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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4:19-30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지난 한국 방문 시, 제 친구가 자기 교회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한 번은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시면서, 어떤 성도님이 보내온 편지를 소개하더랍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목사님, 지난주일 예배 때, 참으로 죄송했습니다. 옆에 저와 같이 예배드리시던 시어머님께서 불편해 하셔서 부득이 목사님 설교 도중에 나오게 되어 목사님과 예배드리던 모든 성도님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송구스러웠습니다. 시어머님께서 집에 부엌의 가스 불을 끄지 않고 오신 것 같다고 불안해 하셔서 할 수 없이 제가 가서 확인해야 했기에 예배 도중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용서를 구합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목사님께서 이 편지를 소개하시면서 “이제까지 목회하면서, 예배 중간에 나간 사람에게 편지 받은 것은 처음”이란 말씀을 하시면서 “한편으로는 고맙게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뿌듯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이면 비록 예배를 끝까지 드리지는 못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예배를 받으셨으리라고 여겨진다는 말씀도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예배의 진정한 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 준 친구도 이와 비슷한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친구는 젊은 시절에 서울의 영락 교회에 다녔었는데, 한번은 예배 시간에 갑자기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가고 싶더랍니다. 웬만하면 참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나가긴 나가야겠는데, 좌석의 중간에 앉았기 때문에 참 나가기가 어려웠지만 그래도 할 수 없이 나갔다고 합니다. 그 당시 이 친구는 “굉장히 미안한 기분”을 가졌었답니다.

그런데 이렇게 미안한 마음으로 나간 것은 사실이겠지만, 이러한 미안감을 예배와 관련시키는 데에는 어떤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교회의 어느 여 성도님은 이 미안감을 예배와 관련시켜 죄송한 마음의 편지를 보냈고, 제 친구는 그냥 개인의 사건으로 묻어두고 만 것입니다. 아마 그 당시는 어리고 또 젊은 시절이라 그리하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배와 관련하여 하신 중요한 말씀입니다. 24절에서 예수님은 예배를 바르게 드리는 자세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영)과 진정(진리)으로 예배할찌니라.” 이 말씀은 과연 무슨 뜻일까요?  이 말씀의 의미를 이 편지를 보낸 여자 분의 입장과 견주어서 생각해 보면 더 실감 있게 이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신령과 진정(Spirit & Truth), 영과 진리”가 예배에 있어서의 바른 자세와 내용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신령한 모습과 진리된 모습이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라고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이러한 “신령과 진정”의 모습이 어떠한 모습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예배드릴 때에 거기에 맞추기가 용이하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렇게 “신령하고 진정한 모습은 이러이러한 모습이다”라고 우리가 규정짓는다면 그것은 신령과 진정의 말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령과 진정이란 그 말 자체는 하나님과 관련된 것이기에 그 모습이 어떠하다고 하는 사실은 예배를 드리는 우리 쪽에서 규정하기보다는 하나님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은 영이시니..”라는 말씀을 전제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아까 편지를 썼다는 여 성도님의 경우와 비교해 보십시다. 이 성도님은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이렇게 예배 시간 도중에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되었지만, 이로 인해서 예배가 방해되었으면 어떡하나?, 설교하시는 목사님께 누가 되지는 않았을까? 무엇보다도 예배 받으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가리는 것이나 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에 마음과 신경이 쓰여서 이에 대해 용서와 이해를 구하고 싶어서 편지를 보낸 것 그 자체가 바로 신령과 진정의 한 모습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우리 모두는 이렇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예배를 드리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여 예배드리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우리는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질문도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이렇게 최선을 다하여 드리는 이 예배를 하나님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하는 질문입니다. 비록 우리의 예배에 대한 자세와 모습에 최선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어떠실까?” 하고  염두에 둘 수 있음이 바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또 하나의 자세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배를 드림으로 간직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렇게 하나님께 그 판단을 맡기는 자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합니다”라는 마음과 자세가 우리들에게 스스로 정직하게 만들어지는 것 - 이것이 예배를 드리는 사람에게 있어서 주어지는 선물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의 판단에 자기의 판단을 두고자 하는 사람은 바로 어떤 모습의 사람일까요?  이런 사람은 바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인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하나님이 찾으시는 인간상이란 이렇게 하나님의 판단에 자기의 판단을 두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23절,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란 곧 하나님이 원하시고 바라시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윤리적으로 아주 나약한 상태에 있는 사마리아 여인도 이렇게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러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이 여인에게 예배에 대한 귀한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러한 하나님이 찾으시는 인간상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그 모습과 자세에서 찾아지고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하나님이 찾으시는 인간상의 모습에서 기대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알게 된다는 것은 다른 말로 말하면, 나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보내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마리아 여인은 자기와 말하는 예수께서 바로 그리스도임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바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도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져 있을까? 