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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 갈 4: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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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제목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 성경본문 :갈라디아서 4:19~20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음성을 변하려 함은 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음이라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을 “어린아이들”이라고 하셨습니다(마 11:25). 이는 말하는 것이나 깨닫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고전 13:11)의 수준이라는 것보다 오히려 그것을 감싸고 이해하는 마음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부모에게는 어린아이가 꿈이요 희망입니다. 배속에 품는 순간부터 거기에다 정성을 쏟게되고 이를 낳아서 기를 때는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수고라기 보다 오히려 즐거움과 보람으로 여기며 희생을 자원합니다.

본문 말씀 19절에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을 “나의 자녀들”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하여 저들이 예수를 구주로 믿고 신앙고백을 하는 과정을 일컬어 해산하는 것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이 믿음이 자라고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열심히 헌신하며 봉사하는 것으로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가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갈 4:15).
그러나 인간에게는 불완전한 요소가 있어서 한 순간 시험을 당할 때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신앙이 무너지고 원점에서 허우적거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부모가 자식을 대하듯이 다시 해산하는 수고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장성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나 다 이런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는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는 과정을 해산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신앙 인격이 그리스도의 형상에 이르게되는 과정을 성화(聖化)라고 합니다. 중생(重生)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신비로운 과정이지만 그리스도의 성품에 이르게 하는 성화의 과정은 일평생 꾸준한 노력과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 나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인내가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이상형입니다.

세상에는 완전한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리 높은 학식과 교양을 갖추고 엄격한 도덕성을 지닌 사람이라도 인간은 누구나 죄악된 속성이 있기 때문에 안으로부터 무너져 내리는 허점이 나타나고 맙니다. 로마서 3:10-12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고 하였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 완전하신 인격자입니다. 성경은 죄로 인하여 파괴된 인간의 본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1) 창조의 원형입니다.

사도 요한은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본래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며 생명의 근원자라고 하였습니다(요 1:1-4).
누가복음 2:52에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요 또한 완전한 인간으로서 그 본성의 모습이 드러남에 따라 하나님에게도 사랑을 받으시고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받으시는 분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완전한 인간의 모델로 하셨기 때문에 사람에게 있어서 인격의 완성을 기대한다면 물론 예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1:27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이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 1:18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2) 성화(聖化)의 모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나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본문 말씀 중에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그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삼 년 동안 가르치셨습니다. 말씀으로 교훈 하시고 몸소 실천하여 본을 보이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하였습니다(요 13:15). 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였습니다(마 11:29).

성도가 예수님을 배운다는 것은 지식적으로나 이론적으로만 아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까지 철저하게 예수님의 모습으로 그 인격이 닮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빌 2;5). 이러한 일은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랜 기간 경건의 훈련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13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하였습니다.

(3) 그리스도와 신령한 연합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신령한 연합을 이루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우리가 일체된 관계임을 설명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5:4에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범죄한 인간이 온갖 불완전한 요소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완전하신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룬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도저히 되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다만 우리의 속사람이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바뀌어지면서 신령한 연합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관계를 이상적인 부부의 관계로 표현하였고(고후 11:2), 또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은 모습이라고 하였습니다(롬 13:14).


Ⅱ.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위해서

여기서 사도 바울이 「해산하는 수고」를 말한 것은 그리스도교 복음운동과 관련된 적절한 비유입니다. 그는 전도를 통하여 예수를 믿게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게 되는 일을 해산하는 것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4:15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말씀에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하여 자식을 낳는 산모의 심정을 비유하였습니다. 거기에는 새 생명의 탄생이라는 신비로운 축복과 또한 죽음을 각오하는 고통의 의미를 다같이 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요 16:21).
그러나 본문 말씀에서의 강조 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데 비중을 두고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완성되어 가도록 하기 위하여 노심초사하며 고통을 감수하는 부모의 심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 신령한 자양분을 공급하여야 됩니다.

