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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 때문이오` (욘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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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문이오" (욘 1:1 - 10)

요나의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많이 들어왔던 이야기이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주일학교 시간에 오셔서 설교를 하실 때에 그림을 그려와서 보여주시면서 설교하시던 그 모습이 요나서를 읽을 때면 생각이 난다. 짧은 내용이지만 분명한 하나님의 의도를 잘 나타내 보여주시는 말씀이다. 인간 요나의 모습 속에서 편견과 편협함의 울타리 안에 같혀 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할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와 공평하신 은총의 위대함을 깨닫게 하여 준다.


1.하나님께서 요나를 부르시고 그에게 니느웨로 가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주변에 있는 여러 민족, 나라에 대하여 경고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신 일이 선지자들의 기록에 여러 군데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사13:1,15:1,17:1,19:1 등). 그러나 선지자를 직접 이방 지역으로 보내시고 거기서 예언 활동을 하게 하신 일은 거의 없었던 일이다. 가기 싫어 도망치는 자를 억지로 가게 하시고 활동케 하신 일은 요나의 사건이 유일하다고 할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니느웨로 가라고 하셨는가?

1)니느웨 성민들의 악독이 하늘에 상달하였기 때문이다. 죄악이 관영하였기 때문이다. 온 시내에, 온 나라에 죄악이 가득하였기 때문이다. 가득해서 좋을 것이 있고 좋지 않은 것이 있다. 좋은 것들로 가득하지 않고 좋지 않은 것들로 가득하였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복을 주시고, 은혜를 주실만한 것들로 가득 차지 아니하고 용서하실 수 없는 죄악들로 가득하였던 것이다.

2)하나님께서는 죄악이 관영한 시대를 벌하셨다.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시대 홍수로 말미암은 심판도 인생들의 관영한 죄악을 인함이었다. 롯의 시대에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또한 관영한 죄악을 인함이었다.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가나안 일곱 족속을 쫓아내심도 그들의 죄악의 관영함을 인함이었다. 하나님 보시기에 니느웨 또한 죄악이 관영하였던 것이다.

3)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공평하신 분이시다. 노아 시대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 120년 동안의 기한을 주셨다. 어리석게 보이는 일을 하나님은 노아에게 시키셨다. 산 위에다가 배를 만들게 하셨던 것이다. 노아의 하는 일을 보고 깨닫도록 하셨으나 깨닫는 사람들이 없었다. 노아네 식구들이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도 그랬었다. 성경은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49:20)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히 균등한 기회를 주신다.


2.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복하기로 마음을 정하였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듣는 것도, 듣지 아니하는 것도 그 사람의 마음의 결단에 달린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을 받은 자가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불응할 때 하나님께서도 상처를 받으신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을 그 사람 때문에 취소하거나 하지는 않으신다.

1)요나는 다시스로 가기로 결심하였다.

분명한 사실은 요나의 결심은 하나님의 말씀과는 상반되는 방향으로 가기로 결심하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기로 하였던 것이다. 불순종하기로 마음을 정하였으니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불복종하기로 마음을 정하였으니 얼마나 강한 심장을 가진 사람인가? 그런데 사람이 아집과 편견에 빠지게 되면 얼마든지 요나의 전철을 밟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고 한다.

2)요나의 결심은 구체적인 실천으로 옮겨졌다.

그는 먼저 어디로 갈 것인가를 정하였다. 그런 다음에 언제 어디서 어떤 배를 탈 것인가를 결정하였다. 비용은 얼마나 들것인지도 계산을 하였을 것이다. 적어도 40일 이상을 피하여 있으려면 그만한 비용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한 날에 다시스로 가는 배에 올랐던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줄로 생각하면서 그 배에 올랐던 것이다.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요나 밖에 없는 것이 아니다. 성도들 중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3)요나는 다시스행 배에 오른 다음에 득의의 웃음을 웃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니느웨성과 그 성민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망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고 쾌재를 불렀는지도 모른다. 요나는 스스로는 참 영리한 사람으로 여겼는지 모르지만 참으로 미련한 사람이었다. 왜? 세상에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보낼만한 사람이 요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 교회 안에서 이런 사람들을 보게 된다. 자기 외에는 사람이 없는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다. 특별한 기술을 가졌다든지, 재능을 가졌다든지 했을 때에 일을 시키면 빼는 사람들이 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요나의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나님은 요나가 편하게 누워 다시스로 가도록 버려두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낯을 피하려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은 천지간에 충만하신 분이라고 성경은 증언한다.


3. 하나님은 바다 가운데서 요나의 불순종을 들추어내셨다.

민수기22-24장에 이스라엘을 타락케 했던 바람이라는 선지자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가 당시 모압 족속의 왕이었던 십볼의 아들 발락의 청함을 받았을 때에 처음 한 두 번은 거절을 하였으나 계속되는 뇌물공세에 넘어가고 말았다. 발락의 요구는 당신이 와서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루는 나귀를 타고 발락에게로 가는데 나귀가 버티고 서서 가지 않으려고 하였다. 발람이 화가나서 채찍을 휘두르니까 나귀가 사람의 말을 하였다. 하나님께서 나귀를 통해 발람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여 주셨으나 발람은 결국 발락에게로 갔었다.

