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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도구 하만 (에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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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에스더 3:5,6
제목: 하나님의 도구 하만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을 일깨우시는 하나님의 철저한 준비하심을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에스더서는 '하나님'이란 이름이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구약정경에서 빠질 뻔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말씀을 인간의 생각이나, 잣대로 빼거나 더할 수 없듯이, 에스더서 역시 하나님의 섭리적인 보존에 의해, 66권 성경의 하나로 보존되어 있는 것입니다.

먼저 본문의 배경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빌론 포로기 이후에, 겨우 적은 수의 숫자만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반면, 이스라엘 백성의 대다수는 바빌론 이후의 왕국인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 그대로 남아서 안락하고, 안정된 환경에서 계속 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기억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에스더서의 배경을 살펴보면서, 영적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이란 곳에서 타국인이요, 순례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결코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고향이 아니며, 집도 아닙니다. 이스라엘에게 바빌론 땅이 고향도, 집도, 약속의 땅도 아니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70년이란 긴 세월동안, 바빌론의 생활에 익숙해지고,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의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잊고, 바빌론의 생활에 안주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세상에 순응하고, 세상의 생활에 익숙해져서, 그리스도인의 약속된 장소, 하늘의 새예루살렘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에 익숙해져 있습니까? 아니면, 새예루살렘을 소망하고 있습니까?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익숙해져 있고, 세상을 사랑하고 있다면, 오늘 본문 말씀인 에스더서를 주목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원수 사탄은, 하만이란 사람을 이용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모조리 죽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만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일깨우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였던 것입니다.

하만은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는 에스더 3장에서 하만이란, 인물이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는 적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하만은 아각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의 한 왕이, 하나님의 명령에 부분적으로 순종함으로 인해, 얻게된 재앙의 불씨를 발견하게 됩니다.

삼상 15장을 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사울 왕에게 아말렉인들을 완전히 죽일 것을 명령합니다(왕상 15:2-3).
그러나 사울은 아말렉의 왕 아각을 죽이지 않았습니다(왕상 15:8).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다. 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각은 사무엘에 의해 죽었습니다(왕상 15:32-33). 그러나 오늘 하만은 바로 사울이 죽이지 않았던 아각의 후손이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부분적인 순종이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어리석고 우매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실행하는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에 맞는 것은 순종하고, 내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은 불순종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분적인 순종은, 사울과 같이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입니다. 사울이 아각을 살려 주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우리 역시 하나님의 사역을 하나님의 마음대로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면, 하나님의 후회하심을 듣게 될 것입니다).

사탄은 하만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모조리 쓸어버릴 계획을 완료했습니다. 대환란 때에도 사탄은, 짐승(적그리스도)을 통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을 모조리 미혹해서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마 24:21-24 {이는 그때에 대환란이 있으리니, 그와 같은 것은 세상이 시작된 이후로 지금까지 없었으며, 또 결코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 만일 그 날들이 단축되지 아니하면 어떤 육체도 구원받지 못하리라. 그러나 택함 받은 사람들(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그 날들이 단축될 것이라. 그때에 만일 누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큰 표적들과 이적들을 보여 주어, 할 수만 있다면 그 택함받은 자들(이스라엘 백성)도 미혹하리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택한 받은 백성인, 이스라엘을 민족적으로 구원하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오늘 에스더서는 대환란때의 적그리스도의 일에 대해서, 예표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준비하심

1. 에스더를 준비하심

에스더서 1장은 아하수에로 왕과, 왕비 와스티에 대해서 나옵니다. 이 부분은 그다지 오늘 주제와 상관없는 부분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남자와 여자의 질서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왕비 와스티가 남편인 아하수에로 왕의 말에 복종할 줄 알았다면, 오늘의 에스더서는 더 이상 기록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왕비 와스티는 남편인 아하수에로 왕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불행한 결과를 맞게 되었습니다(에 1:10-12, 16-22).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은밀히 준비하시며, 감시하시고, 보살피고 있다는 사실을 더욱 명확히 알 수 있는 사건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에스더 2장에서는 다른 왕비를 뽑을 것을 결정하게 됩니다(에 2:1-4).
그리고 에스더에 대한 소개가 나옵니다(에 2:5-7).
에스더가 왕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준비와 개입하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하는 일들이, 항상 자신의 계획과 주관으로만 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일에 개입하시고, 간섭하십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할 때, 바른 판단력을 주시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하나님의 사역을 정확하게 담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사역을 할 때, 기도하는 이유는, 그 일의 시작과 끝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구로써 바르게 사용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이 아닌 일들에, 하나님께서는 분별력을 주시지 않고, 지혜를 주시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역이 아닌 일들에서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과 주관하심을 발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역을 빙자하고, 흉내낼 수 있는 있지만, 그 일은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간섭하신 일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이루었을 뿐, 그 일은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입니다(또한 하나님께서 방치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 일들은 하나님의 허용하신 뜻 안에서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르기 때문에 방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죄악들이 하나님께서 모르는 가운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용하시는 뜻 안에서 사탄에 의해서 일어나는 일인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에 하나님께서는 직, 간접적으로 간섭하고 계십니다. 세상의 왕들과 세상 악의 주관자들까지도 하나님의 간섭을 받고 있습니다. 하만도 그러한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도구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인물들은, 유대인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항상 살펴보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일에는 항상 간섭하셨고, 따지셨고, 벌주기도 하셨고, 다독여 주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서는 항상 준비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더를 왕비로 세워주시면서, 앞으로 다가올 재앙을 준비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시기 위해 준비하셨다는 것은, 위대한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얼마나 큰 위안을 주는 사실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인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과 같지는 않지만(오히려 이스라엘보다 나은 사람들입니다), 그럼으로 영적으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을 다가올 진노로부터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살전 1:10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그분의 아들, 즉 다가올 진노로부터 우리를 구해 내신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오심을 기다린다고 하느니라.}