히브리서 13:9에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음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적절한 자양분을 공급해 주어야 됩니다. 육신의 몸을 튼튼하게 하기 위하여 양질의 음식을 섭취하는 것처럼 우리의 인격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성장하게 하기 위해서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양분을 공급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도 베드로는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 2:2). 갈라디아 교인들의 경우 처음 바울이 전한 순수한 복음을 받았을 때 신앙이 자라고 주님께 대단한 열심을 다해 봉사를 다짐했으나(갈 4:15), 거짓 선생들의 잘못 된 교훈을 받아들여 탈선하는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갈 3:1-3). 시편 1:1-2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고 하였습니다.

(2)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야합니다.

에베소서 4:22-24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사람이라도 그 속에는 육신의 사람과 성령의 사람이 공존한다고 하였습니다(롬 7:21-23). 그 중에도 육신의 성품은 세상으로부터 오는 유혹이나 자기 속에서 발동하는 정욕에 대하여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하나님의 길에서 이탈하도록 작용합니다. 이것을 억제하며 하나님과 더욱 밀착하게 하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으로만이 가능합니다. 로마서 8:7-9에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8:14에는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8:26에는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3) 적극적인 훈련입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게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이 우선하지만 여기에는 우리들 스스로 예수를 닮아가기 위한 피나는 훈련이 동반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를 가리켜 「해산하는 수고」라고 하였습니다. 곧 죽음을 통과하는 것 같은 자기와의 싸움을 하여야만 된다는 뜻입니다. 로마서 6:6-7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으로 성장하였다가 다시 옛 사람의 자리로 떨어져 버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죄의 종노릇하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불행한 것인가를 알 것입니다(히 6:4-6). 그렇기 때문에 다시 해산하는 고통을 반복하면서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2:0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Ⅲ. 해산하는 수고를 담당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축복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것과 인간의 수고로 이루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새 생명을 얻는 일의 경우 생명을 잉태하게 하는 것이 은혜로 되는 것이라면 해산하는 수고는 사람이 담당하여야될 부분입니다. 더욱이 세상에 난 생명이 그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완성된 인격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많은 수고가 투입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싸인에 따라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며 피나는 훈련을 거듭하여야 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거기 못지 않게 가정이나 교회나 사회가 담당하야 될 책임을 하나님께서는 강력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1) 신앙적인 가정교육입니다.

잠언 22:6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교훈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4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선포하면서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라고 하였습니다(신 6:4-9).

하나님께서는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자녀로 선물하시고(시 127:3), 그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가꾸도록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디모데의 집안은 모범적인 신앙 교육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디모데후서 1:5에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고 하였습니다.

(2) 건전한 교회의 역할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기는 예배적 인격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이웃을 사랑하고 서로 도와주는 인화 협동적인 인격자가 되게 하며 더 나아가서 자기의 존재 가치와 목적을 바로 알아 자기의 본분을 성실히 수행하므로써 문화적 인격자가 되게 하는 일입니다.
이와 같은 교회 교육의 요체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른 종교단체나 사회의 교육 기관에서는 그 나름대로 지식이나 과학이나 도덕을 가르쳐서 교양을 시키고 있지만, 사람의 근본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지는 못합니다. 시대나 환경에 구별 없이 건전한 교회는 인력과 재정을 투입하고 모든 행정력을 기울여서 성경 중심의 신앙 교육에 주력하여야만 되는 것입니다.

(3) 밝은 사회의 토양을 만드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8:6에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무책임한 가정이나 타락한 사회가 자라나는 세대로 하여금 죄악에 오염되고 탈선하게 하는 요인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고(창 1:26),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타락한 세상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서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망가뜨리데 되는 요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소금과 빛의 사명을 수행하며 민족 복음화와 세계 복음화를 시급하게 이루어야 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시대에 주님께서는 자기의 교회로 하여금 해산의 수고와 같은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일에 그 사명을 다하도록 분부하십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구현되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게 하는 일이 진정 그리스도의 이상을 이루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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