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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베푸는 삶 / 마 7: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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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 7:7-12
설교제목 : 베푸는 삶 

  오늘은 『베푸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 12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본문은 구원받은 성도의 삶의 방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대접을 받고 싶으면 먼저 대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생활전도가 이루어집니다.  칭찬 받는 기독교인이 됩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큰 호수가 두 개가 있습니다.  너무 커서 바다라고 합니다.  하나는 갈릴리호수이고 다른 하나는 사해입니다.  갈릴리 호수는 푸르고 청청합니다.  그 호수 안에는 많은 물고기가 살고 있습니다.  성지순례 때 갈릴리 해변에서 식사를 하게 되면 베드로 고기라고 하는 그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를 먹게 해줍니다.  그러나 사해는 염분이 높은 매우 짠물로 되어 있습니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사람도 거기 들어가면 몸이 둥둥 뜨게 되어 익사할 염려가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너무 물이 짜서 물고기가 없습니다.  다른 생물도 없습니다.  조개 같은 패류도 없습니다.  진흙 갯벌뿐입니다.  두 호수는 왜 그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두 호수의 근원은 같습니다.  북쪽 헬몬산에서 눈이 녹아 물이 내려오면 그 물은 갈릴리 호수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갈릴리 호수는 계속하여 그 물을 요단강을 통하여 하류로 내려보냅니다.  그런데 사해는 그 물을 받기만 하고 다른 곳으로 흘려 보낼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염분이 높아져 아무 생물도 살지 못하는 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해(死海)라고 합니다.  영적인 해석입니다.  줄줄 아는 자는 복 받은 자입니다.  베풀 줄 모르면 사해와 같은 죽은 바다처럼 됩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이 있다”
  누가복음 6장 38절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베풀기를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한번은 그가 집 앞에 앉았는데 사람 셋이 그 의 집 앞에 당도하였습니다.  그는 달려나가서 그들을 맞이하고 귀하게 준비한 식사를 대접하였습니다.  그 세 사람은 하나님께서 천사 2명과 함께 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아브라함은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극진한 대접을 받고 나서 그에게 두 가지의 복을 베풀었습니다.

  첫 번째는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의 아내 사라가 그 말을 듣고 웃었습니다.  그는 인간적으로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나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능치 못하심이 있겠는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을 미리 아브라함에게 알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소돔, 고모라 도시가 죄악이 너무 많아 그곳을 심판하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생각났습니다.  소돔, 고모라가 심판 받으면 거기에 살고 있는 조카도 더불어심판 받을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의인 50명이 있어도 심판하실 것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용서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거기에 의인 50인이 있을 것임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점점 숫자를 줄여가며 하나님께 “그래도 용서해주실 것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45명, 40명, 30명, 20명, 결국 10명까지 내려왔습니다.  하나님은 10명만 있어도 용서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당했습니다.

