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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헛되지 않은 수고 / 고전 15: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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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되지 않은 수고 / 고전 15:57-58


우리의 삶은 삶 자체가 수고입니다. 수고란 히브리어에 보면 ‘혹사한다, 큰 고통을 당한다’라는 뜻이고, 헬라어에 보면 ‘아주 많은 괴로움을 당한다’라는 뜻입니다. 사실 어떤 일을 할 때에 하는 육체적인 수고도 수고지만, 정신적으로 겪는 괴로움도 있습니다. 정신적인 괴로움은 육체의 어떤 뼈의 아픔과 살의 찔림의 아픔보다도 더 큰 고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많은 수고 속에서 살다가 죽습니다.

전도서 1:3에 보면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라고 말씀했습니다.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남는 것은 한 줌의 흙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헛되지 않은 수고’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헛되지 않은 수고의 사람이 되어서 우리 자신에게는 유익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덕이 되고 은혜를 끼치며,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는 수고의 기쁨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어떠한 수고가 헛되지 않은 수고일까요?


첫째, 주님께 바쳐지는 수고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58절) 이 세상에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주의 일’이라고 하는 이 이름 자체가 얼마나 은혜롭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일, 내세에 관한 일,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는 일, 영의 일 이런 모든 일들이 이 세상에서 헛되지 않은 주의 일입니다.
요한계시록 14:13에 보면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3)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에서 ‘수고가 따른다’는 말은 고생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수고에 대한 상급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여기에서 죽음을 복이라고 한 것은 우리 예수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고 하나님의 선물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권세 지위를 가졌든, 부귀 영화를 누리고 있든 없든 다 죽음을 두려워하며 삽니다. 왜냐하면 불신자의 죽음은 곧 지옥 형벌의 고통이요, 이를 갈며 통곡하는 날이요, 꺼지지 않는 불구덩이 속에서 세세무궁토록 이를 갈며 심판을 받는 그런 출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죽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죽는 그 순간부터 눈물과 애통, 곡하는 것, 아픈 것이 다 끝이 나고, 천국에 들어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바쳐지는 수고란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받들어 충성하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주님의 복음을 힘써 전하며, 몸과 마음과 시간과 물질로 정성을 다하여 주의 사역을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일보다도 주의 일을 가장 기뻐해야 됩니다.


둘째, 성령으로 봉사하는 수고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빌 3:3)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주의 일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우리의 손과 입과 몸을 통해서 성령께서 역사해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이 함께 할 때에 손에 능력이 나타납니다. 손도 축복의 손이 있고, 도적질하는 손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참으로 요지경입니다. 어떤 분은 이 땅에 태어나서 흉악한 일만 하다가 감옥에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어떤 분은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싸매주며, 위로해주고 붙잡아주며, 이끌어주고 축복해주다가 길이 길이 그 이름이 빛나고 후대사람들에게까지 존경을 받으며 성령으로 봉사하는 수고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입이지만 저주와 악담을 하는 사람은 쓴물처럼 그 입에서 온갖 원망과 불평, 독살스러운 말, 거짓말, 혈기 분노의 말을 합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봉사하는 수고를 하는 사람은 그 입에 항상 은혜와 진리의 샘이 흘러 사랑의 말과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말,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축복된 말을 하며 삽니다.

베드로는 성령을 받기 이전에 한 말과 성령을 받은 이후에 한 말이 달랐습니다.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다니며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사와 이적을 보며 영적 훈련을 받았던 베드로가 성령을 받기 전에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마 26:35)라고 맹세했지만, 막상 주님이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 앞에서 모욕을 당하실 때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마 26:70,72,74). 그러나 그가 오순절에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이후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복음을 전했을 때 3천명, 5천명이 회개하고 주님을 믿기로 결심하는 능력과 권세가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향하여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성령에 의해서 쓰임 받는 사람은 절대 자기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자랑합니다. 예수를 높입니다. 예수를 찬양하고 전파합니다. 자기 삶에 있어서 최고가 예수님입니다. 자기 삶의 주인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자가 삶의 목적도 예수요, 자기의 모든 삶의 방법 전체가 예수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중심의 삶이 되었을 때 성령에 의해서 사로잡힘 받고 쓰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쓰임 받고 있습니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 수고하고 땀을 흘리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동분서주하며 애쓰고 힘쓰고 있습니까? 만일 그 일이 예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라면 남는 것은 허탈과 허무감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를 위해서 수고하고, 땀을 흘리며, 핍박을 받고, 주를 위해서 금식기도와 철야기도도 하며 전심전력을 다하는 수고는 곧 성령으로 봉사하는 수고입니다.

성령으로 봉사하는 일과 자기 육체의 힘으로 봉사하는 일은 다릅니다. 성령으로 일을 하게 되면 그 일이 기뻐지고, 그 일을 자원해서 하게 되며, 그 일을 열정적으로 하게 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사 6:8)라고 말씀하셨을 때, 즉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자원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강제적으로 일을 맡겨서 하는 것도 좋으나 스스로 자원해서 하는 것은 더 좋습니다. 로마서 12:11에 보면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말씀했습니다.


셋째, 생명을 살리는 수고입니다.

“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르고, 악인의 소득은 죄에 이르느니라”(잠 10:16) 생명을 살리는 수고란 지옥에 갈 자를 천국에 가게 하고, 저주 받을 자를 축복 받게 하는 수고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명을 살리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고 힘쓴다면 하나님께서 배후에서 도와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즘 자연 생태계를 살리기 위해서도 애쓰는데, 지옥 가는 저 생명들을 보고도 어찌 우리가 방관만 하고 있어서 되겠습니까? 어떻게 하든지 저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가 생명줄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서 주님께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주님께서 교회에 사명을 부여한 것입니다.

이 세대가 점점 더 악해져가고 있습니다. 생명을 사망에서 건짐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만히 있게 된다면 과연 누가 이 세대를 건지겠습니까? 사도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라고 고백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수고야말로 헛되지 않은 수고입니다.

요한복음 3:16,17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넷째, 복음을 위한 수고입니다.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빌 2:22)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디모데를 소개할 때에 다른 것을 소개하지 않고 그가 복음을 위해서 나와 함께 수고한 자라고 소개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는 수고가 많이 있지만 복음을 위한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은 수고입니다.

다니엘 12:3에 보면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말씀했고, 시편 126:5,6에 보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위한 수고에 전심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4:2에 보면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말씀했고, 마가복음 16:15,16에 보면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 바쳐지는 수고, 성령으로 봉사하는 수고, 생명을 살리는 수고, 복음을 위한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은 수고입니다. 헛되지 않은 수고에 전심전력을 다하여 우리 자신에게는 유익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덕이 되고 은혜를 끼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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