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막 5:25-34)

  • 잡초 잡초
  • 649
  • 0

첨부 1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막 5:25-34)

작가 오혜령 씨는 이화여고,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64, 65년 중앙일간지 신춘문예에 잇따라 당선되었고, 연극영화예술상 신인상, 연극대상도 수상했습니다. 76년엔 36살의 나이로 세계언론인작가대회 사무총장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70년대에 희곡 작가로, 배우로, 방송인으로, 또 수필 작가로 숱한 소녀들의 편지나 엽서에 그녀의 글귀가 인용될 정도로 사랑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미션 스쿨을 다녔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흔히 똑똑한 지성인들이 잘 빠지는 길을 걸어갔습니다. "내 그물은 내가 채운다"는 자기 과신에 잡혀 예수 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30대 꽃다운 나이에 위암과 임파선 암을 진단 받고 3개월 시한부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날마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매일 달력의 숫자에 빨간 색연필로 빗금을 쳐나가면서 죽을 날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예정된 죽음의 날짜가 며칠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물만 먹어도 토했고 혈변을 보는 고통은 계속 되었습니다. 그때 매주 그에게 꽃을 보내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날도 "희망을 버리지 말라"는 메모와 함께 백합 50송이를 보내왔습니다. 그는 반시간 가까이 꽃에 얼굴을 파묻고 가만히 있었다고 합니다. 어쩐 일인지 갑자기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그녀의 목덜미를 강하게 낚아채는 손길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정신없이 방바닥에 나동그라졌습니다. 직감적으로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를 찾아오셨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의 그물이 텅 비어 있을 때 실패의 현장에 주님께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관념적으로 지식적으로 알고 있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주로 자신을 찾아 온 것을 직감적으로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오혜령씨는 주님의 임재 앞에 그는 반사적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왜 죽음의 한복판에까지 따라오시는 것입니까"그 말을 내뱉고 나자 그 동안 주님을 나 몰라라 하면서 마음대로 살았던 자기 죄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어디서부터 회개해야 할지 몰라 눈물만 쏟아졌습니다. 며칠 동안 화선지에 붓글씨로 자기 죄를 회개했습니다. 수십 개의 양초가 녹아내릴 때까지 회개하고 또 회개했습니다.

그렇게 회개하기를 반년 가까이 된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기도와 찬양을 하며 혼자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온몸에 오한이 덮쳐 왔습니다. '이제 죽는 시간이 다가왔구나' 그는 죽음을 예감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너무 추워서 이불깃을 잡아당기는데 겨드랑이에 잡히던 임파선 암 덩어리가 만져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어깨에 나 있던 복숭아씨만 하던 멍울도 사라져 버렸고, 복수로 차올랐던 배도 완전히 꺼져 있었습니다. 그는 살아 계신 주님께서 자기를 찾으신 것을 알았습니다.  생명을 쏟고 있는 혈루증을 앓고 사는 여인처럼  주님을 영으로 접촉하여 만지고 새로운 생명을 얻었던 것입니다.

오혜령씨는 최근에 쓴 그의 묵상기도 집에서 이런 시를 썼습니다.

'당신은 춤 나는 춤꾼'



춤이신 하나님

인생은 한바탕 춤입니다

신바람 나는 춤입니다

가장 솔직한 자아 표현이

춤입니다

온 존재로 춤을 추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미리 안무해서

기억해 내며 추는 춤이 아닙니다

그 때 그 때 마다

마음으로 추는 춤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질병도 은혜요 실패도 은혜요 마지막에 죽음도 은혜인 것입니다. 불행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불행이 다행으로 한숨이 찬송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패 때문에 주님을 찾았고 질병 때문에 주님께 나왔고  사람의 힘으로 안 되는 답답함 때문에 은혜에 자리에 있게 된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면 이 모든 불행은 축복으로 간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와 같은 인생역전의 주인공 한 사람을 소개하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열 두해를 혈루증을 않던 한 여인의 인생역전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막5:25-26) "열 두해를 혈루증(血漏症)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26)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虛費)하였으되 아무 효 험(效驗)이 없고 도리어 더 중(重)하여졌던 차에"

살아갈 소망이 없는 여인입니다.