1)요나는 배에 오르자마자 배 밑창에 내려가 깊이 잠이 들었다.

이 때는 바다도 잔잔하고 배는 미끄러지듯이 기분 좋은 항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시간이 오래가기를 원했을 것이다. 모든 승객들은 좋은 날을 만났다고 좋아했을 것이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 사도가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호송되어 갈 때에 배를 타고 갔었다. 미항이라는 곳에서 금식하는 절기가 지나고 날씨가 좋지를 않으니 여기서 겨울을 지나고 봄이 되면 출항하는 것이 좋겠다고 바울 사도가 말했을 대 바울과 죄수들을 호송하는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었다고 하였다. 바람도 잔잔하고 기분 좋게 출항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득의의 미소를 지었었다. 그러나 그 미소가 오래 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요나의 깊은 잠도 오래가지 못했다. 요나의 계산된 행동은 성공하지 못했다.

2)하나님은 그 바다에 태풍을 내리셨다.

어떤 분이 예수께서 물위로 걸으신 내용을 설교하실 때에, 왜 예수께서 물위로 걸어서 오셨을까? 그것은 제자들이 처한 위험에서 그들을 구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라고 했었는데, 왜 하나님께서 그 바다에 태풍을 내리셨는가? 그것은 요나가 지금 배 안에 있기 때문이다. 잔잔하던 바다는 성난 바다로 변했다. 콧노래를 부르던 사람들은 두려움의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다양하다. 필요에 따라 적절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제재하신다.

3)요나 한 사람의 죄로 인하여 그 배에 함께 탔던 여러 사람들이 고통을 당했다.

갑자기 일어난 풍랑으로 인하여 사공들과 승객들은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 두려움이 얼마나 컸었는지는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잘 알 수 없다. 만리장성에서 내려오는 길에 케이블카를 탔는데 아주머니 두 분이 같이 탔었다. 한 분은 아주 재미있어 하는데 다른 한 분은 앞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겁이 나서 앞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배에 탔던 사람들은 순전히 요나 때문에 싣고 가던 좋은 물건들도 바다에 버려야 했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었다. 각자 자기들이 믿는 신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모습은 정말 간절하였다. 생각이 잘못된 정치인 한 사람 때문에, 온 나라가, 또는 생각이 잘 못된 가장이나 주부 한 사람 때문에 가정의 온 식구들이 고통을 당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성경의 증언을 보자. 아담이 그랬고, 아간이 그랬고, 다윗도 그랬다(역대상21장).

4)요나가 제비에 뽑혔다.

요즘 교계에 논쟁 거리 하나가 총회나 교회에서 임원이나 장로, 권사, 집사를 선택할 때 제비를 뽑게 하자는 것이다. 성경이 그러한 모본을 제시하고 있다(행 1: 22-26)여기서 제비에 뽑히는 것은 일꾼으로 뽑힘을 받는 것이니 명예로운 일이다.하지만 요나가 제비에 뽑혔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던 것이다. 누구에게 죄가 있는지, 누가 죄를 지었는지를 찾아내자는 것이니 서로들 제비에 뽑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고 다들 자기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비를 뽑았을 것 아닌가? 분명히 요나 말고도 남이 알지 못하는 죄를 지은 사람들이 거기에 더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찾는 사람은 요나이다.  두려운 그 일이 요나에게 일어났다. 그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기가 한 일을 고백하였다. 이 풍랑으로 인한 고통은 바로 자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였던 것이다. 두려운 일이다.

5)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였다.

요나 외에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두려운 일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요나 자신도 이런 일이 자기에게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요나가 자신의 행위를 낱낱히 고백하고 자기를 바다에 던져달라고 하였다. 그가 그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선원들은 그를 어떻게든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예수께서 타고 가시던 배가 풍랑을 만나 침몰 위기에 빠졌었다. 동승했던 제자들은 온갖 노력을 다하였으나 상황은 더 나빠질 뿐이었다. 할 수 없이 주무시는 주님을 깨워야 했다. 주님께서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시니 바람과 파도가 잠잠하여 졌다. 제자들이 보고 놀랐다고 하였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소득없이 돌아왔던 베드로는 주님의 말슴을 듣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졌더니 너무 많은 고기를 잡았었다. 함께 하였던 사람들이 놀랐었다.
요나와 함께 동승했던 여러 사람들은 요나의 하나님을 인하여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회피하려 하지 말자. 다른 사람들이 없어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알자. '나 때문이오' 라고 가슴 치는 일 보다는 편견과 아집을 버리고 겸손히 순종하는 본을 배우자. 당신 때문에 우리는 행복하다는 말을 듣는 성도가 되시오. 당신 때문에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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