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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탄을 기다리는 사람 (눅 2: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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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 눅 2:25-33
  제목 / 성탄을 기다리는 사람

  예수님이 오시기 직전의 당시의 팔레스타인 지역의 상황은 로마의 식민지하에서 정치적인 자유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로마 정부로부터 부과 받는 과도한 세금과 세리의 횡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절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상황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통받는 백성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심어주어야 할 예루살렘의 종교는 영적으로 침체되고 타락하여 기득권 계층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유대교는 십계명을 613개의 세부조항으로 나누어놓고 지키도록 했습니다. 율법을 "하라" 는 계명 365개, "하지 말라" 는 248개로 세분하여 놓고 백성들에게 맹목적인 복종만을 강요했습니다.

  이러한 당시의 유대인들을 향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마23:25-26)
 
  당시의 유대교는 서민의 종교가 아니었고 귀족을 위한 종교였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그리고 제사장으로 불려지는 엘리트 계층을 위한 귀족 종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유대교는 당시에 죄인으로 불려졌던 세리와 창녀, 그리고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대하여 끊임없는 미움과 정죄만 했을 뿐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나 어떤 프로그램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오셔서 그들과 함께 먹고 교제하자 비난하였습니다. 일반 대중들은 분별력을 잃고 함께 비난하였습니다.
 
  종교가 귀족화 되면 안됩니다.
  누구나 다 들어올 수 있고 누구나 다 들을 수 있는 것이 교회요 복음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유대교는 가난하고 병든 일반 서민들은 들을 수 없는 교훈이었고 지킬 수 없는 무거운 계율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메시야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스스로 메시야 임을 자처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드다" 라 하는 사람이 300여명의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로마에 대항하여 싸웠지만 얼마 못가서 스스로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세례 요한이 약대 털옷을 입고 요단강에서 하나님 나라의 회개를 전파하며 세례를 베풀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그에게 당신이 오시리라 한 그 메시야 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헤롯왕에게 잡혀 순교하자 사람들은 실망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일순간에 자신들을 구원하고 위로하며 새 나라를 세워줄 메시야에 대한 간절한 목마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시므온이라는 사람을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위로를 기다렸다는 이 말은 당시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그대로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가난과 질병 그리고 로마의 정치적 속박과 종교 기득권 층으로부터 소외되어 외롭고 고단한 수많은 일반 대중들의 마음을 담아내는 표현입니다.
 
  기다림이 없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기다릴 것이 없으므로 절망하게 됩니다. 우리 인간의 행복은 대체로 미래 지향적인 대망에 관계합니다. 오늘 당장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 보다 내일 어떻게 사느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기다릴 것이 있느냐, 약속이 있느냐, 즉 미래에 대한 보증이 있느냐에 따라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합니다.

  실낙원의 저자인 '밀턴'은 기다림의 행복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습니다. ,
  "내가 역행해서 만들어 가는 것 보다는,내 속에서 이루어져가도록 대망하고 기다리는 것이 훨씬 더 위대하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역사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손길 앞에 잠잠히 참아 기다리면 반드시 위로 받을 날이올 것입니다. 자신이 억지로 역사를 만들려고 하지말고 흐르는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고 하루하루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고 아기 예수님을 보게 됨으로 평생의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결국 그는 첫 번 성탄을 기다렸던 사람인 것입니다. 성탄은 기다리는 사람에게 이루어집니다.

  이번 성탄절에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립시다.
 
  어떻게 기다렸습니까?

  의롭고 경건한 믿음으로 기다렸습니다. 
  당시의 모든 사람들이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정작 메시아를 맞이하고 알아본 사람은 몇 사람 되지 않았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실상은 기다리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가 오기를 고대하면서도 메시아가 오면 안 된다는 이중 구조적인 신앙관념에 빠져있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모습에서 이런 이중 구조적 신앙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천국이 좋다는 것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 천국 갈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천국 가라고 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울고 불고 난리를 냅니다.
  그것은 천국에 대한 믿음과 그 믿음에 따른 삶의 모습이 없기 때문입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은 메시아를 맞을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25절에 보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 라고 했습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아야 합니다. 성도는 속화되면 안되고 성화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능력은 신앙의 순수성에서 옵니다.

