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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 (막8:36-37, 요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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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 (막8:36-37, 요3:16)

[1] 마지막 설교

  어느 학교의 미술 시험에 "생각하는 사람"의 조각자 이름을 써라는 문제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 똑똑한 학생이 그 조각가 이름을 로뎅이라고 적었습니다. 그 옆에 한 학생이 그 조각가을 몰라서 옆의 학생 답안지를 커닝했는데, 답을 잘못보고는 "오뎅"이라고 썼습니다. 또 그 옆의 학생도 답안지를 커닝하고는 유식한 척하여 자기는 "어묵"이라고 썼습니다. 또 그 옆의 학생도 커닝을 했는데 그는 좀 다른 표현으로 적는다는 것이 "덴뿌라"라고 적었습니다. 그리하여 "생각하는 사람" 조각가 이름은 희한하게 시험 답안지에 기술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진리가 왜곡된 체 받아 들여져서 그렇게 믿고 잘못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한 인생의 진리를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빅토르 위고의 명작 「레미제라불(Les Miserables)」의 주인공 장발장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는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빵 하나를 훔친 대가로 10년 동안 감옥살이를 한 후, 불공평한 세상에 대한 증오심으로 달구어진 채 출옥합니다. 그는 전과자인 자기를 환영해주지 않는 냉정하고도 매정한 현실에 대하여 절망감을 느끼고 있을 때, 한 친절한 신부님이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어 좋은 음식을 먹여주며 잠자리까지 제공해줍니다.
그런데 그는 배은망덕하게도 그 신부님의 값비싼 은 접시를 훔쳐 도주하다가 경찰에게 잡힙니다.  선물로 받은 것이라고 거짓말해보지만, 코웃음치는 경찰에게 끌려 현장 확인 차 신부의 집으로 가는 장발장의 가슴은 신부님을 뵐 면목이 없고 부끄러움과 분노로 가득 찹니다.

  그러나 뜻밖에 신부는 환한 얼굴로 장발장을 맞이하면서, "이 사람아, 자네는 왜 내가 준 은 접시 말고도, 진짜 중요한 은촛대를 안 가지고 갔었나?" 라고 덮어주므로 장발장을 경찰의 손에서  풀려나게 해줍니다.
경찰이 돌아간 뒤에 어쩔 줄 모르고 서 있는 장발장에게 신부는 실제로 은 접시와 은 촛대를 자루에 담아 쥐어 줍니다. 그리고 이렇게 감동적인 말을 해줍니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을 평생 가슴에 간직하고 절대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당신의 영혼과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의 삶은 이제 당신의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이제 하나님의 것입니다.』
장발장은 그 말에 감동받아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개과천선하여 훌륭한 사람으로 자수성가합니다. 그래서 그는 창녀의 아이 코제트를 자기 딸처럼 키워주고, 그 코제트를 사랑하는 청년을 위해 기꺼이 자기 목숨까지 내어주는 훌륭한 성인이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장발장은 신부님으로부터 최상의 은택을 받았기에, 그 역시 최상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받은 사랑과 축복의 수준만큼 고급의 양질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를 사랑의 큰 선물로 주셨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기 생명과 성령을 선물로 주셨고, 성령은 우리에게 은사를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그 선물을 감사함으로 받기만 하면 무한한 고급의 복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저는 설교 준비를 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축제의 설교가 여러분과 저에게 '마지막 설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설교가 제가 하는 마지막 설교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는 우리 교회 중고등부 학생들이 Springbrook 산 정상에서  캠핑 수련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몇 시간후 별도로 뒤따라  가는 길에 호주 사람이 운전하던 앞 차가 절벽에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귀가한 후에 다음날 또 골드코스트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앞서가던 승용차가 운전부주의로 전복되어 사람이 죽는 큰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축제를 위하여 오던 중 고속도로에서 앞서 가던 승용차가 충돌하여 운전사가 죽은 사고가 있었습니다. 
  욥기 기자의 말대로 "죽음과 나는 한 걸음 사이"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템플턴 상을 받은 한경직 목사님은 28세에 페병 선고를 받고, 한 쪽 폐를 짤라내는 수술을 받은 후 항상 마지막 설교라는 자세로 말씀을 전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마지막 설교일 수 있다는 또 다른 이유는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의 관점에서 바라 본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 중에 이른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어느 수요일에 설교를 끝내고 기도할 때가 되었는데, 모여 있는 성도중 한 사람에게 이 예배가 마지막 예배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답니다. 목회자들에게 가끔 주시는 하나님의 영감(사인)이 있습니다.  그래서 조용기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시간이 마지막이 될 사람이 이 자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철저히 회개하고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는 평소보다 길게 10분 동안 기도하고 성도들을 집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배 후에 교회 문을 나가다가 결혼한 지 1년밖에 안 된 새색시가 심장마비로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 예배는 그 여자를 회개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마지막 예배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오늘 마지막 설교라는 자세로 이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예배에 참석할 수 없을 사람을 향한 마지막 들려줄 설교라는 자세로 이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하는 자가 마지막으로 듣는 자에게 전할 말씀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다 잃어버린다고 해도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것, 다른 것은 다 포기한다고 해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들어야 할 가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전하고자 합니다.

