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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도의 의무와 축복 (고전 9: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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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  / 전도의 의무와 축복 (고전9:16-23) 

[1]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핵심은 전도

  학교에서 시험을 칠 때 그 문제에 대하여는  핵심을 써야 고득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평소에 교수가 가르칠 때 강조하는 핵심이 무엇이고 강조하는 말씀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시험답안지에 적어 넣어야 인정받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똑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고 강조하시는 핵심을 잘 파악해서 인생 시험을 잘 치뤄야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강조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영혼구원입니다. 전도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목적도 그것이고, 에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말씀도 "내가 전도하러 왔다" "나는 잃어 버린 양을 찾으러 왔다"고 오신 목적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기 직전에는 우리에게 만민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 전도에 모든 삶이 목적이 되고 동기가 되어 있어야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점수를 받아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검하게 되는 복을 누릴 수 있는 3중 축복을 누릴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 잘 믿고 에수 증인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전권대사(Christ Ambassador for Mission)라는 자긍심으로 나에게 주어진 현장에서 확실한 선교사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부흥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부흥"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전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들은 전도하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신 것도, 그들이 병낫는 것을 보고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70인을 전도하도록 보내신 일이 있습니다. 그때 그들에게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하지 말고, 그들이 방문하는 집에서 영접하면 평안을 빌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도하기 위해서 전심전력하면 의식주 문제는 주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2] 전도해야 하는 이유와 전도자세


1. 전도는 성도의 의무이다.

부모가 자녀를 낳으면 그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부모의 의무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의 의무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를 들면, 국민의 3대 의무입니다. 첫째는 "교육의 의무"이고, 둘째는 "병역의 의무"이며, 셋째는"납세의 의무"입니다. 이것을 지키는 것이 국민의 의무입니다.
  그렇다면 성도에게 있는 의무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교육의 의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둘째는 "병역의 의무"입니다. 이것은 "주님께 몸을 바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납세의 의무"는 "십일조를 바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3대 의무입니다.

  국민이 3대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국민이 아닌 것처럼, 성도도 이 3대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성도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도"도 중요한 성도의 큰 의무라 할 수 있습니다.
  딤후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또 골4: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전도하는데 힘을 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듯이 성도는 전도의 의무를 다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 전도하기 위하여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라.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쓴 편지입니다. 그가 자신의 편지에서 "전도하기 위해 자기의 권리를 포기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고전9:18에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 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 고 말하며, 복음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내세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위해서 만큼은 모든 권리를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포기한 권리는 빌3:5에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로마 시민권자입니다.
  이처럼 머리좋고, 집안좋고, 권리있는 그가 복음 때문에 그 권리를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 자기의 모든 권리를 포기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자기 지위와 권리를 주를 위해 포기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 교회는 부흥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초대 교회가 큰 부흥을 이루었던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3. 전도하기 위하여는 종과 노예처럼 섬기는 자가 되라.

  바울 사도는 갈5:1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종이 아니라 자유인이니,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것입니다. 롬8:2에는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해방자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전9:19에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 많은 사람을 얻기위해 스스로 종이 되었다고 합니다. 고전4:10-13 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고 말합니다.
  한 영혼이라도 구원얻게 하려고 종과 노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영혼을 전도하는 것은 그만큼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복음전파에 열정은  바울이 고후12장에서 영험을 고백하는 것처럼, 그는 셋째하늘까지  올라가 가히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을 주님으로부터 듣고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4. 전도하기 위하여 상대방의 위치에 서 주라(Understand).

  바울은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상대방의 위치에 서줍니다.
  우리도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전도를 해야 합니다.  만약 오늘 어느 권사님과 목사님이 어떤 사람을 심방갔다고 합시다. 그를 위해 기도하고, 눈을 뜨더니 "아이고 눈이 푹 꺼졌네, 입이 돌아갔네, 며칠 못살겠는데..."고 했다고 한다면, 이것을 심방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심방이 아니고 복음전도의 훼방입니다.  심방을 가는 것은 그의 입장에서 아픔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전도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편에 서서 그를 이해하며 격려하고 위로하며 복음을 전했던 사람입니다.  전도는 상대방의 입장과 그 위치에 서주는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에 대해서 고전9:20-22에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하고 말합니다.

