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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통있는 믿음 / 딤후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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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전통있는 믿음
본문 : 디모데후서 1:3~5

3.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도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운동은 일조일석에 이루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구약과 신약, 그리고 고대와 중세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장구한 세월에 걸쳐 그의 구속사적 경륜을 중단 없이 이루고 있습니다. 그동안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달라져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구원 역사에는 어떤 변화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빛이라, 생명이라, 진리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모두 불변의 원칙이 있습니다.
농부가 땅에다 나무나 곡식을 심고 가꿀 때 그 토양에 따라서 농사의 기법이 달라지는 것처럼 교회가 복음을 전할 때도 그 시대의 문화나 인간의 사고에 따라 적용하는 방법이 다를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변할 수 없는 원칙이 있습니다. 곧 믿음의 전통이 그것입니다. 성경에는 믿음의 족보와 뿌리를 중요시하였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고 하였습니다(사 6:13).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볼 때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고 특권을 행사하다가도 그들이 하나님께 범죄하므로 징벌을 받아서 베임을 당한 일이 수없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조상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그 뿌리에서 다시 싹을 트게 하고 가지가 뻗어 열매를 맺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곧 구약과 신약의 관계요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본문 말씀 중에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이요 신약교회를 맡을 후계자인 디모데에게 그의 뿌리깊은 믿음을 상기시키면서 전도인의 책무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본문 5절에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급변하는 시대와 환경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변질시키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뿌리깊은 신앙과 전통이 맥을 이어가면서 그 사명을 수행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계시록 3:11에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Ⅰ. 신앙의 계보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에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하고 예수님의 족보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11:1에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하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1:3-4에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도 육신으로는 이브라함에서 다윗으로 이어지는 뿌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일러줍니다.

(1) 선택받은 족속입니다.

이와 같은 신앙의 계보는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선민의 역사입니다. 신명기 7:6에는 아브라함과 그 자손을 향해서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신약의 경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받은 성도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베드로전서 2:9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2) 말씀을 준수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선택한 자들을 세상 사람가운데 믿음의 표본으로 삼았습니다(창 18:19). 또한 그들에게 계시를 통하여 신실한 약속을 하였습니다. 신명기 7:9에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지키는 것입니다. 전도서 12:13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전통 있는 신앙은 조상 대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그 말씀에 따라서 사는 것을 뜻합니다.
옛날 다윗은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매우 의미 있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열왕기상 2:3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찌라”고 하였습니다.

(3) 생활의 순결을 지키는 자입니다.

신명기 7:6에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聖民)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민 이란 구별된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된 그 민족들은 마땅히 거룩한 삶을 살아야 됩니다(레 11:45).
구약시대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이 할례를 받은 것은(창 17:11-14), 그들의 몸에 거룩한 백성의 흔적을 가지게 한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 민족처럼 우상 숭배하는 일이나 음행이나 각종 부도덕한 행위를 하는 것을 정죄하고 있습니다(신 27:15-26). 이와 같이 선택받은 백성의 구별된 삶은 자손 대대로 계승되게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35장에는 레갑자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그 자손들에게 포도 농사도 짓지 말고 포도주도 마시지 말라고 유언을 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수백 년이 지나도 술을 멀리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5:18-19에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준종하여 그 모든 훈계를 지키며 그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행하였도다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Ⅱ. 생활의 원리가 있습니다.

언제나 성경적인 믿음은 그의 삶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22에는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전통 있는 믿음은 그리스도인의 건전한 삶의 근거가 되고 생활의 철학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향하여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3절). 그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오는 생활은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를 통하여 그 자손에게로 계승되어 전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 전통적 믿음이 실천되는 삶의 원리는 곧 개혁주의 신앙과 생활의 원리입니다.

(1) 하나님 중심입니다.

고대 아브라함과 족장들은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승복하면서 하나님의 요구에 부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8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구속받은 성도들은 그 삶의 중심이 오직 하나님의 뜻을 받들며 그를 기쁘시게 하려는데 있습니다. 로마서 12:2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2) 말씀 중심입니다.