[2] 전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 (영혼 구원의 문제)

  그럼 가장 중요한 것,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될 것,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생명에 관한 것", "영혼 구원에 관한 말씀"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영혼 구원의 문제인 것입니다.
죽음의 문제입니다.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놓지 못하고 뛰어봐야 헛된 인생을 사는 겁니다. 죽음의 문제해결이 가장 선결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습니다.
그럼 영혼이 있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따라 영적 존재요, 인격적 존재요, 거룩한 존재라는 그 흔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에게는 동물이 가지고 있지 못한 이성을 통해서 분별하는 어느 정도 영적
    분별력이 있습니다.
둘째는 인간에게는 동물이 갖고 있지 않는 양심이 있습니다. 선악의 분별력이 있습니다.
셋째는 인간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종교심이 있어서 인간만이 영적 제사와 종교행위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셨기 때문에 영적 존재로서 영혼이 있다는 그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프랑스의 한 의사는 자기가 영혼의 무게를 발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가 연구한 방법은 죽어 가는 사람을 예민한 저울에 올려놓고, 죽는 순간 몸무게의 변화를 살피는 방법을 수 차례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 실험 결과, 사람은 죽는 순간에 약 21g의 무게가 감소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의사는 주장하기를 인간의 영혼의 무게는 21g이라는 것입니다.
  그 프랑스 의사의 관심사는 영혼의 무게였으나, 우리의 관심사는 영혼의 무게가 아닙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천하보다 귀한 영혼의 가치입니다. 영혼의 구원의 필요성입니다.
마가복음 8장 36, 37절에서 "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구원받지 못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온 천하보다 귀한 것이 목숨이라는 것입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생명이라는 말입니다.

  그럼 온 천하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세상이 추구하는 모든 것, 즉 돈, 부귀, 명예, 이런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것들을 획득하면 행복해 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누리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위해 경쟁하고, 이것을 위해 인생을 바칩니다.
속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더한 갈증만 생길 뿐입니다. 이런 모든 것을 다 얻어도 생명을 잃으면 어리석은 것이요 헛된 것입니다.
  인간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이 속에 있지 않으면, 즉 영적 만족이 없으면 절대로 행복해 질 수 없고 생의 만족이 없습니다. 살면서 겉은 멀쩡한 것 같아도 , 영혼의 만족이 없으면 항상 불안과 불평 불만 그리고 두려움에 시달리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돈, 부귀, 명예는 얻었으나 생명을 잃은 예를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1962년 어느 날 빌리 그래함 목사는 씨애틀의 어느 호텔에서 숙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하나님은 그에게 잠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의 머리에 당시 인기 최고의 여자 배우인 마를린 먼로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 여자의 영혼이 급해 나에게 전도시키려는 모양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급히 먼로양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먼로양의 비서와 연결되었습니다. 먼로양과 통화하고 싶다고 했더니 비서가 거절하였습니다. 먼로양은 지금 침실에 들었고 먼로양과 통화하려면 예약을 하고 2주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지금 통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비서는 끝내 거절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수화기를 놓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 이튿날 침대에서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녀는 당시 세계에서 제일 인기있는 영화배우였지만 저녁에는 불면증에 시달리며 잠을 잘 수 없어 수면제를 먹고 잠을 자는 것이 습관화되어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잠을 잔 것이 죽음으로 연결되고 만 것입니다. 그 후에 그가 마지막 쓴 일기가 발견되었습니다.
 
  "나는 한 여성으로서 지닐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아직 건강할 뿐아니라 매우 아름다우며 돈도 많이 모았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통의 팬레터를 받으며 사랑에 굶주리지도 않습니다. 부족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나의 마음은 외롭고 공허하며 기쁨이나 평안이 없습니다. 나는 이유없이 불행합니다."