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는 행복인 것이요,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나의 삶의 위대한 가치를 발견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약속하신 바를 발견하셨습니까?  이를 발견한 사람은 “왜 사는지”라는 존재의 이유를 알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삶의 방법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사는지 그 삶의 목적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동물처럼 살기도 하고, 아무런 목적의식도 없이 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람된 삶을 살지 못하면서 그저 삽니다. 그리고 그저 살다가 죽으면 그만인 모습으로 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우리의 삶의 방향과 농도가 달라지게 하는 그 무엇을 선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찾으시는 인간상에서 기대되는 모습은 예수를 증거 하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를 증거 한다는 표현이 그저 전도한다는 것으로만 생각되는 선입감이 있어서 어색하다면 진리라는 말로 바꾸어도 될 것입니다. 즉, 진리를 드러내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의 사마리아 여인은 자기 동네에 들어가 예수를 증거 합니다. 29절,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그리고 이 여인이 전하는 말을 듣고 사람들은 예수께로 나왔다고 30절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전한다는 것, 진리를 증거 하는 삶이란 어떤 모습입니까? 그것은 예수 안에 혹은 진리 안에 자기를 집어넣는 것을 말합니다. 즉, 자기 자신을 예수 속에, 진리 속에 파묻어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도 같이 사는 남자가 자기 남편이 아닌 그런 여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전했습니다. 우리는 이 내용에서 우리들을 향한 귀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때로는 전도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내 생활이나 내 인격에 자신이 없어서 아닙니까? 그래서 내 처지와 형편과 인격이 좀 더 나아지고 변화되면 그때 가서 전도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줄 압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나를 예수 속에 파묻어 버리는 모습이 아니라, 예수를 내 모습 속에 파묻어 버리려고 하는 모습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어떻게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예수님을 내 세운다고 하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나를 더 드러내고자 하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러한 사람의 모습과는 어딘지 모르게 동떨어진 모습입니다. 사실, 우리가 생활면에서나 인격적인 면에서 어떤 허점이 있거나 부족할 때, 우리가 전하는 진리가 손상되기 쉬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진리를 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그리스도에게로 파묻어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예전에 한국의 유신 정부 시절에 정부는 독재정부의 부당함을 공격하는 사람들을 아주 많이 핍박하였습니다. 그 중에는 이들의 개인적인 실수나 연약한 모습을 이용하여 이들이 정부를 공격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경우의 한 사람이 우리가 잘 아는 함석헌 선생입니다. 정부는 함석헌 선생의 개인적인 스캔들을 가지고 “이러한 사람이 과연 정부를 비방할 수 있는가?” 하면서 조카라는 사람을 내세워 압력을 가하였습니다. 그 때 함석헌 선생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나 자신의 부족함과 잘못이 있는 줄 안다. 하지만 내 비록 나 자신의 부족함과 부끄러움이 있다고 해서 이 정부의 불의한 독재 정권의 잘못된 일에 대해 눈을 감고 할 말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 두 번 잘못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나의 부족함을 넘어서는 존재”라는 사실을 또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크신 분, 하나님은 나를 능가하시고 나를 넘어서시는 분, 하나님은 나의 연약한 것 때문에 작아지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진리 됨은 나의 실수나 연약함으로 인하여 숨겨져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꼭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생활을 엉망으로 해도 된다는 그러한 뜻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흔히 “아비가 도둑이라도 자녀들은 바르게 잘 되기를 바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여도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됨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할 때에 우리 자신도 그 진리의 영향을 받음으로 진실한 모습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나를 넘어서고 세상을 이기는 용기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인간상을 지닌 사람에게서 발견될 수 있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사람에게서 비롯될 수 있음을 꼭 알아야 되겠습니다.

올 한 해는 이렇게 나 자신의 모습을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의 모습”에 비추어서 살아가도록 하십시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모습에서 발견되어진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올해 교회의 표어를 “예배드리는 공동체”라 잡아본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 가운데에서 표현되어지는 삶을 마련해보도록 하십시다. 그러할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더욱 온전한 모습이 되리라 믿습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저희들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모습으로 하나님의 찾으시는 바로 그러한 모습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저희들에게 허락하신 선하신 약속을 발견하여 더욱 복된 삶을 살게 하심으로, 이러한 우리들의 삶이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모습을 증거 하는 모습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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