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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의 이유가 사라질 때 (합 3: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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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감사의 이유가 사라질 때
< 본 문 > 합3:16~19

오늘은 맥추감사절입니다. 구약 성경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3대 절기를 지켰습니다. 유월절, 맥추절(오순절, 초실절, 칠칠절), 수장절(장막절, 초막절) 등.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해방 기념일이고, 맥추절과 수장절은 감사절기입니다. 이러한 전통을 따라 오늘의 교회도 1년에 두 번 감사절을 지킵니다. 그 중에서 맥추절은 상반기에 대한 감사절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다른 절기와 달리 유독 감사절만큼은 두 번이나 지키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우리 신앙과 삶에 있어서 감사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감사는 성숙한 신앙의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신앙의 꽃이란 표현도 있습니다. 둘째로, 감사는 우리 인생을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렇죠. 늘 감사할 수 있는 성도는 신앙이 좋은 사람이요 행복한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감사하라 이렇게 누차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매일의 삶 속에서 감사 신앙을 유지한다는 것은 솔직히 쉽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감사가 넘치지만 어떤 때는 원망과 불평 혹은 불안과 두려움이 마음을 짓누를 때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어떤 조건이 충족될 때 감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조건부 감사'입니다. 무엇 무엇 때문에(Because of) 감사하는 겁니다. 여기에 맹점이 있습니다. 어떤 조건이나 이유에 의해 감사하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그렇게 감사하려고 하니까 진짜 감사할 수 없게 됩니다. 조건이나 외적인 이유는 변화무쌍합니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습니다. 권세, 명예, 건강 등 모든 게 그렇죠? 그러니까 이런 것들을 조건으로 감사하려면 실패합니다. 인간 조건이 변화무쌍할 뿐 아니라, 설사 그 조건이 유지된다 하더라도 같은 조건이 그대로 계속되면 이내 싫증을 냅니다. 그러니까 자꾸 조건이 좋아져야 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나 실제 현실 속에서 그렇게 될 수 있나요? 항상 부침(Up & Down)이 있기 미련입니다. 그러니까 대부분 성도들이 조건에 따라 늘 왔다 갔다, 흐렸다 갰다 하는 겁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우리가 항상, 범사에 감사할 수 있을까요? 감사하는 패턴을 바꿔야 합니다. 조건부 감사가 아니라, 무조건적인 감사(In Spite of)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환경과 조건 가운데서도 늘 감사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게 가능할까요? 신앙으로 가능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우리 주변에도 그런 신앙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라고 못 할 게 없습니다. 그들이나 우리나 동일한 하나님을 믿기에 가능합니다. 오늘 이 시간 그 비결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항상 감사하고, 항상 행복한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 찬양이 나옵니다. 당시 하박국이 처한 현실은 외적인 조건으로 볼 때 전혀 감사할 이유가 없습니다. 모든 감사의 이유가 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사람의 감사보다 더 풍성하고 진솔합니다. 그 비결을 찾아보기로 합니다.


[1] 하박국이 처한 현실 : 감사의 이유가 사라진 위기 상황

당시는 BC 7세기 경인데 고대 근동 지역에 신흥 바벨론 제국이 위세를 떨치던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심각한 죄악 가운데 신앙도 도덕도 타락한 유다 백성을 징계하려고 작정하십니다. 그 도구로 바벨론을 사용하시려 합니다. 하박국이 이런 하나님의 계획을 듣고는 고민에 빠집니다. 그 심적 부담과 고통이 어떠했는지 본문 16절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이러한 전쟁의 위협 가운데 유다가 처한 조건은 처참할 정도가 됩니다. 본문 17절 보십시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모든 게 다 없습니다! 부정어가 6번(못하며,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으며, 없을지라도) 반복됩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3대 과실수가 무화과, 포도, 감람(올리브) 등입니다. 과수원마다 농사가 안됩니다. 밭도 마찬가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다 짓밟혀버립니다. 먹을 게 없습니다. 사람 먹을 것도 모자라니 가축들이 죽어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우리에 양이 없습니다. 외양간에 소가 없습니다. 인간 조건으로 보면 완전 절망입니다. 끝장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감사할 수 있을지! 상식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원망하고 불안해하는 게 정상입니다. 감사의 이유가 다 사라져버린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경우가 있죠. 건강하던 사람이 건강을 잃어버렸습니다. 부요하던 사람이 물질을 잃어버렸습니다. 권세와 지위가 있던 사람이 추락해버렸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감사의 이유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박국은 그런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곧 하박국의 신앙입니다. 그 신앙을 우리가 배워야 되는 것입니다.

[2] 하박국이 감사할 수 있었던 유일한 근거 : 나의 하나님

본문 16절, 17절의 암담한 분위기가 18절에서 극적으로 반전됩니다. 16~17절에서는 유다가 처한 위기 상황을 서술합니다. 전쟁으로 징계를 당할 것이다, 그리고 농사를 망치고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 등. 이렇게 하고 18절은 원문 상으로 “그러나 나는 ... ”(히브리어-와/아니, NIV - Yet I will ... ) 이렇게 기록된 겁니다.(우리 말 성경에는 ‘그러나’가 없음) 마치 컴컴한 터널을 통과하는데 저 건너편에서 한 줄기의 찬란한 광채가 어둠을 뚫고 들어오는 느낌입니다. 답답했던 것이 확~ 뚫리는 기분입니다.