  세상과 가까워지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세상과는 멀어지지만 성화되어 속된 세상에 하나님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계 14:4절에 보면 성도들의 성결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여자들이란 음녀로 세속적인 가치관과 사고 방식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은 세속적 가치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성결은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빈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I'm nothing!
  세속적인 욕심과 정욕을 비어 버리고 깨긋하게 되어진 마음 자세를 말합니니다. 이것이 성탄의 의미입니다.
  요즘 세상은 자기가 뭐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느 날 하늘의 천사가 세 친구를 찾아와 소원을 물었습니다.
  천사가 첫 번째 사람에게 소원을 물었더니 자기는 별처럼 빛나고 싶다고 하여 Star가 되게 해주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왕이 되고 싶다고 하여 King이 되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사람은 욕심이 많아 자기는 기왕이면 둘 다 되고 싶다고 하여 스타킹이 되게 해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자신을 낮출 줄 압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 2:5-8절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마음은 자신을 낮추신 겸손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에 있는 성탄 기념교회는 들어가는 입구가 1.2m 밖에 안 되어 아주 좁게 만들어져 있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작게 만들었을까요?
  어떤 권력자도 예수님이 탄생하신 거룩한 장소에 말을 타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작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문을 통과하려면 모두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그래서 이문을 '겸손의 문'이라고 이 합니다. 

  겸손의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양옆에 40여 개의 웅장한 기둥들이 세워져 건물을 받치고 있고 예수님의 탄생 장소로 알려진 곳에 '베들레헴의 별'이라는 대리석으로 다듬어진 아름다운 별 모양의 조각품으로 장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원래부터 예수님 탄생 장소에 이런 성탄교회가 있던 것은 아닙니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 그의 325년에 그의 모친 헬레나가 성지 순례를 왔다가 기념 교회들을 건축하기 시작하였는데 가장 먼저 건축한 된 것이 바로 성탄 기념교회입니다.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성대한 성탄 축하예배가 드려지지만 그곳에 기념교회는 있어도 예수는 없습니다.

  성경에 묘사된 예수님의 탄생하신 곳은 그렇게 웅장하고 아름답기만 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에는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눅2:7) 라고 만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성탄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신 예수가 주인이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태어난 장소, 누었던 구유 등에 더 관심을 쏟습니다.

이번 성탄절에는 성탄의 들러리들이 높임을 받는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가 높임을 받으시게 하여야 합니다. 성탄의 참 뜻을 깨닫고 예수 오심의 참뜻을 실천하는 것이 성탄절을 의미 있게 보내는 것입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사람은 성탄을 의미있게 보낼 수 있습니다. 성탄절을 의미있게 보내기 위해 다음의 세 가지를 제안하려고 합니다. 

  ① 성탄절 예배 참석하기
  동방박사들이 예물을 가지고 아기 예수께 경배하였던 것처럼 크리스마스에는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에 온가족이 반드시 참석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성탄절에 가장 영광과 축하를 받으실 분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크리스마스를 즐기면서 성탄 감사 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작은 정성이라도 예물을 드리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② 전도의 기회로
  성탄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날이니 한 번만이라도 교회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라고 불신 가족이나, 평소 알고 지내던 불신 친구나 이웃에게 전도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영혼 구원 때문이었습니다. 당연히 성탄절에 영혼 구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야 합니다. 예수님께 드리는 가장 귀한 선물은 우리가 사람을 전도하여 주님께로 데려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많은 액수의 헌금보다 더 기뻐하시는 것은 한 영혼을 주님께로 데려오는 것입니다. 

  ③ 예수 이름으로 선한 일을 한 가지 씩
  성탄절은 우리가 복을 받은 날입니다. 받은 복은 또 다시 누군가에게 베풀 때 더 풍성해지고 가치가 있는 법입니다. 골목길을 청소한다든지, 남의 집 대문 앞을 쓸어 준다든지, 구세군의 자선 남비에 자선금을 넣는다든지, 가난한 이웃을 찾아 구제금을 전달한다든지, 택시비의 거스름 돈을 성탄 선물이라고 하며 기사에게 돌려준다든지, 헌혈차를 찾아 헌혈을 한다든지 등등 이번 성탄절에 한 가지씩 착한 일을 해봅시다.

  성탄은 주님의 날입니다.
  우리의 기쁨이 주님께 돌려져야 하고 모든 감사와 축하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려져야 합니다. 아무 의미도 모른 채 세속적 잔치 분위기에서 들뜨지 말고 차분하면서도 깊은 마음으로 성탄의 참 뜻을 깨달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에서 첫 번째 성탄을 기다렸던 시므온에 대한 설명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가 성령이라는 단어입니다.
  눅 2:25-2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① 성령이 그 위에 계셨고
  ② 성령의 지시를 받았고
  ③ 성령의 감동으로 

  결국 성탄을 기다리는 사람은 성령의 사람입니다.
  성령의 사람만이 성탄의 의미를 알고 구세주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성탄의 임재를 느끼고 그의 지시를 받아서 사는 삶이 되게 합시다. 늘 성령의 감동을 받아 심령이 메마르지 않고 은혜가 충만한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사람은 
  의롭고 경건해야 합니다. 즉 믿음이 그 삶에 촉촉이 젖어 나오는 사람입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을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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