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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것을 보아야 성한 눈이다 (마 6;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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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보아야 성한 눈이다 (마 6;22-23)
                           
이런 유모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에 기도하러 들어갔습니다. 그랬더니 누군가가 어둑한 교회에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소리를 지르면서 기도하여 기도제목이 무엇인지 다 들렸습니다.
그는 큰 소리로 하나님께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부르짖으며 기도하면 들어 주신다고 하셨지요? 20 만원이 필요해요. 20만원을 주세요>
기도하러 들어간 사람은 지갑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20 만원을 꺼내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당신의 응답이 여기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할렐루야! 기도가 응답되었다>
좋아서 만면에 미소를 지으면서 나갔습니다. 그 때 기도하러 들어간 사람은 조용히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시끄러운 사람 나갔어요. 이제부터 제가 기도할 터이니 제 기도에만 집중하여 주세요>

이 사람은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똑같이 눈이 둘이 있어도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22-23)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히브리말로 눈을 <아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인>이라는 말은 <원천>이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보는 것은 원천이 됩니다. 눈이 원천입니다. 무엇을 보느냐부터 그 사람의 인생이 시작됩니다.

12 명 제자들이 예수님을 3 년 따라 다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지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하늘 나라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그런 예수님을 보지 못 하고 돈을 보았습니다. 은 30 냥에 눈이 어두워서 스승을 팔아 버렸습니다.

눈은 원천입니다.
그래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몸이 밝고 어둡고가 눈에 달렸습니다. 긍정적이고 부정적이고가 눈에 달렸습니다. 축복과 저주의 원천이 눈입니다.
행복과 불행의 원천도 눈입니다.

그러면 성한 눈은 무엇을 볼 줄 아는 눈일까요? 오늘 성경말씀에는 <눈이 성하면> 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원어로 아플로스 라고 되어 있는 데 이 말은 초점이 잘 맞추어진 눈을 말하는 것입니다. 초점이 잘 맞추어진 눈이 잘 볼 수 있는 눈입니다. 그러면 성한 눈, 초점이 잘 맞추어 진 눈은 무엇을 볼 줄 아는 눈일까요?


1. 속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성한 눈은 겉으로 나타난 것보다 겉으로 나타나지 아니한 속을 볼 줄 압니다.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줄 알아야 성한 눈이고 성숙한 눈입니다.
예수님은 남이 보지 못 하는 속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였습니다. 게다가 7 귀신이 들었습니다. 설상가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겉만 보았습니다. 귀신들린 미친 사람이라고 천대하였습니다. 창녀라고 무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이 보지 못 하는 속을 보셨습니다. 귀신이 나가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면 너무나 신앙생활을 잘 할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7 귀신을 내쫓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모두가 도망갔습니다. 12 명 제자들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숨질 때까지 십자가 옆을 떠나지 않았던 이는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무덤을 새벽에 제일 먼저 찾아 간 이도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 하는 것을 보실 수 있는 놀라운 속을 볼 줄 아는 눈을 지니셨던 분이었습니다.
삭개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삭개오를 세리라고 욕하였습니다. 난쟁이라고 깔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뽕나무위에 올라가서 자기를 만나려고 응시하는 삭개오에게서 비상한 그 무엇인가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다가 가셔서 그의 집에 가서 하루를 머무르시면서 지내셨습니다.

남다른 것을 볼 줄 아는 것이 영안입니다.
겉만 보지 말고 속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겉은 보이지만 속은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있습니다. 빛만 좋았지 맛이 없다는 말입니다. 독사의 알이 예쁘고 좋아 보이지만, 그것을 까보면 무서운 독사가 나옵니다. 이렇게 겉만 보았다가는 큰 실패를 당하고 맙니다.
성한 눈은 속을 볼 줄 압니다.


2. 창조적인 것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항상 긍정적인 것을 볼 줄 알아야 성한 눈입니다. 막힌 환경 속에서도 뚫을 수 있는 창조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어야 성한 눈입니다. 안 되는 환경속에서도 될 수 있는 방법을 볼 수 있는 눈이 성한 눈입니다.

