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거짓이 없는 진실한 신앙을 가지라 (딤후 1:1-5)

  • 잡초 잡초
  • 661
  • 0

첨부 1



거짓이 없는 진실한 신앙을 가지라
젊은이 설교 홈 myhome.naver.com/chapelainkhj 천안외대 김홍진 목사
디모데후서 1 : 1-5

  초등학교 3학년에 거짓말을 잘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엄마가 괴로워 아이를 고치기 위해 별 방법을 다 써봤습니다. 벽보고 서 있기, 스티커 붙이기, 벌칙 점수 매기기 등, 그러면서 12월 23일이 되었습니다. 이 아이가 말하기를 “나에게 예수님이 산타크로스 원하는 선물주실까?” 그러는 것입니다. 아이도 교회를 나가는데 엄나는 이 때가 기회다라고 생각하고 말하기를 "너는 거짓말을 많이 하니 예수님이 선물을 안 보낼 것 같아" 이 아이가 고민하다가 여름 성경학교 때 배운 "하나님께 편지 쓰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원촌초등학교에 쓴 편지를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 저는 거짓말 한 번도 안했거든요. 산타크로스 할아버지를 빨리 보내주세요" 저녁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이 안 와요 거짓말을 너무 했는데 애가 한 번도 안 했다고 하니까 잠이 안 와서, 다시 일어나 "거짓말을 한 것 회개한다고 하면서 눈물자국 만들어 놓고" 마지막으로 글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앞으로 죽어도 절대로 거짓말 안할께요" 그렇게 써놓고 잠을 자는데 "잠이 안 와요" 앞으로 절대 거짓말 안 하겠다는 말 때문에 잠이 안 와요. 그래서 어떻게 선물을 받을까 생각한 나머지 파카를 입고 어디로 가요. 큰 성당에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여기 저기서 기도소리가 납니다. 이곳 저곳을 두리번거리다가 앞 왼쪽에 있는 자그마한 마리아상 앞으로 갔습니다. 그 마리아상을 집어서 파카 속에 넣고 집으로 도망 왔습니다. 편지를 쓰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예수님, 내가 당신의 어머니를 인질로 잡았으니 원하는 선물 주세요."(θθ)

  여러분, 마치 우리의 모습 같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삶에서도 진실하지 못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도 진실하지 못하게 살 때가 많습니다. 사람 앞에, 하나님 앞에 거짓이 없는 삶을 산다면 얼마나 자신이 있을까요?

  성경에 칭찬하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칭찬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디모데입니다. 그것도 함께 같이 지내는 바울이 디모데를 가리켜 본문 디모데후서 1장 5절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극찬하고 있습니다.

  청년 여러분, 진실하십니까? 사람 앞에서, 자신 앞에서, 그리고 함께 하는 동역자 앞에서, 아니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자신이 없습니다. 오늘은 본문에 나오는 디모데를 보면서 거짓이 없는 믿음, 진실한 믿음으로 살 것에 대해 함께 도전 받고 싶습니다.

  첫째, 여기서 말하는 거짓이 없는 믿음이란 어떤 믿음일까요?
  거짓이 없는 믿음이란 어떤 믿음을 말합니까? 진실한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진실한 믿음이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꾸밈이 없는 투명한 믿음입니다. 거짓은 꾸미는 것입니다. 아닌 것을 긴 것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거짓이 없는 믿음은 그 모습 그대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투명한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위선도 가식도 꾸밈도 필요 없습니다. 있는 그 모습 그대로 투명한대로 나가는 것입니다. 투명한 사람은 사람 앞에서도 가식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속이지 않습니다. 진실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진실합니다. 거짓이 없습니다. 사람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거짓이 없습니다.

  본문 5절을 영어 성경에서 보면 거짓이 없는 믿음을 ‘sincere’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은 위선적인 데가 전혀 없고 말이나 행동이 성실하여 거짓이나 속임수 그리고 과장 등이 없는 성실하고 진실한 있는 그대로의 뜻입니다. 이것이 디모데의 모습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볼 때 거짓이 없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와 함께 살았습니다. 2절에 보면 영적으로 바울은 디모데를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그 둘의 관계는 거짓이 없습니다. 투명합니다. 디모데는 바울에게만 투명하고 진실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투명하고 진실했습니다. 디모데는 하나님 앞에서 거짓이 없는 진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투명하고 진실하십니까?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발표한 2001년도 각 국가별 부패지수(Corruption Perceptions Index)에 따르면 뉴질랜드, 덴마크, 스웨덴, 필란드가 1-4위, 호주는 12위, 미국 16위, 일본 21위, 말레이지아 36위, 우리나라의 청렴도는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4.2점을 차지하여 42위를 차지하고 꼴찌는 나이지리아, 방글라데시가 차지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한국입니다.