하박국은 그런 절망의 상황에서 오히려 감사의 찬양을 부릅니다. 본문 18절~19절입니다. 맨 끝부분을 보십시오. “ ...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그랬습니다. 여기서 ‘영장’이란 말은 성가대 지휘자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수금’은 현악기(string)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노래를 지어서 현악기 연주에
맞추어 감사 찬양을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 감사 찬양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인간 조건으로 보면 아무 것도 없지만 여전히 자기에게 남아 있는 소중한 게 있음을 찬양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구원이 되시고 힘이 되시는 하나님! 세상 모든 게 다 사라지고 모든 것을 다 빼앗긴다 해도 하나님은 항상 자신과 함께 하심을 고백합니다. 18절~19절을 보십시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 하박국이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약속하신 대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에게 아무 것도 없었지만, 고통과 궁핍만 있었지만 그 모든 역경을 이기게 해 주시는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결국에 가서는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케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19절에 기록된 ‘사슴’의 이미지는 날렵하고 활기찬 모습입니다. ‘높은 곳’은 승리자의 위치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만 함께 해 주시면 두려울 게 없는 겁니다. 그런 생각에 도달하니까 하박국의 마음 속에서 샘솟듯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겉에 보이는 모든 조건들은 다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기쁨과 감사, 그리고 찬양의 조건이 된다면 언젠가는 실망하고 기쁨도 감사도 찬양도 다 상실하고 말 겁니다. 행복하지도 못할 겁니다. 고전 7:31 보면 바울 사도가 뭐라고 말씀합니까?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passing
away) 벧전1:24 보면 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
예> 뉴욕의 9.11 테러 현장 - 거대한 세계무역센타 빌딩이 무너져 사라졌는데 그 자리를 가리켜 Ground Zero 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인생의 모든 조건이 이와 같이 사라져갑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사라지지 않고 변치 않는 것을 기쁨과 감사의 이유로 삼아야 합니다. 변치 않고 영원한 것은 세상 어디에도 어느 것도 없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믿고 의지하는 신앙이 ‘재산목록 1호’입니다.
예> D. L. 무디 “당신 자신을 믿어보라. 반드시 실망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을 믿어보라. 어느 날 죽거나 이별하게 될 것이다. 명예나 돈을 믿어보라. 어느 날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보라. 그러면 후회없는 삶을 살 것이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13:5 “ ...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기에 하박국은 정말 지혜로운 인생입니다. 가장 행복한 인생입니다. 그 절박한 상황에서도 이렇게 감사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고, 찬양할 수 있다면 다 된 거 아닙니까? 그 이상 바랄 게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확실히 만난 사람,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며 사는 사람 그는 ‘빼앗기지 않는 전부’를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최대 위기라 할 수 있는 죽음 앞에서도 감사 찬양할 수 있습니다.
예> 다니엘의 세 친구 -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금신상 세워놓고 절하도록 강요
... 그러나 끝까지 굽히지 않은 세 사람(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 왕 앞에서 당당
한 자세 ... 단3:16~18 “ ...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cf. 잠14:32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예> 영화 「타이타닉」침몰 장면 - 1912년 영국 호화유람선 타이타닉號가 대서양 건너다 침몰 ... 승객들이 구명 보트로 탈출 ... 그 와중에 악단이 끝까지 남아 찬양을 연주하면서 물 속에 잠겼습니다. 그때 연주한 찬송이 188장 「만세 반석 열리니」입니다. 3절&4절. “빈손 들고 앞에 가 십자가를 붙드네 의가 없는 자라도 도와주심 바라고 생명샘에 나가니 맘을 씻어 주소서. 살아 생전 숨쉬고 죽어 세상 떠나서 거룩하신 주 앞에 끝날 심판 당할 때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3] 나도 하박국처럼 감사의 이유가 사라질 때도 감사할 수 있는가?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무엇 때문에 우리는 기뻐합니까? 감사합니까? 찬양합니까? 물질이 풍성하기 때문입니까? 건강하기 때문입니까? 사업이 잘 되기 때문입니까? 직장에서 승승장구하기 때문입니까? 자녀들이 잘 되기 때문입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좋은 일입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이런 것들이 주어져도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모르는 불신자들보다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런 이유들이 있을 때만 감사한다면 만일 그 이유들이 사라질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원망하겠습니까? 고통스러워하겠습니까? 자포자기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그 이상입니다! 감사의 외적인 이유들이 사라져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감사할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라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혹시 인생 살다가 고난을 당합니까? 가진 것을 잃어버릴때 때가 있습니까?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혹시 그런 일이 있다하더라도 믿는 성도는 괜찮습니다! 그럴 때조차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우리 인생을 책임져 주실 겁니다. 회복시켜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다시 승리케 해주시고 천국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세상의 조건들을 소유하고도 하나님을 놓치는 경우입니다. 하나님만 붙들면 다른 것은 이래도 저래도 좋습니다. 있어도 없어도 좋습니다.
예> 어떤 성도가 공장을 인수해서 경영하는데 너무 잘됩니다. 그런데 돈 버는 재미에 신앙 생활이 영 말이 아닙니다. 예배 빼 먹기 일쑤이고 어쩌다 교회에 가도 미리 나오기 바쁘고 ... 그러다가 IMF를 맞이했습니다. 버티다가 폐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다가 목사님에게 연락 ... 폐업예배 부탁 ... 끝난 후 모인 교우들 앞에 고백 ... “무일푼으로 시작해서 다시 무일푼 ... 그 동안 많은 것 배웠습니다.
오늘 사업은 폐업이지만 신앙은 새롭게 개업합니다. 오히려 감사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이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만, 이 분이 다시 얻은 신앙은 공유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맥추감사절 우리 자신을 곰곰이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과연 무엇 때문에 기뻐하며 무엇 때문에 고민하며 살아왔는지 ...! 이제는 하박국처럼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합2:4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 ...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그러므로 어떤 형편에서든지, 설사 세상은 열두 번 변한다 해도 저와 여러분은 믿음을 변치 않고 늘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행복한 인생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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