성경에서 두 가지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벳세다 들녁으로 나가신 적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 나섰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굶었습니다. 지쳤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보았습니다. 안 되는 방법만 보았습니다.
<여기는 광야이고 지금은 밤입니다. 할 수 없는 곳이고 할 수 없는 때입니다>
예수님은 빌립에게게 먹을 것을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빌립에게 명하신 것은 빌립이 벳세다에서 태어나 벳세다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그 곳을 잘 알기에 어떻게 좀 해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빌립은 말했습니다.
<조금씩 먹게 한다고 하여도 200 데나리온도 부족하겠습니다>
200 데나리온은 약 1,000 만원쯤 됩니다. 장정만 5,000 명이니 한 사람에게 200 원 정도만 주어도 1,000 만원입니다. 하루 종일 굶은 사람들에게 200 원어치는 어림도 없습니다.

상과대학 출신같이 안 되는 이유를 이야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계산이 빠른 사람을 쓰시지 않습니다. 안 되는 방법만 보고 이야기하는 사람을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그 때 안드레가 5병 2어를 들고 있는 어린 아이를 예수님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여기 한 아기가 있어 보리떡 5 개와 물고기 2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 것이 얼마나 되겠삽나이까?>(요6;9)
예수님은 그 것을 가지고 축사하셨습니다. 그리고 5,000 명은 다 배불리 먹이고도 12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하나님은 부정적인 눈을 가진 사람을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항상 창조적인 생각을 하면서 할 수 있다의 믿음을 가진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또 한 가지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출애급 후 모세는 가나안을 점령하기 위하여 한 지파에서 한 명씩 정탐군을 불렀습니다. 12 명의 정탐군이 40 일간 가나안 땅으로 몰래 들어가서 정탐하고 돌아 왔습니다.
10 명의 정탐군이 먼저 이렇게 보고 하였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하더이다>
이 말을 듣고 정탐군중에 한 명이 갈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그러나 10명의 정탐군은 다시 말했습니다.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된다고 믿었습니다. 할 수 있는 길을 언제나 제시하는 이들이었습니다.
눈이라고 다 눈이 아닙니다. 창조적인 눈이 성한 눈입니다.

지난 주간 나는 <연탄길>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그 중에 한 이야기입니다.
할머니가 병석에 누워 꼼짝 못 하고 누워 있었습니다. 의사는 3 개월 정도 남았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할머니가 그런 사실을 알았는지 병석에서 늘 말했습니다.
<나는 이번 겨울을 못 넘길 것 같다>
그런데 할머니는 겨울을 넘어 봄을 넘어 여름에 돌아 가셨습니다. 의학적으로는 3 개월이면 죽어야 할 할머니가 그렇게 더 오래 산 것을 보고 의사들도, 이웃들도 놀랐습니다. 나중에 그 원인이 밝혀졌습니다.
온 집안 식구들이 할머니를 만나러 들어 갈 때에는 겨울 옷을 입고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할머니 밖에는 추워요. 눈이 와요. 손 시려워요>
일부러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어 손을 차게 하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할머니 손을 차갑게 느껴지도록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겨울을 못 넘길 것이라고 하였는 데 아직도 겨울이 안 간 줄 알고 굳굳히 살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그렇게 오래 산 것입니다.
성한 눈은 문제속에서도 항상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눈입니다.

역사적으로 축구 황제라고 불리워지는 이는 브라질 펠레입니다. 펠레가 골을 넣은 것이 1,300 골입니다. 우리는 축구 경기를 관람할 때마다 한 골이 얼마나 귀중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 골에 온 민족이 환호합니다.
그가 책을 한 권 저술하였습니다.
<펠레, 나의 인생과 아름다운 경기>라는 책입니다. 그가 직접 쓴 책입니다. 그 책 내용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축구를 시작하였습니다. 공은 차고 싶었는 데 가난하여 공을 살 만한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양말을 둘둘 말아 공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것을 찼습니다. 얼마나 공을 잘 차는 지 15 살에 프로 축구팀에 스카웃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축구의 황제란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는 비밀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사실은 근시였습니다. 멀리 볼 수 없었습니다. 시력이 아주 약하였습니다. 도저히 치료할 수 없는 근시였습니다. 기자들이 이런 사실을 나중에 알고 물었습니다.
<이런 나쁜 눈을 가지고 어떻게 1,300 골을 넣었습니까?>
펠레는 이렇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나는 근시 때문에 지장 받은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내게는 말초적 감각, 즉 감각적 시력이 발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감을 가지면 공이 산처럼 크게 보였습니다. 발로 차기가 쉬웠습니다>
할 수 있다고 창조적인 눈을 가진 사람은 할 수 있는 방법을 볼 수 있습니다.

