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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의 보증이신 예수님 / 히 7: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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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우리의 보증이신 예수님
본문 : 히브리서 7장20-28절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한 두 가지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는 율법이요 하나는 제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율법이 온전치 못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온전치 못하기 때문에 온전하게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사가 불완전 한 것이 아니라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온전한 성도가 되는 것인가? 어떻게 하면 제사를 온전하게 드릴 수 있는 것인가? 어떻게 하면 율법을 온전하게 드릴 수 있는가?

오늘 본문을 말씀하십니다.--24-25절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힘 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온전한 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처음과 나중이십니다. 예수님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능력을 얻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주님은 처음과 나중의 보증되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 예수님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온전한 예배와 온전한 율법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시는 분이시라고 25절 하반부에서 말씀하십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교회력에 맞추어서 그랜색 후두를 걸고 나와야 하는데 보라색 후두를 걸고 나았다 할지라도 그 예배는 잘 못된 예배가 아니라 주님 때문에 온전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지식적으로 여러분보다 못해도 사회적인 경험과 경륜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여기에 서서 설교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지금도 살아 계셔서 나를 위하여 간구 하고 계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있다면 누군가 나를 위하여 기도해주는 사람이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저는 목사로서 우리 성도들에게 고마운 것은 나를 위하여 기도해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그런데 서운할 때가 한달에 한번 있습니다. 그것은 선교사들을 위하여 중보 기도하는 날입니다. 선교사님들은 공식으로 보내오는 기도 편지를 보내옵니다. 거기에는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는 기도요청을 해옵니다. 그럴 때 마다 저는 한 없이 부럽습니다. 선교사의 특권은 이런 것이구나. 그럴 때마다 저는 하나님께의 말씀을 통하여 위로받습니다. 공식으로 우리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 하지 않아도 우리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우리 권사님들이 계신다. 그리고 말없이 우리를 중보해 주시는 성령님이 계신다 라고 저는 믿습니다. 만일 제가 이런 믿음이 없다면 저는 확신에 찬 사역과 설교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교회 밖을 벗어 나 본 적이 없습니다. 교회로 봐서는 모범생이었습니다. 저는 중3 때도 수요예배에 나간 정말 신실한 학생이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몸 하나 흐뜨러 뜨리지 않고 목사님 설교를 듣는 그야말로 믿음 있는 학생이었습니다. 남들 보기에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내면에서는 얼마나 많이 방황 했는지 모릅니다. 한번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왜 세상에는 이렇게 수많은 종교가 있는 것인가? 다들 자기네 종교가 최고하고 하고 최선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아무 종교나 믿어도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던 차에 대학 1학년 때 서점에 책 하나가 출간 되었습니다. 그 책은 종교학자 힉스가 쓴 종교학 개론이었습니다. 저는 그 책을 읽으면서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책에서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만 저와 다른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예를 든 것만 달랐습니다. 힉스는 그 책에서 구원이라는 정점을 가는데 산을 비유로 들었습니다. 산 정상을 가는 길이 다양한 것처럼 구원으로 가는 길을 다양하게 존재하는 종교로 갈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부산을 가는데 비행기로 가는 방법. 고속버스로 가는 방법. 기차로 가는 방법. 걸어서 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차이만 있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바울과 같은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바울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믿는 믿음 속에 부활이 없다면 우리 믿음이 헛된 것이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는 것이 이 생 뿐이라면 우리는 정말 불쌍한 사람이라는 말씀이 저에게도 해당 된 적이 있습니다. 혹시 내가 일평생 예수님을 믿었고 내가 앞으로 목사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서 예수님을 믿도록 만들텐데 이것이 가짜이면 어떻하나? 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면서 살게 될 텐데 정작 우리가 가는 곳이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극락이면 어떻하나? 이런 고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한 순간에 해결 받은 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요한복음 말씀이었습니다. 대부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성경말씀을 인용하는데 대부분 인용하는 말씀이 로마서 아니면 요한 복음입니다. 특히 요한복음의 말씀을 읽다가 예수님을 만났다는 간증을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직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분들은 요한 복음을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매주 목요일 저녁에 강의하는 요한 복음 성경 공부에 참여해 보십시요. 저도 요한복음을 읽다가 지금까지 고민하던 고민이 한 순간에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 중에서 요한복음 14:6절의 말씀이 나의 눈을 멈추게 했습니다. 요한 복음14:6의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인데 그 말씀은 이렇습니다.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저는 이 말씀에 대해서 정말 익숙했던 사람입니다. 성경 암송 대회에 나갈 때면 필수적으로 나오는 말씀이어서 외어야 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 중에서 제 눈에 클로즈업 되어서 들어 온 말씀이 온다는 단어 였습니다.

우리가 건성으로 본문의 말씀을 보면 이렇게 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갈 자가 없다” 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예수님은 갈 자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올 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습니다. 간다라는 말은 나의 힘이 포함 되어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지극 정성으로 제사하고 율법을 다 지켜도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 나라에 갈 수 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라고 하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올 자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그 때부터 영적인 방황에 종지부를 찍게 됩니다. 나를 부르셔서 구원하여 주시고 나를 사역자에 대한 소망을 주시고 지금 나를 사역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이루어진다 는 고백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이 고백을 하면서 살 것입니다.

이런 고백에 대해서 여러분 가운데 그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고 반문 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이에 대해서 오늘 본문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21- 22절

맹세와 보증이라는 말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중간에 그만 두어도 되었습니다. 몸이 아파서 그만 둘 수도 있습니다. 사고가 나서 팔이나 다리가 부러지면 온전한 몸이 아니기 때문에 또 제사장에서 은퇴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대사장으로서 맹세하신 분이고 약속의 보증 되신 분이십니다.
이 약속은 어떤 하자가 있을 때에는 반드시 보상에 들어가야 하는 약속입니다.