건강을 잃었다는 것은 모든 것 중에 한 가지를 잃었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것과 같은 것입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하였습니다.  혈루증은 비정상적으로 피가 세어 나오는 병입니다. 이로 인하여 친구도 가족도 잃어 버렸습니다. 많은 재산을 의원에 갖다 바치고 허비하였으나 치료받지 못하고 더욱 악화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열 두해를 앓았다는 것은  절망이 극에 달했다는  뜻입니다. 12지파, 12제자, 열 두문, 열두 돌은 모든 것이 다 찼음을 의미합니다. 인생막장에 이른 것입니다. 살아갈 소망이 전혀 없는 절망적인 불행한 여인이었습니다.

모든 관계가 끊긴 외로운 여자입니다. 

혈루병은 피가 흐르는 병으로 자궁암과 같은 병인 것입니다. 여인의 몸에서 피가 그치지 않고 흐르는 병이었습니다.  이병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야 하는 모든 관계로부터 다 떠나야 하는 소외되고 고독한 불쌍한 여인이었습니다. 사람은 서로 가족과 함께 더불어 살고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아무도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만나서도 안 되는 사람입니다.  누가 가까이 오더라도 '가까이 오지 말라, 부정하다 부정하다'라고 손을 저으면서 소리를 치며 접근을 막아야 합니다. 가까이 오면 몸에서 피비린내가 나기 때문입니다.  썩어가는 냄새가  몸에서 나기 때문입니다. 친척도 만날 수 없고 가까운 친구도 만날 수 없고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도  나다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를 완전히 포기하고 홀로 담을 쌓고 그 속에서 생명이 피로 다 세어나가 죽게 되는 병을 앓고 있는 가련한 여인입니다.  말을 들어줄 사람도 함께 말할 말벗이 없어서 살수가 없는 창살 없는 감옥입니다. 이 외로움과 고독은 이 여인에게 더욱 큰 고통이었습니다.   

종교적으로 소외된 여자입니다.

(레15:25-27) "여인의 피의 유출이 그 불결기 외에 있어서 여러 날이 간다든지 그 유출이 불 결기를 지나든지 하면 그 부정을 유출하는 날 동안은 무릇 그 불결한 때와 같이 부정한즉(26) 무릇 그 유출이 있는 날 동안에 그의 눕는 침상은 그에게 불결한 때의 침상과 같고 무릇 그의 앉는 자리도 부정함이 불결의 부정과 같으니(27) 이런 것을 만지는 자는 무릇 부정한즉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 까지 부정할 것이요"

이 병에 걸린 사람은 회당에도 들어가면 안 됩니다. 예배도 볼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하니까 성전에 나가 예배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옛날에는 중동에 물이 귀했습니다. 목욕을 못합니다. 지금이야 우리가 목욕을 자유롭게 하지만 나이 많은 분들은 한겨울에 목욕을 안했습니다. 기껏해야 일년에 한두 번 목욕하면 잘하는 것입니다.  몸에서 악취가 나는 여인이 성전에 들어가 예배도 드릴 수 없는  불쌍한 여인이었습니다.

문제가 있고 아픔이 있고 원한이 있어도 성전에 나가 기도하고 주님께 모든 것을 쏟아 놓아야 사는데 이 여인은 이런 자유도 없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여인입니다.

여자로서 부끄러운 병에 걸린 여자입니다.

남에게 이야기하기조차 수치스러운 병입니다.  예수님께 다가갔다고 하지만 예수님께서 '네가 어디가 아프냐? " 하고 물으시면 부끄러워 대답도 잘 못할 병입니다.  그런 부인병입니다. 당당하게 예수님께 기도해 달라고도 못하고 말할 수도 없고 드러낼 수도 없고 병을 숨어서 앓고 12년을 고통가운데 살아온 여인입니다. 그 아픔을 안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정면으로 나타날 수도 없고 병을 고쳐달라고 애원할 수도 없는 이 여인만의 가슴앓이를 알아야 합니다. 

이 여인은 문둥병과 유출병은 그 사회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질병입니다. 성밖으로 쫒겨나 그들끼지 모여 살던가 가족과 친구들과 떨어져 고립된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성전예배에 참석할 수도 없고 회당에 나가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이런 병은 이혼의 정당한 사유가 되었습니다. 사회에서 쫓겨나고 교회와 단절되고 가정에서 버림받은 삶이 얼마나 비참할까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타락한 아담이후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서 하루하루생명을 쏟아가면서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는 타락한 본성을 가진 인간이 앓아온 질병이었습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생명본질의 유실로 인하여 혈루증을 앓고 있는 본문의 여인과 같습니다. 모든 아담의 후손들은 즉 예수생명 없는 모든 죄인들은 날마다 생명의 유실로 죽어가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인간 누구나 태어나자마자 죽기위해 존재하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혈루증을 앓은 여인처럼 인생의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치료할 수 없는 죽음이란 병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죄의 값은 사망이라 했으니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영적인 파탄 육체의 장막을 벗는 일 영원한 사망으로 가득 찬 혈루증을 앓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예표 합니다.   

