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시대를 역행한 사람 [창 6:13-22]

  • 잡초 잡초
  • 542
  • 0

첨부 1





시대를 역행한 사람 <창 6:13-22>


□ 시대를 역행한 사람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
으로 할찌니라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
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
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 수 한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
명을 보존케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너는 먹을 모
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 노아
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세기 6:13-22)

언젠가 TV에 보니 산에서 움막을 치고 혼자 사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시대를 거슬러 역행하는 사람이라고 보았습니다.
또 움막을 치고 어머님의 묘소를 지키면서 매일 어머님 곁에서 지내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이 사람도 시대를 역행하면서 사는 사람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시대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시대를 역행한 사람}, 오늘 제목을 보면서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줄 압니다.
시대를 따라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정상적인 삶이라고 할 것입니다.
시대를 거스르거나, 처지는 사람을 볼 때 모두 비정상적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참된 신앙생활은 시대에 동화되면서 사는 것이 아니
라 시대를 역행하면서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말씀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
라"(롬12:2)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세속의 문화 속에 깊이 동화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지난 주일 씨 뿌리는 비유 중에 가시덤불 같은 마음에서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세속에 깊이 빠져있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시대를 역행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노아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1. 노아는 시대를 역행한 사람이었습니다.
노아가 살던 당대의 모습을 창세기 6장에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대 사람들의 마음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
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
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6:5-8)고 하였습니
다.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악으로 달려갈 때 노아는 그렇지 아니했다는 말입니
다. 이 말은 즉 다수의 사람의 생각대로 그렇게 살지않았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모든 사람들이 가는 그런 길로 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노아의 시대가 얼마나 타락했었는지 하나님이 보시기에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하였다"고 했습니다. 패괴란 <부패>하고 <반항>함을 의미합니다.
영어로는 corruption and violence 라고 하였습니다. 모두 부패하고 반항적인 그런 사람들 속에서 노아는 그렇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심을 한탄하였다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한탄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이 타락하여 하나님과 멀어졌다는 뜻입니다.

이런 시대를 살면서 노아는 당시대의 사람들과 같이 그렇게 살지 않았기에 그
래서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분명히 노아는 시대를 역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역사가 중에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역사는 우둔한 민중들에 의하
여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엘리트들에 의하여 진행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도 다수의 무지한 백성들보다는 의식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하여 역사
는 이끌림 받는다는 뜻일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식이 있는 신앙의 사람들에 의하여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지금도 이루어 나가
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세속에 파묻혀 있는 육의 사람들이 아니라, 심령으로 변
화를 받아 시대를 거슬러 살아가는 신앙의 엘리트들에 의하여 천국은 확장되
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합시다' '전도합시다' 하지만 누구나 다 전도합니까?
어느 교회나 보면, 다수의 교인들이 아닙니다.
소수의 은혜의 체험을 한 사람들이 전도의 불을 붙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상에 깊이 동화된 사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똑같이 욕하고, 똑같이 의심하고, 똑같이 폄론하고, 똑같이 시기하고, 똑같이
미워하고, 똑같이 자랑하고, 똑같이 이해득실만 따집니다.
어떤 면에서는 믿는다는 사람들이 더 인색하게 굴 때가 많습니다.
교회를 보는 눈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눈으로 보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
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세상에 푹 빠져있는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여기서 돌이켜 나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 처럼 그렇게 말하고,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신앙생활은 시대를 역행하는 삶입니다.

2. 그러면 노아는 어떻게 그런 삶을 살았을까요?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기를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함으로 그 끝 날
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고 한 말을 그대로 믿
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시한대로 자신의 생각을 첨부하지 않고 방주를
지었습니다.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지으라"고 하였을 때 그대로 순종했습니
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교훈입니다.
그 당시 방주를 지으라는 말은 시대를 역행하는 말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전혀 먹혀들어가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맑은 하늘에 무슨 비가 그렇게 많이 내려 지면을 덮는단 말인가?
미친 노인의 말이라고 따돌렸을 것입니다.
오늘도 심판을 말할 때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절대로 심각하게 듣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아무도 노아 이외에는 방주를 지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행하였습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
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시대를
역행하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받게 됩니다.
타락한 다수의 시대를 따라가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믿음
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볍게 여겨진
다면 신실한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한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명령>으로 받아들였습
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시하는 설계대로 방주를 지었습니다.
우리에게서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에다 자신의 생각을 첨가하는데 있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말씀의 기본 설계가 있지만, 자꾸 내 자신의 생각을 첨가하
기 쉽습니다. 원설계사의 설계도면을 보면서도 그대로 짓지 않는 것 같이 우리
의 요즘의 신앙생활이 바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그렇게 살지 아
니했습니다.

