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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니 / 습 3: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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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니
본문 : 스바냐 3:14∼20

우리들은 '성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도란 어떤 사람입니
까?
이 질문에 여러 가지로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을 그대로 풀면 '성(聖): 거룩한, 도(徒): 무리, 합해서 말하면 거룩한 무리' 이
렇게 됩니다.
알기 쉽게 말하면 '예수 믿는 사람', 이렇게 되지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이 그 가운데 계신 사람' 다시 말해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 이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교회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여러 가지로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을 그대로 풀면 '교(敎):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의, 회(會): 모임' 이렇게 됩니
다.
원어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에클레시아: 부름 받은 자들의 모임' 이렇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이 그 가운데 계신 모임' '그 가운
데 하나님이 계신 공동체' 이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사모합니다.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이 질문에 여러 가지로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일 간단하고 명확한 대답은 '좋은 곳' 이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이 그 가운데 계신 곳' 이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3절에 천국에는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있어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종종 어느 지역의 교회들이 연합해서 '성시화(聖市化) 운동'을 벌입니다. 춘천
성시화, 인천 성시화, 이런 운동이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가 사는 곳을
거룩한 도시로 만들자, 기독교 도시로 만들자' 이런 운동이지요.
어떤 도시가 성시, 거룩한 도시입니까? 그 가운데 하나님이 계신 도시가 성시
입니다.

우리는 성도로서, 교회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 천국을 사모하며, 우리가 사는
곳이 거룩한 도시가 되기를 바라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아니 계셔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요시야 시대, 왕족 출신의 예언자인 스바냐는 여러 가지 예언을 하면서 결론
부분에 와서 이 문제의 답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찬양하며 기쁘게, 즐겁게 살아야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라는 말과 '노래한다' '기뻐
한다' '즐거워한다'는 말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우리는 왜 찬양하며 기쁘게, 즐겁게 살아야합니까?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15절 앞부분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 말은
복음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이것을 두 글자로 줄이면 '사죄'입니다.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원수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세상의 현실적인 원수들,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 우리 나라를 괴롭히
는 세력들입니다. 이런 원수는 상대적 원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옛 원수는 친구가 되고 새로운 원수가 생기는 일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현실적인 원수, 상대적인 원수들도 쫓아내십니다.
또 하나는 영원한 원수입니다. 바로 죄입니다. 죄와의 화해는 불가능합니다. 절
대적 원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영원한 원수, 절대적 원수인 죄를 쫓아내십니다.

왜 찬양하며 기쁘게, 즐겁게 살아야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15절 끝을 보세요.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
님께서 화를 당할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대부분 여권을 가지고 계실텐데 여권의 제일 첫 면에는 '대한민국 국민
인 이 여권 소지인이 아무 지장 없이 통행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고 필요한 모
든 편의 및 보호를 베풀어 주실 것을 관계자 여러분께 요청합니다 대한민국 외
교통상부 장관' 이런 말이 인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가운데 계시는 성도들은 보이지는 않지만 '나의 백성인 이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화를 당하지 않도록 보장하여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하나님' 이런 여권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쁘게, 즐겁게 사시기 바랍니다.
16절 끝을 보세요.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손을 늘어뜨리고 축 늘어진 모습을 하고 있는 교회가 있다면 그 교
회, 하나님을 그 가운데 모신 교회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교회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일상생활에서도 풀이 죽어서 손을 늘어뜨리고
사는 사람, 하나님이 그 가운데 계신 사람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기뻐할 때 하나님도 기뻐하십니다. 17절 중간을 보세요. "그가 너로 말
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자녀들이 짜증내고 심술부리면 부모들이 기뻐
하기 어렵지요. 자녀들이 애교를 부리고 예쁜 짓 하면 부모도 함께 기뻐합니다.

어떤 사람이 전도를 받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친구가 물어 보았습니다. '그래 자네, 교회에 나가니 어떻던가?'
이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무어
라고 확실하게 대답하기는 어렵네. 그러나 웬일인지 모르게 마음이 가벼워지고
기뻐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네' 이 사람은 복음을 바로 받아
들인 것입니다.

그에게 기쁨이 없다면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그에게 기쁨이 있다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성도 여러분, 찬양하며 기쁘게, 즐겁게 사시기 바랍니다.
목양교회는 찬양하며 기쁘게, 즐겁게 지내는 공동체가 되어야합니다.

