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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이유 (신 7: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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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이유
< 본 문 > 신7:6~11

교우 여러분들께서 기도해 주셔서 아프리카 선교 여행을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떠날 때는 솔직히 마음에 부담이 없지 않았습니다. 보통 아프리카 하면 얼른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죠. 아프리카에 간다고 결정하니까 그런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는, 너무 먼 곳이란 생각입니다. 장시간 비행기를 갈아타고 가야 되고, 현지에서는 사막이나 밀림을 지나가야 하고 ... 또 하나는, 불편하고 위험한 곳이란 생각입니다. 견디기 힘든 기후, 그리고 각종 풍토병과 전염병 등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염려 등 ...

실제로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마음에 부담이 생겼습니다. 동행하는 한국불어권선교회 본부로부터 검역소에 가서 황열병 예방 주사 맞으라, 장티푸스 예방 주사 맞으라, 말라리아 예방약 먹으라, ... 등의 안내를 받으며 번거롭기도 하고 부담도 됐습니다. 하지만 선교 센타 문제도 있고, 무엇보다 아프리카 오지에 선교사를 파송해 놓고 가보지 못해서 늘 마음에 거렸던터라 마치 밀린 숙제를 하는 심정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선교지를 둘러보면서 그런 생각들이 다 사라졌습니다. 생각보다 가까운 땅이고, 우리가 자주 가 봐야 할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순간 순간 큰 감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감격’이라는 말보다 차라리 ‘흥분’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만큼 큰 감격과 기쁨이 있었습니다. 이렇게도 표현해 봅니다. “그동안 제가 가보았던 어떤 선교지 방문보다도, 성지 순례보다도 더 큰 은혜를 받았다”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감히 추천하고 싶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많은 분들이 아프리카 선교 여행에 참가하시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본문 성경 말씀과 더불어 아프리카 선교지에서 받은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후 광야 40년을 보내고 가나안 땅에 거의 당도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모세는 이제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부의 말을 합니다. 그는 늘 말씀을 전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비장한 마음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것을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치 유언하는 심정으로 말씀을 전했던 것입니다.

[1]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 우리를 택하신 이유 : 사랑(무조건적인 선택)

모세는 본문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를 언급합니다. 6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한 백성 즉 성민(聖民)임을 상기시킵니다. 세상에 수많은 나라와 민족이 있는데, 그 중에서 특별히 구별해서 이스라엘을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면 왜 그러셨는가? 하는 겁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겁니다. 7절 보면 거기에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말합니다. 무슨 특별한 장점이나 잘난 점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다른 민족이나 나라와 비교할 때 이스라엘은 내세울 것도 없고,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못난 민족이요 약소 민족입니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을 택하셨는가?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주지시키려는 게 바로 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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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8절 보면,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이 사랑해서 선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 ... )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속량’이란 단어는 히브리어로 ‘파다’인데, 돈을 지불하고 산다는 뜻입니다. 노예 상태에 있는 사람을 값(贖錢)을 치루고 자기 소유로 삼는 것을 의미합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출애굽 하던 날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장자 죽음의 재앙으로 집집마다 장자가 죽게 되었는데, 어린 양의 피를 문에 바른 집은 안전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장자가 구원받고 출애굽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곧 유월절(Passover)의 기원입니다.(출12:7, 13 참조) 하나님은 어린 양의 피 값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에수님이 우리를 위해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피흘려 죽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을 가리켜 유월절 양으로 불렀습니다.(고전5:7) 이 십자개 대속의 복음을 믿음으로 우리는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구요? 믿음으로! 그렇습니다.(요1:12) 그런데 이 믿음은 나에게서 스스로 나온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스스로 생각해보고 믿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전에 나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내가 믿고 구원받은 겁니다. 이게 신앙의 신비요, 하나님 사랑의 신비입니다. 엡1:4~5 보면 우리를 창세 전에 예정하시고 선택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특별히 행 13:48 보면 바울이 선교 여행 다닐 때 한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햇더나 많은 사람들이 믿고 구원을 받았는데 이를 가리켜 뭐라고 표형했나요?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작정되었다는 것은 예정 선택된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나 자신을 생각해 보면 세상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특별한 게 없는데 왜 택하여 하나님 백성 되게 하셨는지 정말 모를 일입니다. 그저 사랑하기 때문이란 말밖에 할 게 없습니다. 또 왜 사랑하는지 그 이유도 알 수 없습니다. 또 육신적으로 왜 나를 축복하시는지 정말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이번 선교 여행 중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는데 나를 한국 땅에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배고픔과 가난, 무지, 질병, ..)을 보면서 ... 이런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내가 아프리카에 태났었더라면 ... ? 솔직히 말씀드리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습니다.

