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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낙심, 포기하지 말라 /고후 4:1-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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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심, 포기하지 말라
고후4:1- 10,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오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4:16)

태국에서 코끼리를 어떻게 잡는 가를 소개합니다. 정글 속에서 으르렁대며 뛰어 나오는 코끼리는 미리 만들어 놓은 우리 같은 큰 집 속으로 들어가게 되며 들어가자마자 우리를 막아 버리는 큰문이 덜커덕하고 내려져 닫힙니다. 이제 코끼리 사냥꾼들은 갇혀버린 코끼리 발에 다 쇠사슬 줄을 매게 됩니다. 이 쇠사슬 줄의 한 끝은 벵갈 보리수라는 튼튼하고 큰 나무에 메어집니다. 이렇게 한 뒤에 우리를 치우고는 코끼리가 자유롭게 움직이게 해 주면, 코끼리는 며칠 또는 몇 주일 동안 발에 묶인 쇠사슬을 끌으면서 그 나무를 뿌리 뽑으려고 힘을 씁니다. 그러나 결국 코끼리는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뿌리뽑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되어 발에 묶인 쇠사슬이 팽팽하게만 되면 곧 포기해 버리고 힘을 안 씁니다. 이제부터는 쇠사슬의 한쪽 끝에 그저 작은 기둥 같은 아무거나 묶어 놓아도 좌우간 팽팽하게만 만들 수 있는 정도의 것이면 아무 곳에나 코끼리를 묶어 놓을 수 있게 되었고 써커스의 천막까지라도 끌고 가서 그 놈을 팔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코끼리의 모습은, "나는 이런 정도의 사람밖에 안돼!"라고 하며 과거의 실패와 연약함에 포로가 되어 항상 포기를 쉽게 하는 사람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어떤 초등학교에서 벼룩을 가지고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우선 여러 마리의 벼룩을 바닥에 놓고 사각형의 유리덮개로 벼룩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덮었습니다. 그랬더니 벼룩들은 그곳을 빠져 나오려고 펄쩍 펄쩍 뛰면서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리고 얼마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 유리 덮개를 치워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유리 덮개를 치워도 벼룩들은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벼룩들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몇 번 시도해 보았다가 안되면 포기해 버리는 소망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적어도 크리스천들은 그런 패기 없는 사람들이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이 낙망하여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시다.
첫째, 항상 기도에 힘쓰고 낙망치 말아야 합니다.
한 과부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에게 자주 찾아가서 나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하자 이 재판관은 얼마동안 듣지 아니하다,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성도의 기도를 듣지 않겠느냐 하셨고(눅18:1-8), 한 가나안 여자가 예수님께 찾아와 자기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으니 고쳐달라고 애원했으나 예수님께서 처음에는 한 말씀도 대답치 아니하시고, 그 다음에는 이방인 취급, 또 다음에는 개 취급까지 하였어도 그 여자는 낙망치 않고 계속 간구하자 주님께서는 그 딸을 고쳐주실 뿐만 아니라 그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마15:21-28, 막7:25-30) 또 밤중에 찾아온 친구의 강청을 들어준 비유를 보세요(눅11:5-13)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한 두 번 기도하고 주님께서 응답해 주시지 않는 다고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주님 뜻에 합당한 기도라면 끈기 있게 인내하며 기도하고 기다려야 합니다.(골4:2, 살전5:17, 엡6:18)
둘째, 복음전파에 항상 힘쓰고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해야 합니다.(막16:15, 행5:42) 현대인은 돈의 소리, 권력의 소리, 지식의 소리는 크게 들으나 양심의 소리, 진실의 소리, 진리의 소리는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복음전파에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
셋째, 주님께 소망을 두고(시78:7, 시146:5),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살후3:13, 갈6:9, 히12:3)
이미 세상을 떠난 스탠리 존스라는 선교사는 젊은 나이에 인도에서 선교 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복음을 전해도 완악한 인도 사람들은 회개하지를 않고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스탠리 존스는 너무 한심하기도 하고 사기도 떨어져서 사과나무 밑에 쓰러져 누워 있었습니다. 그 때 나무 사이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스탠리 존스, 피곤하지? 지쳤지?" "예, 하나님, 지쳤습니다." "왜 지쳤느냐?" "제가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저들이 예수를 영접하지 않습니다. 저들에게는 열매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과나무를 보아라. 지금은 열매가 없는 것 같으나 뿌리가 땅에 묻혀 있고 잎이 태양을 향해 펼쳐 있고 채널을 나에게 향해 맞춰져 있을 땐 언젠가 좋은 열매가 맺힐 것이다. 낙심하지 말아라. 아름다운 열매가 맺힐 것이다."