  우리나라 선교초기에 미국에서 한국에 온 선교사님이 미국선교부에 선교 보고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 내용이 참 한국 교인들의 모습을 한 마디로 이야기해줍니다. “한국교인들은 믿음생활은 참 열심히 합니다. 새벽예배 저녁예배 수요예배 산기도 금식기도 이렇게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한국교인들은 거짓말을 잘 합니다.” 이 보고가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거짓이 없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거짓이 없다는 신실하다는 뜻입니다. 결국 거짓이 있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거짓이 없는 믿음은 순수한 믿음입니다. 단순한 믿음입니다. 순수함을 잃어버리면 거짓의 시작입니다. 순수함은 깨끗함입니다. 진실한 믿음은 깨끗한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순수함을 잃지 않은 믿음, 믿음으로 어떤 목적을 성취하려는 믿음이 아니라 믿음 자체만으로 만족하는 순수한 믿음입니다. 디모데의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그렇게 순수한 분들이었습니다. 순수함을 잃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배운 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아는 데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는 사람들을 대하면서 너무나 이권을 생각합니다. 순수함을 잃었습니다. 사람을 평가하고 만납니다. 사람들에 대해 선입관을 가지고 만납니다. 사람들은 나의 경쟁의 대상으로 보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순수함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만나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실을 상실한 거짓된 우리의 외식입니다.

  그러나 기대하십시오. 이대로만 살아야 하는 법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회 속에서도 진실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트릭으로 살아도 나만은 순수함을 찾아 고민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거짓으로 탈을 쓰고 살아도 나만은 단순하게 순수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가능합니다. 세상이 거짓으로 나를 대한다 할지라도 진실과 깨끗함 순수함으로 세상을 대할 때 이 땅은 조금이라도 더 낳아질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거짓없는 진실한 믿음을 자신의 모습에서 찾아내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거짓이 없는 신앙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떤 믿음이 있어야 할까요? 전지 하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투명한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은 전지하시다’는 이 철저한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전지 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정확히 판단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인간의 숨겨진 속마음까지 낱낱이 아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이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거짓을 포기하고 진실할 수 있습니다. 전지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거짓과 트릭과 외식이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에 보면 바울이 디모데를 보고 어떻게 평가합니까?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다고 칭찬했습니다. 디모데 속에 거짓이 없다고 했습니다. 디모데 속을 바울이 다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속이 거짓이 없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압니까?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 속을 다 아십니다. 사람의 깊은 마음 속까지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숨은 동기까지 다 헤아리십니다. 디모데는 이렇게 그의 속마음까지 진실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디모데가 진실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하나님 앞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고 충성스럽게 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보신다는 이 하나님 임재의식 앞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진실은 하나님 앞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피터 드러커(Peter F. Druker)는 『프로페셔널의 조건』이라는 저서에서 자신이 함브르크에서 견습생으로 일을 배우고 있을 무렵 경험한 짤막한 예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조각가 페이디아스(Phidias)가 만든 작품들은 2천 4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의 지붕 위에 여전히 서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거의 모든 그리스 사람들이 그의 완성된 작품을 칭송했지만, 정작 일을 의뢰한 아테네의 재무관은 페이디아스의 작품료 지불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의 거절 사유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조각들은 신전의 지붕 위에 세워져 있고, 신전은 아테네에서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는데 따라서 사람들은 조각의 전면밖에 볼 수 없다. 그런데도 당신은 조각의 뒷면 작업에 들어간 비용을 포함한 조각 전체 값을 청구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때 페이디아스는 말하기를 '아무도 볼 수 없다고? 틀렸어, 하늘의 하나님이 보고 있지'라고 대답했답니다" 교회 지도자들에게도 도전이 될 만한 내용입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것을 뒤에서 보고 있는 존재가 있음을 염두해 둘 때 완벽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페이디아스의 정신이 젊은 드러커의 가치관에 일침을 가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살기 때문에 정직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이 임재의식이 있기에 우리는 진실할 수 있습니다. 왜요? 하나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정확하게 판단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전지 하신 하나님 신앙이 있을 때 우리는 거짓 없는 믿음으로 살게 됩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아니 내 양심도 속일 수 없습니다. 자기의 삶은 자기가 제일 잘 압니다. 자기의 삶에 얼마만큼 최선을 다했는지, 주어진 시간 속에서 주어진 과제를 위해 얼마만큼 최선을 다했는지 자신이 압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십니다. 하나님이 내 삶의 최선을 아시기 때문에 정당하게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내가 알고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에 우리는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새 거짓으로 덮여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신앙을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다짐하지만 순간 거짓의 올무에 넘어갈 때가 있습니다. 나를 보시고 있는 하나님을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순수함을 잃지 않고 깨끗하게 하나님 앞에서 살려고 다짐 하지만 내가 내 자신도 속여가면서 위선이 나옵니다. 어찌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사는 신앙을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변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의 신앙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 “코람데오”의 신앙, 하나님의 의식하고 사는 신앙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어떻게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이것은 훈련입니다.

  누구나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살고자 합니다. 그러다 다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거짓이 없는 믿음은 훈련으로 되는 신앙인격이기 때문입니다. 거짓이 없는 믿음은 거저 갖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스스로 진실하게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타락된 인간입니다. 그대로 있으면 거짓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거짓 없는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뼈를 깎는 노력이 있어야합니다.

