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이 되자 / 엡 4:22-24

  • 잡초 잡초
  • 694
  • 0

첨부 1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이 되자

본문: 엡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은 성도라면 반드시 벗어 버려야 할 것과 또한 반드시 입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교훈이 무엇인가를 말씀을 통해 상고하고자 합니다.

1.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옛날 중국의 어진 임금이 민정 시찰을 다니는 중에 다리 밑에서 거지 고아를 발견했습니다. 측은한 마음에 궁궐로 데려다가 목욕을 시키고 새 옷을 갈아 입혀 놓으니 거지 고아가 아니라 귀여운 소년이 되었습니다. 마침 임금은 자식이 없던 터라 왕후와 의논하여 그 거지 고아를 왕자로 맞아들였습니다. 왕자가 생긴 것을 축하하기 위해 온 궁궐이 떠들썩한 잔치를 벌렸습니다. 이제는 다리 밑에 사는 고아 거지가 아니라 당당한 임금의 아들 왕자가 된 것입니다. 임금은 자기 방 옆에 왕자 방을 꾸며 고급 침대에 비단 이불을 펼쳐서 그곳에서 왕자가 생활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침에 왕자 방에 가보니 왕자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임금은 신하들에게 왕자를 찾아오라고 호령하였습니다. 그러나 궁궐을 샅샅이 뒤져도 왕자는 없었습니다. 그때 지혜 있는 신하 한 사람이 급히 전에 왕자가 생활하던 다리 밑으로 가 보았더니 왕자가 거적떼기를 덮고 단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왕자를 궁중으로 데려왔으나 다음날 밤에도 왕자는 궁을 빠져나가 더러운 거적떼기를 쓰고 단잠을 잤습니다. 그 이튿날 임금 앞에 불려가 호되게 야단을 맞은 왕자는 도무지 고급 침대와 비단 이불에선 잠이 오지 않으니 밤에만 다리 밑에 가서 자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임금은 왕자가 되고서도 여전히 거지 고아의 생활을 버리지 못하는가 라고 꾸짖으면서 만일 다시 거지 생활로 돌아가면 왕자의 입적을 취소하겠다고 엄히 명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는 죄의 종이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왕자처럼 자꾸 옛 생활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옛 사람을 벗는 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첫째,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입니다.(눅9:61- 62) 옛 사람은 구습에 젖어 있기 때문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사람입니다. 반면에 새 사람은 앞을 향해 전진하는 사람이지요. 옛 사람은 과거에 집착해서 미래에 희망을 만들지 못하지만, 새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미래와 희망을 날마다 만들어 나가는 사람입니다. 옛 사람은 광야에서 애굽의 종노릇하던 때를 그리워하는 이스라엘 백성처럼, 원망과 불평으로 그 입술이 쓴 소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새 사람은 남을 높이고 신뢰하고 사랑하며 칭찬하는 말들로 그 입에 능력의 말들로 가득 차 있게 됩니다.
옛 사람은 율법주의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항상 남을 판단하고 심판하고 정죄하기에 바쁜 인생을 살아갑니다. 남과 항상 대조하고 비교하면서 자신을 점점 더 죽여가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새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의 날개 아래서 은혜의 복을 먹고 살아갑니다. 새 사람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인하여 모든 죄를 용서받은 사람입니다. 더 이상 정죄받을 일도 없고 더 이상 죄로 인하여 좌절할 필요가 없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날마다 주님을 찬미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새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바이츠체커라고 하는 대통령이 패전 40주년 기념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거에 대하여 눈을 감는 자는 현재에도 눈을 멀게 된다."
