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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의 보물은 하늘에 (마 6: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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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보물은 하늘에 (마 6:19-21)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고아원에서 살던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아이는 좋은 가정에 입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를 입양한 양부모님은 좋은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자기의 친자식처럼 진심으로 사랑해주고 잘 돌보아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에게는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버릇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아이는 먹을 것이 생기면, 그것을 자기만이 아는 곳에 몰래 숨겨두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때에 따라서는 음식물을 숨겨놓고 자기가 숨겨놓았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방청소를 하든지 또는 빨랫감을 찾기 위해서 구석구석 뒤지다가 숨겨놓은 음식물을 발견하고는 했습니다. 그때는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음식물에 곰팡이가 슬어서 더 이상 먹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고아원에서는 먹을 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하기 위해서 그렇게 음식물을 감출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부모 밑에서 그렇게 하는 일은 전연 쓸데없는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가 사랑으로 잘 돌보아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음식물을 계속해서 숨긴다는 것은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고 섭섭하게 만드는 불신의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영적인 견지에서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결코 고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으로 돌보아주고 계신데, 마치 우리가 아직도 영적인 고아들인 것처럼 자꾸만 우리의 육신을 위해 이 땅에서 무엇인가 쌓아두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섭섭하게 해 드리는 일이나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또 이 세상은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은 결코 아닙니다. 잠시 머물다 지나가는 곳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본향은 하나님 아버지의 집입니다. 곧 영원한 하늘 나라가 우리의 본향입니다.

헬라 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이 바사제국을 정복하기 위해서 대군을 이끌고 원정길에 올랐을 때였습니다. 머나먼 길이었습니다. 또 가는 도중에도 크고 작은 성읍들을 정복해야만 되었습니다. 헬라의 군병들은 그 모든 성읍들을 차례로 하나씩 하나씩 정벌해 나아갔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원정길에 오르기 앞서서 신하들에게 한 가지 분명한 지침을 내렸습니다.
"바사제국에 이르기까지는 그 어느 누구라도 그 어떠한 전리품에라도 손을 대지 말아라. 나의 명령을 어길 시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목숨을 보존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 수많은 금은보화들이 땅바닥에 널려있는데, 그 모든 전리품들을 내버리고 가야한다니 얼마나 아까운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그러나 알렉산더의 부하들은 얼마 안 가서 알렉산더의 뜻이 옳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목적지는 바사제국이었습니다. 중간에 있는 작은 도성들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가는 도중에 금은보화로 인해서, 자기들의 몸을 무겁게 만들었더라면 그들은 바사제국에 도달하기도 전에 지쳐서 다 쓰러져 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몸을 가볍게 했기 때문에, 거뜬히 바사제국에 당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원래의 목표대로 바사제국을 손쉽게 정복하고,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영적인 고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지금도 우리를 돌보아주고 계십니다. 또한 우리의 목적지는 하늘나라입니다. 이 땅은 그저 우리가 잠시 거쳐갈 곳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마치 영적인 고아인 것처럼 우리 육신을 위해서 이 땅에 무엇인가 쌓아두기를 힘썼다면, 이제부터는 우리 마음의 방향을 바꾸십시다. 이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기를 힘쓰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땅에 쌓은 보물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19절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우리가 언뜻 생각하기에 보물이라고 하면 다이아몬드와 같은 값진 보석이나, 또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골동품을 머리 속에 연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의 보물은 그러한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세 가지가 보물로 간주되었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그 당시에는 옷이 보물처럼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요새는 옷이 흔하니까 아무런 보물이 되지 않지만, 옛날에는 옷이 매우 귀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보면 옷이 보물처럼 진귀하게 간주되었던 경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창45:22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 형들이 양식을 사기 위해서 요셉에게 왔습니다. 이런저런 일이 있고 난 뒤 요셉은 자기의 신분을 형들에게 밝혔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요셉은 형들을 가나안 땅으로 되돌려 보내면서 아버지 야곱을 모시고 오도록 수레를 딸려 보냈습니다. 길을 가면서 먹을 수 있는 양식도 주었습니다. 아울러 요셉은 형들 각자에게 옷을 한 벌씩 주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의 친동생 베냐민에게는 옷을 다섯 벌이나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 당시에는 옷이 귀하게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수7:21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점령했을 때입니다. 그때 아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서 전리품을 감추었습니다. 그가 감춘 전리품 가운데 하나가 무엇이었습니까?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이 거기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만큼 옷이 귀한 보물로 여겨졌다는 뜻입니다.

