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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쉼 / 왕상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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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그리스도인의 쉼 (7/27)
본 문 왕상 19:1~8

휴가철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때쯤 되면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휴가를 잘 보낼 수 있나?" 고민하게 됩니다. "바다로 갈까? 산으로 갈까? 아니면 해외로 나가볼까? 형편이 좋지 못하니까 "방콕"에서 비디오나 빌려다 볼까?" 이것도 해마다 여간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고민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참된 휴가를 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참된 쉼을 누릴 수 있을까?" 세상 사람들이 보내는 휴가는 자칫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또 다른 무거운 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휴가로는 참된 쉼을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쉼에는 세 차원이 있습니다.

  첫째, 휴식의 차원입니다.

  권투경기를 보면 선수들이 3분 동안 죽을 힘을 다해서 경기를 합니다. 그리고 1분 동안 휴식을 취합니다. 선수들은 이 짧은 시간 동안 경기를 멈춥니다. 그리고 피곤에 지친 몸을 추스르고 재충전합니다. 바로 이것이 휴식입니다.

  그러니까 휴식은 먼저 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카피처럼 잠시라도 일을 멈추고 일에서 해방을 맛보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피로를 다 내 던지고 재충전하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리고 새롭게 힘을 얻는 것입니다. 원래 바캉스(vacance)라는 말이 ꡒ비운다ꡓ라는 뜻인 것처럼 우리 안에 가득 찬 피로와 스트레스를 비우고 재충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이런 휴식이 필요합니다.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적당한 휴식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일에 쫓기고, 일상생활에 짓눌리고, 세상사에 시달려 파김치처럼 곤고해 진 우리의 몸을 추스르려면 반드시 휴식이 필요합니다.

  둘째, 여가(leisure)의 차원입니다.

  우리에게 휴식으로 다 채울 수 없는 쉼의 차원이 있습니다. 일 이외에 활력을 주고 보람되고 가치 있는 무엇인가에 몰입하면서 누리게 되는 보다 차원 높은 쉼이 있습니다. 이것을 영어로 레저(leisure)라 말하는 여가입니다.

  요사이 삶의 질이라는 표현을 많이 듣게 됩니다. 바로 여가 생활과 관련된 뜻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여가생활이 풍성한 삶을 삶의 질이 높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오락과 스포츠에 몰두합니다. 그 안에서 일상생활의 지루함을 벗어버리고 삶의 새로운 활력을 찾게 됩니다. 사람들이 나름대로 취미생활을 합니다. 그 안에서 삶의 완성도를 높여갑니다.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배우거나 봉사활동에 참여합니다. 그 안에서 삶의 가치를 높여갑니다.

  우리에게 이런 여가생활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일벌레가 아니기 때문에 일 이외에서 부족한 삶의 가치 찾아야 합니다. 여가생활을 통해서 존재 의미를 보다 고양시켜갑니다. 자기 발전을 이루어 가야합니다.

  셋째, 안식의 차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휴식과 여가로 채울 수 없는 또 다른 쉼의 차원이 있습니다. 바로 안식입니다.

  창 2:1-3을 보면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제 7일에 안식하셨고, 특히 이 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출 20:8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 날을 기억하여 지키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도 이 안식에 참여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히 4:11을 보면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안식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라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휴식은 취할 수가 있습니다. 여가도 스스로 만들어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식만은 인간 스스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허락하실 때만 맛볼 수 있습니다.

  이 안식의 핵심은 바로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킨다고 할 때 그 핵심은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배 속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나누며 그 안에서 지치고 곤고한 우리가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동안 우리의 영과 육이 온전히 치유되고 회복됩니다. 그래서 무너진 평안을 되찾게 됩니다.

  우리에게 이 안식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짐을 지고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실패의 짐을 지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염려의 짐을 지고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절망의 짐을 지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잠시 쉬는 휴식으로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여가생활을 즐긴다고 해결할 수 없습니다. 다만 잠시 잊을 뿐이고, 일시적으로 도피할 뿐입니다.

  마 11:28을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쉼은 주님께서 주시는 안식입니다. 우리가 이 여름에 주님 주시는 참된 쉼 이 안식을 풍성히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이 안식을 누리는 이야기입니다.


쉼이 필요한 사람들

  왕상 18장을 보면 3년 가뭄의 긴 고통 중에 엘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리고 목숨을 건 영적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바알을 섬기는 이방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 도합 850:1의 영적 전쟁에서 하나님의 불의 응답으로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소식이 아합의 왕후 이세벨에게 전해집니다. 이미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처참하게 죽였던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사람을 엘리야에게 보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엘리야는 이미 목숨을 건 영적 전쟁으로 지칠대로 지쳐있었습니다. 더 이상 이세벨과 싸울 힘이 없었습니다. 너무 두렵고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한 숨에 브엘세바까지 도망쳤습니다.

  지금 있는 곳은 갈멜로 이스라엘에서는 북쪽입니다. 그런데 브엘세바는 이스라엘의 최남단입니다. 이 먼 거리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브엘세바에 사환을 머물러 있게 하고는 거기서 또 하룻길을 광야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리고 지칠대로 지쳐서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자포자기한 채로 죽기를 소원했습니다. 본문 4절을 보면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우리는 엘리야의 이런 상황을 한 마디로 "탈진"(burnout)이라고 진단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탈진은 영적이고 육체적인 모든 에너지가 다 소진된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해야 되는 것을 알면서도 도무지 할 수가 없습니다. 점점 주저앉고 무너져 내립니다. 만사가 귀찮고 다 포기하고 싶습니다. 아무런 소망도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죽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확인하면서 놀라게 되는 것은 갈멜산의 영웅 엘리야가 탈진상태에 빠졌다는 점입니다. 850:1이라는 영적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이루어냈던 저 영적 거장 엘리야가 어떻게 이렇게 무기력하게 탈진상태에 빠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약 5:17을 보면 "엘리야도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영적 지도자인 엘리야도 우리와 같은 사람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도 탈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는 어떻겠습니다. 더 쉽게 탈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엘리야는 죄를 범한 것이 아닙니다. 책망 받을 짓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그는 지치고 탈진했을 뿐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나무라시지 않으셨습니다. 불쌍히 여기셨을 뿐입니다.