우리는 이 말을 깊이 새겨들어야 합니다. 여러분 과거에 매이면 미래가 없습니다. 그러나 과거를 잊으면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됩니다. 과거는 잘했건 못했건 이미 지나가 버리고 지금 없는 것입니다. 잘했으면 한번 자축하고 지워 버릴 일이요 잘못했으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면 됩니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에 인생의 여정에 어떠한 집착도 금기입니다. 지나간 영광의 시간에 너무 오래 취해 있거나 흘러간 고통의 시간에 너무 오래 갇혀 있으면, 미래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과거는 지나갔으며, 지나간 것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교훈뿐입니다."
둘째, 옛 사람을 벗는 다는 것은 과거의 나쁜 습관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김 유신 장군이 젊어서 늘 주색에 빠지는 것을 보고, 하루는 그의 모친이 "치국평천하를 꿈꾸는 사람이 항상 주색에 빠져서야 어찌 큰 뜻을 이룰 수 있겠느냐?"고 눈물로 타이를 때 그는 결심하고 술집에도 기생집에도 안 갔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오는 중 말 위에서 졸다 보니 어느새 영특한 말이라 전에 잘 다니던 기생집 앞에 와서 멈추어 섰습니다. 이때에 눈을 든 김유신 장군은 말에서 내려 "왜 나를 이리로 데려 왔느냐?"고 호통을 치고 긴칼을 뽑아 그 애마의 목을 쳐서 떨어뜨리고 뚜벅뚜벅 걸어왔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습관을 버리지 않고 오래 갖고 있으면 습관의 노예가 되고, 잘못된 습관이 옳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한 젊은이가 현인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바른 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현인은 젊은이를 산으로 데리고 가서 갓 심어진 나무를 뽑아 보라고 했습니다. 나무는 금방 뽑혔습니다. 현인은 좀 깊게 심어진 나무를 뽑아 보라고 했습니다. 그 나무는 힘을 들여야 뽑혔다. 이번엔 오래된 나무를 뽑아 보라고 했습니다. 젊은이가 도저히 뽑을 수 없다고 하자 현인이 말했습니다.
『인간에게 습관이란 이런 것이다. 나쁜 습관이 오래 되면 버릴 수 없다. 바른 생활은 좋은 습관 길들이기부터 시작된다』
셋째, 옛 사람을 버린다는 것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입니다.
괜히 열이 나고, 힘이 빠지고, 아픈 법은 없습니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어떤 병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발견하면 빨리 조치를 취해 병을 치료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현실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짜증나고, 무력해지고, 권태로워졌다면 반드시 원인이 있습니다. 괜히 짜증나고, 피곤하고, 신경질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영혼에 이상이 생긴 것입니다. 그곳을 빨리 고쳐야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현실의 삶은 그런 대로 괜찮아 보여도 미래가 없습니다. 희망과 비전 없이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간에게 비전과 희망을 빼면 동물과 다를 바 없습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거나 쉽게 절망하거나 좌절하는 요소가 자신에게 있다면 교회에 잘 다니고, 신앙생활을 잘 해왔다 할지라도 어딘가 병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문제는 우리의 과거가 정리되지 않았거나 과거의 상처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언젠가 현실을 괴롭게 하고, 미래의 문을 막게 될 것입니다. 과거의 상처중에는 타인으로부터 무시당하고 거부, 거절 그리고 모욕과 학대와 폭행을 당했을 때 그로 인한 열등감과 피해의식 등 입니다. 특히 과거의 치명적인 실수나 돌이킬 수 없는 죄가 있습니다. 이것은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 남아서 상처가 됩니다. 이러한 상처의 문제는 잊혀지고 없어진 것 같아도 현실에 영향을 줍니다. 삐뚤어진 가치관을 만들기 때문에 상처가 무섭습니다. 달걀을 먹다가 체한 사람은 달걀을 먹으려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맛있어도 상처 때문에 피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상처는 바른 관점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잘못된 가치관은 잘못된 성품을 만듭니다. 그래서 곱고 순해야 할 성품에 매듭이 많이 생깁니다. 성품에 매듭이 있는 사람은 잘 지내다가 매듭에 걸리면 뒤틀립니다. 자기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과거의 상처, 현실의 불만족, 미래에 대한 절망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옛 사람을 지울 수 있다면 새로운 날, 축복의 날을 볼 것입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잘못된 가치관, 성품, 습관, 관계, 믿음을 고쳐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이런 것들이 치유될 수 있을까요? 의외로 우리가 수 없이 들어왔던 말씀 속에 해답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당신의 옛 사람은 당신이 예수를 믿는 그 순간에 죽었습니다. 옛 사람은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입니다.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옛 사람은 인정사정 볼 것 없습니다. 여러분의 성품, 습관, 관계, 믿음에서 옛 사람을 끊어야 합니다. 이것은 마약과 같습니다. 끊지 않으면 죽습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유혹이, 구습이 나를 붙들고 있기 때문에 끊지 않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우리 옛 사람은 죽었습니다. 이 원칙적인 문제를 다시 여러분에게 이야기합니다. 