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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문이 좋은 교회 (살전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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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살전1:1-10
제목: 소문이 좋은 교회


  사람들은 종종 교회를 음식점과 비교합니다. 비교할 수 없고, 비교해서는 안되고, 결코 비교되지 않지만 오늘은 말씀을 이해하는 관점에서 비교해 보려고 합니다. 우선, 식당이 잘 되려면 몫이 좋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느 자리에서 차리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교회도 어떤 자리인가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교회성장을 연구하는 어떤 목사님은 교회의 위치가 교회성장의 반 이상을 좌우한다고 말합니다. 둘째, 식당이 잘되려면 서비스가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음식을 먹는다는 내용보다 먼저 어떻게 맞이하느냐가 손님을 끄는데 큰 몫을 한다는 것입니다. 손님을 왕처럼, 임금처럼 대접해야 된다는 것이지요. 교회도 잘 되려면 교회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친절하게 맞이하는 첫 인상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세 번째 식당이 잘 되려면 소문이 좋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의 소문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한번 좋은 소문이 나면 손님이 그치지 않습니다. 거리나 시설과 상관없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소문이 좋지 않으면 그때부터 어렵습니다. 어떻게 보면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소문이 좋아야 합니다. 소문이 좋은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합니다.

이것은 성경적으로 근거가 있습니다. 본문은 소문이 좋은 한 교회를 소개하는 말씀입니다. 바로 데살로니가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한마디로 소문이 좋은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본문 8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이 교회의 좋은 소문은 마게도니아와 아가야에 퍼졌습니다. 이 두 곳은 당시 지역을 대표하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곧 교회의 좋은 소문이 인근에 퍼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소문은 각처에 퍼졌다고 말합니다. 교회가 세워진 지역들, 그리고 당시 세계의 끝이라고 하는 로마까지, 이 교회의 소문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개봉동과 서울, 그리고 대한민국에, 그리고 나아가서는 세계에 흩어진 모든 교회까지 두루 퍼지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교회는 '소문이 좋은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이 교회가 어떤 교회였기에 좋은 소문이 퍼졌을까요? 교회가 어떤 소문을 내야 할까요?

우선, 믿음의 소문입니다. 8절에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고로...” 라고 말합니다. 3절에 바울이 쉬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한 이유를 그들이 가진 ‘믿음의 역사’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5절에 능력, 성령, 큰 확신이란 단어를 사용하는데 모두 믿음의 다른 표현입니다. 무엇보다도 9절에 그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참되신 하나님을 섬겼다‘는 말은 믿음의 결과입니다. 이 모두 믿음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교회가 세상에 낼 소문 가운데 믿음보다 앞서는 것이 없습니다. 교회는 믿음의 공동체이기에, 믿음을 돈독히 해야 하고, 그 믿음의 소문이 퍼져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요, 주님의 바램입니다.

  일반적으로 믿음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금보다 귀한 믿음’이 있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습니다. 전자를 ‘구원받는 믿음’이라 말하고, 후자를 ‘역사는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전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어지고, 후자는 성도의 노력과 함께 커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 교회가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믿음은 두 가지 모두 필요합니다.

  구원받는 믿음이란 측면에서 이 교회가 무엇을 추구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전도’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지역사회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소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모여 말씀으로 충만한 은혜를 받고, 그들이 삶의 현장으로 흩어져서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 이들의 수고로 교회는 구원받는 자가 더했습니다. 이 소문이 바울에게 들려온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날마다 구원받는 자가 더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통해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교회는 존재합니다. 이것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나만 구원받아 행복한가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빚 진자의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된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역사 하는 믿음이란 측면에서 이 교회가 추구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기도’였습니다. 믿음이 크게 역사 하려면 기도 외에는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강조하면서 그것을 기도와 연관시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삶에, 우리 교회에 믿음이 생동하고 역사하기 위해서는 기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시고, 특히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믿습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공동체입니다. 합심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기도보다 어떤 제목을 품고 합심하여 기도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18층의 기적을 기억하십니까? 벌써 2년 전의 일입니다만 저는 아직까지도 그날의 사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소중한 아이 준범이가 아파트 18층에서 떨어졌습니다.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도저히 생존할 가망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아이를 놓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아이가 살아난 것입니다. 그 뒤 준범이가 많이 유명해졌습니다. 방송과 신문에서 인터뷰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가능한가에 의아해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누가 뭐라 해도 준범이는 하나님이 살리신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믿음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일으키고, 죽은 자도 살리시고, 산을 옮길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역사입니다. 우리 교회가 더욱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 기도로 믿음의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둘째, 사랑의 소문입니다. 바울은 3절에서 이 교회를 칭찬하면서 ‘사랑의 수고’가 있었다고 강조합니다. 이 교회는 사랑의 교회였습니다. 사랑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이 사랑이 성도들을 하나로 묶었고, 바울을 감동시켰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하나님에게 인정받고, 사람에게 칭찬을 들은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그 소문이 퍼지게 된 것입니다.

  사랑에도 역시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사랑이 있고, 다른 하나는 인간사랑이 있습니다. 성경은 두 가지를 다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과 계명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사랑, 이웃사랑, 이것은 주님이 가르치고 성경이 강조하는 핵심적인 진리입니다.