둘째,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이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심을 알아야합니다
(17a).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을 텐데 스
바냐는 무엇보다도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라고 17절 앞부분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스바냐는 생동감 넘치는 언어와 직선적이고 단호한 어법으로 예언을 하고 있는
데 그 가운데에서도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이것은 대표적으로 그
렇습니다.

스바냐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신다고 가
르치고 있습니다.
잠잠히 사랑한다는 말에는 사랑으로 새롭게 한다는 뜻도 들어 있는 데요, 여러
분. 하나님의 잠잠한 사랑, 요란한 것 같지는 않지만 알찬 사랑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18절 이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 행위들입니다.
18절은 "내가 너에게서 두려움과 슬픔을 없애고 네가 다시는 모욕을 받지 않게
하겠다는 뜻입니다.

구원을 베풀 전능자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괴롭게 하는 자들을 다 벌하십니다.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십니다.
온 세상에서 모욕 받는 자들이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십니다.

여러분, 어떤 어려운 문제와 싸우고 있습니까?
모욕을 당하고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문제로부터 여러분을 건져주실 것을, 벗어나게 해 주
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욕이 변해서 칭찬과 명성이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일이 목양교회 창립 42주년 감사주일인데 감사 행사들이 이번 주일부터
시작되어 다음 주일 오후 3시 30분에 있을 장로 취임예배에서 피크를 이루게
됩니다.
목양교회 역사 42년을 돌아볼 때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라는 사실이
참 실감 있게 느껴집니다.
왜 그렇게 느껴지는지 구태여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바라보며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신 하나님이 목양교회의 어려운 문제들을 다 해결해 주
시며 칭찬과 명성의 교회로 이끌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된다는 말씀
은 강하게, 강하게 드리고 싶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나'의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니'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나'는 글자 한 글
자의 차이인데 그 내용은 엄청나게 다릅니다. 정반대가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나'의 삶은 어떤 것입니까?

스바냐서 3장 5절은 하나의 본보기가 됩니다. "그 가운데 계시는 여호와는 의
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
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이 말씀에서 "공의를 비추시거늘" 이
부분을 "공의를 비추시나"로 읽어도 뜻이 변하지 않습니다.

공의의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니 우리는 의롭게 살기 위해 힘써야합니다.
공의의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나 공의롭게 살지 못하는 사람, 하나님이 사
랑하지 않습니다.

강남에 있는 한 기독교출판사는 건물 옥상에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
까?'라는 글을 붙여 놓았습니다. 그 출판사 사옥은 고속도로 옆에 있어서 고속
도로를 오가는 많은 사람들이 그 글을 봅니다. 그 가운데는 그 출판사에 전화
를 해서 '내가 걱정되는 일이 많았는데 그것을 보고 깨닫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나 걱정하는 사람, 하나님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나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하나님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어리석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알기는 하나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하나
님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다릅니다. 그것을 잘 알려주는 것이 나이아가라 폭포의
곡예사 이야기입니다.
한 곡예사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나이아가라 폭포 양쪽 끝에 밧줄을 매고 왔다
갔다 했다고 합니다. 뛰기도 하고 나중에는 자전거를 타고 왔다 갔다 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박수를 쳤습니다. 이 곡예사가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여
러분, 내 재주 보셨지요? 내 재주를 보셨으면 내가 사람을 업고 이 폭포를 건
널 수 있다는 것도 아시겠지요?' 사람들은 '물론입니다. 잘 압니다!' 외쳤습니다.
곡예사는 '그렇다면 누구 한 사람 나오세요. 내가 그를 업고 이 폭포를 건너겠
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잠잠해지고 아무도 앞으로 나서지 않았
다고 합니다.
이럴 때 앞으로 나서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시편 46편 5절 전반부에는 "하나님이 그 성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나 흔들리는 생활을 하는 성도들, 하나님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앞으로 무슨 일을 결정할 때 '하나님이 내 가운데 계시니 이렇게 해야
하겠다' 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무슨 일을 결정할 때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니 우리는 이렇게
합시다' 이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찬양하며, 기쁘게, 즐겁게 사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심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니' 여기에 합당한 삶을 사시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
고 목양교회가 되기를 우리 가운데 계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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