옛 사람이 죽지 않으면 방법이 없습니다. 이것을 끊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육의 종노릇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지 않는 한 여러분의 미래는 없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몇 년 전 일본의 한 월간지가 42년 전에 있었던 모리 요시로 일본 총리의 과거사를 공개하여 그를 곤경에 빠트린 적이 있었다. 그 월간지는 모리 총리가 20세 때 윤락가에서 매춘 단속에 검거됐었다고 폭로했던 것입니다. 당시 도쿄 사창가에 대한 경찰의 일제 단속으로 약 20명의 유락업자와 고객들이 검거됐는데 와세다대학 1년 생이던 모리 요시로도 들어 있었고 얼마 후 그는 기소유예로 풀려났다는 것입니다. 그 월간지는 당시 단속에 관여했던 전직 경찰 간부의 증언을 소개하고 모리 총리가 매춘방지법을 위반한 범죄경력을 지닌 전과자라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이에 대해 모리 총리는 동 월간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또 월간지 측은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경찰 조회를 주장했습니다. 그 재판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42년 전의 전과'라는 표현을 보고 그런 식으로 과거를 뒤져낸다고 할 때 과거의 허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이며 시인 윤동주의 표현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도 없게 살아온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지난날의 허물들을 지워버리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전과를 그분의 컴퓨터에서 지울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1)
이 말씀을 의지해 선포하십시오. 유혹은 끊임없이 옵니다. 그러나 그것을 끊어야 합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육의 공격은 끊임없이 계속됩니다.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보혈과 십자가뿐입니다. 믿음으로 선포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안의 승리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완성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사탄의 공격, 본능, 죄가 공격합니다. 그 때마다 선포하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내 육은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선포하고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넷째, 옛사람을 벗는 다는 것은 과거의 자기 주의, 주장, 철학, 자기 의(義), 율법, 가치관을 사도바울 처럼 배설물과 같이 여기고(빌3:8), 성경 말씀을 내 삶의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2.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거짓말, 분노, 도적질, 더러운 언어, 성령 모독, 모든 악독, 노함, 분냄, 떠드는 것, 훼방하는 것을 씻어내고 서로 불쌍히 여겨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서하듯 서로 용서하십시오,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
비결은 하나입니다. 십자가입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옛 사람의 모습이 발견된다면 예수의 이름으로 끊으십시오. 선포하십시오. 명령하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승리의 개선가를 부르게 됩니다.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벧전4:3) 우리가 행한 것은 과거로 족합니다. 과거를 현재로 끌고 오지 마십시오. 과거를 가지고 미래를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과거는 끊임없이 내 안으로 들어오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 때마다 선포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육은 이미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땔감이 없으면 불은 꺼집니다. 무섭게 타던 불도 기도의 땔감이 없으면 사그라집니다. 그래서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크리스천의 삶은 지뢰밭을 건너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손을 잡고 가면 아무리 지뢰가 많아도 넉넉히 건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믿는 자들을 넘어뜨리려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하면 승리는 날마다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

3. 악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한 곳에 게으름뱅이가 있었습니다. 게으름으로 인하여 빚을 지게 되었는데, 뒤에 도무지 돈을 갚을 생각을 안 했습니다. 임자는 참고 기다리다 못하여 와서 물었습니다. "그래 당신은 빚진 돈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게요"하고. 그러자 그 사내는 대답하여 "아! 생각하고 말고요. 실은 세 가지 일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데, 어디 그 가운데 하나이니 됩니까? 그래 답답해만 하고 있는 참입니다"라고. 임자가 "그래 그 세 가지란 도대체 무어요?"하고 다시 묻자, "그것은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마는, 정 말씀하라시니 합시다. 그 하나는 돈을 빌려준 임자가 갑자기 죽어버리면 좋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차용증서가 분실되든가, 불에 타던가 했으면 하는 것이고, 셋째는 길을 가다가 우연스럽게도 대금이 든 주머니를 얻었으면 좋겠다는 것인데, 운이 나빠 어디 하나인들 성취가 됩니까? 그래 답답해만 하고 있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게으름뱅이의 하는 일과 생각은 모두 이렇듯 허망한 일뿐인 것입니다. 이것은 악한 생각입니다. 악한 생각을 버리고 살아가야 합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淫亂)과 도적질과 살인(殺人)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홀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막7:21,22)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속에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에스겔36:26)