영국에서 지낼 때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가전제품을 사면 영수증을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그 영수증에 무엇이 있는가 하면 이 가전 제품에 대해서 책임을 진다는 표시가 있습니다. 그래서 산 사람이 사용하다가 고장이 나거나 아니면 사용하기에 불편하다고 생각 되면영수증에 표기 된 시간 내에 언제든지 다른 모델로 바꿀 수 있는 제도입니다. 심지어 나 이것 사용하지 않을래요 돈으로 환불해 주세요 라고 하면 돈으로 환불 받을 수 있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보증 기간이 짧게는 6개월 그리고 길게는 3년 짜리도 있습니다. 이것이 영어로 게런티 제도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22절에 영어로 게런티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두 가지 약속을 하십니다. 하나는 아들의 약속입니다. 씨에 대한 약속을 하십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땅의 대한 약속입니다. 이 둘은 따로 따로 분리된 약속이 아니고 아주 긴밀하게 관계를 맺는 약속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씨가 거룩한 하나님 나라를 이룬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구두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짐승을 잡아 갈라 놓게 하신 다음에 그 사이를 하나님께서 지나가십니다. 이것은 마치 제가 영국에서 가전제품을 살 때 받는 영수증과 같은 효력을 가지고 있는 약속입니다. 이런 약속을 한 당사자는 함부로 취소하거나 변경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 자신도 변경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약속을 맺었습니다. 개런티를 맺은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 못해도 그것을 들고 창조주 하나님. 구원자 하나님 앞에 나오면 하나님은 우리를 받아 주신다는 약속을 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새것으로 교환하든지 돈을 환불하든지 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고치시던지 우리를 완전히 바꾸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 웃지 못 할 일은 어떤 사람은 그 물건이 아무 하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보증 기간 안에 다른 물건으로 바꾸거나 돈으로 환불 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상점에서는 그것을 알면서도 바꾸어 준다는 사실입니다. 회사가 잘 못이 있지 않은데도 소비자가 싫다면 바꾸어 주는 제도 였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깊은 기독교 전통을 지닌 나라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가지고 내 정욕대로 사용하고 나서 망가진 몸을 이끌고 와도 게런티 때문에 고쳐주시고 새것으로 교환시켜 주십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한번 구원을 받고도 늘 이렇게 산다면 그것은 수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바꾸어 주는 사람은 알면서도 게런티 때문에 말없이 바꾸어 주지만 교환하는 우리는 새로운 것을 받으면서 내 수준이 이거 밖에 안 되는 구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만일 이런 수준의 생각을 하지도 않은 채 늘 자기 욕심대로 바꾼다면 아마도 그 사람에게는 다시는 물건을 팔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즈음 tv에서 쇼핑을 할 수 있습니다. 양심이 마비 된 사람들은 비싼 귀 금속이나 비싼 옷들을 산다고 신청한 후에 파티에 모임에 입고 나갔다가 기한 내에 반품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홈 쇼핑에서는 블랙리스트를 만들어서 이런 사람에게는 물건을 팔지 않는다 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게런티를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게런티 제도는 우리의 신분을 바꾸어 놓는 제도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안심 보험에 들어 있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신분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수준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신분을 이용하여 계속 새 것으로 교환해 달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구원 받은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종신 보험을 악용하는 수준이하의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후안 무치한 사람일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 이런 후안 무치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이제 우리가 게런티를 얻었으니 마음대로 살자. 그리고 하자가 생기거나 싫증이 나면 언제든지 가서 바꿔 달라고 하자 라고 말하는 율법 폐기론자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결과론적으로 보니 믿음이 들어 간 것이 아니라 믿음을 이용하는 가짜들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신분이 바뀌어 졌다면 우리는 그 신분답게 살아야 합니다. 신분은 왕의 자녀인데 수준은 거지의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노름 하는 남편을 아내가 어렵게 돈을 구해와 그 조직에서 구원 해 내었습니다. 그러면 노름하는 남편은 이 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가족들을 위하여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증하심으로 말미암아 신분이 변했습니다. 왕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왕의 자녀들은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의 주시합니다. 어떻게 걷는지 어떻게 밥을 먹는지 물건을 살 때 어떻게 사는 지 주목합니다.
저는 우리 신림교회 교인들이 수준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보혈로 성장하는 교회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26절

그렇습니다.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저는 개띠입니다. 개띠라서 그런지 냄새에 아주 예민합니다. 약 1년 반 정도 사회선교를 한 적이 있는데 저는 그 사역을 하면서 나에게 합당한 사역이 아닌가 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선교를 하면 주로 다닌 곳이 소년 소녀 가장들, 교도소, 소년원들입니다. 그곳에 갈 때마다 저는 냄새 때문에 고역이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쉽게 냄새에 적응을 하던데 저는 그게 잘 안되었습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제가 전에 섬기던 아주 부유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제일 참기 힘든 것은 부유한 부인들이 바르고 오는 향수 때문에 저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신림 교회에 오니 저에게 정말 합당한 교회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제 아내가 가장 합당한 여자라고 믿습니다. 그 이상 적당한 여자는 저에게 없습니다. 여러분의 남편이 여러분에게 가장 합당한 사람이라는 것을 믿으십니까? 과분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요. 그러면 남편 앞에서 주눅 들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남편의 갈비를 취해서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가장 합당한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장 합당한 분이십니다. 왜 주님은 합당하십니까? 1) 거룩하신분이십니다. 2) 악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3) 더럽지 않습니다 4) 죄인과 구별 되신 분이십니다. 5) 하늘 보다 더 높으신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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