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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니라 (암 7: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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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니라
아모스 7:7-17

저는 어려서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가운데 제일 많이들은 말씀이 있는데 제발 말 좀 들어라 하는 소리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참말을 안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공부하라하면 잠자고 들에 가라 하면 가기 싫어서 느릿느릿 가고 학교 가라 하면 다리 밑에서 놀다오고 돌아다니면서 말썽만 피우고 다니고 그래서 제발 말 좀 들어라. 그때 저 때문에 저희할머님이 남의 콩 값 물어 준 것만 해도 상당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토끼 먹인다고 풀 뜯으러 나갔다가 풀이 없으면 남의 콩밭에 가서 콩잎을 삭 뜯어 왔으니까 콩 농사를 다 버린 거지요. 그래서 말들어라 말 잘 들어라 저게 뭐가 될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쉬시는 모습을 많이 봤는데 그러다 한번은 얼마나 뚜드려 맞았는지...

오늘성경말씀을 묵상하다 보니 옛날의 제 생각이 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말씀합니다. 제발 말 좀 들으라는 거예요. 우상을 섬기지 말고 악을 행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제 멋대로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경고하십니다. 주변 국가들을 심판하십니다. 저들이 우상 섬기는 일들을 심판  하십니다. 이것으로 이스라엘이 빠져 있는 이방풍습과 우상숭배를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제가 어려서 들은 어른의 말씀 가운데 징글징글 맛게 말 안 듣는다 하는 말이 있는데 이스라엘이 딱 그 모양입니다. 정말 징글맞게 말 안 듣습니다.

형제 자매가 많은 집에서 막내가 말썽을 피우면 혼나는 것은 말썽 피운 놈이 아니라 형입니다. 부모들은 어린 자식은 혼내 주기가 그렇고 하니까 본보기로 형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동생이 보고 깨달으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방법도 이와 비슷합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면 즉각 이스라엘을 치지 않습니다. 주변에 이스라엘과 같은 죄를 지은 나라들을 심판하십니다.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런 죄를 지으면 이렇게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교훈으로 삼아야 할 말씀입니다.  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이나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 멧세지가 아닌가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을 보는 자 깨닫는 자가 복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런 경고 멧세지가 계속 있는데도 끝내 돌아서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오늘 심판의 멧세지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주께서 손에 다림 줄을 잡고 서셨더니 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 줄이니이다.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림 줄을 내 백성가운데 베풀고 다시는 용서치 아니하리니..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은혜로 풀지 않고 다림 줄로 풀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림 줄 앞에 설 때 온전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다림 줄은 여러분 건축을 할 때 표준을 잡는 것입니다. 이 표준이 틀리면 집이 기울어지던지 아니면 울퉁불퉁하던지 제대로 지어 질 수가 없습니다. 이 다림 줄을 잘 보는 사람이 기술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다림 줄입니다. 1점 1초도 오차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 다림 줄 앞에 살아 남을 사람이 없습니다.

이제까지는 은혜로 풀었습니다. 자식이니까요. 자식으로 인정하는 동안은 은혜입니다. 자기 백성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참으십니다. 이래도 참고 저래도 참고 참으십니다. 경고하십니다. 말 잘 들어라 말 잘 들어라, 그런데도 돌아서지를 않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올 생각을 않습니다. 우상에게 절하고 하나님에게 등을 돌립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이것은 이제 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는 선언입니다. 징계와 심판은 다릅니다. 징계는 사랑하는 자식에게 주는 것입니다. 심판은 자식에게 내리지 않습니다. 그것은 원수들에게 내리는 것입니다. 심판은 죽음입니다. 끝장입니다. 원수와의 싸움에서는 끝장을 내야 합니다. “내가 다시는 용서치 아니하리니...” 내 자식이 아니요 내 백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명심하세요, 심판 받지 마세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아모스가 이 말씀을 선포할 때는 물질적인 번영이 있던 때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우리가 어려운 때 보다 잘살 때 예수를 잘 믿을 것 같은데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사람이 잘 살게 되면  하나님이 필요 없다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 늘 물질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질의 풍요를 느끼면 별로 하나님의 필요성에 대하여 관심이 없습니다. 건강이 소중한 것이지만 건강한 때 건강의 고마움을 모르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 축복을 주시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저 혼자 잘먹고 잘살라고 주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을 주시는 것은 한마디로 하면 예수 잘 믿어라, 는 것입니다. 물질 적인 번영은 죄짓고 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딴 생각 죄지을 생각부터 합니다.