여러분, 혹 열매가 없더라도 낙심하지 맙시다. 하나님께로 향한 열려진 마음을 갖고 하나님께서 내 마음 가운데서 역사 하실 때 언젠가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채널을 여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넷째, 고난과 시험 중에 낙심치 말아야 합니다.(약1:2-4, 12, 롬5:3-4)
유대인의 지혜서라고 하는 탈무드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눈을 만드실 때 가운데의 까만 부문과 바깥 편의 하얀 부분으로 만드셨다. 그런데 우리가 물체를 바라보는 것은 흰자위를 통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가운데 있는 검은 자위 곧 눈동자를 통해서 보는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검은자위를 통해서 사물을 바라보며 식별하도록 만드셨을까? 탈무드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의 인생이 아무리 어둡다고 할지라도 너의 현실이 눈동자와 같이 캄캄하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아라. 절망하지 말아라 오히려 그 어두움을 통해서 밝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느니라"
어두운 밤이 지나고 나면 반드시 밝은 아침이 오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결코 현실의 어두움만 바라보며 낙심,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엡3:13)
다섯째, 세상과 죄의 유혹에 믿음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날 사탄이 자기 부하들을 전부 모아놓고 회의를 열었는데 그 날의 토의 주제는‘어떻게 하면 선한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악령이 벌떡 일어나 “저는 그에게 죄를 짓는 즐거움과 기쁨을 알려주고 죄를 지으면 많은 상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해 주겠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또 하나의 악령이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선행의 고통과 슬픔과 어려움을 말해주고 또한 아무런 소득과 재미도 없음을 잘 설명해 주겠습니다.” 마침내 또 다른 악령이 “그의 영혼을 낙심과 절망에 빠뜨리겠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 짤막한 응답을 듣고 나서 사탄은 기쁨에 넘쳐 소리쳤습니다. 옛날에 한 작가가 말하기를 “모든 절망은 악마로부터 온다”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을 교훈 삼아 깊이 마음에 새겨두고 죄에서 멀리 떠나야 하는 것처럼 낙심에서도 완전히 떠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섯째, 자녀와 희망과 비전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독일에서 태어난 한 소년이 너무 공부를 못해 부모는 그 소년을 아예 포기했습니다. 선생님도 그 소년을 가망 없다고 보았고, 친구들은 '바보'라고 같이 놀아 주지도 않았습니다. 고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쥬리히 공대에 입학시험을 쳤는데 그 시험에도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가 재수해서 쥬리히 공대에 들어간 후부터 천재성을 발휘하게 시작했습니다. 그가 26세에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고, 42세에 노벨 물리학상을 탄 아인슈타인 박사입니다. 현재의 모습이 부족해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희망을 가지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서로 희망의 빛을 비추면서 살아야 합니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희망을 감염시키는 것'이 진정한 이웃사랑이 아닐까요? 가장 착한 일은 희망을 전하는 것이고, 가장 나쁜 죄는 희망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희망이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든지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살아갈 수 있지만 희망이 없으면 아무리 노력하고 땀을 흘려도 우리 인생은 황무지처럼 변해버립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은 무엇일까요? 바로 희망을 전하는 삶입니다. 세상일에 짓눌려 희망이 줄어들고, 더불어 마음이 좁아진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그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그들의 장점을 깨우쳐주고, 격려하는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요?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희망과 비전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거룩한 비전이라도 포기하면 그것은 헛된 몽상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립니다. 또한 아무리 거룩한 비전을 세워도 희생이 따르지 않으면 역시 헛된 몽상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포기하지 말고, 대가를 치르면 반드시 그 비전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우리의 꿈을 가로막는 일을 만나지만 그래도 희망을 포기하지 마세요. 포기할만한 곳에서 희망을 만들라고 우리가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낙심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출14:13)
서양우화에 보면 두 마리의 개구리가 뛰어다니다가 그만 우유 통에 빠졌습니다. 여기서 두 마리의 개구리는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 마리는 미끄러운 벽과 우유 속에서 모든 것이 끝장났다고 판단하고 체념, 얼마 안 있어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한 마리는 그냥 죽을 수 없다고 결심한 후 밤새도록 멈추지 않고 우유를 휘저었습니다. 그 결과 액체였던 우유가 차차 고체인 버터로 변했고, 개구리는 버터를 밟고 힘껏 뛰어 우유 통 밖으로 나갔습니다.