이 죽음에 이르는 병인 절망에 처한 여인이 기적 같은 역전인생의 드라마를 연출하였습니다. 무엇이 이 여인으로 하여금 기적을 체험하게 하였을까요? 

본문에서 그 해답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삼단계 과정(27절)

(막5:27-29)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根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1)예수의 소문을 듣고-복음을 들어야 함

예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치료자로 알려지고 있었습니다. 소문을 들었습니다. 거라사 지방의 광인을 온전케 한 소식도 들었습니다.  옷을 벗고 집을 떠나 무덤 가운데서 살아가는 사망으로 충만한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이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하여 들었습니다. 그 큰 역사를 일으키신 주의 권능을 간증 들었을 것입니다. 각처에서 각색 질병을 고치신 치료자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푼 사람들에 관한 성경 기사에는 반드시 '듣고'와 '믿고'라는 단어입니다. 들음이 없이는 믿음이 생성될 수가 없습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 여인은 예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복음이 들려져야 합니다. 

2)무리 가운데 썩여 뒤로 와서/ 은혜의 자리로 나아와야 함/예배/교회

다음은 소문을 듣고 주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그냥 한번 나와 본 것이 아닙니다. 소망을 가지고 나옵니다. 기대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이 여인에게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이 가진 믿음은 소박하고 겸손한 행동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우선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온 믿음입니다. 그 옷에 손만 대어도 병이 고침 받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 것입니다. 다른 병은 다 고쳐도 12년 된 내 병은 못고쳐라고 생각하였다면 예수님께 나오질 못하였을 것입니다.  이 여인은 점도 보았을 것이고 무당에게 궂을 하며 푸닥거리를 하였을 것이고 많은 의사를 찾아갔기도 했고 좋은 약은 다 먹어보았을 것입니다. 재산을 다 소비할 만큼 12년간 무슨 짓을 못하였겠습니까?  그렇게 실패하였지만 예수님에게만은 새로운 소망을 걸고 나옵니다.  이것이 이 여인의 믿음입니다. 

여기저기서 모든 방법을 다 써보아도 불가능하였지만 예수님만은 가능하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나아가 내병을 고쳐달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3)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야 합니다.(주님을 접촉)

이 여인는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예수께 나아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게 됩니다. 이 여인은 기회를 포착합니다. 가까이 가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집니다. 일생 한번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의식적으로 생각과 뜻을 두고 마음을 두고 믿음으로 만진 것입니다. 그때 즉시로 혈루의 근원이 마르게 됨을 몸에 느끼게 된 것입니다. 

(막5:28-29)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根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4)결국은 혈루의 근원이 마르게 됨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혈루의 근원 사망의 유실이 정지된 순간입니다. 즉시로  그리스도의 생명이 공급되어 살리는 주의 영이 이 여인을 만지고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이 생명 되신 그리스도를 접촉하면 모든 죄악과 허물과 사망의 유실이 정지되고 생명을 얻되 더욱 풍성하게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옷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옷자락을 만짐에 그 기적이 있는 것입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주님은 칭찬하셨습니다.(34절) 

여러분 이 혈루의 근원이 마름을 체험하십까? 지금 말씀을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떡으로 생수로 먹을 때 우리 속에서 모든 사망이 왕노릇하는 죽음의 혈루가 멎고 즉시로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음으로 보고 믿음으로 듣고 믿음으로 만지는 사람 믿음으로 체험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배에  나오실 때 생명을 거는 마음으로 기대를 걸고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며 나오는  분들은 찬송을 부르다가 기도를 하다가 말씀을 듣다가 응답을 받을 것이고 상한 마음이 치료받으며 병든 자가 고침을 받게 될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정성을 가지고 뜻을 가지고 주앞에 나와 영으로 주님을 만지시길 바랍니다. 그 때 염려와 근심과 두려움으로 흘러내리던 내 생명이 기쁨과 소망으로 회복되며 소망으로 새아침을 맞게 될 것입니다. 생명이 소모된 가나 혼인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생명으로 채우신 주님의 살리는 영에 접촉을 하면 모든 썩어가는 냄새나는 혈루의 근원이 일순간에 마르게 될 것입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예수님의 옷에 손이 닿은 사람도 많고  옷깃을 스치는 사람도 많은데 어떻게  주님이 알아보셨을까요?