  하나님사랑이라는 측면에서 이 교회가 추구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바로 ‘말씀’입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말씀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이 교회를 향하여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 말씀인지 모릅니다. 아마 이 한 구절 때문에 당시 많은 성도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빠지지 않습니다. 바울이 기록한 성경은 단순한 편지가 아니라,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울의 편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이 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의 말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않았습니다. 2장 13절에서 이것을 잘 강조합니다. 바울을 통해 전해진 말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 앞에 성도들은 머리를 조아렸고, 겸손히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교회 성도들은 말씀 앞에 자세가 참 좋았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모두 자기에게 주신 말씀으로 잘 받았습니다. 감격으로 받았습니다.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말씀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할지를 깨달았습니다. 말씀 속에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이란 측면에서 이 교회가 행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수고’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3절에서 단순한 사랑이라 말하지 않고 ‘사랑의 수고’라고 강조합니다. 사랑에는 수고가 따릅니다. 수고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의 사랑은 희생의 사랑입니다. 십자가에서 그는 우리를 위하여 물과 피를 쏟으셨습니다. 사랑을 위하여 수고와 희생을 감수하신 것입니다. 사랑에는 반드시 수고가 따릅니다.

  이제 이 교회가 어떤 교회였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이 교회는 사랑으로 교회를 섬겼습니다. 사랑으로 서로를 섬겼습니다. 사랑하기에 자기 시간을 희생했고, 자기의 소중한 물질을 드렸고, 사랑하기에 땀을 흘리며 봉사한 것입니다. 이들이야말로 그 시대에 진정한 주님의 손과 발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 사랑의 수고가 좋은 소문으로 퍼지게 된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 수고해야 합니다. 이름만 교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나의 소중한 시간과 재능과 물질과 심지어는 생명까지도 드려 교회를 사랑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그런 성도가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요, 그런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좋은 소문을 내게 합니다. 우리 모두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수고를 아끼지 않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소망의 소문입니다. 믿음과 사랑, 그리고 소망은 언제나 함께 가는 것입니다. 3절에 소망의 인내를 말하고, 1장 전체가 어떻게 보면 이들에게 강력한 소망을 심어주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소망에도 역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꿈으로서의 소망이고, 다른 하나는 목표로서의 소망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꿈이고, 또한 목표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은 결국 꿈과 목표가 이끄는 것입니다.

  꿈으로서의 소망이라는 측면에서 이 교회가 행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종말신앙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10절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합니다. 특히 데살로니가서는 교리적으로 ‘종말론’이 주제입니다. 여기에 주님께서 앞으로 오실 영광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모두는 이들 교회가 가진 천국과 재림의 소망이 얼마나 크고 놀라웠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들에게서 천국은 이미 실현된 꿈이었습니다. 먼 하늘에 이상한 구름만 떠도 오늘 주님이 오시지 않을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이들이 이처럼 종말에 관심이 많던 이유는 현실적으로 너무도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말할 수 없는 핍박과 환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6절에서 바울은 ‘많은 환난 가운데’라는 말을 강조합니다. 현실이 힘들다보니 더욱 내세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 소망으로 어려움을 참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소망은 ‘인내의 소망’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을 알고 당면한 어려움을 잘 극복해 나간 것입니다.

  종말신앙은 신앙인의 기본 자세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입니다. 죽음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상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고 언젠가 끝납니다. 주님은 반드시 이 땅에 다시 오십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세상이 아니라 하늘입니다. 종말신앙을 가지십시오. 종말신앙이 우리를 견고하게 세웁니다. 교만하지 않게 합니다. 욕심을 버리게 합니다. 사랑하고 용서하게 만듭니다. 후회하지 않게 합니다.

  소망이 목표라는 측면에서 이 교회가 행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주님을 본받은 것입니다. 이 교회가 낸 가장 좋은 소문 주님을 본받는 삶에 있었습니다. 6절과 7절에서 이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이들은 주님을 본받은 자들이었습니다. 주님처럼 생각하고, 주님처럼 말하고, 주님처럼 행동하고, 주님처럼 살기를 몸부림쳤던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본받는 것이 신앙의 목표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냄새가 나야 하고, 향기가 있어야 합니다. 나를 통해 사람들이 주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저 교회에는 작은 예수가 많다, 예수님을 닮은 자들이 있다, 저 교회는 예수님처럼 하는 교회야...” 바로 이런 소문이 나야 합니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교회가 아니라 우리로 예수를 보는 교회, 바로 그런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태어난 교회가 아니라 만들어진 교회입니다. 이 교회의 좋은 소문은 우연이 아닙니다. 인사치레도 아닙니다. 온 성도가 하나가 되어 전도하는 일에 힘쓰고,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놓치지 않았고,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종말신앙을 잊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작은 예수로서 주님을 본받아 살았습니다. 그래서 소문이 나게 된 것입니다. 30년을 돌아보고,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우리 교회의 아름다운 소문이 퍼져 가는 그날까지, 우리 모두 힘쓰는 성도가 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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