경유지로 프랑스 빠리에 들렀는데, 그곳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그곳 사람들은 겉 보기에 풍요롭고, 화려하고, 세련되고 ... 하지만 내가 프랑스에 태어났었더라면 ... ? 생각해 보면 역시 끔찍한 일입니다. 영적으로 봐서 그렇다는 겁니다. 그 나라는 오늘날 신앙 생활하기 너무 어려운 곳입니다. 과거 조상들은 예수를 믿었지만, 그리고 그 덕분에 지금 물질적으로, 문화적으로 잘 살고 있지만 현재의 영적 상태는 그야말로 황폐화된 모습 그 자체입니다. 무신론자들이 거의 대부분이고, 모슬렘들이 득실거리고, 기독교 인구는 1%도 안 되는데다 그 중에서도 복음적인 신자는 극소수이고 ... 그런 땅에 태어났었다면 과연 내가 예수 믿고 이렇게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할까? 상상해 보면 부정적입니다. 프랑스인 목사님을 만나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으로부터 들은 영적 상황은 참담했습니다. 이제는 선교 대상 국가가 된 모습입니다. 은근히 한국교회가 도와주면 좋겠다는 뜻으로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소수의 기독교인들이 프랑스의 영혼들을 깨우려고 매년 40일간 기도 행사를 갖는다고 하는데, 마치 발버동치는 것처럼 보여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제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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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차라리 아프리카의 그리스도인들이 더 행복해 보였습니다. 거지 나사로와 지옥 간 부자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눅16:19~31) 꼭 같습니다. 지옥 간 부자보다 천국 간 거지 나사로가 더 낫습니다. 실제로 프랑스가 우울증 환자수에 있어 유럽에서도 1위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부정하는 영혼들에게 주어지는 사필귀정입니다. 그에 비하면 차드의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적으로는 흙집에 살고, 하루에 한 끼 혹은 잘해야 두 끼 먹고 살지만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 모릅니다. 몸을 흔들면서 기쁨으로 찬송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종합해서 생각해 보면 한국이 얼마나 좋은 나라인지 모릅니다. 더 좋은 나라를 찾아 이민 가는 분들도 있지만 제 생각에 한국처럼 살기 좋은 나라도 드물다고 생각됩니다. 이만하면 물질적으로도 풍요롭고, 신앙 생활하기 좋고 ...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많은 나라 중에서 이 한국 땅에 태어나게 하시고,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나를 선택해서 천국 백성 삼아주셨는가 ... ? 내가 잘 나서 ... ? 내가 착해서 ... ? 내가 큰 공로를 세워서 ... ?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인간적인 이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찬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 왜 내게 성령 주셔서 내 맘을 감동해 주 예수 믿게 하는지 난 알 수 없도다 ... "(찬송가 410장)

[2]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의 사랑에 응답하는 삶 : 감사와 순종, 그리고 헌신

그러면 이처럼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은 우리들 ... 과연 우리는 그 사랑에 어떻게 응답하며 살아야 마땅할까요? 9절~11절. 특히 11절을 보면 ... “그런즉 너는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지니라” 그랬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라는 겁니다. 본문은 포괄적인 내용으로 언급하는데, 성견 전체에 흐르는 말씀으로 간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감으로 그 사랑에 응답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건강은 감사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감사치 않으면 이미 신앙이 병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은혜를 소멸하고 결국은 인생을 실패하고 맙니다.(잠16:18) 우리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오직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고전15:10)임을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예배가 살아있는 예배가 되고, 찬송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살아 있는 찬송이 됩니다. 그럴 때에 비로소 우리 영혼이 넘치는 은혜로 충만해집니다.

