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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 약 2: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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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본문 : 야고보서 2장14-26절

신학자 반하우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현대에 너무 자폐증 크리스챤(autistic christian)이 많음을 한탄했습니다. 자폐증이란 표현하지 않는 증세입니다. 반하우스 박사는 현대 교인이 설교를 잘 듣습니다. 성경공부를 잘 합니다. 기도 많이 합니다. 성경도 많이 읽습니다. 그리고 설교와 성경을 잘 이해했다고 반응도 더러 합니다. 그러나 정작 표현이 어색합니다. 아니,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폐증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시지요. 이와 같이 자폐증 교인을 보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미국의 인기 드라마 가운데 “가정의 모든 것” 이라는 것이 있었답니다. All in the family 라는 것입니다. 주인공 아치 번커가 거리에서 날치기를 봅니다. 집에 와 그  이야기를 했더니 사위가 그 날치기 용의자가 잡혀서 재판에 걸리면 당신이 증인으로 자진 출두하라고 말합니다. 아치 번커는 그 권고를 거부합니다. 이런데  증인이 되면 너는 일도 못하고 그러면 너는 월급이 깎이고 복잡한 거리(down town)에 가야하고 얼마나 귀찮나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나 혼자만 잘 사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 돈 손해, 시간 손해, 귀찮은데 내가 거기 끼어들지 말아야지 합니다.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닙니다.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이 공동사회에서 서로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은 정말 우리에게 귀한 생명의 말씀입니다. 이 야고보서는 많은 시련이 있었습니다. 이 성경을 너무 가치 없는 말씀으로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 구원이나 신비한 교리가 없어서 이 성경을 가치 절하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 성경은 주로 유대인을 상대하여 쓴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로 행함에 대한 말씀을 많이 다룬 것입니다. 사람은 정말 사랑이 없으면 희망이 없습니다. 우리는 늘 절망을 느낍니다.

여기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실천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런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형제나 자매가 당장 입을 옷이 없고 끼니를 때울 양식이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평안히 가십시오. 몸을 따뜻하게 하십시오. 배불리 먹으십시오. 그러면서 실제로 필요한 것을 주지 않는다면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와 같이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할 것입니다. 너에게는 믿음이 있고 나에게는 행함이 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네 믿음을 나에게 보여라. 나는 행동으로 내 믿음을 너에게 보이겠다. 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행함이 없는 믿음은 홀로 있어 죽은 것이라는 것을 명심 합시다. 사람은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기도 많이 합니다. 성경 많이 읽습니다. 전도 많이 합니다. 성경공부도 잘 합니다. 그런 것 하나님이 정말 좋아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행동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구원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임에 틀림없습니다. 미국에는 아버지의 날이 있습니다. 매년 6월 셋째 주일입니다. 우리는 아버지라는 것. 어떤 기억이 남아 있습니까. 미국도 우리나라처럼 침묵하는 아버지( Reticent father) 라는 좋지 않은 대명사를 가졌습니다.

최근 미국 뉴욕 타임스 시카고 지국장인 말콤(Andrew Malcolm) 씨가 저술한 아버지(Dad)가 문제작으로 등장합니다. 저자가 어려서부터 아버지에 대한 인상을 기록한 것입니다. 말콤씨의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아들에게 이런 생활 규칙을 주었습니다. 물론 그 규칙이란 지키지 어려웠습니다. 
                1, 언제나 최선을 다 하라

                2, 지금 곧 실천하라.

                3, 어떤 상황에서도 거짓말을 하지 마라.

                4, 꼭 해야 한다고 결심하면 안 될 일이 없다.


여기 아버지와 아들의 상호간의 성숙(Mutual Maturity) 이란 한 마디로 표현 할 수 있습니다. 서로 믿음직한 관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너무  차별이 심하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어느 날 한 사람이 천국에 갔습니다. 거기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입만 수북이 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물었습니다. 이건 무엇입니까. 그런데 천사의 대답이 이렇습니다. 이 사람들은 말은 잘 하는데 실천하지 않아서 입만 천당에 왔다고 하더랍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말은 잘 합니다. 입만 열면 사랑입니다. 입만 열면 용서입니다. 늘 겸손합니다. 늘 양보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에게 대한 배려가 부족한 사람은 아닌지요. 사람을 차별하지는 않습니까. 이런 것을 하나님은 너무 싫어하십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습니다. 사람 밑에 사람 없습니다. 사람은 물론 하는 일이 다릅니다. 능력도 다릅니다. 그러나 사람이 많이 가졌다고 그 사람의 인격이 다 높은 것은 아닙니다. 설사 능력이 남보다 더 강하다고 그 인격이 더 높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잘 압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내가 손해 보면서 남을 즐겁게 해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입만으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스스로 즐겁게 남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사랑은 조건이 없습니다. 사랑은 하나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내가 아니고 남입니다. 여기 보십시오. 헐벗은 사람에게 왜 이렇게 떨고 있습니까. 집에 가서 옷을 입으시오. 배고픈 사람에게 왜 이렇게 있습니까. 가서 밥을 잡수십시오. 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입을 옷이 없습니다. 먹을 밥이 없습니다. 그 말을 하지 말고, 이 옷을 입으시오, 이 밥을 잡수십시오. 라고 하면서 사랑을 베푸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우리는 교육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것을 배웁니다. 사랑의 말도 듣습니다. 욕설도 듣습니다. 사랑도 받습니다. 미움도 받습니다.