4.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어느 대학 졸업식에서 축하객인 한 사람이 학생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나무를 톱으로 켜본 사람은 손을 들어보십시오" 거의 모두 손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톱밥을 켜본 사람은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톱밥은 이미 켜졌기 때문에 켤 수 없습니다. 과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로 걱정하는 것은 톱밥을 켜려는 일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따금 과거의 일로 괴로워하거나 용기를 잃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톱밥을 켜는 것처럼 아무런 의미 없는 일입니다. 과거라는 발목에 붙잡혀서 찬란한 미래, 보증된 미래의 영상이 희미해집니까? 그러므로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급선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 충만을 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살리는 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현재 나의 삶에 살리는 영이신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이 과거의 상처가 나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과거에 내 외모 때문에 정말 위축된 삶을 살았습니다." 반면에 다른 분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외모는 부족해도 즐겁게 살아야지요. 웃고 사니까 사람들이 좋아하던데요." 성령 충만한 삶은 현재의 삶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상처에 집중하며 살지 마십시오. 성령 충만한 은혜로 현재를 활기차게 살아가십시오.
부자 죄인이었던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불러 나무에서 내려오라 하시고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말씀하실 때 삭개오는 자기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뉘 것을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나 갚겠다고 자원하여 말했습니다 그의 회심은 하나님과도 바른 관계를 맺고 사람과도 바른 관계를 맺게 했습니다.
한 젊은이가 어머니의 마음을 찢어놓고 아내의 생활을 망쳐놓곤 했습니다.직장을 얻었다가는 술과 도박으로 도로 잃곤 했습니다 가족들이 아무리 도우려고 해도 안되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예수 믿는 친구에게 『나는 남미로 가서 생활을 새로 시작해 볼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네가 그 곳에 가도 네 옛사람 그대로 가지고 옛 사람의 습관과 죄를 짓게 되면 아무 소용없어 외부적인 조건이나 새로운 환경이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해 자네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이 한가지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거야 그러면 분명히 다시 태어나게 될거야』라고 했습니다 이 때 이 말이 화살처럼 그 젊은이의 가슴을 꿰뚫었습니다 그는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아 죄를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혀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중생만이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중생하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요한일서 5장4절).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날 때 세상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편에 계셔서 힘과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남을 사랑하게 됩니다 거듭난 사람의 확실한 표적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요한일서 3장14절).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순종하고 그를 위해 살게 됩니다 정말로 거듭나서 심령상태가 바로 서게 되면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교인으로서 주님께 순종하며 매일 매일 주를 위해 선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5. 의와 진리로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려면 추구하는 것이 달라져야 합니다. 지난날에는 남보다 잘 먹고 더 크고 좋은 집과 차를 갖는 것을 추구했다면, 이제는 올바르고 거룩한 생활로의 삶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죄에 종노릇하지 않는 것이 승리하는 크리스천 삶의 비결입니다. 벗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새 옷을 입으셔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이것이 성령님의 옷입니다. 새 사람의 옷, 그리스도의 옷입니다. 새 사람의 옷은 세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24절입니다.