삿14:12에 나오는 기록입니다. 삼손이 블레셋 여자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청년들 30명이 잔치집에 모였습니다. 그때 삼손은 블레셋 청년 30명에게 수수께끼를 내면서 만일 그들이 잔치하는 7일 동안 수수께끼를 알아맞히면 그들에게 베옷 30벌과 겉옷 30벌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들이 수수께끼를 알아맞히지 못할 경우에는 그들이 삼손에게 베옷 30벌과 겉옷 30벌을 주도록 약속했습니다. 그만큼 그 당시에는 옷이 보물처럼 귀하게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왕하5:22에 보면 또 이러한 내용이 나옵니다. 아람의 장군 나아만에게 문둥병이 걸렸습니다. 그것을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사가 깨끗하게 고쳐주었습니다. 나아만은 너무나도 감사해서 선물을 주고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것을 거절하면서 그냥 돌려보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엘리사의 사환이었던 게하시가 마음 속에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는 나아만을 몰래 따라가서 엘리사 대신에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때 받은 선물 가운데 하나가 역시 옷 두 벌이었습니다. 그만큼 옷이 보물처럼 귀하게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양털로 만든 좋은 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금실까지 달아서, 자기의 부를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둘째, 그 당시에는 곡식이 보물처럼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얼마나 먹고 살기가 힘든 때였겠습니까? 그래서 창고에 가득 쌓아놓은 곡물은 부의 상징으로 생각이 되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 있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서도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밭에 곡식의 소출이 풍성했습니다. 그러자 이 부자는 궁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그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렇다.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에 쌓아두리라."
먹고 살기가 어려운 때 창고에 곡식이 가득 쌓여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부의 상징이 되었을 것입니다.


셋째, 그 당시에는 금과 같은 보화가 보물처럼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여러분, 그 당시 사람들이 보화를 주로 어디에 감추었습니까? 마13:44에 보면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가 나오고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그 당시 사람들은 낮에 나가서 밭의 적당한 곳을 물색하고 돌아옵니다. 그리고 밤중에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 가서 밭을 깊이 파고 그 속에 보화를 감추어두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 당시에는 이 세 가지, 곧 옷과 곡식과 보화가 보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땅에 쌓은 보물의 문제점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은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지적해 주셨습니다. 옷은 입고 있을 때는 괜찮지만, 입고 있지 않을 때는 거기에 좀이 쏠아서 못쓰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곡식을 창고에 쌓아놓으면 무엇이 생기기 마련입니까? 오늘 본문에는 동록이라고 말을 했습니다만 헬라어 본뜻은 "eating," 곧 "먹는 것"을 뜻합니다. 곡식을 먹어치우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쥐나 해충과 같은 벌레가 곡식을 갉아먹게 됩니다. 또 밭에 감추인 보화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도적이 몰래 숨어서 지켜보다가, 주인이 없는 사이를 틈타 땅을 파고 보화를 도적질해 갈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땅에 쌓은 보물은 안전하지 못합니다. 물론 우리가 경우에 따라서 좀 더 오래 보관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게 되면 결국은 우리의 손을 다 떠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보물을 안전하지 못한 땅에 쌓아놓는 것은 결코 우리 자신을 위하는 길이 될 수 없습니다.


둘째로, 하늘에 쌓은 보물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20절입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이 땅과는 달리 하늘은 안전합니다. 그곳은 좀이나 동록도 또 도적도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지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둘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 방법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을 우리가 선한 청지기가 되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사용하면 그것은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는 셈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을 우리의 욕심에 따라 이기적인 목적으로 쌓아둔다든지, 또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한다는 것은 보물을 땅에 쌓는 셈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물질뿐만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시간, 재능, 건강, 노력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예컨대 오늘 본문 바로 앞에 보면 구제와 기도와 금식에 대한 가르침이 나오고 있습니다. 구제할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자기를 과시한다면 보물을 땅에 쌓는 것이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은밀하게 하면 그것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이 들으라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고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곧 보물을 땅에 쌓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은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입니다. 금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슬픈 기색을 내면서 또 얼굴을 흉하게 하면서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금식을 하는 것은, 아무리 귀한 금식을 한다 할지라도 이것은 보물을 땅에 쌓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면서 또 얼굴을 씻으면서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보이기 위해서 금식하는 것은,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누구를 위한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예수님은 우리가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을 위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신 것입니다. 막10:29-30의 말씀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요즘 우리가 은행에 저축을 하면 이율이 얼마나 됩니까? 한 4-5%나 됩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원금조차도 보장받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또 이율이 어느 정도 된다 하더라도 물가상승률에 제대로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둘 경우는 이율은 백 배라고 했습니다. 10,000%입니다. 그러니까 그것보다도 더 확실하고 수지 맞는 투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거기다가 하늘나라 은행은 안전합니다. 결코 부도가 나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게 될 경우에 만기가 되면,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선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금세에는 백 배나 받고, 내세에는 영생까지 겸해서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확실한 투자입니까?