  저는 어떤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 저는 목회를 그만 해야 할 것 같아요? 도저히 더 이상 지탱해 낼 힘이 없습니다." 또 어떤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 교회를 그만 다녀야 할까 봐요. 아니면 교회라도 옮겨야 될까 봐요. 너무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더 이상 이렇게 교회생활을 계속해 갈 힘이 없습니다." 이것이 탈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탈진을 경험해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혹시 지금 탈진해 계시지 않으십니까? 분명히 탈진은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탈진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책망하시거나 미워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불쌍히 여기실 뿐입니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누구라도 탈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거기 오래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죽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죽으면 안됩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포기하면 안됩니다. 도망치고 싶다고, 떠나고 싶다고 도망치거나 떠나서는 안됩니다.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쉼이 필요합니다. 쉼 중에서도 안식이 필요합니다.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안식이 필요합니다. 안식이 없는 삶에 탈진이 찾아옵니다. 이 탈진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참된 안식이 필요합니다.


쉼을 주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을 보면 탈진상태에 주저앉아 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5절을 보면 로뎀나무 아래 탈진하여 쓰러져 자고 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7절을 보면 탈진하여 누워있는 엘리야에게 다시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번이나 탈진하여 잠들어있는 엘리야를 찾아 로뎀나무 아래로 찾아오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엘리야는 탈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망쳤지만 하나님은 엘리야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소명도, 갈멜산의 위대한 승리도, 이스라엘 백성들도 다 내 던지고 도망쳤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엘리야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10절을 보면 엘리야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직 나만 남았거늘..." 지치고 힘이 들어 탈진하고 있는데 어디를 둘러봐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 누구도 내게 힘이 돼줄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이 엘리야의 탈진을 더욱 깊게 만듭니다.

  그러나 모두가 엘리야 곁을 다 떠났어도 하나님만은 그를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엘리야의 탈진이 치료되기 시작합니다. 그가 참된 쉼 안식을 얻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참된 쉼 안식은 주님께서 다가오실 때 비로소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실 때 탈진이 치유될 수 있습니다.

  제가 힘들 때 즐겨 부르는 찬양 가운데 "나의 등 뒤에서"라는 곡이 있습니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 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 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평안히 길을 갈 땐 보이지 않아도
  지치고 곤하여 넘어질 때면
  다가와 손 내미시네
  봉수야 일어나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봉수야 일어나라 내 너를 도우리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지치고 곤해 넘어질 때 탈진하여 주저앉아있을 때 찾아와 손 내밀어 주십니다. 우리의 등을 떠밀어 주십니다. 여기서부터 탈진은 치료되기 시작합니다. 참된 쉼 안식은 우리에게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구체적으로 주님께서 쉼을 주시기 위해서 하신 일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첫째,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5절을 보면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라고 했습니다. 7절을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또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쳐서 쓰러져 잠들어 있는 엘리야를 따뜻한 손길로 어루만져주셨습니다.

  미국의 심장건강센터의 딘 오시니 박사는 [행복으로 이르는 8가지 길]이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 안에서 행복으로 이르는 길 가운데 하나로 어루만지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서로 어루만지면 마음에 담긴 사랑을 깊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 깊이 전해진 사랑이 행복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어루만지셨습니다. 엘리야가 마음 가득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게 됩니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님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절망이 사라지고 참된 기쁨과 행복이 샘솟기 시작합니다.

  마이애미의 신체 접촉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어루만지는 이 애정이 담긴 접촉은 엔돌핀의 분비를 촉진시키고 체내 면역기능을 강화시킬 뿐 아니라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를 억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루만짐은 치유효과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루만지심으로 엘리야의 심령에 치유가 시작됩니다. 그 심령 속의 상처가 치료가 되기 시작합니다.


  둘째,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5절을 보면 "일어나서 먹으라" 말씀하셨습니다. 7절에 또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서 먹으라"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치고 곤한 그의 몸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음식을 준비하셨습니다. 그 육체에 에너지를 공급시켜주신 것입니다. 육체의 필요를 채우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에만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육체도 건강하고 활력 있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잘 쉬고 잘 먹기도 해야 합니다. 육체가 강건하지 못하면 참된 안식을 누리기 힘이 듭니다.


  셋째, 사명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호렙산으로 보내셨습니다. 11절 이하를 보면 이 호렙산에서 엘리야에게 새로운 사명을 부어주셨습니다.

  9절과 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물으셨습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탈진한 엘리야가 사명을 잃어버리고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나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5절 이후에 엘리야의 사명을 다시 확인시켜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에로 돌아가게 해 주십니다.

  온전한 안식은 다시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게 해 줍니다. 참된 쉼은 다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에로 힘차게 복귀하게 해 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쉼이 필요합니다. 휴식도 필요하고 여가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식입니다. 하나님께서 로뎀나무 아래서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지치고 곤고할 때 로뎀나무 아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로뎀나무 아래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에게 참된 안식을 주실 것입니다.

# 기도/

      우리의 곤고함을 돌아보시옵소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어루만져주시고 참된 쉼을 주시옵소서.
      안식을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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