미국의 부흥전도자 D. L. 무디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겸손은 은혜를 많이 받으며, 또 은혜를 잘 지키게 해주기도 한다.” 정말 은혜는 물과 같습니다. 물이 낮은 데로 흐르듯이 은혜는 겸손한 마음에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 은혜에 감사함으로 더욱 더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②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감으로 그 사랑에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시고 우리 인생이 잘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인생의 지도를 주셨습니다. 그게 곧 성경 말씀입니다. 지도를 보지 않고 길을 찾아가려는 사람은 바보 멍청이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며 세속의 흐름에 휩쓸려사는 사람은 멍청한 인생입니다. 그 인생이 복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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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책임 이전에 특권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거듭 거듭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반드시 축복하십니다. 신7:12~15 말씀을 보십시오. 축복의 약속입니다. 특히 14절을 보면 ... “네가 복을 받음이 만민보다 우승하여 ... ” 그랬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풍성한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뜻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축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③ 하나님의 사명에 헌신하며 살아감으로 그 사랑에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는 데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만 혼자 누리고 잘 살라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전 세계를 내려다 보십니다. 그리고 세계 인류, 모든 사람들을 살펴보십시다. 마치 부모의 마음과 같습니다. 부모는 모든 자식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먼저 믿는 사람들에게 명령하십니다.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들에게 명령하십니다. 사랑을 나누라! 그리고 복음을 전하라! 아브라함으 선택하신 이유도 바로 이겁니다. 창12:2~3 보면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요 모든 민족에게 복을 나누어줄 사람으로 택함받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만민에게 복의 통로 역할을 감당하라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이방의 빛으로 삼으셨다는 말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행13:47) 그런데 이스라엘은 왜곡된 선민주의에 빠져서 이방인 무시하다 오히려 이방인에게 박해 받는 민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서구의 여러 나라들도 실패했습니다. 물론 과거 서구 선교사들의 업적도 많습니다. 우리 한국 민족도 그들로부터 복음을 받았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잊지 말고 고맙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구미 여러 나라들이 약소국을 식민 지배하고 수탈하며 복음을 전해주는 대신 복음의 문을 막은 사례가 많습니다. 결국 마지막에는 자신들의 신앙까지 팔아먹고 말았습니다. 예수 믿던 조상들 덕에 잘 살아가지만 신앙의 각성이 이뤄지지 않으면 미래가 보장될까? 생각해 봅니다. 남의 나라 나쁘게 말하는 것 같아서 안됐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우리도 교훈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의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란 법이 없습니다. 개인도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부자, 오늘의 강대국이 내일의 부자, 내일의 강대국이 계속 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보장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신 축복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명(사랑으로 나누고, 복음을 전하며 선교하는 일)을 감당하면 좋지만, 만일 이를 무시하면 미래 보장이 없습니다.

빠리에 머물 때의 잠시 몽 마르트르를 방문했습니다. 몽 마르트르는 흔히 낭만적인 의미로 생각하는데 본래 ‘순교자의 산’이란 뜻입니다. 순교자를 기념하여 교회당이 서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아동하는 중 도심 한 가운데 현란한 장식으로 가득한 음란의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영적 도덕적 현주소입니다. 이런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빠리 시장이 동성애자라고 합니다. 그것도 문제인데 더 큰 문제는 빠리 사람들이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는 사실입니다. 또 우리도 신문에서 본 건데, 지난 해 여름 젊은이들은 다 바깡스를 떠난 사이 혹서가 몰아닥쳐 독거 노인들이 수만 명 죽었습니다.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영구차가 부족해서 트럭으로 날라다 장례를 치룰 정도였다고 합니다. 1등 문명국가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으니 분명한 하나님의 메시지 아니겠습니까? 교회는 죽어가고 있고 ... 정말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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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우리 한국도 안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 목적을 잊으면 곤란합니다. 하나님은 이 마지막 시대에 우리 한국교회, 한국 민족에게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강의 기적, 한국 교회의 기적을 주신 겁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서구의 전철을 밟게 됩니다. 이번 선교 여행을 통해 하나님의 그런 기대를 더 확실하게 확인하고 돌아왔습니다. 우리 한국 선교사들이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 자랑스러웠습니다.

