26)
<구레네>(Cyrene)는 북 아프리카 리비아의 서울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과 6장에 보면 그곳에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이 안디옥 교회에서 희랍인들에게 전도를 많이 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아무튼 먼 거리에서 예루살렘까지 와 유월절 명절을 지키려고 왔다가, 난데없
는 봉변을 당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재수 없는 사람이었다고 봅
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게 된 사람이었습니다.
본래 십자가 형틀에 죽는 사람은 자기의 십자가를 메고 가야하는 것이었는데, 예수님은 너무나 지쳐
서 골고다 언덕길에서 일곱 번 쓰러졌습니다.
하도 기운이 지친 것을 본 로마 병정은 이것을 구경하던 행인 중에 무작위로 찍
은 것에 걸려든 사람이 시몬이었습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재수 없이 걸려든 경우입니다.
그러나 억지로라도 주님의 십자가를 질 수 있었다는 일은 매우 의미 깊은 일이
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에는 억지로라도 감당케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손해인 것 같이 보이지만, 구원역사의 등용된 측
면에서 보면 최대의 영광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구레네 시몬의 가정은 모두 구원 얻게 되었고 예수의 제자가 되
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주님 위하는 일에는 억지로라도 감당하면 자신에게 복이 됩니다.

오늘도 구레네 시몬 같이 주님 사역에 억지로라도 등용되어 십자가의 고통에
동참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오늘의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구경만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졌습니
다.
십자가 행렬에 서서 구경하던 무리들처럼, 오늘도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얼마
나 많습니까?
아니, 구레네 시몬은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울 때 그것을 지고 갔는데, 오늘
의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입술로만 십자가를 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생각으로만 십자가를 감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십자가는 자원해 질 수 있는 일은 못됩니다.
억지로 져야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순교를 자원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순교의 잔을 마시도록 하니까 순교하게 되는 것이지요.

생명의 꽃은 순교의 피 위에 피어납니다.
오늘 한국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기까지, 내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기까지, 한
국교회가 이토록 아름답게 성장되고 교회가 세워지기까지, 수많은 땀과 눈물
과 희생의 피가 있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순교의 피를 머금고 성장해 온 교회입
니다.

19세기말 캐나다의 죤 맥켄지라는 젊은 신학도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비참한
한반도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 땅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지, 저 불쌍한
민족에게 찾아가 예수님을 전해야지. 캐나다 장로교회에 가서 한국교회 선교사
로 가겠다고 신청을 했으나 아직까지 캐나다 장로교회에서는 한국 선교사 파
송 계획이 전혀 없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
나 맥켄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마다 찾아다니며 한국의 상황을 알렸습
니다. 한반도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시급한 것인가 하는 것을 그들에게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교회 저 교회에서 약간의 여비를 모금하여 1893년
한국 땅을 찾아옵니다. 낯 설고 물 설은 땅 한국 땅. 이 백성을 구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한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한국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
다. 옷을 한국사람처럼 입었지만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평생 버터와 치즈만 먹
고 살았던 선교사님은 한국사람이 되기 위해서 된장과 고추장만 먹었습니다.
위장은 불이 나는 것만 같았고 몇 년이 지나 위장에 큰 탈이 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태양이 작렬하는 여름날 밭에 나가서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한국사람들과 똑
같이 일하다가 일사병으로 고생을 하게 됩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서울의 언
더우드가 크리스마스날 케이크과 치즈, 우유와 설탕을 보냅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젊은 맥켄지는 통곡을 합니다. 부모님이 보고 싶었습니다. 캐나다로 돌아
가고 싶었습니다. 한국 땅에 선교가 불가능하게만 보여졌습니다. 그래서 이것
먹고 나면 더 이상 한국 땅에 복음을 전할 수 없겠다 싶어서 케이크을 마을 사
람들에게 나누어줍니다. 우유와 설탕을 동네아이들에게 나누어줍니다. 그 날
은 더 많은 된장과 고추장을 먹었다고 합니다. 일사병으로 고열이 하늘을 찔렀
고 정신착란증으로 시달려야 했습니다. 외로움과 고독에 시달리다가 이름 없
이 황해도 솔내 마을에서 죽어갔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캐나다 장로교회
는 황해도에 선교사를 보냈고 함경도 원산과 황해도 솔내에 교회를 세워 캐나
다 장로교회에서 보낸 많은 선교사들이 그 땅에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한 알의 밀이 되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누군가가 십자가를 졌기에 오늘 우리들이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조만간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나라에서 저들을 만날 터인데,
나는 어떤 십자가를 지고 복음사역을 위해 교회를 봉사했는가? 깊이 생각하면
서 우리를 위해 희생 제물로 오신 그리스도를 바로 영접할 수 있기를 바랍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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