우리는 사회라는 넓은 울타리에서 삽니다. 좋은 것도 봅니다. 눈살을 찌푸리는 것도 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잘 하는 것은 권해야 합니다. 잘 못하면 꾸짖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성장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받은 사람은 반드시 돌려 줄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더 많이 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결혼해서 삽니다. 거기서 우리는 양보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을 더 실감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은 사랑하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 한 가족입니다.

1988년 세계 올림픽이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그 때 주제가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 We are the world) 얼마나 멋있었습니까. 스포츠는 인종과 종교와 국가의 차이를 두지 않습니다. 사실은 사랑은 이 보다 더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와 사랑은 하나이어야 합니다. 믿음과 사랑은 하나입니다. 신앙고백과 행위는 하나입니다. 그러니 행함이나 믿음은 따로가 아닙니다. 믿음은 곧 행함입니다. 물론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행함을 무시해도 됩니까. 아닙니다. 여기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홀로 있어 죽은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니 믿음과 행함은 물체와 그림자와 같습니다. 떼려야 뗄 수가 없습니다. 그런 관계가 두 관계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죽은 믿음에 대해 말씀 하십니다. 살아 있는 믿음과 죽은 믿음을 잘 말씀 하십니다. 그것은 형식적인 믿음을 말 하는 것입니다. 실천하지 않는 믿음을 말 하는 것입니다. 약하다고 무시하고 가난하다고 무시하고 그런 삶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봅니다. 살아 있는 믿음은 늘 행동이 따릅니다.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말만 하는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모양의 믿음을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이 말씀은 진리 입니다. 성경은 변함없는 진리 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표현한 하나님의 사랑의서신입니다. 이 말씀은 먹보다 진한 피로써 쓴 말씀입니다. 읽어도 읽어도 싫증을 모르는 묵시의 편지 입니다.

성경은 낡을 수가 없습니다. 읽어도 읽어도 새로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비켜 가서는 안 되는 말씀입니다. 실천하라. 삶으로 옮기라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정말 하나님이 좋아 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람을 사회적인 동물이라 합니다. 인간은 한 시라도 남이 도움을 받아가며 살아갑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지어 주신 사랑의 사람입니다.

사람이 생존능력을 말 한다면 정말 다른 동물 보다 열등합니다. 우리는 남의 도움을 받아야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가진 것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나누며 살아야 합니다. 그게 정말 보람입니다. 나눔은 결코 내 몫을 덜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잠시 내가 맡았던 그의 몫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그의 것을 그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말 아깝지 않습니다. 일찍 주지 못해 미안한 일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늘 겸손하게 사랑을 실천합니다. 날마다 우리는 늘 건강하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면 삶의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나누어 주지 않으면 말씀은 도둑이라 했습니다. 남의 것을 자기의 것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실천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랑의 사람임을 늘 감사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늘 우리의 자세를 알아야 합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 보다 복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입니다

맺는 말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은 정말 우리에게 필요 적절한 말씀입니다. 지난 7월11일자 신문에 일평생 모은 돈을 서울대학교 병원에 270억을 기증하신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 사람이 얼마나 열심히 돈을 모았는지 말 할 수 없이 고생을 했답니다. 그는 정말 보람 있는데 돈을 바친 것입니다. 우리 어려운 사람이 내 이웃입니다. 내 가족입니다.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한 것이 곧 주님에게 한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 너무 돈에 인색할 것 없습니다. 어려운 사람이 있을 때 도움을 너무 거절 하지 마십시오.  도울 마음이 생기면 그것이 곧 성령님의 인도하심이라 생각 하시고 도우세요. 지나고 나면 그 마음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늘 우리는 사랑을 준비하도록 합시다. 늘 우리는 이웃에게 베푸는 것이 하나님이 일입니다. 사랑은 주도록 합시다. 외면하지 맙시다. 베풂은 축복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내 것을 주는 것 아닙니다. 그의 것을 그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생색 낼 것이 없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말로만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말로만의 사랑은 죽은 사랑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홀로 있어 죽은 것입니다. 정말 사랑이 어떤 것인 가를 우리에게 교훈하신 사랑 교과서입니다. 이렇게 살아 봅시다. 어려우시지요. 힘을 냅시다. 용기를 냅시다. 그런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시회는 바로 지금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실천 할 장본인도 바로 나 자신입니다.  늘 이러한  마음으로 늘 진리와 함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003년7월20일 설교원고 박충웅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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