  디모데후서 1장 5절에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그랬습니다. 디모데의 거짓이 없는 믿음은 그저 생긴 것이 아니라 외할머니와 어머리로부터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거짓 없는 믿음이 외할머니와 어머니 유니게에 있었습니다. 디모데는 이것은 소중하게 물려받은 것입니다.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사실은 훈련받은 것입니다. 거짓이 없는 신앙은 훈련으로 되는 것입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신앙을 배운 것입니다. 어린 아이 때 이미 그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누구에게 받았습니까? 외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배웠습니다. 중요한 분은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도 외할머니에게 배웠다는 것 아닙니까? 어머니가 아이의 신앙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디모데는 아이들 때부터 진실한 믿음의 삶에 대해서 훈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진실을 훈련시키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거짓을 습득하게 됩니다.

  어떤 어머니가 자기의 어린아이 하나를 나무라고 있었습니다. 네가 부엌에서 과자를 훔쳐먹었는데 "훔쳐먹을 때 하나님께서 다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느냐?" 그러니까 이 아이 대답하기를 "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늘 지켜보고 네 마음속까지 다 살피고 있다는 것을 아느냐?" "네" 그랬어요. 꼬박꼬박 "네"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다 못해서 "그럼 하나님께서 너를 지켜보면서 네가 과자를 훔쳐먹을 때 뭐라고 말씀하시던?"하고 물었습니다. 이 어린아이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던 걸요. '이곳에는 너와 나 둘 뿐이구나. 그러니 두 몫을 훔쳐라'" 그럽니다. 어린 아이는 항상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지켜보신다’ 하는 것도 자기에게 이롭도록 해석합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정직을 철저하게 훈련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의 책임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의 진실은 훈련으로 가능합니다. 우리는 진실의 훈련을 받은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오직 거짓의 훈련을 받았을 뿐입니다. 무연 중에 부모로부터, 아니면 사회로부터 거짓이 편리하고 유익하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신앙은 아닙니다. 오직 진리만이 바른 길이며,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믿음이라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배운 데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진실을 훈련받아야 합니다.

  선교사님이 한국에서 사역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한참 한국어를 배울 때였습니다. 그 때 말이 좀 거친 아이가 좀 심한 말을 내 뱉었습니다. "지랄하고 있네"라고... 선교사님이 한국어를 가르치는 전도사님에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습니다. 갑자기 당황하게 된 전도사님, 그래도 자기 교회 사람들을 감싸주고 싶어서 이렇게 둘러댔습니다. "기도하자는 뜻의 고상한 표현입니다." 그러자 이 선교사는 알았다는 듯이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어느 예배시간에 목사님이 그 선교사님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이 선교사님, 고상하게 기도하고 싶어 회중을 둘러보면서 근엄하게 말을 꺼냈습니다. "여러분, 다같이 지랄합시다"

  진실은 배워야할 신앙교과서입니다. 거짓 없는 믿음은 훈련으로 됩니다. 우리는 내 자신을 진실을 향한 훈련에 복종시켜야 합니다. 한 번의 실패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 범벅되는 실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훈련을 중단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거짓으로 우리를 넘어트릴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이 세상은 우리가 진실과 정직을 훈련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입니다. 세상이 온통 거짓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거짓 없는 진실한 믿음을 사람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훈련하십시오. 그렇게 훈련을 하는 순간 우리는 더 나은 진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진실에 자신을 철저히 순종시켜보십시오. 자신의 거짓에 완강하게 대항하십시오. 거짓에 한 번 굴복 당하면 계속에서 우리는 거짓의 종이 됩니다. 진실에 한 번 두 번 순종하면 계속 진실의 종이 됩니다. 이것은 훈련입니다. 내가 진실에 복종하는 결단이 없이 진실한 믿음은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나의 거짓에 단호히 대항하지 않으면 우리는 거짓에 짓눌릴 수밖에 없습니다. 거짓은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성품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훈련으로만 되는 인격입니다. 자신을 쳐 진실 앞에 복종하십시오. 오직 하나님 앞에서 거짓 없는 진실의 훈련을 계속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맺는 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거짓을 줄이고 진실한 신앙을 쌓아나가는 것은 우리의 영원한 기도제목이 아닐까요? 진실의 훈련은 우리의 영원한 영적 훈련입니다. 거짓 없는 진실한 삶은 끊임없는 우리의 신앙과제입니다. 이 거짓 없는 진실한 신앙의 훈련의 계속되어야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믿음의 훈련에서 진실한 믿음, 거짓 없는 믿음의 삶을 사는데 늘 승리만 있습니까? 오히려 실패할 때가 더 많지 않습니까? 실패했어도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는 실패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진실한 삶을 사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책망 받을 꺼리입니다. 하나님은 거짓 없는 삶을 살다가 진실을 실패한 것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포기하고 거짓에 안주하는 것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삶을 다시 세워야 할 때입니다.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을 보면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순수하고 깨끗하게 서기를 원합니다. 진실하게 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어떤 가식과 위선도 없이, 사람 앞에 거짓과 속임도 없이 진실하게 서기를 원합니다. 이 순수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