  고넬료가 복 받은 것은 베푸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로마가 파송한 이달리야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하여 하나님을 믿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진실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① 그는 경건했습니다.  삶이 칭찬 받았다는 것입니다.
  ②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정치가로서 인기를 얻기 위한 전술로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진실한 성도였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전 가족의 복음화였습니다. 
  ③ 그는 항상 기도하였습니다.  필요할 때만 기도한 것이 아니고 항상 기도한 것입니다.  생활 전체가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④ 그는 많은 백성에게 구제를 베풀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구제를 기억하셨습니다.  그래서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를 청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그는 경건한 종을 보내어 베드로를 초청하였습니다.  베드로가 그의 집에 들어 왔을 때 그는 땅에 엎드려 절하며 맞이했습니다.  겸손한 모습입니다.  주의 종을 모시는데 세상적인 명예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이방인인 고넬료 가정에 가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했을 때 성령께서 그들 가정에 내려오셨습니다.  성령세례를 받게 했습니다.  그런 후 물세례를 받았습니다.  베풀기를 좋아한 고넬료에게 하나님은 더 큰 은혜의 자리에 들어가도록 복을 주셨습니다.  성령세례 먼저 받고 물세례를 받는 복을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기록된 부자가 음부에 간 것은 베푸는 삶을 등한히 했기 때문입니다. 
  ① 그는 부자였습니다. 
  ② 비단옷을 입었습니다.  자색 옷입니다.  그 옷은 임금이 입는 옷입니다.
  ③ 그는 날마다 잔치를 했습니다.
  ④ 그는 호화로운 생활을 했습니다.
  ⑤ 그는 큰 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⑥ 으리으리한 가구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⑦ 그는 넓은 토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⑧ 그는 큰 창고를 짓고 곡식을 쌓아놓았습니다.
  ⑨ 수많은 종들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물질에 부족함 없이 풍족함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는 인생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종들이 일을 해주니까 본인은 일할 것이 없습니다.  감독만 하면 됩니다.  점검하면 됩니다.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했습니다.
  ⑩ 비싼 술을 먹게 되었습니다.  지금 가격으로 계산하면 몇 백 만원, 몇 천 만원 하는 고급술입니다.
  그는 건강했습니다.  그가 불구자이거나 병들었다면 날마다 연락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가 병들었다면 병 고치는 일에 힘썼을 것입니다.
  그는 형제도 많았습니다.  다섯 형제가 있었습니다.  세상적으로 외롭지가 않았습니다.  형제간 사이도 좋았습니다.  그는 음부에 들어가서도 형제들의 영혼을 염려하고 근심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실패였습니다.  그렇게 잘 살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해 준 것이 없었습니다.  그의 집 대문 앞에 불쌍한 거지가 살고 있었는데도 그를 도와준 일이 없었습니다.  그는 오직 자기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는 더 귀한 세상을 몰랐습니다.  불행하게도 천국을 몰랐습니다.  재물, 쾌락, 명성 때문에 저 세상을 생각할 틈이 없었습니다.  그는 큰 불행에 빠졌습니다.  음부에 들어갔습니다.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  거기는 뜨겁고 목이 마릅니다.  거기에는 은혜를 베푸는 자가 없습니다.  한없이 외롭습니다.  끝없는 불행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좋은 기회를 모두 놓쳤습니다.  회개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아무리 음부에서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듣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새 출발도 불가능합니다.  영원토록 그 상태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거기는 죽을 수도 없는 곳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사업이 잘 안되거나, 시험성적이 좋지 않거나, 직장을 잃는 등 가정이 복잡해지고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으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귀의 작전에 속는 증거입니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육체는 흙에서 왔습니다.  죽으면 그 육신은 다시 흙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영혼은 음부로 가게 됩니다.  영혼은 고통 속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쉽게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하면 안됩니다.  영혼은 죽음이 없습니다.  영생과 영벌로 나누어게 됩니다.  음부는 죽을래야 죽을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부자의 일생은 큰 실패입니다. 
  ① 그는 봉사의 기회를 잃었습니다.
  ② 그렇게 많은 재물을 연락하는데 모두 낭비했습니다.
  ③ 좋은 일에 하나라도 사용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④ 도움의 손길을 펼 수 있는 기회를 선용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록펠러 1세는 큰복을 받은 후 대학을 12개 세웠습니다.  예배당 4928개를 건축했습니다.  받은 복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베푸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봉사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돈 벌어놓고 봉사하겠다, 돈 벌어놓고 베풀겠다는 생각은 모두 사단 마귀의 작전입니다.  오늘 해야 합니다.  지금 해야 합니다.  잠언 27장 1절에서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고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그 부자에게는 감사가 없었습니다.  큰 재물 가진 것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부하게도 하시고 가난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는 건강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복 가운데 제일 큰 복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감사를 모른 채 인생을 살았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부자로 살던지, 거지로 살던지 한번은 죽음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그 부자는 음부에 들어갔고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이 직접 주신 이야기입니다.  거지 나사로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이름이 없습니다.  성경학자들은 해석합니다.  그것은 그 부자의 유가족을 생각해서 예수님은 실명을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무엇을 갖고 계십니까?  베푸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많은 물질이 있어야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적게 가지고 있어도 베풀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이것이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부모님들이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모두 구제의 손길을 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넬료의 구제를 하나님이 기억하셨듯이 우리의 구제도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삭개오를 보십시오.  그는 높은 관직에 있었고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에게 참된 안식과 평안을 주지 못했습니다.  고민,고민하다가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를 부르셨습니다.  오늘 네 집에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습니다.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나 갚겠습니다”라고 회개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로다”라고 복을 빌어 주셨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물질을 내어 놓을 수 있습니다.  그가 “베풀겠습니다”했을 때 주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말씀주신 것입니다. 

  과천교회의 목표는 “뜨겁고 가득차 넘치는 교회”입니다.  제가 25년 전에 이 목표를 만들 때에 참고한 성경이 사도행전 2장 42절 이하에 있는 말씀입니다.  성령충만을 체험한 베드로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했을 때 3,000명이 예수를 구주로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나아가서 그들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사도행전 2장 44절과 45절입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성령충만이 뜨거운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때 교회가 가득 차게 됩니다.  교회가 성장합니다.  부흥합니다.  부흥하면 무엇합니까?  넘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즉 남을 도우는 일에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더 주십니다.  생활전도가 이루어집니다.  저의 25년 과천교회 목회는 이 목표를 가지고 달려왔습니다.  하나님은 과천교회에 복을 주셨습니다.  금년 예산 가운데 약 13억원, 즉 1/4을 남을 도우는 일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국내선교비, 세계선교비, 봉사위원회 예산, 장학부 예산등입니다.  이것이 넘치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지난번 보건복지부장관께서 이웃돕기를 잘했다고 우리 교회에 표창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더 많이 베푸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베푸는 삶을 잘해야 하나님은 계속 복을 주십니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주십니다.  소문 나는 교회가 됩니다.  고임 받는 일꾼이 됩니다.  존경받는 일꾼이 됩니다.  사도행전 같이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십니다. 
  다음, 베풀 때에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17절입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어떤 일이든 주님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영광 받습니다.  그렇게 되면 시험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예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록펠러가 12개의 대학을 세우고, 5,000여 개 정도의 예배당을 세워도 그의 이름은 없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복을 크게 나누면 두 가지입니다.  먼저 하늘의 신령한 복입니다.  예수 잘 믿는 복입니다.  하나님께 예배 잘 드리는 복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복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땅의 복도 주십니다.  땅의 복은 물질의 복입니다.  십일조가 많아지는 복입니다.  꾸어줄지언정 꾸지 않는 복입니다.  이 복은 어떻게 주어지는가?  오늘 본문과 같이 “무엇이든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을 준행하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서 경찰서장, 세무서장, 목사님이 함께 점심식사를 했답니다.  그런데 세 분 다 식대를 내지 않더랍니다.  결국 식당주인이 식대를 계산했다고 합니다.  대접받기를 좋아하는 그들이 대접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베풀지 못하는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대접하기를 좋아하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들도 더 큰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본문 12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오늘 우리 모두에게 이 은혜가 있으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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