지금은 고인이 되셨습니다만 영락 교회를 설립하신 故 한경직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 분이 영락 교회를 건축할 당시에 교인들의 수가 대략 150명 가량이 되었다고 합니다. 교회 건축을 앞두고서 이제 성전기공예배를 앞두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 목사님은 그 당시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위해서는 우리의 물질을 바쳐야 합니다. 십일 먹을 양식만 남기고, 하나님의 성전건축을 위해서 다 바칠 수 있는 마음의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만 기공예배에 참석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뒤에 기공예배를 드리는 날 150명의 교인들 가운데 53명이 그렇게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들은 십일 먹을 양식만 남겨놓고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서 다 바쳤습니다. 그 뒤 30년이 흘렀습니다. 교회설립 30주년이 되었을 때 목사님이 한 번 조사를 해보았다고 합니다. 그 당시 십일 먹을 양식만 남기고 다 하나님께 바친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십일 동안 먹고 난 뒤 그 뒤에는 다 굶어죽었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53명이 하나같이 한국의 300대 재벌 속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약속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하늘에 쌓은 보물은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금세에는 100배, 내세에는 영생까지 우리에게 허락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보물을 늘 하늘에 쌓아두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보물을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어야 할 이유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21절입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해바라기는 늘 태양을 바라보면서 삽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의 마음은 어쩔 수 없이 보물이 있는 곳으로 쏠리기 마련입니다.
어떤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교회는 구역예배를 드릴 때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예배를 인도하도록 되어있다고 합니다. 어떤 여집사님이 사회를 볼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소위 말하는 복부인이었습니다. 그저 이 아파트 저 아파트를 계속해서 정신 없이 쫓아다니다가 그날 구역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는 찬송가를 펴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다같이 찬송가 101동을 찾으십시다. 그리고 101동을 함께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 아파트 동 수만 가득 차 있으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말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또 여러 해 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남자 집사님 두 분이 함께 차를 타고서 기도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가는 도중에 소낙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차가 그만 미끄러져서 실개천에 기우뚱하게 기울어졌습니다. 밤중이라 도와줄 사람도 없어서 그들은 그냥 차를 두고 걸어서 기도원까지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밤새도록 엎드려서 기도하는데, 기도의 내용이 서로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차 주인인 한 사람은 앉자마자 계속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차가 물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꼭 좀 지켜주시옵소서."
반면에 같이 간 다른 집사님은 탄광을 운영하는 분이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이러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탄광에 물이 새어 들어가지 않도록 지켜주시옵소서."

이와 같이 물질이 있는 곳에는 어쩔 수 없이 우리의 마음이 쏠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땅에 보물을 쌓아두게 되면 우리의 마음이 어디로 가게 되겠습니까? 땅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게 될 경우에는 자연히 우리의 마음이 하늘에 있기 마련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3:2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늘 우리의 마음이 하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당연히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 예컨대 이방인들이나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땅에 있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들은 자기들의 보물을 땅에 쌓아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언제나 영원을 사모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제가 시 한 수를 소개하고 오늘 말씀을 끝맺고자 합니다. 우리나라의 여류시인이었던 김소엽권사님의 시입니다. 하루는 그가 책상에 앉아서 밤 깊은 시간에 조용히 성경을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어느 한 구절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말씀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바로 눅12:20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그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조용히 창 너머에 있는 밤하늘을 한 번 쳐다보았습니다. 시골의 밤하늘에는 반짝이는 별들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별들을 바라보면서 그의 마음 속에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별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흘리시는 눈물이구나! 하나님의 눈물이 저렇게 별로 변해서 밤하늘에 반짝이고 있구나!"
곧바로 그는 종이를 꺼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 한 수를 지었습니다. 제목은 "별"입니다.

            "별"   

이제 얼마나
남았는지
나는 모릅니다.
오늘 밤이라도
"영혼아!"하고 부르시면
"네"하고 두말 없이 가야 되어요.
가기 싫어도 가야 하고
가고 싶어도 못 가요.
그분이 부르시기 전에는
그날이 언제일는지
당신도 몰라요
나도 몰라요.
모르면서도 모르는 것을 모르고 살고 있어요.
매일 밤
그분이 울고 계셔요.
이제 조금밖에 안 남았는데
하늘 곳간은 텅 비어 있고
입이 터지도록 먹고 마셔도
정작 가진 것
이 세상에 남긴 것
하나도 없어
저 불쌍한 자식을 어쩌나 울고 계셔요.
그분이 흘린 눈물
방울마다
빛나는

별이 되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과연 우리의 하늘창고에는 보물이 얼마나 쌓여있겠습니까? 행여 우리의 하늘 곳간은 텅 비워둔 채, 그저 이 땅에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우리의 보물을 땅에 쌓는 일에만 급급해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우리의 마음의 방향을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이제는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기를 힘쓰는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내세에도 영원한 생명을 누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금세에도 100배의 축복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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