  세상 적으로 볼 때 그는 인기도 많으며 부족한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심한 고독을 느끼며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평안을 느끼지 못한 것입니다. 왜 그녀는 평안하지 못했을까요? 바로 그녀의 마음에 예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평안은 영적 안식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죄 범한 악인에게는 평안이 없다고 잠언서는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마음에 예수님이 없으면 기쁨이 없습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주위를 잘 둘러보십시오. 여러분의 주위에도 이런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 적인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으면서도 고독을 느끼며 불행해 합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이 그들 마음속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오늘 주님은 부르고 게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우리를 향한 외침입니다. 인생의 진정한 싸움은 내가 얼마나 더 축적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당면한 영혼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의 여부가 중요합니다. 이것이 최우선 선결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완전히 실패하고 방황하는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영혼의 구원을 얻었으면 그는 성공한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십자가상의 오른편 강도입니다. 그는 한 평생을 개판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상에서 마지막으로 한마디 철든 소리했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주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
이 한마디 외침이 그를 구원한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 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할렐루야!

  반면에 세상의 부귀, 영화, 목적을 다 이루었다 해도 영혼의 문제를 해결 못하면 실패한 인생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 믿지 않고 죽으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여한이 없다." 
성경은 헛소리 말라고 하십니다.  천추의 한이 맺힐 일이 기다리고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감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인간은 무지무능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의 운명을 모르기 때문에, 인간 범죄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인간의 말로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겁없이 떠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여러분에게 전해야 할 가장 중요한 설교는 "주 에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가족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0)는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공생애를 마치시면서 최후의 설교를 하실 때, 인간들이 너무나 무지무능하면서도 강팍한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면서 천국과 지옥에 관한 생생한 설교를 하셨습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은 다음에는 심판이 있으리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예고하셨습니다.

[3] 왜 인간에게 구원이 필요한가?

  왜 인간에게 구원이 필요합니까?
  그것은 인간은 원죄로 타락했고, 조상죄로 타락 했고, 자범죄로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 죄로 인한 타락으로 받게 된 저주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을 배반하는 불순종을 했습니다. 이때부터 인간에게 죄가 들어 왔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죄의 종이 되었습니다.
마귀가 시킨대로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사기, 살인, 분쟁, 악독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모두 무서운 악을 저지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죄 때문에 인간은 영 혼 육과 환경은 철저히 하나님의 진노하에 저주받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구원이 필요합니다. 이는 살아있는 동안에 저주로부터 자유함을 얻어 복된 삶을 살고, 죽은 후에는 영혼이 영원한 천국의 안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로부터 자유로운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라고 성경은 증거합니다.
우리는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 지옥으로 가야할 운명입니다.

  지옥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지난 2001년 9월 11일에 미국 뉴욕 무역센타 쌍둥이 빌딩에 테러범들이 탈취한 비행기가 충돌하여 큰 참사와 큰 불이 났습니다. 건물 안에서 울부짖는 모습들이 방송으로 생중계되었습니다. 이 날 화재와 건물 붕괴로 약 10000명이 죽음을 맛 보았습니다.
창문에서 뛰어내리다 죽은 사람, 포장 도로에 뛰어내려 머리가 터져 죽은 사람, 고압 전선에 떨어져 타 죽은 사람들이 즐비했습니다.
왜 그렇게 끔찍하게 뛰어내려 죽은 것입니까?
그들이 바보라서 뛰어 내렸습니까?
아니요. 그 빌딩에 들어 있는 자들은 모두 엘리트들입니다.
그들은 뛰어 내리면 죽는 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찌하든 그 뜨거운 불길만은 피해 보겠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성경은 지옥의 불길이 뉴욕 무역센타의 불길처럼 실제적이고 확실한 것이라고 증거합니다. 그 불붙은 무역센타에는 뛰어내릴 창문이라도 있지만, 지옥에는 뛰어 내릴 창문이 없습니다. 지옥은 영원히 영혼은 죽지 않고 고통받는 곳입니다.
마가복음 9장 48절을 보면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원래 지옥은 인간을 위해 예비된 곳이 아닙니다.
마25장 41절을 보면,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범죄한 인간이 마귀와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범죄한 인간, 지옥의 자식이 될 수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나의 저주, 나의 심판을 담당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이 저주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은 그것이 나의 저주를 대신 지시는 것인 줄 몰랐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53:4).
사람들은 예수님이 실패자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실패를 대신 지시는 것임을 몰랐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라고 예수님이 오시기 700년 전의 선지자 이사야는 성령의 감동으로 예언했습니다.

  십자가 밑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나의 모습을 발견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신 주님은 "다 이루었다"고 외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인간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모든 일을 하나님 편에서는 다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우리들에게 자유의지가 주어 졌기에 그 선택은 우리들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완전한 길은 십자가란 뜻입니다.
  이 십자가가 나의 죄를 대속한 것을 믿으면, 예수의 피가 나의 죄를 씻어 준다는 것을 믿으면, 구원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의 영을 붙잡아 주시고 그 순간 즉시 하나님은 너는 나의 것이라고 인쳐 주시는 것입니다.
요1:12은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여러분은 영혼의 만족을 얻기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확증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11:25).
믿으면 죽어도 사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문제가 다 해결됩니다.
과거의 죽음의 죄 문제, 현재의 하나님 진노와 저주 문제, 미래의 죄와 영혼의 갈길 등등.