3. 그러므로 노아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첫째, 타락한 민중은 심판의 대상이라는 점입니다.
아무리 많은 무리의 집단적인 행위라 해도 하나님과 멀어진 인간들의 행위는
심판의 대상이란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멀어진 민중(Demos)의 다수는 정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① 타락한 이념, ② 타락한 사상, ③ 타락한 정치, ④ 타락한 권력은 결국 하나
님의 심판의 대상일 뿐입니다.

역사는 타락한 다수의 힘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소수자
들에 의하여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것이 모세였고, 여호수아와 갈렙의 경우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모세와 아론은 60만 민중이 다수로 겨룰 것이 아니었습니다.
10명의 정탐군의 부정적인 다수의 생각은,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을 능가할
수 없었습니다. 타락한 다수는 자기들의 힘의 과시를 수치로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타락한 민중의 다수결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는 타락한 민주주의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일 뿐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하늘 나라는 Democracy(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민(民)이 주인(主人)이 아니고 데오스(Theos) 하나님이 주인입니다.
그러기에 가장 이상적인 정치는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신정정치(神政政治)
입니다. 그것이 구약시대에 나타났던 사울 왕 이전 시대이었습니다.
신정정치에서 왕정정치로 넘어가게 된 과정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적군과 싸우면서, 우리에게도 왕이 있어야 하겠다고 하는 아
우성 때문에 하나님은 너희들이 그렇게 원하면 한번 해 보라고 하는데서 부터
시작된 것이 왕정정치입니다. 데모스들의 요구에 의하여 된 것이지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까지 세상의 군왕들
이 얼마나 백성들을 탄압하고 군림하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된 신분으로 깊이 반성해 보아야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난 다수는 무의미하다는 결론입니다.
노아 시대의 당대의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항상 악했다는 것처럼, 하나님 없는
문화, 하나님 없는 교육, 하나님 없는 경제, 하나님 없는 다수결의는 심판의 대
상이란 말입니다.

요즘 우리가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는 {개혁}이란 말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서 참된 개혁이란 무엇을 의미한다고 보십니까? 개혁이란 새로운 것을 수용하
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과거의 모든 것은 버리고 새 것을 추구하는 것을 개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개혁을 이루기 위하여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참된 개혁은 말씀에서 이탈되었던 자리에서 다시 옛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16세기 종교 개혁이었습니다.
말씀에서 이탈하여 멀어졌던 생활에서 다시 옛 성도들처럼 그렇게 말씀 중심으
로 되돌아가자는 것이 개혁운동이었습니다.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
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애 5:21)라고 하였습니
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개혁은 옛날로 되돌아가는데 있습니다.
옛 우리의 선조들이 믿었던 그런 신앙생활로 되돌아가, 우리의 날이 옛적 같게
되는 것이 바로 개혁이란 말입니다.
흔히 미국을 말할 때 청교도들을 얘기합니다.
미국이 지금 강대국이 되었지만 저들이 왜 조상들의 신앙을 말하고 있습니까?
오늘의 미국의 부패와 타락이 심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우리의 옛 조상들의 날로 되돌아가는 운동을 개혁의 운동으로
펼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한국은 너무나 타락한 다수들의 힘이 강해졌습니다. 하나님 모르는 데
모스들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어 보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하나님은 웃으실 것입니다.
시편 2편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
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도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게 구하
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
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
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
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노아와 같은 믿음의 삶이 이루어
지도록 기도해야 하겠고, 또 그렇게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