살전 5:9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진노를 받도록 정해 놓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셨기 때문이라.}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준비하심을 알고 있다면, 이 세상에서의 생활이 그다지 힘들고 어렵지만은 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준비하심으로 인해, 유대인들이 재앙으로부터 보호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하나님께서는 작은 준비마저도 소홀하지 않았습니다.

2. 모르드케를 준비하심

에 2:21-23을 통해 모르드캐를 준비시키셨습니다.
세상의 소설이나, 영화 또는 연극 대본들 중에서, 이보다 더 철저하고 완벽한 준비가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어떤 일을 준비하고 계획하는 것은, 항상 헛점을 안고 있습니다.
완벽하게 준비를 했다고 해도, 일이 진행될 때면, 무엇인가 준비가 잘못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미국의 한 주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우체국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최첨단 컴퓨터 시설과 자동화된 분류 시스템, 냉난방을 갖춘 최신식 건물을 완공했습니다. 각계의 손님들을 초청해서 완벽한 우체국 개국을 축하하는 축하 파티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축하 파티에서 한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던 우체국에, 우체통이 없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준비하심과 계획은 철저하며, 한치의 빈틈조차 발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항상 완벽하며, 그 완벽한 계획을 사람들이 신뢰하기만 한다면, 사람은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완벽한 계획은 바로 구원계획입니다.

세상의 기초를 놓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 하시기 위한, 예정이 있었습니다. 이 예정은, 어떤 한 사람 한 사람을 정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할 것을 예정하신 것입니다(엡 1:4-5). 이것은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너무나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어떤 교단의 교리와, 총회의 총회장의 말과 상관없으며, 교황의 말과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정확하고, 완벽한 계획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믿기만 하면,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될 수 있고,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완벽하고 정확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의 용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시고, 인류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지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인간에 대한 구원 계획을 완성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아담의 후손들의 죽음을 대신하신 것이며, 주님의 피 흘리심은, 죄의 값을 지불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은, 하나님으로써의 약속을 확증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피 흘리심과, 부활을 믿음으로 영생을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준비부터 마침까지 완벽하기 때문입니다.
이 완벽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무시하기 때문에 인간은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더와 모르드캐를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준비하셨듯이, 주님께서는 죄인 된 온 인류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시켰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완전하고 정확하게 완성되었습니다. 이렇게 완벽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간섭에 감사함으로 다가서고,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본 주제로 돌아가겠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 유대인들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모르드캐에 대한 하만 개인의 분노가, 한 민족을 죽이려는 잔인한 계획이 되었던 것입니다(에 3:5-6).
이제 우리는 잠시 에스더 개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에스더는 하나님의 준비하심에 의해, 당대 세계 최강의 나라인 페르시야의 왕비가 되었습니다(에 2:15-18).

한 개인의 부와 영예는 개인의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것들이 어디로부터 출발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물질의 풍요로움이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물질의 풍요로움이 곧, 하나님의 축복은 아니었습니다. 신약 그리스도인들은 오히려 물질에 대한 약속보다는 영적인 약속이 더 많이 등장합니다.
분명 에스더는 개인적인 부귀와 영예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의 부와 영예는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에 4:1-9
에스더는 아하수에로 왕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음에도, 근 삼십일 동안 왕의 부름을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만일 왕의 부름이 없이 왕 앞에 갔다가는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에 4:10-11).