고전 1:18을 보십시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멸망당할 자는 십자가의 도가 어리석게 보이나,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이것만이 구원의 유일한 길입니다.
  이 십자가의 비밀을 어떤 사람은 어려서, 어떤 사람은 젊어서, 어떤 사람은 늙어서 깨닫습니다.  그리고도 깨닫지 못한 사람은 지옥에서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영혼의 문제는 미룰 문제가 아닙니다.
영혼을 놓고 내기하는 그런 엄청난 도박을 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내일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는 하루에 200만명이 죽어서 떠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서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영혼의 구원문제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 시간입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라"(고후6:2).
  어떤 사람은 죽기 직전에 예수님을 영접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믿을 마음을 주셔야 믿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은혜받을 만한 때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한동대 총장 김영길박사의 형님이 포항 공대 학장이셨는데, 김영길박사와 정근모박사가 전도할 때마다 비웃고 너희나 잘 믿으라. 차차 때가 되면 믿겠다고 미루다가 김박사님의 형님은 어느 날 학교 학생들과 발야구 시합을 하다가 넘어져 뇌진탕으로 즉사하셨다. 그는 구원 받을만한 때를 놓치고 졸지에 영원한 비극의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죽기 직전에 예수님을 믿겠다고요? 성령으로 믿을 은혜와 능력을 주시지 않으면 믿을 수 없습니다. 지금 믿지 않는 사람이 죽을 때 내 마음대로 믿는 다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구원의 은혜의 기회를 주실 때 주님을 영접하여 확실히 구원받으시고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십시오.
  만일 이 시간 믿어지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나의 믿음을 도와달라고 간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성령께서 믿음을 도와 주십니다.

  100년 안에 프랑스에서 모든 성경이 사라질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무신론 철학자 볼테르는 죽는 순간에 몸부림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버림받는구나! 아, 내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하나님도 지옥도 없는 줄 알았노라. 나는 지옥으로 간다. 내 영혼은 어찌하는가?"라고 울부짖으며 죽었습니다.  "신은 죽었다. 운명아, 내가 간다. 길을 비켜라"고 큰 소리치며 하나님을 대적하던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의 마지막 죽음의 모습을 아십니까?
죽기 몇 달 전부터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자기를 데리러 온 지옥 사자에게 영혼이 끌려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발작을 하며 죽었습니다.  구원받은 자는 눅16장 22절에 보면 천사들에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즉 천국에 들어가게 됨을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예수님의 피묻은 손 길을 외면하지 마시고,
참으로 진실로 확실히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시오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는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4] 결 론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 시간 주님께 나아 오십시오. 주님이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님께로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에게 소망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주님은 여러분을 소망의 항구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을 영접한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성경 사60:1를 통해 약속하십니다.
"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사60:1).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사60:3).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사60:4)
그 때에 네가 보고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풍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사60:5) "

  빛되신 예수님을 영접하여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에 눌려있는 당신의 영혼에 불이 들어오게 하십시오. 사망의 그늘에 앉아 울고 있는 당신의 영혼 속에 성령의 빛이 들어오게 하십시오!  그리고 일어나서 빛을 발하십시오! 당신은 새벽이슬같은 존재입니다.
지금 여호와의 영광이 당신 위에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이 시대의 요셉같이, 모세같이, 다윗같이, 다니엘같이, 에스더같이, 바울같이 이 시대의 인물로 만드시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은 이들처럼 쓰임받을 존재입니다.
예수님을 잘 영접하시고 예수님을 잘 믿어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 시키는 새벽이슬같은 보배가 되십시오.  여러분은 미국의 카네기와 같이, 록펠러같이, 워싱턴과 링컨같이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시간 살리는 영이신 성령으로 마른 뼈도 살아 날 수 있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이 시간 살리는 영이 당신 속에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하늘에서 열방까지 주를 찬양하는 복된 인생이 되십시오.
은혜받고 축복을 받아 에수 그리스도의 능력있는 증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인생은 나그네 길?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
가는 목적지도 모르면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어디론가 가고 있지 않습니까?
"너는 내일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언27:1)

인생은 급속히 무정히 왔다가 가버립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찬란한 기회들도 가버립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계십니까?
당신의 친한 친구가, 당신의 사랑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당신 곁을 떠나
어디론가 가버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몸은 무덤에 묻혔지만 그는 어디로 갔습니까?
당신의 차례가 되었을 때, 당신은 어디로 갈까요?
영원히 말입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전도서12:1)

늦기전에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영생의 길이 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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