  사람을 얻기 위하여 그들의 입장에 서서 복음을 전합니다. 자신이 예수를 핍박하는 자로 살았으나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나고 변화되어, 그를 위해 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말하는 사도 바울의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행19:17-18에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 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하고 증거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복음을 전하니 감동 받고 예수의 이름을 높이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3] 전도는 축복의 물댄 동산으로 가는 길.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실 때 반드시 전도라는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제가 구원받은 것도, 여러분이 구원받은 것도 오직 전도를 통해서 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인간은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우상숭배, 사단, 귀신을 섬깁니다. 거기에는 멸망밖에 있을 것이 없습니다.

  1962년 어느날 빌리 그래함 목사는 씨애틀의 어느 호텔에서 숙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하나님은 그에게 잠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의 머리에 당시 인기 최고의 여자배우인 마를린 먼로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 여자의 영혼이 급해 나에게 전도시키려는 모양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급히 먼로양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먼로양의 비서와 연결되었습니다. 먼로양과 통화하고 싶다고 했더니 비서가 거절하였습니다. 먼로양은 지금 침실에 들었고 먼로양과 통화하려면 예약을 하고 2주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지금 통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비서는 끝내 거절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수화기를 놓고 말했습니다. 그때 하나님도 그녀를 버렸습니다. 그녀는 그 이튿날 침대에서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녀는 당시 세계에서 제일 인기있는 영화배우였지만 저녁에는 불면증에 시달리며 잠을 잘 수 없어 수면제를 먹고 잠을 자는 것이 습관화되어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잠을 잔 것이 죽음으로 연결되고 만 것입니다. 그 후에 그가 마지막 쓴 일기가 발견되었습니다.

"나는 한 여성으로서 지닐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아직 건강할 뿐아니라 매우 아름다우며 돈도 많이 모았습니다. 하루에도 수백통의 팬레터를 받으며 사랑에 굶주리지도 않습니다. 부족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나의 마음은 외롭고 공허하며 기쁨이나 평안이 없습니다. 나는 이유없이 불행합니다."

세상 적으로 볼 때 그는 인기도 많으며 부족한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심한 고독을 느끼며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평안을 느끼지 못한 것입니다. 왜 그녀는 평안하지 못했을까요? 바로 그녀의 마음에 예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마음에 예수님이 없으면 기쁨이 없습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주위를 잘 둘러보십시오. 여러분의 주위에도 이런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 적인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으면서도 고독을 느끼며 불행해 합니다. 왜? 예수님이 그들 마음속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십시오. 예수님 말만하면 됩니다. 성령께서 역사 하시면 그도 구원의 방주에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도 평안을 얻습니다. 기쁨을 얻습니다. 행복을 얻습니다. 그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 발견하게 되는 것이 세 가지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을 읽으면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죄가 나를 생노병사에 시달리게 하고 절대절망의 존재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둘째는 그 죄 사함을 주시기 위해 오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 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자는 예수님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참 빛을 주셔서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게 하셔서 천국적 평안을 누리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오페라 가수 조지 삐볼리슈는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인기가 올라가도 그의 영적 고갈은 메꿀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빌리 그래함 목사님 집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그의 마음속에 모셨습니다. 넘치는 기쁨을 얻었습니다. 그는 오페라 가수 생활을 청산하고 빌리 그래함 전도단을 따라 다니며 찬양하였습니다. 그가 즐겨 부르는 노래는 찬송가 102장이었습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 없네.

브리스베인 순복음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으십시오. 그 길만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길이요, 성공하는 길이요, 행복으로의 초대받은 길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귀하신 주님을 전하는 삶을 사십시다.
  전도는 해도 그만, 하지 않아도 그만이 아닙니다. 고전9:16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말합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신의 자랑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부득불 전해야 하는 의무라 말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국민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그는 감옥에 가든, 재산이 몰수되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신앙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복된 삶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축복된 삶인 것입니다. 이 축복된 삶을 누리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니엘서도 우리에게 결론으로 말씀합니다.
" ...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12:3). 이런 자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요, 하나님께 인정받는 점수를 받아 하나님이 반드시 복주고 복주며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는 약속을 이루어 주실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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