특히 양승훈 선교사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제가 방문했던 그 어느 선교지보다 역동적으로 움직였습니다. 가는 데마다 복음의 감격이 넘쳤습니다. 이미 6교회가 세워졌는데,
이번에 새로운 교회 설립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모슬렘 지역의 마을에 세워진지라 더욱 의미가 깊었습니다. 오지 중의 오지 ... 과거에는 선교사들의 무덤이라 불리던 서부 아프리카 ... 그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땅 차드 ... 젊은 선교사가 짧은 기간 중에 놀라운 열매 맺었던 것입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스러웠습니다. 한편으로는 얼마나 눈물을 많이 흘렸을까 생각하니 코끝이 찡해 왔습니다. 그리고 모인 교인 숫자가 많은 사실보다 더 귀한 것은 현지 교인들이 순수하고 열정적인 신앙을 고스란이 간직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번에 마침 10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는데 3개월 교육 바은 후 시험을 치룬 결과 12명 중 2명을 떨어뜨렸다는 겁니다.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사역자들(전도사들)도 얼마나 잘하는지 제가 반할 정도였습니다. 사역자가 많아지고 교회가 더 개척되기 위해 신학교게 세워져야 할 시점이 왔고, 때를 맞춰 하나님이 선교 센타 건축을 시작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개개인도, 교회도 이런 일에 더욱 충성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쁨을 주십니다. 그리고 더 크게 축복하실 겁니다. 그리고 하늘의 영광을 주실 겁니다. 우리가 미래를 염려하고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데 해답은 바로 이겁니다. 선교지향적으로 살면, 사명에 촛점을 맞춰 살면 우리 미래를 보장됩니다. 복된 생애가 될 겁니다. 빛나는 영광의 생애가 될 겁니다. 이번에 그 증거를 재확인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양 선교사의 선교 사역에 결정적인 협력자로 이시우 집사님 가정이 있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익히 들었지만 정말 귀한 분입니다. 차드에 들어가 17년째 사진관을 경영하시는 분입니다. 평신도지만 선교 사역을 위해 많이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에게 그랬습니다. 집사님 가정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가정이라고 ... 실제로 그분의 집 응접실에 예배실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차드 한인교회라고 해서 교인수가 좀 되는 줄 알았더니, 그 가족들과 선교사들, 그리고 사업차 오신 두어 분이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주일예배, 삼일예배, 금요기도회 꼬박꼬박 모입니다. 주일에도 선교사들이 현지인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또 모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살아있는 선교지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지 사역자들을 만나 대화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중 대표자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선교사님들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그 집사님에게도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때 그분을 가리켜 ‘숨은 선교사’(Missionnaire Cach&eacute;)라고 말입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한인교회 예산이 1년에 천만원이라고 하는데 그게 거의 그분의 헌금입니다. 그 헌금을 가지고 선교사 지원하고, 교회 땅 사주고 .... 그런 일을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 속으로 게산을 해봤습니다. 얼마나 수입이 많기에 그 만큼 헌금하실까? 그 가난한 나라에서 그렇게 많은 돈을 버는게 믿기지 많을 정도입니다. 선교를 위해 헌신하면 하나님이 육신의 삶도 책임져 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3교회를 방문했는데 그곳에도 교인들에 제법 모이고 초등학생들도 꽤 모인다고 합니다. 그 교회당 건물 이야기를 해 주는데 수년 전 하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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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 여집사님의 헌금으로 마련된 것입니다. 몇 년간 부었던 적금 탔다며 1천만원을 헌금하셨는데, 그게 기초 자금이 되어서 교회 부지를 구입하고 골조를 세웠답니다. 모자라는 것은 한인교회에서, 그리고 공사는 교인들의 노력 봉사로 이뤄졌다고 합니다. 중요한 교훈이었습니다. 사람은 다 갑니다. 그러나 그가 한 일은 계속 남아서 하나님의 사명을 이룹니다. 그 모든 게 하늘에서 영광으로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두고 ... 그 이전에 다 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서! 그럴 때 우리의 인생을 영원히 빛나는 영광의 인생이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직 하나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때문입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그 사랑에 응답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과연 어떻게 응답하시렵니까? 곰곰이 생각하시고 결단하셔서 남은 생애 정말 기쁘고 복되고 영광스런 인생런 인생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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