첫째는 의, 둘째는 진리, 셋째는 거룩함입니다. 이것이 새 사람의 세 가지 특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서 우리 옛 사람은 이미 죽었습니다. 거기서 끝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의와 진리로 새사람이 되어야 하고, 육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소생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이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누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거룩하고 경건하여 지는 것은 수도원이나 산 속에 들어가 수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입니다.(약1:27)

6.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인생을 살아갈 때, 평생동안 잘 사는 길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야 실패하지 않고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믿음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믿음이 잘 믿는 믿음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잘 믿고 있는지를, 잘못 믿고 있는지를 구별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반석과 같이 변하지 않는 견고함입니다. 변하지 않는 믿음이 좋은 믿음이요, 변하는 믿음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 안에 쓰여지는 모든 기구들에 반드시 금을 입히도록 하셨습니다. 법궤도 금을 입혀야 합니다. 법궤 위의 스랍도, 향단도, 떡상도, 촛대도 모두 금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성전 안의 금이 뜻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믿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본받아 금과 같이 변하지 않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변하지 않는 금 같은 신앙을 가지려면 특별히 세 가지가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첫째, 기도생활이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기도하다가 뒤를 돌아보면 안됩니다. 기도는 내 영혼에 성령의 새로운 은혜로 새 옷을 갈아 입혀주고 새 힘을 가져다주는 축복입니다. 다니엘은 어려울 때에 기도했습니다. 나라를 잃어버리고 남의 나라의 종으로 붙들려 갈 때도 기도합니다. 그리고 성공한 뒤에도 기도합니다. 가난할 때는 기도를 열심히 하다가 돈벌고 성공하면 기도에 소홀해지는 분들이 많습니다. 가난할 때와는 달리 축복을 받으면 내 몸 하나를 넘어 가정과 자녀, 이웃을 생각해야 하고 기도에 더 열심을 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여유가 생기고 형통해집니다.
둘째, 믿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세상을 돌아보면 안됩니다. 옛날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충성된 교인일지라도 시험에 들면 넘어질 수 있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마지막까지 남는 사람은 늘 자신을 겸손하게 다스립니다. 또한 그런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도 끝까지 남습니다. 마치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처럼 자신을 부족하게 여기고 꾸준히 달려가는 사람이 이길 수 있습니다. 자신을 부족하게 여기며 기도함으로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맡겨진 일과 봉사생활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한번 주어진 일은 끝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몇 년 전 영국 여왕이 안동 하회마을에 왔을 때, 친히 식수(植樹)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를 '퀸 트리(Queen Tree)'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가 작년에 말라죽었습니다. 꾸준히 돌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00년을 바라보고 심어서 길렀으면 그 나무는 국보급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거창하게 시작하는 것보다 그것을 계속 꾸준하게 가꾸고 관리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유명한 골프 선수인 타이거 우즈도 목표를 멀리 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멀리 바라보아야 합니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변함 없이 내 자리를 지키는 사람을 주님께서 들어 쓰십니다.
일본에 갔을 때 아주 유명한 한 식당을 갔습니다. 그 식당은 게요리 하나만으로 4대에 걸쳐 100년 간 운영해오고 있었습니다. 대대로 걸쳐 맛과 친절을 관리하고 운영하여 성공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나중이 창대하도록 멀리 바라보며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터를 가지고 든든하게 관리하여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을 다 누리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http://allcome.wo.to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