(막5:30-33)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시니(33) 여자가 제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 실을 여짜온대"

주님은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우연히 만진 사람 말고 어쩌다 만진 사람 말고 믿음으로 만진 사람이 누구냐고 묻습니다.  주님의 눈에 띠는 한 여인을 주님은 스치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만나주십니다.  "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시니(33절)" 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여인 믿음으로 소망을 가지고 옷자락을 만지기만 하여도 병이 나을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온 여인을 주님은 외면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말 못할 사정이 있습니까? 남모르는  고통이 있습니까? 도저히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절망 속에 잠겨있는 분이 있습니까?  믿음으로 이시간 능력의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시길 바랍니다. 산상수훈에서 주님은 들에 핀 백합화나 공중에 나는 새를 어떻게 입히시고 먹이시는지를 설명하시고 나서, 하나님은 하잘 것 없는 것도 입히시고 먹이시는데 "하물며 그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을 먹이시고 입히시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우리 주님께는 응답하실 수 있음을 믿고 영으로 말씀의 옷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신 주님의 옷자락을 지금 약속을 옷자락으로 붙드십시오. 

주님의 시선과 마주치는 순간 이 여인은 모든 것을 숨김없이 떨어놓고 맙니다(33절). 감격적인 순간입니다. 이제는 부끄러움과 수치는 다 사라졌습니다. 가슴을 열고 모든 것을 주님께 털어놓기 시작합니다. 주님을 영으로 접촉한 사람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과거에 메여있지않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났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인생이 열리는 것입니다. 사망의 유실이 정지되고 새 생명의 감격으로 간증하며 감격하며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역전의 주인공이 된 여인

(막5: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그야말로 샬롬 에이레네 샬롬의 축복을 하십니다.

1)평안히 가라 이것은 영적인 구원을 말합니다. 

평안은 내적인 주님의 주권의 임함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를 영접하고 주님이 주신 생명을 공급받으면 그때부터 주의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평안  내게 개별적으로 은혜 주시는 평안, 광풍 속에서도 고요히 주무시던 절대적인 평안을 이 여인에게 공급합니다. 믿음으로 하는 모든 행동들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믿음으로 헌신하면 평안을 얻습니다. 믿음으로 봉사하면 평안을 얻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면 주의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2)"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육의 건강을 주십니다.

혈루의 근원이 멎게 된 것을 이 여인도 느끼고 있었으나 자신에게 건강이 회복되었다는 축복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건강도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과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구하노라"

교부들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여인은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집 앞에다 기념비를 세웠답니다. '모월 모일 예수님께서 내 병을 고치시다' 이렇게 기념비를 세워놓고 가는 사람 오는 사람에게 증거하였다고 합니다.

"내가 12년 동안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예수님을 만나게 되어 이렇게 고침 받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39가지의 질병 속에서 절망의 늪에서 예수님의 피 묻은 옷자락을 만지고 주의 은혜로 살아온 오혜령씨의 간증입니다. 

"제가 삶의 에너지를 받는 것은 수면이나 먹거리가 아닙니다. 그건 내 육신만 지탱해줄 뿐입니다. 삶의 활력을 가져오고, 헌신의 힘을 주는 것은 주님을 의지하는  기도입니다. 그 분의 사랑 안에 가만히 있는 경험만으로 한없이 평안해집니다. 영혼의 호흡이라고 할까요. 이 과정에서 은총의 빛이 나를 감쌉니다." 

"하나님과 나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되면 한없는 평화와 고요 속에 들게 됩니다.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지, 무엇을 해야 할 지가 자연스럽게 정리됩니다. 이런 경험이 쌓이고 쌓이면, 어떤 상태에서도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누가 비난하더라도 마음이 평화로운 상태가 지속된다고 고백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열 두해를 혈루증을 앓던 이 여자는 불행한 질병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환자가 아니었다면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가버나움까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을 갈망하거나 예수님에 대한 소문에  귀 기울일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불행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만나 영적으로 육적으로 다 구원받는  은혜를 받아 인생역전의 새로운 생명을 누리면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도 낫겠다는 이 여인의 믿음입니다. 부정한 손 죄악의 손 불순종의 손 사망이 지배하던 내 육신이 주님의 생명과 접촉하면 모든 혈루의 근원이 멎게 될 것입니다. 이 복음을 듣고 주 예수께 나와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여인의 역전의 인생 드라마가 우리로 체험되는 간증이 될 것입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질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