골프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골프공이 축구공만큼 크게 보이는 때가 있고 콩알처럼 작게 보이는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 크게 보이고 언제 작게 보입니까? 자신감이 넘칠 때는 크게 보이고, 자신감을 잃으면 작게 보여서 안 맞는다는 것입니다.
활을 쏘는 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감을 가진 날을 과녁이 대문짝만하게 크게 보이고, 자신감을 잃은 날은 과녁이 콩알만하게 보여서 안 맞는다는 것입니다.
창조적인 눈을 가진 이의 눈이 성한 눈입니다.


3. 영원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성한 눈은 영원을 볼 줄 아는 안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대신에 내일을, 순간 대신에 영원을 볼 줄 압니다.

바울은 이런 영원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8)
바울도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라고 말했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는 순간을 보지 않고 영원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졌습니다. 모세는 오늘만 보았다면 바로왕의 궁중에서 호화호식하며 권력을 누리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적인 모든 것을 거절하였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했습니다.
(1) 왕이 될 명예를 거절하였습니다.
(2) 자기를 죽음에서 살려주고 길러준 공주를 거절하였습니다.
(3) 부귀영화를 거절하였습니다.
(4) 행복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 장차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6)라는 말씀대로 미래를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어떤 잡지에 이런 기사가 났습니다.
어떤 사람이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의 영혼이 금방 뛰쳐 나와서는 차 밑에 있는 자기 시체를 교통순경이 와서 정리 하고 그 시체를 싣고 병원으로 가는 것을 자기 눈으로 보았습니다. 흰보자기를 덮어 씌우는 것도 다 보았습니다. 자기 시체를 붙들고 몸부림치며 우는 가족들도 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체속으로 영혼이 들어 와서 살아 났습니다.
그 후는 그는 영혼을 확실히 믿고 내세도 확고하게 믿고 살았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해산하면서 아기를 낳다 죽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죽었다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하늘나라에 가서 천사에 이끌려 천국의 아름다움을 보며 구경하였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세계지 만 이 세상에서 어린 자녀들을 두고 온 것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애원하였습니다.
<나는 이 곳에 와보니 여기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집에 어린 자녀를 두고 왔습니다. 날 좀 다시 내려가게 하여 주십시오>
애원하는 소리를 듣고 천사는 다시 내려가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장사지내려고 하는 데 관속에서 신음소리가 나서 다시 관을 열어 보니 살아 있었습니다.

이런 간증은 그리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만 보지 말고 저 세상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한 눈입니다. 눈은 영원의 원천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저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 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마태 6:19, 20)

<연탄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린 딸이 병원에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하였습니다. 죽어가는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 마음은 찢어지듯이 아팠습니다. 가슴을 도려내고 고춧가루를 뿌리는 것같았습니다. 어머니는 딸 옆에서 간호하며 살다가 점점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그는 딸 옆에서 딸을 보살피다가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그 후 얼마 있다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침상에 죽어가는 딸에게 들렸습니다. 딸은 펑펑 울면서 몸부림쳤습니다.
<엄마! 내가 먼저 갈 줄 알았는 데 엄마가 먼저 하늘 나라에 갔어요. 나도 빨리 하늘 나라에 가서 엄마를 보고 싶어요>
그리고 하늘나라에 가면 사랑하는 엄마가 있다는 것을 알고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빨리 하나님 나라에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딸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때 죽었다던 어머니가 나타났습니다. 알고 보니 어머니는 정말 죽은 것이 아니라 딸을 위하여 연극을 한 것이었습니다. 죽어가는 딸 곁을 이를 악물고 참고 떠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온 식구들과 함께 연극을 한 것이었습니다. 어린 딸이 행복하게 죽도록 한 것입니다.
성한 눈을 가진 사람은 이 세상만 보지 않고 저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만 보지 않고 내일을 볼 줄 압니다. 순간만 보지 않고 영생을 봅니다.
이것이 성한 눈입니다.