자동차가 없던 집에 자동차가 생겼습니다. 그러면 이자동차로 더 부지런히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교인도 싫어 나르고 봉사하는 일에 참여하고 해야겠다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가 생겼으니 이번 주일 어디로 놀러갈까? 낚시 갈까? 순이 하고 데이트를 못했는데 같이 드라이브나 할까? 토요일 날 1박 2일로 어디 갔다 올까? 요런 생각만 하는 것이지요. 여러분 잘사는 것이 죄가 아닙니다. 우리는 잘 살아야 합니다. 얼마든지 잘사는 것은 복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잘 살면서 부패한 것입니다. 잘 살면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어려웠더라면 그런 죄를 짓지 않을 터인데 잘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잘 살기 때문에 교만합니다. 잘살기 때문에 바람을 피웁니다. 잘 살기 때문에 노름합니다. 이 전에 없던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지요 이것은 잘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잘살면서 경건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잘살면서도 얼마든지 경건할 수가 있습니다. 잘 살면서 경건한 것은 큰 축복입니다. 이렇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이스라엘은 이것을 잘 못했어요, 하나님이 잘 살게 하셨는데 그래서 하나님을 잘 섬기라 했더니 반대로 저들은 하나님을 떠나고 자기들이 가진 부를 이용해서 우상 제단을 만들고 이방 신을 수입하고 이방 풍습을 들여와 방탕하고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백성으로의 경건함은 다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심판합니다. 아모스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반기를 든 선지자가 있습니다. 아마샤라는 선지자입니다. 아모스가 예언할 때 아마샤가 와서 막습니다. 너는 예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가 무슨 선지자냐 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벧엘을 떠나라는 거예요 예언하려면 너의 고향이나 가서 예언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아마샤를 심판하십니다. 선지자면 무엇합니까?  하나님의 뜻도 분별하지 못하는 선지자, 수 백명 수천 명이면 무엇하겠습니까? 오늘날 신학생이 차고 넘친다고 합니다. 그러나 차고 넘치는 것이 중요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선지자가 필요 한 것이지요. 엘리야 시대에도 선지 학교는 곳곳마다 차고 넘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자는 엘리사 밖에 없었습니다. 있으나 마나 한 하나님의 일꾼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려면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야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는 귀가 건강해야 합니다. 귀가 건강해야 소리를 듣습니다. 귀가 건강하지 못하면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큰소리를 듣는데 작은 소리는 듣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건강하지 못한 것입니다. 들어야 할 소리는 못 듣고 못 된 소리만 듣는 사람도 있어요. 남 칭찬하는 소리는 못 듣고 남 흉보는 소리만 듣는 사람도 있어요. 다 건강하지 못한 것입니다. 귀가 건강해야 하나님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려면 관리를 잘해야지요, 우리 심령의 귀를 말씀으로 기도로 관리를 잘해야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둘째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고 들었다해도 온전히 듣지 못하고 들어도 잘못 듣고 그래서 오해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왜곡시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이 잘못 해 놓고 하나님 핑계 대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인간의 교만과 고집과 욕심대문에 일이 잘 못 되었는데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거니 다른데 있다거니 하는 식으로 하나님을 일이 잘못 된데 책임자로 몰아 부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헛된 욕심을 버려야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세상 것들 마음의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세요 그러면 들려옵니다.

셋째는 마음을 열어야 말씀을 받습니다. 귀가 건강하고 귀를 기울이고 들었다해도 마음을 열지 않으면 말씀은 지나가는 소리입니다. 마음을 열지 않기에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놓치고 있습니까?  이 시대는 말씀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도 없지요, 선지자도 없지요. 성전은 멀지요. 어디서 듣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성경이 지천입니다. 목사가 차고 넘칩니다. 교회가 동네마다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기독교 방송이 있어요 극동방송 이제는 텔레비죤까지 시간, 시간 말씀 이 쏱아 집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마음을 열고 듣는 사람이 없어요. 말씀은 마음 밭에 받아야 싹이 나고 자라는데 전부 귀에다가 걸어놓아서 귀만 커졌습니다. 마음이 열려야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오늘 성찬식에 참여합니다.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주님의 몸과 피를 나누는 것입니다. 여기에 담긴 의미는 하나님이 우리 죄를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죄를 지으시겠습니까? 다시 종노릇하시겠습니까? 이제는 그리스도안에서 자유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사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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