마가복음 2장에 보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메워 가지고 예수님께로 왔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이 모여서 도저히 예수님 가까이 갈 수가 없자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주님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려 고침과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8:24-25)
2. 기도해야 합니다.(삼상30:6- 8, 시13:1-3)
[우리 생애 최고의 해]라고 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제2차대전 때, 헤럴드 레셀이라고 하는 청년이 공수부대원으로 전투에 참가했다가 폭탄에 맞아서 두 팔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불구가 된 그는 참으로 낙심하고 좌절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는 쓸모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쓸모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원망의 기도를 하는 그의 귀에 분명히 들려주셨습니다.
“그래도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지 않느냐.”
레셀이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자기에게는 아직 생명이 잃고, 두 눈이 있고, 두 귀가 있고, 두 발이 있습니다. 정말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아직도 많습니다. 생각을 바꾼 그는 의사에게 부탁해서 의수를 만들었습니다. 또 열심히 타이프 치는 것을 연습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지내온 생활을 잘 정리하여 책으로 엮었습니다. 이것이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화되었습니다. 더우기 그 영화에서는 자기가 직접 주연과 연출을 맡았습니다. 그는 정말로 크게 성공했고,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래서 영화 제목이 [우리 생애 최고의 해]입니다. 어느 기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신체적 조건으로 인하여 절망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결연히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나의 육체적인 장애는 도리어 가장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잃어버린 것을 계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 얻은 것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며 그것을 사용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잃은 것의 열매를 크게 보상해주십니다. 더 많은 가능성이 그 앞에 열리게 될 것입니다.” 유명한 간증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 스펄젼 목사는 기도에 대하여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기도는 아래서 줄을 당겨 하늘 위에 있는 큰 종을 하나님의 귀밑에서 울리는 것과 같다 >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되는 대로 힘들이지 않고 줄을 당기기 때문에 하늘에 종이 울리지 아니하고, 또 어떤 사람은 단 한번만 줄을 당겨 보고 맙니다. 그러나 응답을 받고야 마는 기도를 하는 사람은 그 줄을 단단히 잡고 전력을 다해 계속하여 당긴다고 했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눅18:1)
3. 하나님을 바라고 찬송하여야 합니다.(시42:11)
악마의 우두머리가 <인간 낚시 대회를>열었습니다. 악마들이 앞다투어 인간 세상으로 낚시질을 떠났습니다. 저녁때가 되자 낚시를 떠났던 악마들이 낚시 바구니를 들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한 악마의 바구니에서는 꺼내어도 꺼내어도 인간이 끝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우두머리 악마가 물었습니다.
"무슨 미끼를 썼길래 이렇게 많은 인간들을 낚아 왔느냐?" 대상 수상자 악마가 대답했습니다. "<포기>라는 미끼를 썼습니다. '너는 이미 늦었다.', '너는 쓸데가 우리 쪽밖에 없다' 이런 낚싯밥을 좋아하던데요."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 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42:5)
4.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난과 시련 없이 인생을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시련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을 더욱 단련하시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자 과정입니다. “잔잔한 바다에서는 좋은 뱃사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영국 속담처럼 시련 없이 성공한 사람 없고 시련 없이 훌륭한 성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훌륭한 작품은 그만큼 더 많은 시련을 거친 결정체입니다. 그러므로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은“시련이란 진리로 통하는 으뜸가는 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쇠붙이를 달구지 않고서는 도구를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시련 없이 인간을 훌륭한 인격자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실로 시련은 인간을 만드는 계기이며 보다 나은 상태로 변화시키기 위한 진통입니다. 시련은 인간의 됨됨이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보지 않은 자는 작은 시련에도 좌절하기 때문입니다. 시련을 극복하려는 의지는 인생을 성공시키는 원동력이며 매사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추진력이 됩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롬 5:3,4)는 성경 말씀처럼 시련 극복의 의지는 인내를 기르고 소망을 키웁니다. 생활 속에서 오는 고난과 시련을 하나님을 기억하고 희망을 가지고 잘 견뎌내며 최선을 다한다면 앞으로 더욱 큰 시련이 닥친다해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시42:6)
5. 모든 염려와 모든 짐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마11:28)