계시의존(啓示依存)의 신앙을 뜻합니다. 개혁주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믿음입니다. 개혁자 칼빈(J. Calvin)은 ‘말씀이 가는 데로 따라 가고 말씀이 서는 곳에 멈추어 선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전통 있는 믿음을 말할 때 자칫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들의 관습을 지키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보다 오랜 관습으로 내려오는 장로들의 유전에 얽매여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5:6에 보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 앞에서 장로들의 유전을 가지고 힐난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하고 책망하셨습니다. 개혁주의 신앙의 전통은 일점일획 어김없는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파수하며 그 말씀에 얽매여 사는 것입니다.

(3) 교회 중심입니다.

옛날 애굽에서 올라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십 년에 걸친 광야 여행을 하는 동안 성막을 짓고 거기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실천하였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항상 성막을 중심으로 행진을 하였고 또한 저들이 거처할 장막을 지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성소가 그들의 삶의 구심점이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믿음의 전통을 계승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그의 삶의 중심이 됩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교회는 그의 몸이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4:16에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하였습니다.


Ⅲ. 전통 있는 믿음과 생활

성경적 신앙생활의 전통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을 두고 꾸준한 훈련과 노력으로 실천되는 생활입니다.
디모데의 집안처럼 선조 때부터 어어져 내려오는 신앙의 전통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이지 않을 만큼 뿌리를 굳건히 내리고 체질을 튼튼하게 키워 나온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장로교회의 전통인 개혁주의 신학과 성경 중심의 보수 신앙을 지켜나가기 위하여 철저하게 경건의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1) 예배 생활의 전통입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모든 성도들이 교회에서 공 예배에 적극 참여하는 일입니다. 일주일 동안 분주하게 살면서 심신이 피곤하고 지쳐있다가도 주일이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온 가족이 다 함께 주일 예배를 드림으로 경건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기존의 예배 형식을 바꾸거나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개편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한국교회 초기부터 내려오는 주일 오전, 오후 예배와 수요예배, 금요일 구역예배 등 전통적인 예배를 지켜 나갈 것입니다. 어린이 주일학교 때부터 예배 참석과 올바른 예배의 정신을 훈련시켜야만 어른이 되어도 경건한 삶이 지켜지는 것입니다(잠 22:6).
 
(2) 말씀에 착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 있는 사람의 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시 1:2-3). 마치 갓난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찾고 그 말씀으로 영혼이 윤택하며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벧전 2:2).
강단에서 철저하게 성경 말씀만을 선포하게 될 때 모든 성도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심령이 변화되는 체험을 하게됩니다. 히브리서 4:12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열심히 성경을 가르치고 교인들은 성경을 배우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신앙훈련을 착실하게 쌓아가야 될 것입니다.

(3) 새벽기도 운동입니다.

성도의 신앙은 끊임없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통하고 또 자신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기쁘게 받으시고 응답하여 주십니다. 그뿐 아니라 기도하는 성도에게는 언제나 신령한 은사가 공급되고 하나님의 능력이 행사됩니다(마 21:22).
성도에게 있어서 기도 생활은 그가 하나님과 가까이 있다는 증거이며 한편으로 세상의 죄와 유혹에 맞서서 싸우며 이길 수 있는 승리의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 중에도 매일 새벽 하나님의 전에 나와서 기도하는 것이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른 새벽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셨습니다(막 1:35). 경건한 성도는 잠에서 깨어날 때 새벽 공기를 마시며 교회로 나아와 하나님께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한날의 일과를 시작합니다. 새벽기도가 습관이 되고 생활이 될 때 그리스도인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지고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4) 십일조 생활입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시하는 행위입니다. 고린도후서 9:15에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생명도 물질도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의 몸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리는 삶을 살아야됩니다(롬 12:1).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의 헌물을 드릴 때 여기에는 먼저 하나님께 헌신하는 자기 자신의 정성을 물질로 표시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중에도 십일조에 대한 성경적 의미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당연한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께 받아서 누리는 재물 가운데 십분 일을 구별하여 하나님의 것이라고 이름지었습니다(말 3:8). 따라서 성도가 자기의 소득가운데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며 또한 자기의 의무입니다.
옛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친 최초의 인물입니다(창 14:10).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은 자기 스스로 하나님께 십일조를 서원  하였습니다(창 28:22). 경건한 성도는 십일조 신앙의 전통을 지키며 규모 있는 경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삶에 풍요의 복을 약속하셨습니다(말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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