4. 장점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성한 눈을 가진 사람은 장점을 볼 줄 압니다. 남이 보지 못 하는 아름다운 것을 볼 줄 압니다. 장미꽃을 보면서 어떤 사람을 가시를 볼 때 성한 눈을 가진 사람은 아름다운 꽃을 볼 줄 압니다.

지그 지글러는 성공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장점 발견자라고 말했습니다. 남의 나쁜 점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좋은 점만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놀라운 장점 발견자입니다. 그런 눈을 가지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를 보셨습니다. 앞으로 하루 3천명을 전도할 능력을 보셨습니다. 어부라는 천한 직업을 보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실 때도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급에서 이스라엘 땅으로 인도할 지도자를 찾으실 때 젊고 페기있는 젊은 사람중에 찾지 않으셨습니다. 고위층중에 고르지 않으셨습니다. 80 세의 늙은이, 더욱이 목자중에 고르셨습니다. 앞으로 하나님께 절대 복종하며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이리 저리 흔들리지 않고 굳굳히 전진할 수 있는 장점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남의 장점을 발견하고 그 것을 쓸 수 있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이런 장점 을 발견할 수 있는 성한 눈을 가진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인천 상륙 작전을 성공시킨 6.25의 영웅 맥아더 장군 뒷 이야기입니다. 맥아더는 학생 시절 공부도 못 하고 골목 대장 노릇만하고 말썽꾸러기였습니다. 어른들이 모두 포기할 정도의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너는 군인 기질이 있다. 군인이 되면 크게 되겠다>
이 말 한 마디가 맥아더를 변화시켰습니다. 맥아더에게 꿈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사관학교에 가서 큰 장군이 된 것입니다. 장점을 볼 줄 아는 사람의 눈은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크게 만듭니다.
단점 발견자 옆에는 사람이 가지 않습니다. 그를 따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장점은 발견하여 용기를 주고 단점은 알지만 말하지 않고 기도하여 주는 사람이 성숙한 눈을 가진 사람입니다.

나는 지난 주간에 두 가지 체험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 어린이 전도 협회가 있습니다. 어린이 전도의 전문기관입니다. 나는 이번 주간 이 협회에 속한 선생님들 3,000 명에게 성막 교육을 시켰습니다. 교재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성막 만들기이고 다른 하나는 교과서입니다. 둘 다 검토하여 보니까 결정적인 문제가 들어 났습니다.

만일 성막 만들기 결점을 지적하면 3억원 정도 들여서 10,000개 만들어 놓은 것이 허사가 됩니다. 그리고 교과서에서 잘못 된 점을 지적하면 1억원 가량 들여서 만들어 놓은 교과서가 휴지가 됩니다. 나는 지적할까 말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성경으로 해답을 주셨습니다. 잠언을 읽는 중에 주신 말씀입니다.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잠20;22)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시기까지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결점은 지적하지 않고 조용히 기도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장점만 지적하며 분위기를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기도만 하였더니 자기들끼리 다 발견하였습니다. 성막 만들기를 개발한 김 현길 장로님도 몇 가지를 스스로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어린이 전도 협회도 고치겠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알면서도 기도만 하였다고 말했습니다.
서로가 기분좋은 일이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깊은 진리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노아가 술을 마시고 취하였습니다. 발가벗고 누웠습니다. 함이 이를 알고 단점을 지적하였습니다. 술 마신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벌서벗고 주책부린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사실을 지적하였으나 저주를 받았습니다.
미리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세가 구스여자 이방인 검둥이 여자와 결혼하였습니다. 미리암이 이를 지적하였습니다. 비난하였습니다. 사실입니다. 구스여자 이방인 검둥이 여자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러나 미리암은 모세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결과로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사실이라 할 지라도 지적하지 말고 기도만 하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단점 발견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장점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야 성한 눈입니다.
1. 속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2. 창조적인 것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3. 영원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4. 장점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런 성한 눈을 가질 수 있을 가요? 한 마디로 성령 충만하면 됩니다.

시편 기자는 말했습니다.
시편 119:18에도 보면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엡1;18)라고 말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영의 눈을 열어 주셔서 그런 성한 눈을 주셔야 합니다. 늘 성령께 의지하고 살아가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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