사람은 누구나 인생의 운동장에서 달음질합니다. 모두가 달음질을 하면서 성공이라는 삶의 결과를 얻으려는 기대를 갖고 달려갑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에게 성공이라는 기쁨만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원치 않는 실패도 가져다줍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생명을 포기하곤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책임을 져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때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부도를 맞은 사업자들이 물건을 싸게 파는 것을 보았습니다. 값진 물건을 헐값에 내어놓는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아픔입니다. 서양 속담에 보면 마귀도 사업이 안돼서 마귀가 쓰던 물건을 헐값에 파는데 그 중에서 한쪽 구석에 ‘이것만은 팔지 않음’ 이란 푯말이 있더랍니다. 가만히 보니 그 물건은 ‘낙심’이었습니다. 이 물건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죠. 아무리 신앙 생활를 잘한다 해도 낙심만 집어넣으면 마귀의 사업이 번창할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낙심하면 마귀의 사업을 돕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에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이사야 41:10절)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우리의 짐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5:7)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시55:22)
6.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고전10:13) 보다 높은 곳으로 전진하며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사7:4)
생 떽쥐베리라는 소설가가 있습니다. 그는 소설가가 되기 전에 비행사였습니다. 비행사 시절, 비행기 타고 1000피트 상공으로 올라가니까 모든 것이 아름다웠습니다. 저 아래에 불빛들이 보였습니다. "아! 저 아름다운 불빛들! 저 속에는 인간의 고통과 슬픔도 많이 섞여 있겠지!" 그렇게 높은 데서 보니까 인간의 고통과 슬픔조차도 인간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내기 위한 충실한 소품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문제와 고통이 생겼습니까? 높이 그리고 멀리 보십시오. 알고 보면 그것들은 우리의 삶을 아름답고 고귀하게 만드는 생의 재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눈이 필요합니다. 그 눈이 바로 믿음의 눈입니다. 어느 날 그가 비행기를 조종하다가 눈 덮인 안데스산맥에서 추락했습니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3일을 산에서 걸어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인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너무 힘들고 춥고 지쳐서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10미터 전방에 눈에 띄게 커다란 바위가 있었습니다. "죽기는 죽어야겠는데 골짜기에서 죽으면 개죽음이야! 저 바위 위에 올라가 죽으면 나의 시체가 발견되어 가족들이 생명보험금을 탈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그는 어렵게 바위 위에 올라가 앉았습니다. 그는 후일에 그 순간을 반추하며 이렇게 썼습니다. "인생이란 지친 상태로 바위 위에 올라가 앉은 것이다." 그런데 바위 위에 올라가 앉으니까 가슴이 탁 트이고 시야가 열렸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 용기를 등에 업고 하룻길을 더 걸어 내려와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삶에서 부분적인 진리의 조각을 찾아냈던 것입니다. 그 진리가 무엇입니까? 바로 '낙심하지 말고 하룻길을 더 걸어보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또한 새로운 세계에 들어서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새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인해서 기뻐하시며 성실하게 내일을 향해 나아가십시오.
7. 믿음의 선배들의 인내와 주의 참으심과 자비를 생각해야 합니다.
영국의 위대한 정치가인 윈스턴 처칠은 국립묘지에 묻히지 않고 옛날 자신이 다니던 작은 교회 옆에 있는 묘지에 묻혔습니다. 1943년 전시 내각을 수립하고 독일 비행기가 하루에 1천여 대씩 런던을 폭격할 때, 그는 하루에 18시간씩 근무를 하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전쟁 중에 BBC 방송을 통해서 '우리가 전쟁에서 이기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땀과 피와 눈물밖에 바칠 것이 없다.'라고 전 영국군에게 호소하자, 그 방송을 들은 영국군은 3일밖에 먹을 수 없었던 양식을 가지고 보름이나 견디면서 싸워 마침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처칠 경은 고등학교 시절에는 영문학에 낙제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을 쓰고 나서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했습니다. 그가 은퇴한 후에 한번은 그의 모교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칠 경은 지팡이를 짚고서 단 위로 올라갔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여러분의 대 선배이신 처칠 경이 말씀하실 때 한 마디도 빼놓지 말고 모조리 받아 쓰라."고 했습니다.
처칠 경은 지팡이를 짚고 강단에 서서 두꺼운 안경 너머로 학생들을 한참 동안 응시하더니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는 뚜벅뚜벅 걸어 내려갔습니다.
"결코 포기하지 마시오! 결코! 결코!"
욥은 극심한 육체적 고통 중에도 낙심하지 않고 인내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우리 주님도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셔서 우리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참으셨습니다. 우리도 욥과 주님의 참으심과 자비를 본받아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12:3)
성도 여러분! 환난과 고난 중에도 결코 낙심하지 않고 신앙의 길을 걸어간 믿음의 선배들처럼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또 주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까지 결코 낙심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선을 행하되 끝까지 낙심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기쁨으로 주님을 영접하며 주님과 함께 하늘 아버지의 집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http://allcome.w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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