분명히 에스더 개인에게는 위기의 상황이었습니다. 자신의 동족의 일을 몰라라 할 수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왕의 명령 없이 왕에게 갔다가는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분명히 갈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 모르드캐는 하나님의 준비하심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습니다.
에 4:13-14 {모르드캐가 에스더에게 대답하도록 명하기를 "너는 왕궁 안에서 모든 유대인보다 잘 피할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 만일 이 때에 너까지도 잠잠하면, 유예와 구원이 다른 곳으로부터 유대인에게 있겠으나, 너와 네 조상의 집은 멸망을 당하리라. 네가 이 때를 위하여 왕국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누가 알겠느냐?" 하더라.}

에스더는 동족을 위해 일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생명을 연장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에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을 위한 일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 개인들에게도 이러한 순간이 참으로 많이 발생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나를 위해 일할 것인가, 이러한 결정은 진정, 아무도 대신 내려줄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음을 무릎 쓴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의 강요와 억압에 의해, 순교한 사람이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누구도 강요와 억압에 의해 순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순교자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은, 모두 자원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아무도 하나님의 일을 할 것을 강요하거나 고집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은, 강요와 억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오늘날 재도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일을 빙자한 교회의 일들을 강요하고 반강제적으로 하게 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알아야 할 것은 모르드캐가 에스더에게 말했던 바로 하나님의 준비하심입니다. "네가 이 때를 위하여.... 되었는지 누가 알겠느냐?" "당신이 이 때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 위해 준비되었는지 누가 알겠습니까?"(사역, 선교, 목회, 순교 등등)

에스더에게는 자신의 생명을 위해 모른 척 할 수도 있었고, 동족을 위해 죽음을 무릎 쓸 수도 있는 선택할 권한이 있었습니다. 만약 에스더가 자신의 생명을 위해, 위험을 무릎 쓰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만에게 몰살 당했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 다른 방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에스더는 하나님의 준비하심을 외면한 대가로, 어떠한 재앙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하나님의 준비하심에 순종했던 것입니다.

에 4:15-17 오늘 본문 말씀은 에스더의 굳은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한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에스더의 굳은 의지가, 자신의 열성이나, 순간적인 열의로 왕에게 다가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기도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금식과 기도의 능력을 알고 있었고, 많은 하나님의 자녀의 기도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기도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에스더 만큼 현명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에스더는 자신의 죽음을 무릎 쓰고, 왕에게 나아갈 것을 결심했습니다.
우리도 나 자신이 아닌,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내 것을 포기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사탄은 우리를 포기하고 달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즉각적으로 우리의 열성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우리 개인의 열정과 열의는 분명히 평가되어야 할 부분이지만, 열성 자체는 오히려 하나님의 사역을 그르치는 주요한 수단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리는 포천의 홍 모 씨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열성과 열의는 다 아는 바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그 사람의 열성을 부러워했습니다. 그러나 열성 자체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그 열성으로, 그 사람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홍 모 씨는 결국 자신의 열성과 열심만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 사람의 열매는, 성경을 그리스도인의 손에서 내려놓고, 자신도 읽지 못하는 성경을 들자고 하는, 사악한 열매를 맺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위한 우리의 굳은 의지는 반드시 기도와 함께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왕비 에스더는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실천에 옮길 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기도와 금식에 대해서 말씀하신 부분을 알고 있습니다.

마 17:21 {그러나 이런 종류는 기도와 금식에 의하지 않고는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시더라.}

<개역성경>에는 삭제되어 있는 부분입니다. 이외에도 막 9:29, 행 10:30, 고전 7:5, 고후 6:5,11:27에서도 금식을 삭제하고 있습니다.
금식이란, 자신의 육신적인 필요를 멀리하면서까지 중대하고, 급박한 일들에 대해서 기도할 필요가 있을 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도 금식이 필요할 때, 금식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사주의자들이나, 재도 교회의 교인들처럼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의 육신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해, 금식 기도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에스더와 모든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만의 계획은 위급하고, 중대한 사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금식했던 것입니다.
이 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는 성경에 기록된 부분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준비하심은 아하수에로 왕을 준비하게 하셨고(에 5:1-3), 에스더에게 지혜를 주셨으며(에 5:4-5), 모르드캐의 일을 찾게 하셨고(에 6:1-3), 결국 하만은 자신이 만든 장대에 메 달리게 되었던 것입니다(에 7:10).

왜 하나님께서는 하만이란 사람을 통해 이스라엘을 죽음의 위험까지 이르게 하셨겠습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카나안에 대한 소망을 잊고, 자신들의 현실에 안주하려는 어리석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만을 이용해서 이스라엘을 일깨우셨습니다. 그 일깨움을 위해 에스더와 모르드캐를 준비하셨고, 이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백성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만의 위협으로부터 고향을 생각하게 되었고, 약속의 땅에 대해서 기억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의 본향을 기억하지 않고, 소망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하만을 이용하셔서, 그리스도인들을 위협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에게 하늘의 저택을 기억하라고 일깨우시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현재, 우리 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은, 곧 고난과 어려움과 슬픔들은, 위를 바라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도구들임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4:17,18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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